군대 휴가 나오면 군복 입은 사람만 보이고, 아내가 임신하면 임신부만 보이고, 남자가 육아휴직 쓰면 평일에 아이 안고 있는 남자만 보이고......
현재 관심사에 따라 세상이 보이는 부분이 다르다.
그리고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극장 가서 영화 본다는 것은 꿈에도 불가능한 일.
그나마 케이블 TV로 늦게나마 쫓아갔던 영화도 반년 가까이 TV없이 살다보니 닭 쫓던 개보다 못하다. 그러던 차 이번 추석 연휴기간 고향에 있으면서 특선영화를 실컷 봤다. 예전 같으면 극장에서 다 봤을 영화들이었을텐데 이번에 정 반대다. 정말 하나도 본 것이 없다. 횡재한 거지 뭐.

그래서 본 영화들이 '도둑들' '댄싱 퀸' '마이 웨이' '베를린' 이다. 뭐, 영화평을 나불거리기엔 역부족이고... 그냥 기억에 남은 대사, 그것도 정확하지 않지만, 곱씹어 보고 싶다.

"도둑인데, 그럴 수 있지" -도둑들 중
"사람은 배신을 하거든" - 베를린 중

네 영화 모두 믿음과 배신으로 읽혔다. 인간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인지, 그래서 인간에 대한 믿음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감하게 됐다는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왜' 배신하는가를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믿음이 깨진 자의 아픔을 동감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출하고 치유할 수 있을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영화는 영화다. 믿음은 끝내 깨지지 않았고, 그것은 오해였을 뿐이다. 상처는 자연스레 아물고, 치유는 이미 이루어졌다. 오해가 아닌 자들은 영화관 밖에 서 있을 뿐이다. '사람은 배신한다'는 말을 곱씹으면서. '베를린'처럼 독약 주사도 총의 방아쇠도 당기지 못하면서. 그저 서 있을 뿐이다.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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