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일 12도 ~27도 맑음

 

밭에서 캔 칡순과 칡뿌리로 차를 만들었다.

 

 

먼저 칡순 중 큰 것은 작게 자르고, 줄기도 연한 곳은 사용해볼 심산으로 짧게 잘랐다.

 

 

자른 잎과 줄기는 일단 한 번 찜기로 찌는 과정을 거쳤다.

 

 

쪄진 잎은 후라이팬의 센불로 덖었다.

 

 

덖은 잎은 비비는 과정을 거친다.

 

 

드디어 햇빛에 잘 말려 차가 완성됐다. 녹차 만드는 과정을 흉내내본 것인데, 잘 됐는지 모르겠다.

 

 

다 마른 칡순은 다시백에 담아서 녹차를 우리듯 뜨거운 물에 우렸다.

음~ 칡향이 난다기보다는 녹차와 비슷한, 하지만 조금 연한 맛이 난다. 나름 괜찮은 맛이다. 이번에 시험삼아 만들어본 것인데, 다음엔 잎이 작은 것만 고르고, 줄기는 빼고 만들어봐야겠다.

 

 

칡 뿌리는 작게 잘라서 햇빛에 말렸다. 아직 달여보지는 않았지만, 어린 뿌리임에도 칡향은 제법이다. 기대가 된다.  

 

새로운 맛을 만들고 찾아가는 과정이 꽤 재미난다. 다음엔 꽃차에도 한 번 도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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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11도 ~23도 오후 한때 비

 

지난 한해는 밭관리를 거의 하지 못했다. 풀은 허리넘어 자랐고, 수풀 속으로 칡은 덩굴을 뻗어나갔다. 겨울을 나며 풀은 모두 죽어 쓰러졌다. 자연스레 멀칭이 된 것이다. 칡은? 

 

 

지난 겨울을 났던 칡 덩굴 중 흙에 조금이라도 닿는 부분은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새순을 뻗쳐 낸다. 체리를 심어놓은 밭 여기저기에 칡순이 올라와 있다. 그냥 놔두면 칡덩굴로 체리가 자라지 못하고, 뿌리 또한 심하게 퍼지면 땅을 들썩이게 해 다른 나무가 자라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순을 자르고 새롭게 뿌리를 내린 곳은 땅을 파내어 뿌리도 뽑아냈다. 뿌리 한 털 없이, 순 조각 하나없이 제거해야 하지만, 어딘가에 남은 쪼가리가 있을 것이다. 칡 줄기를 제거해 아무곳에다 두면 칡은 다시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순을 내놓기 때문에 처리를 잘 해야 한다.

 

그런데 칡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또 녹차처럼 차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칡뿌리는 잘 알다시피 착즙으로, 또는 차로 먹을 수 있다. 칡의 영양소가 얼마나 많으면 녹용과 버금간다 하여 갈용이라 부를까. 하지만 몸이 차가운 사람이나, 어린 여자, 임산부 등은 먹는데 조심해야 한다. 여성호르몬이 많아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칡은 작물을 재배하는데 걸림돌이다. 피해를 입히는 해로운 식물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면 몸에 좋은 영양소를 지닌 나물이자 차로 먹을 수 있는 이로운 식물이다. 칡을 없애겠다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눈을 부릅뜨지않고, 향 가득한 차를 만들어 마시겠다 생각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시간이 나는대로 칡의 새순을 찌고 덖어서 차로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

칡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좋고 나쁨을 만드는 것이다. 체리밭의 칡도 예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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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일 13도~27도 조금 흐림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온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의 대부분은 알지못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때의 알지못함이란 지식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지혜나 진리라는 측면에서의 무지다.  

 

지식이 없는 무지는 걱정을 만들거나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바쁘다'는 말은 지식이나 요령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주 골든베리가 싹을 틔웠다고 좋아했는데, 아무래도 잡초인 것 같다. 골든베리씨앗을 뿌려놓은 곳에 조개껍데기를 놔두어, 싹이 올라오면 알아볼 수 있게했는데, 그 자리에 하필 풀이 올라온듯하다. 표시해 둔 곳이 아닌 곳에서 나온 싹들과 꼭 닮아 있는 것이다. 골든베리의 싹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알지 못하기에 벌어진 일이다. 논에 가서 피를 뽑으랬더니 벼를 뽑아버린 어리석은 농부의 꼴이다.

 

골든베리 여부를 전혀 알 수 없어, 하는수없이 씨를 따로 트레이에 심었다. 모종을 키워볼 심산이다. 트레이에서 싹이 나면 확실히 골든베리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직파한 곳의 싹은 놔두었다가, 모종과 닮았는지 비교해 볼 계획이다.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자라는데는 큰 영향이 없기를 바래본다.

 

 

블루베리밭에는 블루베리꽃송이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특히 꽃이 많이 달린 가지 밑에는 꽃송이가 한무더기이다. 

 

 

수정이 되면서 열매를 맺고 꽃송이가 떨어진 것인지, 꽃이 너무 많이 열려 자체적으로 꽃을 떨구어낸 것인지, 즉 수정이 안된채로 떨어진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꽃송이가 떨어진 자리에 열매가 맺는지 여부를 살펴봐야 할 듯싶다. 부지런히 벌들이 다니고 있으니, 물론 여러 마리가 아니라 한두마리가 부지런을 떨고 있긴 하지만, 수정이 잘 됐기를 희망해본다. 

 

아직도 알아야 할 게 많다. 하지만 급하게 마음을 먹진 않으리라. 시간이 흘러야 꽃을 피고 열매를 맺듯, 이들을 잘 관찰하다보면 어느새 알아야 할 것들을 알게 되지 않을까. 물론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두려움과 수고를 덜어줄 앎을 향해 오늘도 한 발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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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사냥의 시간]과 비슷하게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액션물 [익스트랙션]. 몰입감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사냥의 시간]이 보여주는 개성을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지만, [익스트랙션]은 한마디로 현장감 있는 액션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촬영과 편집기법의 발전이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지 궁금할 정도다.

영화 [1917]의 '원 컨티뉴어스 숏' 처럼 [익스트랙션] 중반쯤 펼쳐지는 차량추격신과 이어 벌어지는 총격신은 그야말로 입을 다물수 없게 만든다. 마치 주인공 옆에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만큼 현장감이 가득하다. [1917]은 걷고 뛰는 병사들의 속도에 맞추어 움직이기에 연속된 촬영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익스트랙션]은 차량 추격에서 곧바로 거리에서 펼쳐지는 총격신으로 이어져 어떻게 촬영됐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속도가 다른 장면을 주인공 바로 옆 시점으로 한 컷으로 이어서 보여주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2.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된다고 한다. 하지만 보통은 어른들 싸움에 아이들이 피를 본다. 인도의 마약왕과 방글라데시의 마약왕간의 싸움에 아이가 죽을 고비를 맞는다. 인도 마약왕이 감옥에 갇힌 사이 방글라데시 마약왕이 인도 마약왕의 아들을 납치한다. 인도 마약왕은 어떻게든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고 마약왕의 부하는 용병을 부른다. 하지만 용병을 이용할 돈이 부족하면서 꼼수(?)를 쓰는데 이것이 일을 꼬이게 만든다. 마약왕의 아들은 살아남기 위해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

 

3. 목숨을 건 대결에서 자비란 자기 목숨을 내놓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비록 그 대상이 아이일지라도 말이다.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정글과 같은 환경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행위가 얼마나 무자비한지를 알 수 있다. 방글라데시 자카의 마약거리에서 자라는 아이들.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쓰고 총을 쏘고 분노를 써야 한다. 자신에게 베풀어진 자비가 자비인줄을 모르고 아이라 업신여겨졌다 생각하는 치졸함이 분노를 키워 무자비하게 방아쇠를 당기게 만든다. 뒷골목은 그렇게 아이들을 키워낸다.   

 

4. [본]시리즈와 같은 추격과 1995년작 영화 [히트]와 같은 도심총격전을 좋아하는 액션영화 애호가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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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16~27도 흐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지황이 드디어 싹을 냈다. 솜털이 달린 잎을 살뽀시 내놓은 모양새가 귀엽다. 지황의 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기에 더욱 반갑다.

두둑 하나는 짚을 깔고 다른 한쪽은 맨땅으로 두고서 관리했는데, 이번에 싹을 낸 것은 짚을 깐 쪽이다. 맨땅 쪽에서는 아직 새싹을 보지 못했다. 추세를 조금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짚을 깐 쪽이 성장에 더 좋은 환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소 늦었다고 생각하면서 심은 감자도 싹을 냈다. 10여개 심은 것 중에 달랑 하나가 먼저 인사를 한다. 지금 보니 모양새가 지황과 닮아 있다. 솜털만 빼면 겉모양새는 비슷해보인다.

 

실은 언제 지황이 싹을 낼지, 감자가 싹을 낼지 노심초사했다. 이런 마음이 싹을 내는데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때가 되면 씨앗은 싹을 낸다. 옆에서 물만 잘 주고 지켜봐주기만 하면 된다. 내가 원한다고 억지로 싹을 뽑아내 집어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가 되면 싹은 난다. 때가 되면 아이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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