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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귀신이야기가 최고다. 오싹한 귀신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열대야는 저만치 사라져간다. 그런데 꼭 귀신이야기라고 해서 납량물일 이유는 없다. 사랑의 따스함이 온건히 가슴에 와 닿는 동화같은 귀신이야기도 있는 법.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에 나오는 단편들이 바로 그렇다.

어렸을 때 죽어버린 아이가 귀신이 되어 성장한 모습을 차례차례보여주는 '철도원', 망자가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죽은 이의 편지가 마음 속 깊은 암흑으로부터 뚫고 나와 빛이 되는 '러브레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나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대신해주는 '백중맞이' 등등.

<철도원> 속 단편 주인공들은 저마다 아픈 현실속에서 살아가다 망자를 맞이한다. 그들은 망자를 보면서 절대로 무서워하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그 망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을 위로하고자 나타난 것이기에. 망자의 이러한 사랑은 그들을 맞이하는 주인공들의 망자에 대한 이해로 더욱 빛나게 된다. 왜 그들이 현실 속에 나타나 자신을 돕는지를, 위로하는지를 깨달아 주기 때문에 그들의 출현은 빛을 발한다. 서로간의 자리를 이해해주는 사랑의 정신이 소설 전체에 깔려있어 그 따스함을 책을 잡고 있는 손끝에서 바로 느낄 수가 있다.

아~, 사람에 대한 사랑이란 이렇게도 따스한 것이구나. 죽어서도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 미움과 한이 가득찬 귀신이 되기 보다는 애정과 관심을 갖는 귀신이 된다는 것. 소설이 직접적으로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진 않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귀신이 될 수 있다면 죽는것조차도 두렵지 않을듯 싶다. 가슴 한 켠을 따뜻이 적셔주는 동화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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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와' 함성이 울린다. 장막이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조용필은 다시 한번 '기도하는'을 외친다. 또다시 쏟아지는 함성소리. 작년 8월에 열렸던 콘서트의 서막이다. 직접 가서 본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의 감동이 거세게 밀려온다. 도대체 이 벅찬 감동의 정체는 무엇인가?

35년이라는 세월을 자신이 사랑한 일에 한결같이 헌신하는 삶이란 자랑스러워 할 만하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를 존경해도 된다. 아무도 욕하지 않을 것이다. 딴따라를 넘어서 예술의 경지로 대중음악을 이끈 작은 영웅은 아직도 노래를 부를땐 가슴이 심장이 들뜬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인마저도 세월이 지나면 두근거림이 사라져갈 터인데 오직 노래를 부른다는 그 행위 하나만으로 아직도 가슴이 뛴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목석마냥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의 정열은 하나의 열병이다. 그의 노래를 듣는 이순간 나의 몸은 뜨거워질테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듯 깨끗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열병의 기억은 뇌리속에 남아 또 다시 누군가의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가차없이 발병할 것이다.

난 나의 심장소리를 듣고 그 열병이 도지길 바란다. 무엇인가에 쿵쾅쿵쾅 뛸 수 있는 심장을 가지고 있으니 기어코 언젠가는 그 심장을 신나게 뛰도록 만들리라. 무대위에서 열정적으로 자신을 불사르는 저 킬리만자로의 표범 조용필이 있지 않은가? 이미 50을 넘은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듯 그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그의 몸은 뜨겁다. 나도 뜨거워지길 바란다.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그 뜨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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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누워있으면 한없이 약해진다. 그래서 조그만 친절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날마다 아픈 사람을 보아야 하며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어야 하는 간호사. 왠만해서는 짜증을 낼만도 하건만 무던히도 잘 참아낸다. 더군다나 형식적 친절이 아니라 웃음까지 안겨주며 쾌활하게 일하는 그네들을 보면 이건 감동이다.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아파도 웃게 만드는 힘을 준다는게 얼마나 고귀한가?

이네들을 보면 뭐 인생 별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웃으며 사는 거지 하며 말이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명랑체육대회일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뛰어야하지만 말 그대로 명랑하게 갈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명랑극장, 명랑만화, 명랑소년, 그리고 명랑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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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2-20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게 사십시오! ^^

하루살이 2004-02-2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게]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힘 내겠습니다
 

일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날. 죽을지도 몰랐었다는 안도감 속엔 무엇인가 허무함이 밀려왔다. 병원 침상에서 누워있으면서 내 머리속에선 누구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보고싶은 사람 하나 없다니... 이제 30을 갓 넘게 살아온 내 삶에 있어서 기억해 두고 싶은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 과연 내가 제대로 인생을 살아온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물론 부모님의 얼굴이 안떠오르는 것은 아니나 이건 내가 연락이 안되면 필경 걱정이 크시겠지 하는 염려였을뿐 보고싶다 라는 느낌과는 조금 달랐던듯 싶다.

반대로 내가 아는 그 누군가가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과연 내 얼굴을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것또한 99%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것은 병상이라는 곳이 나를 비관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일까?

예전부터 난 이렇게 생각해왔다. 내가 죽었을때 그냥 사람들이 무덤덤하게 보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하자. 누군가가 애타게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지 말자. 그래 그냥 바람처럼 와서 이슬처럼 가버리자.

하지만 이젠 재고해봐야 하겠다. 이번 경험은 분명 나에게 있어 무엇인가 텅 비어있음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모든 것을 안을 수 있는 텅 빔이 아니라 허전함과 막막함을 느끼게 만드는 무중력 상태의 빈 상태. 무엇을 꼭 채워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속에 나와 교류할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후회가 스며든다. 사람이란 분명 혼자 길을 걸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체온을 지닌 또 하나의 손을 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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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2-20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의 사고가 님을 참 많이 성숙시켰나 봅니다.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진한 느낌이 전해져 오네요.
 

열흘전쯤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가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가드레일을 받고 다시 중앙분리대를 받는 순간까지 정신은 오히려 또렷했다. 하지만 고속도로 한 중앙차선에 반대방향으로 서 있는 차 속에서 앉아있는 순간엔 정말 죽음이라는 것이 몇센티미터 곁에서 지켜보고 서 있는듯했다. 뒤에서 쫓아오던 차들은 바로 옆으로 빠져나가고 나서도 계속되는 차들의 엄습. 밤 12시에 가까운데다 차의 밧데리가 나갔는지 헤드라이트도 약해져가니 누군가가 우리차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정말... 

다행히 10분후 레카차가 왔다. 아저씨 왈 '이거 목숨걸고 하는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아예 도로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을걸요' 이런, 난 그 속에서 10분을 버티고 서 있었는데.

차는 폐차처리되고 친구와 난 응급실로 실려가 종합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외상은 없었지만 허리와 목 그리고 머리가 어제와 다름을 알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입원과 정밀검진, 퇴원.

살아있음에 감사하며(글쎄 이걸 누구에게 감사드려야 할지 병원에 누워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젠 제 2의 인생, 한번 더 사는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연듯 든다.

하지만 

다시 회사로 출근하는 날.

난 여전히 똑같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것인가 보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 마냥 발버둥쳐보지만, 그리고 혹 그 그물이 찢어져 다시 바다속으로 돌아갔을 때 물고기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헤엄치는 것 말고...

그러나 분명 무엇인가 달라져 있을게다. 바다는 그대로일지 모르나 내가 헤엄쳐 가려던 그 곳으로의 길이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런 작은 꿈틀거림을 느낀다. 그것이 큰 파동으로 다가와 파도를 일으키고 폭풍우를 몰고와 언젠가 나의 행로를 바꾸리라는 예감이 자꾸 든다. 다시 돌아온 바다는 예전보다 한결 투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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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2004-02-19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큰일날 뻔 하셨군요.
다행입니다.

gracina 2004-02-2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돌아온 바다는 예전보다 한결 투명해보인다.'
이 말로 많은 것을 알 것만 같네요. 이 일을 뭐라할지...무척 힘드셨기에 돈 주고는 못 살 경험이라고 하기엔 (경험 없는 저로서는 건방진 말이나)그렇고. 삶을 보는 시각이 전과 달라지실 것 같아요. 이런 말 물어도 될지...사고 순간 어떤 것이 떠오르셨나요? 아니면 생각이나 이미지...실례의 말이라 생각 듭니다 _._ 인터뷰도 아니고. 죄송+궁금+다행

하루살이 2004-02-25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같은 것을 보면 죽음의 순간에 과거의 모든 영상들이 스쳐가던데, 저는 살려고 그랬던지 전혀 그런 영상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혹시 PAVV광고를 기억하시는지요, 자동차가 달리다 트럭과 부딪히기 전 미끄러지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장면을 실감나게 텔레비젼으로 보고 있는 그 광고 말입니다. 꼭 그것과 같았습니다. 눈속에 찍힌 광경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나중에 차가 한바퀴 반 돌고나서 멈췄을때 저에게 다가오던 차들의 공포는 이틀정도 잠을 못자게 만들기도 했지요. 마치 공포영화를 찍은듯한 기분이었죠.

gracina 2004-02-25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마치 스티븐 킹의 소설 속 장면같은걸요. 엄청난 일을 소설로 비유하여 죄송하지만 저 역시 한바퀴 반-한바퀴=반바퀴를 돌았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좁은 경사가 진 도로인데 살얼음 때문이었죠. 님처럼 사고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이제 죽었구나'뭐 이런 생각이 아니라 기분이 들었어요. 광고의 비유가 확 와 닿네요. 다시금 오싹하기도 하고 하여튼 우리모두 힘 냅시다. 힘! ^^ 답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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