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날. 죽을지도 몰랐었다는 안도감 속엔 무엇인가 허무함이 밀려왔다. 병원 침상에서 누워있으면서 내 머리속에선 누구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보고싶은 사람 하나 없다니... 이제 30을 갓 넘게 살아온 내 삶에 있어서 기억해 두고 싶은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 과연 내가 제대로 인생을 살아온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물론 부모님의 얼굴이 안떠오르는 것은 아니나 이건 내가 연락이 안되면 필경 걱정이 크시겠지 하는 염려였을뿐 보고싶다 라는 느낌과는 조금 달랐던듯 싶다.

반대로 내가 아는 그 누군가가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과연 내 얼굴을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것또한 99%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것은 병상이라는 곳이 나를 비관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일까?

예전부터 난 이렇게 생각해왔다. 내가 죽었을때 그냥 사람들이 무덤덤하게 보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하자. 누군가가 애타게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지 말자. 그래 그냥 바람처럼 와서 이슬처럼 가버리자.

하지만 이젠 재고해봐야 하겠다. 이번 경험은 분명 나에게 있어 무엇인가 텅 비어있음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모든 것을 안을 수 있는 텅 빔이 아니라 허전함과 막막함을 느끼게 만드는 무중력 상태의 빈 상태. 무엇을 꼭 채워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속에 나와 교류할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후회가 스며든다. 사람이란 분명 혼자 길을 걸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체온을 지닌 또 하나의 손을 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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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2-20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의 사고가 님을 참 많이 성숙시켰나 봅니다.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진한 느낌이 전해져 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