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이 나오는 한 TV CF에선 헬렌 켈러의 글이 인용되고 있다. 바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다. 이병헌의 내레이션을 들을 때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볼 수 있다는 것의 축복. 사람들은 일상이 주는 축복을 축복으로 알지 못한다. 그러고보면 앎이 바로 축복일련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앎에 대한 욕망은 축복에 대한 욕망으로 대치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헬렌 켈러가 말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봤다.

 

“첫째 날은 아주 바쁠 것 같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그들의 얼굴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그들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의 외적인 증거를 가슴에 새길 겁니다” 둘째 날 보고 싶은 것은 `밤이 낮으로 바뀌는 기적’이다. “태양이 잠든 대지를 깨우는 장엄한 빛의 장관은 얼마나 경외로울까요. 나는 이날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일에 바치고 싶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에 들떠 또다시 새벽을 맞이할 것입니다. 나는 앞을 있는 사람들에겐 매일매일 밝아오는 새벽이 영원히 반복되는 아름다움의 계시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날은 내가 있는 셋째 날이자 마지막 날이군요... 첫날은 친구들과 가까운 동물들에게 바쳤습니다. 둘째 날은 인간과 자연의 역사를 공부하느라고 보냈습니다. 오늘은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보낼까 합니다.”

  

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려주는 또 한편의 글이 있다. 바로 '꾸뻬 씨의 행복여행'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침묵 속에 사원 앞에 서서 구름과 태양과 바람이 한 순간 산들과 어울려 노니는 것을 바라보았다. 꾸뻬는 이것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것보다 새로운 배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난 지금 행복하다. 이렇게 한글자 한글자 완성되어지는 모니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조금씩 싹을 틔우는 풀들과 꽃봉오리를 맺는 나무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사랑하는 딸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본다는 것, 듣는다는 것,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축복임을 날마다 날마다 기억하고 싶다. 소가 반추하듯 그렇게 곱씹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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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프리덤'으로 유명세를 탄 UV 멤버 중 한명인 뮤지에겐 듣고싶지 않은 음악이 있다고 한다. 바로 자신이 무척 어려웠던 시절 만든 음악들이다. 윤종신은 뮤지의 말에 "오히려 그 어려운 시절에 대한 기억때문에 애틋함이 묻어나는 것 아니냐"고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뮤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때 만든 음악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만든 것들이었다"

'이태원 프리덤'이라는 노래가 장난기가 가득한 노래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그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성싶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만든 음악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물론 진중한 음악이 인기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각한 음악, 생각하게 만드는 음악들도 인기를 얻는다. 뮤지가 말한 참뜻은 이런 것일게다. 음악이 좋아 음악을 해야지 명예, 인기, 돈에 휘둘려 음악을 하는 것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고. 즉 남을 이겨야지만 하는, 남보다 인기를 얻고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는 그 마음가짐이 자신의 음악을 듣고 싶지 않도록 만든 것이라고 여겨진다.

고난은 자신의 행로에 생채기를 남길 수 있다. 그 상처가 깊어지면 자신의 길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어디로 걸어가는지도 모른채 앞으로만 내달릴 수도 있다. 그러다 멈추어 돌아보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 서 있게된다. 그것이 바로 상처가 남긴 흉터다. 그 흉터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면 서글픈 일이다. 고난이 나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상처가 났을 땐 잠시 길을 멈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잠시 멈춰선 순간 UV가 노래하는 '프리덤'이 다가올지 모를 일이다. 자신의 길이 더욱 선명하게 비쳐질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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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한해 <콰이어트>라는 책이 꽤 높은 인기를 얻었다. 베스트셀러로 명성을 떨칠 때 개인적으로 이런 선입견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성적 성격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이런 내성적 성격에 대한 긍정이자 그들을 위한 위로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가능성을 태생적으로 갖춘 셈이다. 그렇기에 궂이 이 책을 찾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나의 내성적 성격을 고칠 필요가 없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읽고 말았다. 이책 <콰이어트>를.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궁금해졌다. 나의 선입견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책의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세상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와 그 다양성이 갖는 장점을 살리고자 하는 작가의 인식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는 지금의 세상이 외향적 사람들이 기세를 떨칠 수 있도록 변모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교육현장에서 토론식 학습의 장려와 확장, 직장에서는 유창한 말과 사교 능력이 창의성이 있다고 해석되어지는 현실은 외향적 태도를 지닌 사람들에겐 천국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내성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에겐 적응하기 힘든 고역스러운 곳이 되어버렸다. 이런 외향적 시대의 배경에는 산업화, 도시화가 깔려 있다. 즉 모르는 사람들과 무수히 접촉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외향적 사람들이 빛을 발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격의 문화가 성격의 문화로 대체되는 현상으로 설명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모든 사람들이 외향적이라면 그 조직이 어떻게 될지.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도,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새로운 모험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필요한가 하면, 그 길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꼼꼼히 뒤돌아보며 살펴볼 사람도 필요하다. 그런데 모두다 앞으로만 나아간다면 결국 모두 벼랑 끝 바다로 추락하는 레밍쥐 꼴이 될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각자의 성격 특성에 맞는 조직 내 임무를 맡아 협업을 하는게 중요하다. 즉 알맞은 자리 배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외향적 사람들만이 승승장구하는 그런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되 멈춰서 반성, 반추할 줄 알 때 그 조직이 생존, 발전할 수 있는게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향적 사람들이 항상 움츠러들며 수동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핵심목표가 생긴다면 행동의 한계도 뛰어넘는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특성에 맞는 자리를 찾아가고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핵심목표를 내세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때론 외향적인 척하는 연기도 필요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런 한계를 뛰어넘는 일은 무척 피곤한 일일 터이다. 그렇기에 이들 내성적 성격의 사람들에겐 회복환경이 필요하다. 외향적 사회에 발맞춘 피로를 회복하고 다시 세상에 뛰어들 그런 환경말이다.

물론 이런 외향적 세상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세상으로 변해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먼저일 지도 모른다. 서로의 개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개성에 맞춘 일을 할 수 있는 세상 을 위해 내성적인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IT의 발전으로 인해 내성적인 사람들도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얻게 됐다. 바야흐로 외향적인 사람들과 내향적인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인정해 줄줄 아는 풍성한 세상이 될 수 있는 보다 나은 세상이 다가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 <콰이어트>를 통해 내성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긍정적 에너지를 세상에 맘껏 표출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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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2013-04-1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제 카페에 스크랩해갈께요..^^*
 
심플하게 산다 심플하게 산다 1
도미니크 로로 지음, 김성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부란 필요한 것이 필요한 만큼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가난한 사람이란 언제나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무소유의 정신이 갖는 참뜻은 진정한 자아 찾기와 행복한 삶 영위하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 일상에서 무엇이 필요한 것이고, 무엇이 불필요한 것인가. 세상은날마다 온갖 것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라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지 않은가. 이책 <심플하게 산다>는 마치 무소유의 실천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심플한 삶이란 간소한 삶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간소함이 궁핍이나 초라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락함과 우아함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옷장의 그 수많은 옷들을 다 치워버리고 계절별로 꼭 필요한 옷 두세벌 정도를 갖고 있으라는 것이다. 다만 그 두세벌이 시끌벅적하고 요란해선 안되고, 깔끔하면서도 우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싸구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단 두세벌만으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품질을 담보로 해야 한다. 그렇다고 명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가 아니라 진짜 상품의 질을 판별할 수 있는 눈을 갖추고 고르라는 것이다. 좀 비싸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재정적 가난 상태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십벌을 유행에 맞춰 입는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값싸게 입는 셈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책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가볍게 사는 법을 말한다.

이렇게 가볍게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기관리다. 자기관리란 건강상태, 재정상태, 아름다움을 지키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자기 존중의 문제라고 본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모를 가꾸는 것은 필수다. 화장품 광고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가꾸라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무시해선 안되는 덕목인 것이다. 여기에 안락한 집과 세련된 취미를 갖으라고 조언한다. 아니, 그럼 이게 무슨 무소유인가 또는 심플한 삶인가 의심이 갈법도 하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안락한 집이나 세련된 취미란 크고 부러워할만한 어떤 것이 아니다. 집에 들어갈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잡동사니를 다 치우고 꼭 필요한 다기세트와 작은 책장 하나 정도라고나 할까. 세련된 취미 또한 책이나 음악처럼 돈 들이지 않고도 품격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이면 될 것이다.

저자의 이런 '심플'한 시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따로 있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식탐이나 우울함을 불안과 지루함에서 찾는다. 무엇인가 집중할 게 없는 사람들이 이런 병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활력있고 힘차게 살기 위해선 꿈을 향해 용맹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위해선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대중매체에 현혹되어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고 착각하지 말고.

적게 먹고 적게 갖는 것. 하지만 큰 꿈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 심플한 삶을 살아가는 기본 태도라고 이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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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2. 사람들은 동쪽에서 옮아 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는 3.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 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4.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5. 야훼께서 땅에 내려 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6.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7. 당장 땅에 내려 가서 사람들이 쓰는 발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 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8.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 두었다. 9.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은 온 땅을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성경 창세기 11장 1절부터 9절)

 

바벨탑과 두바이

성경 속 창세기에 나오는 야훼는 하나의 언어, 한 곳에서의 정착 즉 도시의 창조를 반대하고 인류를 흩어지게 만든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창세기 속 바벨탑은 하늘에 닿을만큼 높은 건물로서 이름을 날리고 사람을 모이게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런데 바벨탑과 같이 높은 건물에 대한 욕망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 나라 또는 도시의 부, 기업의 세, 힘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특이성 있는 시설이나 건물을 말하며, 물리적, 가시적 특징이 시설물뿐만 아니라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추상적 공간까지도 포함)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100층이 넘는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다(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동북아트레이드타워로 65층에 305m에 달한다). 참고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로 163층 828m에 이르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벨탑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이 두바이와 가까운 현재 이라크에 있는 바빌론이다. 거의 평지에 가까운 사막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던 바벨탑은 높이가 91.5m일 것이라 여겨진다. 높이 249m인 63빌딩의 절반에 조금 못미치는 높이지만 당시로서는 하늘에 닿을듯한 위용을 자랑했을 것이다. 이 탑은 바빌론의 네부카드데자르 2세가 아버지의 염원을 이어받아 완성했다. 그는 당시 강대국이던 바빌론의 위상을 이 탑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어했다. 바벨탑은 최소 3600만~7500만개의 벽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찍어내고 쌓기 위해선 엄청난 재원이 필요했다. 당시 재원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전쟁이었다. 그는 지금의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까지 정복했다. 하지만 이런 영광도 기원전 482년 페르시아 침공으로 끝이 난다. 전쟁 중 감시탑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바벨탑은 철저하게 파괴된다. 마치 세계 최고 빌딩을 지닌 두바이가 부동산 거품이 꺼져 휘청거리듯이 말이다.

 

증오의 시선

기원전 597년엔 바빌론 유수가 있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포로로 바빌론에 끌려갔다. 당시 바빌론은 15만명(로마 흥성기때 인구가 12만 정도였다)의 인구가 살고 있었던 최대 도시였다. 끌려간 유대인들은 도시를 지탱해주는 노예로 생활했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바빌론과 바벨탑은 놀라움이자 증오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바벨탑은 지구라트로서 꼭대기에는 마르둑신을 모시고 있었다. 신 중의 신이며 생존하고 있다고 여겨진 신이었다. 유대인들 눈에는 얼마나 마땅찮은 일이었겠는가. 창세기에 나타난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부정적으로 묘사되어진 것은 이런 역사적 경험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한때 북한이나 일본을 바라보던 시선도 옛날 유대인의 시선과 닮아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벨탑을 바라보는 유대인과 닮아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설령 미워하더라도 진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용감한 눈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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