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인지 모른다. 1000m터급 산에 오르는 것이. 그런데 하필 미세먼지가 가득한 2월말이었다.

송계계곡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깊은 산 속도 뿌옇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설렘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악소리 나더라도 오르자는 기분이 온몸에 넘쳐난다.

 

덕주사로 향하는 길. 아침 일찍 떠난 길이라 여유가 많다.

신라말 덕주공주에 얽힌 일화를 생각하며 천천히 걷는다.

불상을 지으라는 꿈을 꾸어 마애불을 자신의 얼굴 형상으로 짓는데 8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마 이 깊은 산속에서 신라의 부활을 꿈꾸며 병사를 모아 훈련을 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불상은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불온한? 상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덕주사다.

쉬엄쉬엄 절을 둘러보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참, 알프스라는 이름을 가진 산도 많다. 왜 우리는 우리의 산하를 알프스에 빗대고 싶어하는걸까.

알프스의 느낌과 우리 산의 느낌은 정말 달라도 많이 다른데.

산은 우리의 삶과 문화를 일궈온 터전이다. 알프스를 동경하는 것은 아무래도 서구에 대한 동경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젠 우리도 자랑스럽게 우리의 산하 그대로의 이름으로 불려지면 하는 바람으로 걸음을 조금씩 재촉한다.

 

마애불이 있는 암자까지는 그럭저럭 순탄하다. 마침 지칠 때쯤 쉬어갈 터가 보인 셈이다.

암자 옆에는 텃밭이 있다. 난 이 텃밭이 좋다. 공양보다는 스스로의 먹을거리를 위해 땀을 흘리는 스님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다.

 덕주공주의 얼굴을 닮았다는 마애불이다. 솔직히 여성스러운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부드럽고 인자하기는 하다. 마애불 앞에서 108배를 하고 산행을 끝마칠까 하는 마음도 인다.

슬슬 계단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경사가 급해진다. 걸음을 멈추고 쉬는 시간이 많아진다. 1시간 걷고 쉬던 것이 30분 15분 점차 줄어든다. 조금이라도 쉬지 않는다면 팍팍한 허벅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쉽지않다.

 

꽤 올라왔다. 하지만 미세먼지 탓에 시계가 좋지 않다. 깊은 호흡 속에 먼지만 잔뜩 들이마셨을까봐 걱정이다. ㅜㅜ

 

이제 절반을 넘어섰다. 그런데 시간이 애매모호하다. 아직까진 산 속의 해는 짧다.

 

돌아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아저씨 한 분이 뒤돌아선다. 아이젠도 없는데 잔설 때문에 미끄러워서 더이상 못가겠다는 것이다. 오호! 나에게도 좋은 핑계거리다. 그런데... 에이, 기왕 오랜만에 나선 길,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미끄러운 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저 멀리 영봉이 보인다.

 

송계삼거리다. 다시 갈등이다. 이제 그만 포기할까. 포기할까. 포기할까.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

 

기어코 오르기로 했다. 보덕암 삼거리. 미끄러운 것도 문제지만 마지막 계단길의 경사가 너무 급하다. 10여년 전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도 힘들었던 것 같다. 한걸음 한걸음. 마치 철근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발이 무겁다.

 

기어코 영봉에 왔다. 한걸음 한걸음의 힘이다.

하지만, 왠지 이번 정상길은 흡족하지가 않다. 해냈다는 느낌표보다 무엇 때문에라는 믈음표가 더 크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다시 돌아가야 할 길이다.

그래 되돌아본다. 되돌아본다. 나의 길을 되돌아본다.

이번 산행은 되돌아보는 산행이었다. 미세먼지처럼 뿌옇게 흐려져버린 내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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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사에서 영봉까지 넉넉히 세시간, 돌아가는 길은 두 시간 정도.

산행지도로는 여섯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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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시골 길 아스팔트 위에는 두가지가 튀어나온다.
경칩이니 개구리가 나올 것 같지만... 쩝
바로 트랙터와 포크레인을 실은 트럭들이다.
간간이 내 앞에 나타나는 이 두 거북이들 때문에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을 안다....
하지만 워낙 느리다 보니(봄도 두 거북이들) 결국 추월해야만 한다.
뒤에서 느릿느릿 쫓아갈법도 하건만,
내 자동차는 말 그대로 자동차니 자동차 본연의 속도로 달려야 할터.

다만.....
봄이 왔을 때
급하게 추월하지 않도록
나의 본연을 느긋하게 맞춰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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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따라
덕지덕지 붙는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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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좀 들어줘유~"
"와, 많이도 캐셨내요, 어디서 캐신거에요?"
"요기 앞에 말뚝 보이쥬. 거기가 굴 양식장이유."
"이걸 하루에 다 캐신거에요?"
"늘상 하는 일인디 뭐."
"힘드시겠어요. 근데, 요즘 굴 얼마나 받아요?"
"키로에 만 오천원."
"올 겨울 돈 좀 벌으셨어요?"
"요즘 사람들은 굴도 안 먹는게벼."

그러게 말이다. 요즘 사람들 쌀도 안먹고 굴도 안먹고, ....
뭘 먹고 산다냐? 다들.

굴을 가득 담은 수레를 밀고 가는 할매의 걸음이 뒤뚱뒤뚱이다.

--충남 멧돌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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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통해 성실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시절이 지나면서 개미와 베짱이는 패러디되고, 베짱이처럼 사는 것을 선망하는 사회가 됐다. 개미처럼 죽어라 일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처럼 보여질 정도다. 이젠 게으름이 찬양되기도 한다. 그럼, 개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충남 당진에 사시는 정광영 선생님은 평생을 농부로 사신 분이다.
1970년대 가톨릭 농민회의 '한마음 한몸' 운동을 통해 생명에 대해 눈뜨면서 친환경 농사를 지으셨다....
1980년대 '농산물 제값 받기' 운동을 위해 영농일지를 써오셨다. 정부에 제시할 근거를 위해서였다.
지극한 성실함은 습관이 되어 현재까지도 유기농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영농일지 또한 계속이다. 허리가 아프고 관절 마디마디가 쑤신다고 하시면서도 말이다.
현재 71세인 정 선생님은 "내 인생에 후회는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개미의 후회없는 삶. 든든하다.
그런데 왜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고 씁쓸할까.
아마 개미가 애써 일군 성실함의 터전이 위태롭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관심 밖 세상이 되어버린지 오래고 고려장처럼 여겨지는 농촌에서 성실함은 그 빛을 잃고 있다. 베짱이 또한 실은 그 성실함이 뒷받침되어야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은 왜 그리도 쉽게 잊어버린 걸까.

베짱이를 꿈꾸는 또다른 벌레는 오늘도 '성실하게' 개미처럼 노래 연습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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