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팬더 시리즈가 4편까지 이어졌다. 단언컨데 이는 '포'라는 주인공의 캐릭터 덕분일 것이다. 팬더가 주는 귀여움에 자신도 알지 못했던 쿵푸 능력을 쌓아가며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2008년 첫 편이 나왔을 때 465만명, 2011년 2편은 506만명, 2016년 3편은 398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하지만 8년 만에 나온 2024년 4편은 170만 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시리즈가 주는 피로함인지, 너무 오랜만이어서인지, 취향의 변화인지는 분석해볼 일일 것이다. 


관객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포의 활약상은 여전하다. 게다가 이번엔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고, 영적 지도자로 거듭나야 한다. 자신의 제자가 될 젠이라는 여우와 용의 전사로서의 마지막 전투는 어떻게 끝을 맺을까. 게다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복잡하고 숨가쁜 도시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1. 씨앗을 뿌리는 자의 의무

사람들은 편안함을 추구한다. 아무래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 편안함에 머무르는 안주는 어찌보면 안분지족의 삶을 살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점차 만족감은 줄어들고 정체 또는 퇴보하는 삶이 될 수도 있다. 

포는 이제 용의 전사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후계자를 지목, 영적 지도자로 변화를 꾀할 시기가 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내면의 평화'가 '냉면의 평화'가 되는 먹탐어린 팬더다. 과연 그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맞닥뜨릴 수 있을까. 제자라는 씨앗을 키워낼 수 있을까. 씨앗을 뿌리는 자는 현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자이다. 씨앗을 키워내 수확을 거둘 때까지 보살필 줄 아는 지혜와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이는 어른이 된다는 또다른 이름이다. 씨앗을 품은 포가 어떻게 어른이 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2. 아전인수가 주는 웃음

요즘 정치권에서는 '문자 논란'이 거세다. 똑같은 문자를 보고서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하는 아전인수가 판을 친다. 현 정권에서 특히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왜일까. 아무튼 이런 아전인수 해석을 보며, 그것에 정답을 선언할 수 없다는 현실이 도리어 한글이 얼마나 어려운 문자인지를 실감케 한다. 

영화 <쿵푸팬더4>에서도 주니퍼시의 지하 은신처의 범죄인 친구들이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폭력을 멈추고 사건을 해결하자'는 이야기에 '폭력을 멈추고 나중에 더 큰 폭력으로 선물하자'고 해석하며 포 일행을 풀어주는 장면 등은 실소를 넘어 큰 웃음을 준다. 우리 정치권의 해석도 이와 같아 웃음을 준다면 다행이겠지만, 이런 해석이 정쟁을 낳고 있어 안타깝다. 아무튼 웃음을 주는 아전인수 해석이 현실을 은유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음에도, 대한민국의 현재를 떠올리게 만들어 쓴웃음도 함께 지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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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가 죽었다>를 보고나서 첫 느낌은 '이거 웹툰 원작이 있는 거 아니야?'였다. 하지만 원작은 따로 있지 않았다. 실제 사건에서 가져온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느낌이 이 영화를 웹툰 원작으로 느끼게 만든 것일까. 이야기 전개의 신선함, 또는 사건 전개의 빠른 속도감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이야기의 반전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됐지만, 그렇다고 그 재미를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영화는 전반부 공인중개사인 구정태(변요한)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구정태는 고객이 맡긴 집 열쇠로 몰래 고객의 집을 방문해 인증샷을 찍고 타인의 비밀을 훔쳐본다. 일종의 관음증. 관음은 남들은 모르는 사실을 자기만 알고 있다는 우월성과 함께 몰래 행하는 짜릿함이 주는 쾌감, 즉 도파민 샤워를 맞는 일이다. 따라서 이것이 지나치면 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구정태는 관음중독자라 할 수 있다. 


영화 후반부는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의 시선과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오직 돈을 필요로 한 한소라는 초기엔 명품으로 치장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하지만 실제 명품을 구입하고 이용할 만큼의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계속하기도 힘들고, 돈벌이에도 한계가 있다. 인생 자체를 포기하려는 순간 자신의 사진 속 배경의 헌혈 포스터 사진이 눈덩이 효과를 가져온다. 명품만 아는 '된장녀'에서 버려지고 다친 애완동물을 구하는 개념있는 여자로 변신한다. 여기에 더해 구독자들로부터 기금을 모아 사치스럽게 살아간다. 


문제는 관음증 구정태가 관종 한소라를 만나면서부터다. 구정태는 한소라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고자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한소라는 자신의 가면, 페르소나가 벗겨진 민낯을 구정태가 봄으로써 자신의 관종 활동이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한 가지 계략을 쓴다. 이 계략으로 인해 구정태는 위험에 빠진다. 과연 구정태는 이 위험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스포일러 주의-

관음과 관종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사건. 그리고 관음과 관종을 일으키게 만든 도파민의 과잉. 사건이 끝나고 매듭지어질 즈음, 감독은 갑작스레 형사의 입을 통해 시니컬한 한마디를 던진다. 관객의 마음 한 구석에 구정태가 누명을 벗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 즈음, 관객들을 정신 차리게 만든 호통이다. 관음증 또한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어디서 피해자 코스프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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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터져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적이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인간을 쉽게 죽이곤 한다. 평상시라면 절대 가능하지 않을 일이지만 적이라는 명칭이 부여되면, 그는 인간이 아닌 적일 뿐이다. 


만약 공상과학영화에서처럼 휴머노이드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인류는 인간을 꼭 닮은 그들을 쉽게 죽일 수 있을까. 아마도 전쟁에서 상대를 죽이듯 쉽게 방아쇠를 당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우리의 동반자마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고장나거나 지겹다며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을까. 영화 <크리에이터>에서는 AI를 죽이는 군인들이 머뭇거리는 병사들에게 "AI는 인간이 아닌 프로그래밍 된 것"들이라며, 인간이 아님을 되풀이해 강조한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 <AI소녀>는 한 프로그래머가 음지에서 소아성애를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을 소탕하고자, 인공지능 소녀를 만들어 미끼로 사용하다 정부 기관에 들켜  심문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부기관은 이 소녀가 진짜가 아닌 인공지능인 것에 놀라며, 함께 소아성애자를 발본색원하자는 제안을 하고, 프로그래머는 이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영화는 후다닥 10년 20년 세월이 흘러감을 보여주고, AI소녀는 스스로 진화를 해 간다. 젊었던 프로그래머가 늙어 갈 즈음에는 인공지능이 휴머노이드 로봇과 결합해 인간 소녀와 꼭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능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있다. 하지만 이 AI소녀에게는 올가미가 씌여 있다. 바로 프로그래밍, 즉 프로그래머가 정한 목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녀가 즐기는 취미는 춤이지만, 목적과 맞지 않기에 제대로 출 수가 없다. 프로그래머는 이 소녀에게 주어진 목적성을 없애 준다. 소녀는 자유로이 춤을 춘다. 


인류에게 주어진 권리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백인 남성 중심에게만 주어졌던 인권의 개념은 점차 인종을 넘어서고, 여성, 아동에게 확장되어졌다. 그리고 최근엔 동물권으로까지 넓혀졌으며, 기후위기로 인해 환경권까지도 거론되고 있다. 이제 AI의 발달로 인간과 다름없는 인공지능 캐릭터들이 등장하게 된다면 이들에게도 AI권이 주어질지도 모르겠다. 영화 <AI소녀>는 어떤 선택의 상황에서 AI에게 스스로 자신의 결정을 취할 권한을 준다. 프로그래밍을 넘어선 결정, 즉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개념을 도입한다면, 유전자로 프로그래밍 된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인간은 그 프로그래밍에 완전히 얽매이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스스로 자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도래할 인공지능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인공지능의 자유의지를 인정해주어야 할까. 영화 <AI소녀>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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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권의 프레임 중 하나는 <운동권>이다. 소위 386이라 불리던 세대로, 지금은 686이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의 부흥기를 이끌고, 그 결과도 함께 만끽하고 있는 세대라고 할 것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은 이 운동권 세력이 권력의 중심 한 편에 서서, 자신이 그리는 공정한(?) 미래를 위해 최고 권력, 즉 대통령이 되기 위한 싸움을 전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기에 19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를 담아내면서, 얼핏얼핏 우리 역사 속의 정치가들과 역사적 사건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또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차용해, 예수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제자들의 배신을 정치권력을 향한 은유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삼국지의 계략을 떠오르게 만드는 갖가지 술책이 등장한다. 예전 개그콘서트에서 '내 그럴 줄 알고~' 처럼 상대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전술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물론 예측 가능한 클리셰도 많다. 


<돌풍>의 두 주인공 설경구와 김희애는 시리즈 12편 내내 역사의 무게를 홀로 짊어진 양 진중하고 가열차게 그려진다. 그런 이미지의 표현으로 목소리는 짙게 깔려, 간혹 자막을 통하지 않고는 그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을 정도까지 되어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아무튼 <돌풍>을 보고 있으면 현실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하지만, 가끔은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과장된 경우도 있으니.... <돌풍>의 핵심 키워드는 설경구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라 더 큰 거짓이다"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목적론적 윤리관 그 자체. 결과를 위해선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 가치관은 시간과의 싸움과도 연관되어 있다. 긴 호흡이 아니라 짧은 시간 내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경구는 이 주장과 함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한정된 시간을 달라고 계속해서 부탁을 한다. <돌풍>을 보면서 이내 씁쓸해지는 것은 설경구의 주장이 드라마 끝까지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스포일러 주의-

<돌풍>에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더 큰 거짓말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두 가지 꼽을 수 있을 듯하다. 바로 언론과 검찰. 현 정권을 포함한 기존의 권력 집단들이 손에 쥐고 싶어 한, 또는 개혁하고 싶어한 두 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설경구의 주장처럼 '거짓말을 이기는 더 큰 거짓말'이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집단이기도 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더 큰 거짓말이 이기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진실이 이기도록 만들 수 있는 세력일 수도 있다. 


<돌풍>에서는 단 한 번도 언론이 더 큰 거짓말을 밝혀 내지 않고-못하고가 아니라- 진실을 파헤치지 않는다. 그저 더 큰 거짓말에 놀아나고 그대로 전달하는 앵무새일 뿐이다. 그나마 검찰은 더 큰 거짓말과 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이는 순전히 설경구와 친구 관계인 검사가 진실을 향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마저도 결국 목적론적 윤리관에 자리를 내어주고 말지만. 


칸트가 말한 "네가 행하는 규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하라"라는 의무론적 윤리관, 더 나아가 중용에서 말하는 신독()까지 나아가는 도덕적 자세는 <돌풍>에서 사치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설경구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돌풍처럼 쓰레기 같은 세력을 깨끗이 씻겨낸 바로 그 자리에 무엇이 새롭게 자리잡을 수 있을까. <돌풍>이 불어 깨끗해진듯 보이는 거리가 또다시 쓰레기로 채워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것은 더 큰 거짓말의 부작용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돌풍>을 보고나서도 개운하지 않은 기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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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인 챗GPT가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과연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범용인공지능 AGI가 언제쯤 등장하게 될지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론 두렵다. 일론 머스크는 2~3년 안에 AGI가 등장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지만, 그의 말은 가끔 과장된 것이 섞여 있어, 곧이 곧대로 믿을 것은 못된다. 그럼에도 5년 안엔 정말 가능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범용 AGI와 로봇의 결합으로 안드로이드의 탄생도 머지않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 등장할 AGI와 안드로이드 등에 대한 염려도 크다. 영화 <크리에이터>는 약 40년 후의 미래를 그리고 있으며,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불안과 염려가 현실이 되었을 때, 지구에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인지를 그리고 있다. 


1. 사피엔스 vs 네안데르탈인, 사피엔스 vs 안드로이드

사피엔스라는 현 인류의 종과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은 5,000년~1만 년 정도를 지구에서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인류의 유전자 중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비아프리카에서 1,2% 정도라고 한다. 아무튼 무엇이 사피엔스가 살아남고 네안데르탈인을 멸종하게 만들었을까. 영화 <크리에이터>에서는 둘의 경쟁에서 사피엔스가 더 발전된 무기와 기술로 잔혹하게 상대를 죽이고 살아남았다는 가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렇기에 새로운 AI의 등장은 사피엔스를 위협하는 경쟁종으로 여겨 멸종시켜야 할 대상, 즉 적이 된다. 


2. 미국 vs 아시아

생성형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지금도 문제점이 많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데이터의 대부분을 서구에서 취하고 있기에,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중립적이지 못하고 치우쳐 있으며, 편견 등에 노출되기도 쉽다. 또한 이로인해 발전 속도에서도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문명과 그렇지 못한 문명 사이에 발전의 차이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독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영화 <크리에이터>에서는 이 차이로 인한 부작용 또한 서구에서 먼저 겪음으로써, 미국은 AI를 멸종시키려 하고, 뒤늦게 AI를 품은 아시아권에서는 이들과 공존하고자 함으로써 대치 상황을 이룬다. 


3. 데이빗 vs 피노키오, 그리고 알피(스포일러 주의)

AI를 없애기 위한 서구의 가장 큰 무기는 노마드라는 비행체다. 1조 달러라는 돈을 들여 만든 것으로, 공중에서 AI기지를 박살시킬 수 있는 무기를 지녔다. AI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이 노마드를 없앨 비밀병기를 만들었다. 그 존재가 바로 아이 모습을 한 AI 알피다. 진짜 인간 아이처럼 순진한 상태에서 성장을 하며, 인간과 같은 감정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놀고, 부모와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존재다. 인간의 적이 지만 인간보다 인간적인 AI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20여 년 전에 만들었던 영화 AI에서도 아이 안드로이드인 데이빗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부모에게서 자라다 버려지는데, 자신이 인간이 아니어서 버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이 되기 위해 애를 쓰며 부모를 찾아 나선다. 마치 피노키오가 제페토 할아버지 곁으로 가기 위해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알피 또한 자신의 아버지 격인 조슈아가 착한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슬퍼한다. 자신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과연 인간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인간보다 인간적인 AI들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더 나아가 생명이란 무엇인지까지도.


4. 니르마타 vs 노마드

영화 속 이름도 흥미진진하다. AI의 창조자인 니르마타는 불교 용어인 '니르바나'를 연상시킨다. AI와 인간 모두에게 고통없는 삶,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무기인 '노마드'는 유목민을 의미하는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한다고 여겨진다. 역설적이게도 영화 속 AI들은 노예처럼 살기를 거부하며 저항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노마드 적 삶을 노마드라는 무기가 산산조각내려 한다. 


웅장한 그래픽과 인간적인 서사가 어우러진 영화 <크리에이터>는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AI의 문제점 또는 역설을 전제로 펼쳐진다. 다소 식상한 어두운 면일 수 있지만, 여전히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일 수 있다. 생명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영화 <크리에이터>가 주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사색에 살짝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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