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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이다희 옮김 / 섬앤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중학생들의 졸업빵이 뉴스의 주된 소재가 되고 있다. 갈수록 도를 넘어서고 있는 졸업빵은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비판도 많다. 전통 또는 관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의 부당성을 보여 주는 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비리 또한 이런 이름으로 치장되어진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당사자들은 자신이 행한 일들이 마땅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가늠하지 못한다.
<사막의 꽃>은 세계적인 슈퍼모델 와리스 디리의 자서전적 셩격의 책이다. 소말리아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모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책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성 할례의 처참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소말리아의 사막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와리스 디리는 어른이 된다는 통과의례로서의 할례를 빨리 받고 싶어했던 철부지였다. 그러나 나이 든 남자와 결혼하게 될 처지에 놓이자 집을 나와 도시로 무작정 떠나고, 다시 친척이 있는 런던까지 흘러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델이라는 일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고, 드디어 모델 일에 나선다. 가짜 여권에 가짜 결혼 등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점차 이름을 떨치게 된 그녀는 자신이 여자로서 꽃피우기 위해선 할례의 상처를 씻어야만 한다는 걸 깨우친다. 소말리아 사막에서의 삶을 뛰쳐나와 자유롭게 자신의 뜻대로 살다보니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도 으례 마땅한 일이라 여겼던 할례가 얼마나 큰 상처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와리스 디리는 세상 모든 여성들이 할례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운동에 나선다.
유목민 사회에서 병에 걸리면 죽거나, 살거나 두 길 뿐이다. 중간이란 없다. 사람이 살면, 그건 다행이다. 우리는 병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의사도 약도 없으니,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도도 없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도 괜찮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계속 살아나가기 때문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늘 인샬라의 정신이 우리네 삶을 지배한다.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리라. 우리는, 생명은 선물이고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신의 선택임을 받아들인다. 157쪽
와리스 디리는 마땅하고 당연한 일을 한 발 떨어져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순간 정당함과 부당함의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땅함이 비교될 수 있는 공간에 놓여지면 정당과 부당의 길 중 하나였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인샬라의 정신은 이런 정당성과 부당성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한 삶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철학이기도 하다.
나는 삶을 체득했다.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의 삶이었다. TV에 나오는 남의 인생을 지켜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그런 인위적인 삶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내겐 생존본능이 있었다. 나는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기만 했으니까. 살아오면서 가장 귀중했던 시간은 식구들과 함께 지낸 때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모닥불 가에 앉아서 별 것도 아닌 것에 웃던 밤들을 떠올리곤 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생명이 다시 깨어나면 잔치를 벌이던 것도 생각난다.
소말리아에서 크면서, 우리는 사소한 것들에 감사할 줄 알았다. 비를 반갑게 맞은 이유는, 비가 오면 물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물 걱정 하는 사람은 없다. 부엌에서는 물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쓸 수 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곧바로 나온다. 부족함을 알아야 감사할 줄도 안다. 아무 것도 없던 우리는 매사에 감사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나는 호화로운 집을 때로는 한 채도 아니고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차, 보트, 보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매일 만난다. 그러나 그 서람들은 더 많은 걸 원한다. 다음으로 구입 할 것이 마침내 행복과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다 줄 듯이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 사고 싶은 걸 다 살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인생의 가장 가치있는 재산은 인생 그 자체이고 그 다음은 건강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온갖 하찮은 일에 안달하면서 귀중한 건강을 망친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지만, 국민들은 모두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돈도 모자라지만 시간도 모자란다. 모두가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전혀 없단다. 거리는 여기 저기 바쁘게 쫓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무얼 쫓아다니는지, 그건 하늘만이 안다. 나는 두가지 삶의 방식, 소박한 삶과 바쁜 삶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을 매우 감사히 여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소박한 삶의 방식을 즐기지 못했을 것 같다. 348~349쪽
우리는 풍습, 또는 관례라는 이름 하에 얼마나 부당한 일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또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말리아의 여성 와리스 디리는 우리에게 잔잔한 미소를 띠며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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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세상을 제압한다. 순결한 처녀로 키우기 위해 늙은 여자의 손을 빌려 먼저 칼질을 낸 다음, 정숙한 아내로 살기 위해 오로지 남편의 칼이 그곳을 다시 갈라낸다는 이 엽기적인 상상력!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