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 카인드 - The Fourth Kin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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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I want to believe" 

마니아층을 만들었던 미국 드라마 X파일의 남자 주인공 멀더, 그의 사무실 벽엔 포스터가 붙여져 있고, 그 위엔 나는 믿기를 원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진실과 거짓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서, 다시 믿음과 불신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에의 욕구를 드러내는 이 글귀는 X파일이라는 드라마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X파일은 여동생이 사라진 걸 목격하고, 그와 비슷한 사례들을 통해 외계인이 벌이는 납치행각을 증명해 보고자 했던 멀더와 논리적 사고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던 스컬리의 대립구도로 흥미를 끌었다. 영화 <포스카인드>는 마치 X파일의 프롤로그처럼 느껴진다. 포스카인드는 외계인에 의한 지구인의 납치를 말하는 것으로 외계인을 만나는 퍼스트 카인드로 시작해 점차 그 강도가 세진다. 

영화 속에서는 40년 동안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실제 실종 사건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FBI의 조사를 통해서도 밝혀지지 않았던 실종사건들을 타일러 박사가 자신의 환자들의 최면치료를 통해 밝혀보고자 했던 것을 보여준다. 실제 환자들의 녹화장면처럼 보이는 화면과 배우들이 연기한 화면을 분할 편집해 보여줌으로써 그 사실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포스카인드의 장점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외계인 납치는 믿음의 영역임을 암시했던 X파일과 달리 진실과 거짓의 영역일 수도 있음을 편집구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타일러 박사가 찍은 환자들의 녹화테이프에선 새벽이면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하얀 부엉이를 목격하게 됐다는 공통점과 환자들이 갑자기 공중으로 떠오르거나 방에서 억지로 끌려나가는 장면이 스크래치 되어 보여진다. 심지어 우주선인듯한 모습의 발광체도 집 밖에서 비쳐진다. 이런 화면들을 계속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증거로 충분히 인정할 듯하다. 그런데 이 화면들은 정말 진짜인가. 페이크 다큐와 다큐의 경계선, 다큐와 픽션의 경계선 사이에서 영화는 관객들을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을 본다. 그래서 멀더는 그토록 믿기를 원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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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이다희 옮김 / 섬앤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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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 중학생들의 졸업빵이 뉴스의 주된 소재가 되고 있다. 갈수록 도를 넘어서고 있는 졸업빵은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비판도 많다. 전통 또는 관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의 부당성을 보여 주는 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비리 또한 이런 이름으로 치장되어진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당사자들은 자신이 행한 일들이 마땅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가늠하지 못한다.  

<사막의 꽃>은 세계적인 슈퍼모델 와리스 디리의 자서전적 셩격의 책이다. 소말리아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모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책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성 할례의 처참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소말리아의 사막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와리스 디리는 어른이 된다는 통과의례로서의 할례를 빨리 받고 싶어했던 철부지였다. 그러나 나이 든 남자와 결혼하게 될 처지에 놓이자 집을 나와 도시로 무작정 떠나고, 다시 친척이 있는 런던까지 흘러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델이라는 일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고, 드디어 모델 일에 나선다. 가짜 여권에 가짜 결혼 등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점차 이름을 떨치게 된 그녀는 자신이 여자로서 꽃피우기 위해선 할례의 상처를 씻어야만 한다는 걸 깨우친다. 소말리아 사막에서의 삶을 뛰쳐나와 자유롭게 자신의 뜻대로 살다보니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도 으례 마땅한 일이라 여겼던 할례가 얼마나 큰 상처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와리스 디리는 세상 모든 여성들이 할례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운동에 나선다.    

유목민 사회에서 병에 걸리면 죽거나, 살거나 두 길 뿐이다. 중간이란 없다. 사람이 살면, 그건 다행이다. 우리는 병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의사도 약도 없으니,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도도 없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도 괜찮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계속 살아나가기 때문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늘 인샬라의 정신이 우리네 삶을 지배한다.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리라. 우리는, 생명은 선물이고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신의 선택임을 받아들인다.  157쪽 
  

와리스 디리는 마땅하고 당연한 일을 한 발 떨어져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순간 정당함과 부당함의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땅함이 비교될 수 있는 공간에 놓여지면 정당과 부당의 길 중 하나였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인샬라의 정신은 이런 정당성과 부당성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한 삶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철학이기도 하다.  

나는 삶을 체득했다.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의 삶이었다. TV에 나오는 남의 인생을 지켜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그런 인위적인 삶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내겐 생존본능이 있었다. 나는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기만 했으니까. 살아오면서 가장 귀중했던 시간은 식구들과 함께 지낸 때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모닥불 가에 앉아서 별 것도 아닌 것에 웃던 밤들을 떠올리곤 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생명이 다시 깨어나면 잔치를 벌이던 것도 생각난다.  

소말리아에서 크면서, 우리는 사소한 것들에 감사할 줄 알았다. 비를 반갑게 맞은 이유는, 비가 오면 물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물 걱정 하는 사람은 없다. 부엌에서는 물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쓸 수 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곧바로 나온다. 부족함을 알아야 감사할 줄도 안다. 아무 것도 없던 우리는 매사에 감사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나는 호화로운 집을 때로는 한 채도 아니고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차, 보트, 보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매일 만난다. 그러나 그 서람들은 더 많은 걸 원한다. 다음으로 구입 할 것이 마침내 행복과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다 줄 듯이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 사고 싶은 걸 다 살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인생의 가장 가치있는 재산은 인생 그 자체이고 그 다음은 건강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온갖 하찮은 일에 안달하면서 귀중한 건강을 망친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지만, 국민들은 모두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돈도 모자라지만 시간도 모자란다. 모두가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전혀 없단다. 거리는 여기 저기 바쁘게 쫓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무얼 쫓아다니는지, 그건 하늘만이 안다. 나는 두가지 삶의 방식, 소박한 삶과 바쁜 삶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을 매우 감사히 여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소박한 삶의 방식을 즐기지 못했을 것 같다. 348~349쪽

우리는 풍습, 또는 관례라는 이름 하에 얼마나 부당한 일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또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말리아의 여성 와리스 디리는 우리에게 잔잔한 미소를 띠며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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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세상을 제압한다. 순결한 처녀로 키우기 위해 늙은 여자의 손을 빌려 먼저 칼질을 낸 다음, 정숙한 아내로 살기 위해 오로지 남편의 칼이 그곳을 다시 갈라낸다는 이 엽기적인 상상력!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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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신동이라 불렸던 모짜르트. 그의 생애를 다룬 예술 작품들은 많다. 개인적으로 그중에서도 영화 '아마데우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모짜르트라는 이름 이외에도 살리에르라는 이름을 각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천재를 뛰어넘을 수 없는 2인자의 시기와 설움을 잘 드러낸 이 영화는 천재를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모짜르트의 특이한 웃음으로 표현된 천재성은 기행과 아울러 슬픔까지도 묘하게 스며있다.  

뮤지컬 모짜르트는 영화 아마데우스와는 다르다. 뮤지컬은 아마데우스와 그의 아버지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주의 보호 아래 안정된 기반 위에서 아마데우스의 능력을 펼쳐보이도록 해 주고자 했던 아버지와 틀에 갇힌 삶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음악을 펼쳐보고자 했던 아마데우스의 충돌이 뮤지컬을 끌고 간다. 그러나 아쉽게도 부자간의 갈등이 왜 그리도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웠는지를 충분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다만 화려한 가발과 의상, 무대가 눈을 즐겁게 해주고, 아름다운 선율이 귀를 기쁘게 해준다는 것이 위안이다. 귀에 익숙한 남작부인 신영숙의 '황금별'은 소름을 돋게 만들고, 대주교 역의 민영기가 부른 '모차르트를 찾아라', '어떻게 이런 일이' 등은 가슴을 확 뚫어준다.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어린 모짜르트도 아쉬움이 남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그에게 남아 있는 어린 천재 모짜르트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가 즐거워하거나 반대로 좌절하는 모습이 극렬하게 대비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영화 아마데우스의 강렬한 웃음 소리가 마음 깊숙히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였으리라.  

오이디푸스.엘렉트라.카인 콤플렉스처럼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가족들이 때론 족쇄가 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뮤지컬 모짜르트는 이런 가족간의 상처를 드러내고자 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버지의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아 그 상처가 좀처럼 애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천재성을 지닌 아이를 돈벌이로 이용하려는 아버지와 여리고 여린 아들의 영혼을 지키고자 했던 아버지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가끔 짐처럼 느껴졌던 이들에겐 한없이 가벼운 상처로 비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하기에 아버지를 잃은 모짜르트의 눈물 또한 모호할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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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 Ava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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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젼을 켜면 흔히 접하는 게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다. 각 방송사별로 얼마나 많은 맛집들이 소개됐는지 헤아려보는 것은 바보같은 일일지도 모를 정도다. 오죽 했으면 "방송국에 소개 안된 집"이라는 이름을 내건 식당들이 생겼을까. 

그런데 곰곰히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맛집 소개 못지않게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 여행과 관련된 프로그램이다. 예능의 선두주자로 우뚝 올라선 '1박 2일'을 비롯해 '패밀리가 떴다'도 그 기본 컨셉은 여행지 소개에 있지 않은가.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의 실제 촬영지를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맛집과 여행지가 함께 소개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여행 프로그램 나레이션을 맡았던 김C의 경우엔 그 덕분에 광고까지 하지 않던가.  

여행 프로그램의 매력은 여행지 자체의 정보와 함께 간접 경험만으로도 탈출감.해방감을 통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되풀이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즐겁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과 다른 자연환경. 문화.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영화 '아바타'를 3D로 접하는 순간,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줄거리나 주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 속 풍경과 외계 생명체들을 입체적인 모습으로 대하는 순간 내가 지금 여행을 떠나고 있는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아바타가 다시 보고 싶다면 그 이유는 바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유와 똑같다. 한번 가봤던 곳이라도 다시 둘러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듯이 말이다. 다만 관객인 나와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욱 안전한 기분으로 여행을 만끽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갖가지 자질구레한 어려움과 불편 없이 신세계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니까.(다만 고생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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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발을 땅에 딛는 것에 있다. 

하늘을 날고 물위를 걷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우리는 그것이 기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 많은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야말로 기적이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 속의 기적들을 깨우치고 그 기적에 감사하며 한발 한발 걸어가는 것에 있지 않는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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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2010-03-16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끝내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