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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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이해하기 3탄으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선택했다. 1,2탄으로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와 <자본의 미스터리>를 읽었는데, 두 책은 상반된 시선을 가지고 있다. 반면 두 책이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체제다. 즉 자본주의의 폐해로써 가난이 발생한다는 의견과, 자본주의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음으로써 가난하다는 서로 반대되는 주장이었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접근보다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낸다.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한마디로 사람들의 몸값이다.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매일 8억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제 3 세계 국가의 누군가는 평생을 모아도 전혀 만질 수 없는 금액을 하루에 버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호날두의 몸값은 일당 8억 원의 가치를 지니게 됐을까. 그의 축구 실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일 8억 원의 가치를 지닌 활동을 하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의 능력이 탁월하다고는 하지만 이 능력이라는 것도 축구라는 운동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시대적 운과 맞아 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리라. 호날두 못지않게 운동 신경이 뛰어난 세계적 핸드볼 선수가 있다. 니콜라 카라바티치라는 선수인데, 연봉이 약 20억 원 가량이다. 이 연봉 또한 웬만한 사람들이 평생 모아야 할 금액 수준이지만 호날두에 비하면 그야말로 '껌값'이다. 똑같이 타고난 또는 탁월한 운동신경을 지녔지만, 어떤 종목에서 뛰는, 어떤 종목과 어울리는 운동 신경을 가졌느냐에 따라 몸값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발생한 것이다. 단순히 능력 만으로 따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호날두나 카라바티치 만큼의 운동 신경을 가졌다 할 지라도 이런 능력을 발굴해서 키워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환경을 만나지 못하면 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즉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 역량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또 하나. 호날두나 카라바티치가 타고난 운동신경만으로 자신의 종목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룬 것은 아니다. 이들도 엄청난 노력을 통해 이런 성과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호날두의 행운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의 능력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반대로 당신은 능력이 부족해서 그 수준에 있다는 좌절감을 안겨준다는 것에 문제점이 도사린다. 또한 축구와 핸드볼 처럼 단순히 어떤 종목이냐에 따라 연봉의 수준이 달라지듯,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느냐에 따라 수입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 또한 능력의 차이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입이 적은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멸시, 반대로 수입이 높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자칫 노동에 대한 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문제라 할 수 있다.(최근 한 의사가 간호사들을 향해 '장기말'이라거나 '건방진'이라는 표현을 한 것도 이런 능력주의의 표상이라 할 것이다) 


능력주의라는 이름 하에 차별은 정당한 것처럼 보여지지만, 실상 능력이라는 것이 순전히 개인적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별이 정당한 지를 살펴봐야 한다. 애당초 이런 극심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의 속성에 의해 이런 차별이 발생한다면, 또는 이런 차별이 성장의 동력이 된다할 지라도 어떻게 이런 차별의 극대화를 줄여갈 수 있을까. 


마이클 샌델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차원에서 소득세를 폐지하는 대신, 소비세와 부유세를 제안한다. 즉 우리의 노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에 세금을 부과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비하고 보유하는 것에 세금을 부여해, 그 세금으로 소득차로 인한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사용하기를 제안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금융거래세를 통해 투기적 거래, 즉 돈이 돈을 버는 거래를 억제하고 이 세수를 사회적 복지에 사용하도록 하자는 의견이다.(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투세에 대한 갈라진 의견도 샌델이 주장하고 있는 그 취지에 부합한지를 따져서 결정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연간 수조원씩 벌어들이는 투자자들을 바라보고 있자면,또는 똘똘한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연간 수 억원을 벌어들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또는 코인이나 주식에 투자(투기?)해서 원금의 몇 배를 벌어들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반대로 하루종일 돌을 깨뜨리고 몇 천원을 버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통해 겨우 몇 만원을 버는 노동자들을 보고 있자면, 세상이 능력 껏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허울 좋은 속임수이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세상은 능력에 따라 얻어간다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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