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엔 가족이 없다. 송혜교도 현빈도 혼자 산다. 그들의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서울 토박이일듯 한데 가족과 함께 사는 것 같진 않다. 드라마 속에서 그들이 대화하는 상대에서 가족은 빠져 있다.

그들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라는 조직과 그들이 사랑을 주고받는 연인들간의 관계로만 읽혀진다. 물론 이 조직생활과 연애생활은 무척 닮아 있다. 1회와 2회에서 보여진 적과 아군의 경계, 권력다툼은 사회를 살아갈 때도 사랑을 키워갈 때도 부닥쳐야 하는 문제들이다. 모든걸 의연하게 대처할듯한 현빈에게도, 천방지축 뛰어다닐듯한 송혜교에게도 문제는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그들의 대처 또한 시시각각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목소리가 아닌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사는게 그렇게 힘든 거라고. 또는 반대로 이 세상이 그렇게 진중하게 살아갈 만한 것이냐고.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그들이 사는 세상에 가족이 없다는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바로 그게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일련지도 모른다. 하나만 낳아져 자란 이들에게도 그렇지만 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그렇다. 그들이 날마다 대하는 사람들은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답도 해답도 알지 못하는 인생살이에 나만의 답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답대로 살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세상이 그리워진다. 비록 외롭고 고달퍼 눈물을 흘릴지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세상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1일 주문진해수욕장.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 덕분에 바다가 한껏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그런데 모래사장에서 낯선 풍경이 보였다. 젊은 남녀들의 낭만이 아니라 중년의 건강함?이라고 해야할까. 마치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윌 스미스가 바다를 향해 골프공을 날려버리듯, 이들은 골프연습에 한창이었다.

당구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울 때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인다는데, 그렇다면 이들에게 모래사장은 벙커인 셈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불사조란 말 그대로 정의하자면 죽지않는 새다.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죽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어디있겠는가마는 사람은 이런 헛된 꿈을 꾼다. 불사에 대한 꿈은 사람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생명체에게로도 향한다.

석양의 붉은 빛에 물든 구름이 마치 불사조 같았다. 불사조라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으면서도 저 이미지를 불사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구름은 정형적이지 않다. 시시때때로 그 모습을 변화시킨다. 고정되지 않은 것은 수만가지 고정된 것을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름이 만들어낸 저 새는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영원하다는 느낌을 건넨다. 사라졌다가 또 언젠가는 다시 나타날 것이가. 그래서 불사라는 이름을 얻는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으려 집착한다. 어딘가에 꼭 영원히 머물것 처럼 행동하고, 그러기 위해 애써 노력한다. 그렇게 끝까지 지키려 한 그것은 그래서 영원히 나의 것이던가.

사진을 찍고 시간이 조금 흐르니 불사조는 어느새 흩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절간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는 이 검둥이를 보면서 맨 처음 떠오른 말은 개 팔자가 상팔자였다.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잠이 오면 잠을 청하고, 때 되면 주어지는 밥을 설렁설렁 먹을 수 있으니 상팔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군다나 살생을 금지하는 절간에서 살다보니 복날 걱정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이렇게 사진을 찍듯 절 구경 오는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눈초리 정도 귀찮을 뿐일 것이다.

한때 사람이 먹지않고 자지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세상의 웬만한 갈등은 다 사라지지 않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즉 상팔자라고 할 수 있는 기 전제조건조차 사라져버린다면 모두가 상팔자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세상살이 힘든 것의 대부분은 먹는 문제가 아니던가. 자유가 아니던가.



그런데 최근 재패니메이션 '최후의 여전사 벡실'을 보면서 이런 상상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2067년 안드로이드 개발에 열중하던 일본이 유엔연합에서 떨어져나와 10년간 쇄국정치를 하다 미국의 첩보원들이 일본에 침투하면서 그 비밀의 베일이 벗겨진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안드로이드화하는 것을 인간 진화의 최종목표로 바라보는 일본 내 한 집단의 광기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참뜻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여기서 자칭 자신을 신이라 부르는 박사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살 수 있는 불사의 존재가 됐으니 행복한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감정의 격랑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니 불행으로부터 벗어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안드로이드 마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상팔자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면서도 사람의 기본적 생활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써야 하는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뜻할 것이다. 그러니 상팔자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이런 상팔자를 타고 태어날 수 있을까.

그냥 꿈 깨고 낮잠이나 실컷 청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인생의 낮잠을 즐기는데는 허허로운 마음이 필요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반찬뚜껑을 연다. 깻잎이 숨죽여 있다 몸을 부풀린다. 넘쳐날듯 꽉 담긴 이 깻잎 반찬은 고향집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서 싸 주신거다.

고향집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엔 으레 한바탕 실갱이가 벌어진다. 배낭에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시려는 어머니와 무겁다며 하나라도 덜어내려는 아들 간에 웃지못할 상황이 반복된다. 특히 김치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아들이 내려오기 전 몇일동안 몸이 아플 정도로 김치를 담그신다. 하지만 꼭꼭 눌러 담아주신 김치는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한번은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집까지 돌아가는 동안 김치국물이 새 옷이 다 젖었다. 그리고 버스 안에 풍기는 김치냄새는 어떻게 해볼 도리조차 없다. 민망합에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 뿐이다. 고속버스나 기차안에선 또 어떤가. 김치냄새가 퍼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또 신경을 써야만 한다.

결국 아들은 어머니를 설득시켜 택배라는 좋은 제도를 이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것도 미안하기는 매 한가지. 택배를 배달하는 배달원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어찌하랴. 그것이 다 사랑인 것을. 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실제론 온몸으로 감성으로 그닥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겨우 반찬통에 김치를 담아 냉장고에 집어 넣으면 1주일이 지나 김치국물이 새면서 냉장고 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냉장고 공간도 부족하고 반찬통도 부족하니 꽉꽉 담다보면 벌어지는 일이다. 넘친 김칫국물을 화장지로 훔치고 행주로 닦아내지만 여전히 흔적이 남는다. 이 흔적은 결국 가끔 찾아오는 어머니의 손길로 사라진다.

깻잎을 한 장 들어 밥을 싸 먹었다. 이제서야 어머니의 사랑을 잔뜩 먹고 있음을 느낀다. 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8-09-04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표현하긴요, 계속 냉장고에 시큼한 냄새 배게 하면서도 웃으며 맛있게 먹어주는거죠.

하루살이 2008-09-05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어머니 김치맛이 변하는 것에 어머니가 나이를 드신다는 것도 느낀답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