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오르는 길
손재식 지음 / 그물코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지금이야 웰빙 바람이 불어 등산인구가 몇백만을 헤아릴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산은 왜 오르는가? 라는 질문은 유효할듯 싶다. 특히, 단순히 건강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계마저 산에 의지하며, 오직 남이 오르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질문은 그리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는다. 거기에 그 등정이 목숨까지 거는 일이라면, 당사자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산을 왜 오릅니까? 라고.

이 책은 1998년 히말라야  산맥을 이루는 산 중 하나인 탈레이사가르 원정대에 대한 이야기다. 7000m가 체 되지 않아, 높이를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그다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게다가 설벽과 빙벽으로 이루어진 북벽은 난공불락이다.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자 하는 등로주의(머메리즘)자들에겐 어찌보면 천국일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천국의 계단 앞에서 3명의 젊은이들은 추락하고 만다. 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던 이들은 결국 죽음에 직면하고, 그들이 오르고자 했던 길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사고가 일어난 이후 북서릉으로 올라 정상에 선 한국인들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북벽은 자신의 길을 내놓지 않았다.

책 속에선 이들의 등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고자 동행했던 동료의 글을 중심으로 고인들의 일기가 조금씩 삽입되어 있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 항상 고통과 직면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고통에 직면하게 되면 꼭 떠오르는 생각, 왜 나는 지금 이런 고생을 사서 하며 산에 오르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피부에 와 닿는다. 그런 고통을 함께 한, 또는 목숨을 서로 의지한 산친구와의 만남, 이 고통 뒤에 되돌아가게 될 일상의 행복을 깨치게 만든다는 것이 산을 오르는 이유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산과 생활 사이에서 버텨내는 건 정말 고행이다.(54)

산은 내려가기 위해서 오른다.(139)

극도의 고난은 곧 일상을 행복으로 돌려놓는다(144)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적, 합리적 이유를 찾다가 나온 해답일뿐, 진정한 답은 따로 있을듯 싶다.

안정된 삶을 추구하다 보면 이런 선택의 기회에서는 자연히 멀어진다.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구태의연한 목적을 뛰어 넘게 하는 것은, 의미에 연연하지 않게 만드는 저 무심한 벽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성취감이든 자유든 간에 논리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쳐야 얻을 수 있다는 걸 그들은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다.맹목적으로 보이는 행위의 당위성을 굳이 깨닫거나 반문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138)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는 것과 일맥상통할지도 모른다. 산이라는 단어대신 개인들은 각자의 무엇인가를 대체해도 좋을 것이다.

답은 실상 거기에 있다. 직접 부딪쳐야 얻을 수 있다는 것. 해 보아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 그래서 다분히 이 책을 읽는 것이 산을 오르는 이유를 알게 하는데 하등의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끝내 놓지 못한 것은 고인이 된 3인의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좌절과 고통 속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혹 가르쳐주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낼 의지를 북돋워줄 것만은 확신한다. 비록 그들은 추락함으로써 하늘에 올랐지만, 걸어서 하늘 끝까지 오른 것보다 더 숭고하다. 책을 읽은 이들에게 그 걸음을 걸을 용기를 주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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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0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산에 가는 걸 좋아한 시절(??)이 있었답니다.
주로 주말 저녁에 밤기차를 타고 혼자 다녔어요(청승맞기도 하죠)
척추 디스크에 걸리고, 그 후 다시 재발하는 일이 반복하면서
지금은 얕으막한 뒷산 오르는 일로 만족합니다만(거의 산책수준이죠)
산에 가면 가장 좋은건 나무들과 만날 수 있어서에요. 새와 이름모르는 풀꽃과 곤충.
전, 인간이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세상이라
여깁니다. 이 책 속의 고인들도 자연속의 일부인 인간, 자연과 일체의 인간을'추구하다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숙연해집니다.

하루살이 2006-05-0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몸살림운동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척추디스크라니 한번 사이트 검색해서 참고해보세요. 혹 도움이 될련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이 산으로서 온전히 남아있기를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