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9단
양순자 지음 / 명진출판사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글은 서울구치소 교화위원으로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한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다. 할머니의 인생을 담은 이야기라기 보다는 할머니가 손주나 자식들에게 옛얘기 하듯 인생의 지혜를 나눠주고 있다. 자신의 이혼경력으로 말미암아 이혼 상담 또한 많이 해온 덕분에 결혼이나 사랑에 대한 훈시도 삶의 소중한 경험이 묻어 나온다. 나이와 지혜가 분명 비례관계가 아니지만(나이값 못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지혜라는 것이 젊은 사람들에게서보다는 대부분 연륜을 쌓은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것에서 삶의 비의(秘意)를 느끼기도 한다. 특히 양순자라는 할머니가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가는 길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 온데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가슴 깊게 느낀다. 그렇다고 서당의 훈장처럼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있는 글도 아니다. 추운 겨울 외갓집 사랑방에서 군밤을 구워먹으며(물론 이런 장면도 이젠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기는 하지만) 외할머니가 해주는 옛날 이야기를 듣듯이 편하게 읽어가면 된다.

할머니는 자신이 인생 10단이 아니라 9단임을 강조한다. 공자 석가 예수와 같은 성인의 10단이 되기에는 자신 또한 이생이 너무 좋고, 희노애락에 대한 애착 또한 쉽게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일 터이다. 또한 글 속에서 토로하듯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복수도 하고, 잘못이 생겼을 때 모든 것을 내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모습 속에서 얼핏 속내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인생 9단의 말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탓만은 아니지만 내 탓도 있소라는 자세, 복수를 하지만 남을 잘못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잘됨으로써 깔끔하고 통쾌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다. 나의 발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그 나는 잃을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다. 소유에 대한 애착을 갖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울 수 있고, 그 자유로움이 자애로움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자애가 상대에 대한 구속이 되어서는 안된다. 즉 내가 이렇게 하는데 당신은? 이라거나, 내가 이렇게 도왔는데 당신은 왜 아무 것도 변한게 없소? 라는 욕심마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알고 손을 털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잃은게 뭐가 있겠는가?

세상은 변해간다. 사람도 변한다.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 아닌가? 세상도 사람도 변하는데 사랑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할머니는 모든게 변해감을 인정하라고 한다. 하지만 변하는 것이 어떤 모습을 띠는냐에 관심을 가지라고 한다. 즉 콩은 그대로 놔두면 썩기 마련이지만 발효를 시키면 된장도 되고 간장도 되고, 청국장도 되듯이 말이다. 세상에 대한 애정, 사람에 대한 애정도 그렇게 발효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바라지 말고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그 모습속에서 맛깔스러움을 찾으란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하면서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 그의 변해가는 모습이 얼마나 발효가 되었는지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나는 옛날 그대로인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 또한 변해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썩어가지 말고 건강한 발효를 해내도록 숙성의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숙성은 그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햇빛과 바람, 비와 같은 여러 환경 속에서 익어가듯, 되돌림을 바라지 않는 사랑, 특히나 자신에 대한 애정, 마지막 날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아끼며, 점점 마음의 찌꺼기를 없애가는 속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마음의 찌꺼기를 없애자는 것은 아무런 설명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때론 찝찝한 마음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그저 마음 가는대로 그렇게 흘러보낼 때 진정 우리는 숙성된 맛을 품지 않을까? 내 몸과 마음을 훌훌 털어, 그 무게를 줄여나가 마침내 빈털털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5-04-26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 9단이라는 말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지요. 여기 하루살이님의 마지막 문장은 특히 더 그렇네요. 잘 읽고 갑니다^^

하루살이 2005-04-2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 9급의 눈에 인생 9단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른 처세서와는 달리 외할머니가 인생이야기하듯 풀어나가는 것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책이었습니다.

icaru 2005-04-2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주인장 분들 중에 하니케어 님이 계신데... 이 책을 모시기 마트에 들렀다가... 그만.. .그 자리에 서서... 삼십 동안을 읽었다 하시더라고요...

님의 이 리뷰를 읽으니... 이 책이...참...쉽지 않은 인생이야기를 물흐릇듯...편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로구나~ 싶은 것이... 세상사에 복닥이다... 복수를 다지고 마음이 모질어지려 할 적에 ,, 이 책 읽으면 딱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답니다.

하루살이 2005-04-2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딱일겝니다. 모진 마음을 아름답도록 만들어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