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느와르는 주윤발과 유덕화로 통한다. 유럽의 정통 느와르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우상으로 떠오른 이들 덕분에 느와르라고 하는 것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일수도 있다. 홍콩 느와르는 파란색의 조명과 어딘지 모를 우울함, 그리고 허무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이쑤시개를 입에 꼬나문 주윤발의 입가에 담긴 미소 속에 어딘지 모를 슬픔을 느낀다. 느와르는 나에게 있어 허무함이었다.

영화 <달콤한 인생>도 느와르라는 장르를 표방한 영화다. 그리고 나의 이미지에 걸맞게 영화 속에서는 허무감이 잔뜩 배어져 있다. 영화 초반 선우(이병현)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선우의 쉐도우 복싱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초반부 독백은 불교의 선문답이다. 그것이 벽암록의 고승 이야기 였던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선문답은 마지막 부분의 고승의 달콤한 꿈이야기와 겹쳐지면서 허무감을 극도록 끌어낸다.

깔끔한 외모와 그 외모만큼 깔끔한 일처리를 자랑하는 김실장 선우는 강사장의 지극히 개인적인 부탁을 받는다. 자신의 젊은 애인이 혹시 남자가 있는지 감시하고, 만약 그렇다면 조용히 일처리를 해 줄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선우는 강사장의 젊은 애인을 보는 순간 마음의 작은 파장이 인다. 아주 조그만 파장.

스승님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나무가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까? 제자야, 그것은 바로 네 마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우의 흔들리는 마음은 결국 그녀와 애인 모두를 살려두게 되고, 이것을 강사장은 모욕감으로 받아들여 그를 죽이려 한다. 물론 죽이기 전 선우가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면 살려두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선우는 자신의 그 작은 파장을 자신조차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파장은 이내 커다란 파도로 밀어닥쳐와 끝내 강사장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한밤중 제자가 잠에서 깨어나 흐느낀다. 이것을 괴이하게 여긴 스승이 왜 우느냐고 묻는다. 제자는 달콤한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우는것이냐? 그 달콤한 꿈은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끝내 현실이 되지 못할 달콤한 꿈. 그 꿈을 꾸는 동안의 달콤함은 잠시 일어난 마음의 파장과 같은 것. 버드나무도 아니요 바람도 아닌 너의 마음이 흔들릴 때 그 흔들림을 끊는 방법은 바로 자기자신의 소멸을 통해서다. 불교의 수행은 바람과 버드나무와 나와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움직임의 소멸이 아니며, 움직임 그 자체의 소멸도 아니며, 바로 자기자신의 소멸을 통해서 모든 움직임 자체가 사라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우에게 있어서는 그 자신의 소멸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는 물 위를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에 취한 나르시스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르시스임을 보여주는 장면은 마지막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쉐도우 복싱을 하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한지를 보여주며, 그 허공을 가르는 주먹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창 밖의 불야성 욕망의 도시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모호한 모습 그 자체를 통해 나르시시즘과 허무주의를 모두 표현해내고 있는듯 싶다.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지못하겠어요. 말해봐요.

아마 선우는 평생을 생각하더라도 알지 못할 것이다. 7년을 섬겨온 보스가 왜 자신을 내치는지 자신은 절대 알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 선우는, 창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선우는 끝내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호수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빠져 숨진 나르시스처럼 선우 또한 우상화된 자신의 모습에 빠져 끝내 끝을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허무주의로 향해 가는 그 길의 끝을 그는 결말을 알면서도 끝내 되돌아서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비로소 자신이, 자신이 생각하던 그 아름다운 선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테니까...

크리스터퍼 래시가 70년대 미국사회를 나르시시트의 사회라고 보았듯이 그 사회는 현재 우리 서울의 모습과 닮아있다. 스포츠에 열광하기도 하고, 스타에 광분하며, 자신의 블로그에 영혼을 뺏기는 모습속에서, 나도 우리도 모두 일정 부분 나르시스트임을 인정한다면 선우의 자기애와 그 끝없는 허무에의 질주를 이해할법도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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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06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우의 자기애와 허무에의 끝없는 질주.. 네 이 영화 참 슬펐었죠. 그렇게 소멸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도 나르시스트나 다름 없죠.. 정말 영화를 잘 보시고 잘 쓰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편안한 휴일 보내셨는지요?

하루살이 2006-06-07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휴일은 없답니다. 흑흑.
달력의 빨간 날자에 쉬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래도 주일에 하루 쉴 때는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