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일지 4월 8일
게으른 농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 첫발을 드디어 내딛는다. 충북 괴산에 있는 흙살림이라는 사단법인, 사회적기업의 장기 귀농학교 연수생이 된 것이다. 딸아이를 서울에 두고서 주말 부녀가 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자연속에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욕심에 잠깐의 눈물은 참아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내려가 먼저 숙소로 향했다. 겉으로 보기엔 썩 괜찮은듯 하지만 식당과 함께 써야하고 난방이 되지 않아 고생을 좀 해야할 듯싶다. 그야말로 사서 고생이랄까. 그래도 뭐, 이정도 쯤이야...
각오는 어느 정도 했지 않았나, 화이팅!
짐을 정리하고 농장 사람들은 물론, 흙살림 공장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잠깐의 인사 후 바로 농장으로 향했다. 첫날부터 일이다. 퇴비와 황산가리를 비닐하우스 안에 뿌리는 작업이었다. 이런! 게으른 농부가 되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것인데 첫날부터 구슬땀이라니.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농장에서 같이 연수원생으로 일할 K형님께서 한마디 건네신다. "귀농을 하려면 먼저 몸부터 만들어야 한다.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몸이 완성되어야 일을 할 수 있다" 오호, 이거 왠지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너무 부지런한 형님이 아니신가. 이래서야 어디 게으름의 게자라도 마음껏 부릴 수 있겠는가.
연수원생으로 같이 있는 동기가 황산가리를 뿌리는 모습.
땅이 살아야 생명도 살아가는 법. 퇴비와 황산가리를 땅에 뿌리는 것은 땅의 생명력을 키우는 자양분을 주는 것이다. 물론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주는 것은 아니다. 땅의 성분을 먼저 분석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해주는 것이다. 현재 흙살림 농장은 100평 짜리 하우스가 10동이 있다. 노지까지 합치면 만 평 가까이 된다고 한다. 오늘은 하우스 9동에 퇴비와 황산가리를 주었다. 일을 마치고 저녁엔 입학식과 환영행사가 열렸다. 아주 조촐하게. 이태근 회장을 비롯해 인근 베테랑 농부들께서 참석하셨다. 이분들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보배다. 수십년의 노하우와 고민, 생각들을 가감없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게으름을 향한 부지런함. 다소 아이러니한 이 상황 속에서 힘차게 전진해볼 힘을 얻는다. 앞으로 어떤 장애물에 부딪힐지 모르지만 일단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