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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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첫 페이지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고.(P5)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실은 안정된 삶이 아니었던가. 경제적 어려움을 없애줄 수 있는 직장과 심리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결혼이라는 제도,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일상이라는 것, 가끔은 탈출하고 싶긴 하지만 결국엔 그곳으로 돌아갈 것을 알기에 즐기는 일탈들. 그러기에 주인공의 독백은 참으로 놀라웠다. 순간 나의 머리를 강타하고 지나가는 충격이 거의 메가톤급이다. 위태위태한 삶을 즐기겠다고...

하지만 그가 말하는 위태위태한 삶이란 그다지 놀랄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안다. 그는 결국 밖으로 드러나는 위태로운 삶을 즐긴것일 뿐 진정 그 자신의 마음까지도 그런 위태로움을 바란 것이 아니었음을 듣게 되니까.

나는 하늘을 가릴 지붕없이는 살수 있지만 내면과 외면 사이의 평정을 확립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것을 알았다.(P87)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맨처음 고백이 그냥 헛말이라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삶 그자체가 우연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에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은 우연이라는 사건앞에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은 내가 그런 위태로운 삶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을 살수밖에 없음을 고백한 것은 아닐련지 모르겠다. 주인공 자신의 삶 속에서 아버지 할아버지를 만나고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만나는 과정이 모두 우연처럼 다가오고 그 자신의 삶 전체가 이런 사건 속에서 이젠 그런 우연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과율은 이제 더 이상 우주를 지배하는 숨은 재판관이 아니었다.(P93)
어떤 것도 절대로 당연시해서는 안돼. 특히 나같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을 때는.(P163)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 한 켠엔 나도 조금은 위태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숨어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 조그만 마음이 실은 나를 살아숨쉬게 만드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 것은 아마도 주인공에게 감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 우연에 대한 매혹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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