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 세상을 보는 글들 14
레이첼 카슨 지음, 표정훈 옮김 / 에코리브르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묘미는 사진에 있다. 물론 에세이에서 뿜어나오는 이슬같은 청롱한 문체와 산뜻한 이야기도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페이지 중간중간마다 보여지는 접사에 가까운 사진이 세상의 경이로움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갓난아이의 움켜진 손이 엄마의 손바닥 위에 있는 모습, 비를 머금은 나뭇잎,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낸 조약돌 등등, 카메라가 들이댄 자연의 모습 하나하나는 우리가 얼마나 무덤덤하게 세상을 지나치며 살았는가를 깨우치게 만든다. 잠시 카메라처럼 사물을 우리 눈 가까이 마주쳐보자.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린이 앞의 세상은 신선하고, 새롭고, 아름다우며, 놀라움과 흥분으로 가득하다. 어른들의 가장 큰 불행은 아름다운 것,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추구하는 순수한 본능이 흐려졌다는 데 있다.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눈을 상실하는 일은 심지어 어른이 되기 전에 일어나기도 한다. ...(중략)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진실로 강하게 해주는 것에서 멀어지는 증상, 인공적인 사물들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증상, 너무나 똑똑한 나머지 모든 것에서 권태를 느끼는 증상...(51쪽)

빨리 빨리 마저도 현대인의 장점으로 치장해버린 세상 속에서 발길을 멈추고 자연의 어떤 것이라도 한발자국만 더 다가가 바라보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귀를 기울여보자. 눈을 돌려보자. 살짝 다가가 만져보자. 세상은 정말 신비로운 것으로 충만하고, 그것은 기쁨으로 다가온다. 물론 자연의 모든 모습이 그런 기쁨만은 아닐 테지만.

창공에 흩어져 나는 철새들이 같은 무리 속의 다른 새를 부르는 소리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의 파도가 내 안에서 물결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고독감,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삶의 방향이 정해지곤 하는, 나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 대한 연민, 간절히 원할 수도, 철저히 거부할 수도 없이, 다만 어김없이 따라야만 하는 어떤 섭리에 대한 경외감, 해마다 틀림없는 이동 경로와 방향을 밟는 철새들의 설명할 길 없는 본느에서 느껴지는 신비감...(84쪽)

우리가 귀만 귀울인다면 자연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속삭여준다. 때론 삶을 위로해주고, 어루만져주고, 등을 두드려주고, 웃음을 준다. 마음만 연다면...

이름을 알고 식별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그처럼 가치없는 목적도 없다. 심지어 생명의 경이와 신비를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연 사물의 방대한 목록을 작성할 수는 있을 터이니 말이다.(87쪽)

메마른 감성 위에서 사랑의 열매는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사무실 위의 화분에라도 잠깐 눈을 돌리고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보자. 그것은 너무 메말라 갈라져버린 우리의 감성에 촉촉한 빗방울을 선물할 것이다.

이 감성의 비를 맞기 위해 꼭 숲으로 바다로 향할 필요는 없다. 물론 잠시 시간을 내어 그 속에 풍덩 빠진다면 더욱 좋겠지만. 신호등을 기다리면서도 가로수를 쳐다볼 줄 아는, 늦은 퇴근 시간에 하늘의 별과 구름을 바라볼 줄 아는, 가끔은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을 줄 아는 그런 마음만 지니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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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6-30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정훈의 번역이므로 일단 매끄럽게 읽힐 듯 보입니다.
레이첼 카슨은 바다를 좋아했죠. 종종 바닷가 갯벌 탐사여행도 다녔잖아요.
제가 종종 숲에 들어가서 이름도 모르는 풀꽃들과 산새들을 보고
돌덩어리처럼 굳은 제 마음의 끝뿌리를 살짝 건드려 흔들어보는 것처럼.
송골매가 동네 전깃줄에 앉아서 폼을 잡고 있거나
중백로가 가족들을 거느리고 아침밥을 먹으러 논에 내려앉는 모습은
표정잃은 제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합니다.
나, 이런 글 읽으면 마음 약해지는데 하루살이님 미오!ㅎㅎㅎ

하루살이 2008-07-0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려지네요. 중백로의 아리따운 모습과 송골매의 늠름한 모습이.
저도 도심의 참새와 까치에게서라도 그런 미소를 선물받을 수 있도록 꽁꽁 뭉친 마음을 안마해줘야 겠어요. 파란여우님의 미움(?)이 전신안마가 되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