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소마]는 유럽의 잘 알려지지않은 한 공동체마을의 9일간 벌어지는 축제에 초대된 6명의 친구들 이야기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며 순환의 가치를 지닌 평화로운 마을처럼 보였던 첫인상은 사라지고, 점차 죽음의 공포가 그들을 둘러싼다. '한낮의 공포'라는 평을 듣고 있는 이 영화는 인류학적 고찰을 떠오르게 만든다.
교통의 발달을 넘어 통신의 발달로 이제 지구는 지구촌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앟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서로를 이헤하지 못하는 문화적 풍습이나 전통, 제도를 통해 서로 다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다름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이 공간적 다름과 함께 시간적 다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려장이나 씨받이와 같은 풍습은 이땅에 살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하지만 알게 모르게 이 풍습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요양원에 내버려진(짐으로 생각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소수의 사람들) 노인들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인공수정 등은 또다른 고려장과 씨받이가 아닐까.
어쨋든 이런 풍습, 제도의 다름은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마치 종교적 차이로도 인식될 수 있는데, 영화 [미드소마]는 철저히 폐쇄된 한 공동체를 통해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묻고 있다.
인생은 18년 주기로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순환하기에 새로운 봄을 위해 겨울이 끝나는 72세에 스스로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사람, 남녀간의 사랑이란 결국 후손을 낳는 수단이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의 소모 대신 수정을 위한 의식만을 행하는 사람, 독립된 개체가 겪는 외로움과 고통 대신 모두가 하나로 서로에게 기대는 사람들,
[미드소마]는 이런 가치의 다름이 외부인에게 폭력과 죽음으로 다가오는 축제가 될 수 있음을 긴장을 극대화하며 그려내고 있다. 문화나 인식의 차이가 어떻게 공포를 낳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름이 이해의 대상을 넘어 공포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과연 우리는 이 공동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공동체가 지향하는 삶과 죽음, 사랑,연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혹시 저출산률에 높은 이혼률과 자살률을 지닌 우리는 다른 집단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지는 않을까. 거침없는 죽음과 섹스의 묘사가 이런 질문들을 잊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