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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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일을 날마다 기록하는 것은 고금이 다르지 않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일이 없지 않아 내 한 몸에 모여든 일이 언제고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날이 다르고 달이 다르다. 무릇 사람의 일이란 가까우면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멀어지면 헷갈리며, 아주 멀어지면 잊어버린다. 하지만 일기를 쓴다면 가까운 일은 더욱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먼 일은 헷갈리지 않으며, 아주 먼 일도 잊지 않는다.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일은 일기로 인해 행하기에 좋고, 법도에 어긋나는 일은 일기로 인해 조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기란 것은 이 한 몸의 역사다.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으랴. 나는 글을 배운 이후 지난해에 이르기까지 3,700날 남짓을 살아왔다. 3,700날 동안 있었던 일을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면 꿈을 꾸고 깨어나서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번개가 번쩍번쩍하여 돌아보면 빛이 사라진 것과 같다. 날마다 기록하지 않아서 생긴 잘못이다. (유만주 <흠영>) -27쪽

가난한 집에 가진 거라곤 책 다섯 수레뿐
그것을 제외하면 남길 물건이 전혀 없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서책을 못 떠나니
전생에는 틀림없이 좀벌레였나 보다

(하곤 <책을 뒤적이다>(檢書)) -84쪽

동씨가 세 가지 여가에 독서하다
1,2가 나오면 사언의 글을 짓고, 3,4,5,6이 나오면 오언시를 지으랴. 동우는 자신을 찾아와 배우겠다는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그저 "먼저 백 번을 읽어라. 그러면 뜻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하기만 했다. 여유가 없어 글 읽기가 힘들다고 말한 제자가 있었다. 동우는 세 가지 여가 시간에 공부하라고 했다. "세 가자ㅣ 여가란 무엇입니까?"라고 누군가 물었다. 동우의 답은 이랬다. "겨울은 한 해의 여가요, 밤은 낮의 여가요, 비바람 치는 때는 시간의 여가다."

(배송지의 삼국지주)-238쪽

전답을 사면 뱃속을 배부르게 하는 데 그치지만, 책을 사면 마음과 몸이 살찐다. 전답을 사면 배부름이 제 몸에 그치지만 책을 사면 나의 자손과 후학, 일가붙이와 마을 사람, 난아가 독서를 좋아하는 천하 사람들이 모두 배를 불리게 된다.

(박규수가 유숙도의 삶에서 본보기가 될 만한 인생의 의의를 찾아내 제시하고 그 의미를 밝힌 글) -243쪽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 세상의 현인과 벗 삼는 것이 정녕 옳다. 그러나 천고적 사람을 사귀라고 옛사람이 말하지 않았던가? 이 책에서 다룬 천고의 현인은 모두 내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친구 삼고 싶은 분들이다. 하지만 이 <상고전도> 전체를 샅샅이 뒤적일 필요가 굳이 있겠는가? 가을비 내리고 낙엽 지는 아침이든 대숲으로 난 창가에 큰 눈 내리는 밤이든 한 부를 뽑아 읽는다면 거기에는 속세를 벗어나 숨은 고매한 현자도 있고, 문장에 능한 재사도 있다. 국정을 도와 국사를 꾀하는 선비도 있고, 위대한 업적을 세운 공신도 있으며, 굳세고 방정한 신하도 있고, 찬란하게 의열을 보인 사적도 있다. 이 한 부를 벗어나지 않아도 나의 벗은 충분하다. 내가 날마다 저 여러 현인들과 더불어 노닌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박규수 <상고전도> 中) -244-245쪽

본래 기억하고 암송하는 기송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초학자로서는 기송을 버리면 더욱이 기댈 데가 없다. 그러므로 매일 배운 것을 먼저 정확하게 암송하되 음독에 착오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뒤에 비로소 서산을 세우고, 한 번 읽고 나서는 한 번 암송한다. 그 다음에 한 번 보고, 보고 난 다음에는 다시 읽어 모두 3,40번 되풀이하고나서 그만둔다. 한 권이나 반 권을 다 배웠을 때에는 전에 배운 것까지 포함해 먼저 읽고, 그 다음에는 암송하고 보되, 각각 서너너덧번 되풀이하고 그친다.

글을 읽을 때에는 소리 높여 읽어서는 안 된다. 소리가 높으면 기운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눈을 건성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눈을 돌리면 마음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몸을 흔들어서도 안 된다. 정신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글을 암송할 때 틀려서는 안 되고, 중복해서도 안 된다. 너무 빨라서도 안 되는데 너무 빠르면 조급하고 사나워서 맛이 짧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느려도 안 되는데 너무 느리면 늘어지고 방탕해져서 생각이 들뜨기 때문이다. (계속)-266-267쪽

(이어서)

책을 볼 때에는 문장을 마음속으로 암송하면서 뜻을 곰곰히 생각하여 찾되, 주석을 참조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궁구한다. 한갓 책에 눈을 붙이기만 하고 마음을 두지 않으면 아무 이득이 없다.

위에 말한 세 조목은 나누어 말하면 다르게 보이나, 마음을 한 곳에 집주아여 체득하기를 요구한 점에서는 같다. 모름지기 몸을 거두어 단정히 앉고, 눈은 책을 똑바로 보며, 귀는 거두어들이고, 수족은 함부로 늘리지 말며, 정신을 모아 책에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따라 쉼없이 해나가면 뜻과 맛이 날로 새로워져 저절로 무궁한 묘미가 생기게 된다.

(홍대용, <매헌에게 주는 편지>)-267쪽

"글을 송독하고 사유해야 한다. 글을 송독하면 나의 지식을 풍부히 쌓게 만들고, 그 의미를 사유하면 내가 습득한 지식을 견고하게 만든다. 송독하되 사유하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되고, 사유하되 송독하지 않으면 지식이 고갈된다."(홍길주, <사부송유> 中)-271쪽

기사. 자기에게 필요한 중요한 사건의 대강을 기록해 둔다.
찬언. 내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한 구절이든 두 구절이든 따로 기록해 둔다.
음의. 알기 어려운 어휘를 분류해 써놓는다.
문필. 외워두면 좋을 문장을 따로 기록해 둔다.
범례. 옛 작가가 쓴 독특한 문투를 사례별로 기록해 둔다.
제서관섭인용. 많은 작품들의 상관관계를 따져보고 그 본문을 적어둔다.
취칙. 인생과 사회생활에 쓸모 있을 옛사람의 행위 가운데 본받고 싶은 것을 따로 기록해 둔다.
시재. 시를 쓸 때 이용할 일화나 말을 분류하여 기록해 둔다.
지론. 선배의 주장과 논리에 불만스러운 것이 있으면 자신의 견해를 첨가해 둔다.
궐문. 내가 모르는 어휘나 옛 일 등을 모두 따로 기록해 둔다.

(금나라의 문인 원호문, <시문자경> 中 <독서십법>) -275-276쪽

내가 스승님께 배운 지 이레 되던 날, 스승님은 문사를 공부하라는 글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산석(황상의 아명)아, 문사를 공부하도록 해라!"
나는 머뭇머뭇 부끄러워하며 말씀을 올렸다.
"제게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하고, 둘째는 꽉 막혔고, 셋째는 미욱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공부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병통을 너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병통으로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는 글짓는 재주가 좋은 병통으로 허황한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병통으로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다.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사람은 식견이 넓어지고, 막혔지만 잘 뚫는 사람은 흐름이 거세지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사람은 빛이 난다.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잉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근면함은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갖는 데 있다."

(황상이 정약용을 뵌 날로부터 60주년 되는 날, 75세 노인이 되어 첫 만남을 회상하며 쓴 글, <임술기>) -287-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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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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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들뢰즈는 인류가 선택한 두 종류의 길에 대해서 말했다. 첫째는 영토화, 코등화의 길이다. 이 길에서 사람들은 몸과 욕망의 탈주선을 안정된 형식과 규범과 원칙들에 맞춰 적당히 통제하며 살아간다. 이것을 그는 '붙박이 삶'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인류가 지속적으로 선택해 온 가장 보편적인 패턴이다. 문화란 이 붙박이 삶의 세련된 역사 이외의 다른 게 아니다. 문제는 이 문화 코드들이 올가미처럼 그 삶의 주체들을 속수무책으로 묶어놓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을 이용하려는 권력자들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묶인 상태가 행복한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려고 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문명사에서 국가는 이런 방식으로 탄생되었고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노예가 되는 길을 걸어왔다. (계속) -19쪽

(이어서)

둘째는 탈주와 유목의 길이다. 이 길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공간이란 말뚝을 박아 금줄을 치고 기둥을 세워 벽을 만들기 위한 기하학적 조건이 아니다. 몸과 욕망의 탈주선을 자유롭게 터주는 것이다. 역동적으로 솟구치는 야성은 그 공간의 매끄러운 지표면을 가로지르며 탈주한다.

들뢰즈는 이런 패턴의 삶을 사는 주인공들을 유목민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붙박이 문화 안에서 코드화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게 삶이란 모험이자 도전이고 새로운 경험이자 끝없는 해방 과정이다. 자신들을 옭아매려는 일체의 코드를 거부하는 유목민들의 이 모험과 도전의 충동은 확정된 코드에 길들여진 정착민들에게는 지극히 불온하고 위험한 힘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19-20쪽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한 맥락들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매세지는 우선 위반하는 삶의 지혜다. 위반은 바깥에 나서는 것이고, 바깥에서 안의 것들과 맞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바깥에 나서는 순간, 아니 바깥에 나서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우리의 몸과 마음은 긴장 상태에 들어선다. 바깥을 이미 보아버린 자는 바깥에 대한 동경을 멈추지 못한다. 바깥은 먼저 안의 윤곽 전부를 드러내준다. 그러므로 바깥에 나선 자는 언제나 안에 있는 것 전부와 상대할 수밖에 없다. 안에 있는 게임의 규칙 한두 개 깨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그는 가둬둘 수 없는 위반의 정열로 안의 것 전부와 맞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34-35쪽

그(베르그송)에 따르면 표층자아는 단순히 의식의 표면에 떠올라 있는 자아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부의 시선이나 자신의 욕망에 의해 고정시켜 놓거나 박제시켜 놓은 자아이다. 시선이나 욕망은 변하지만 박제된 자아는 변할 수 없다. 결국 필요에 따라 자아가 그때그때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공부하는 자아, 일하는 자아, 사랑하는 자아, 사업하는 자아, 탐구하는 자아, 게임하는 자아 등등으로. ... 중략 ...

그러나 인간은 이렇게 관찰되고 분석되고 판단되는 표층자아의 존재만은 아니다. 그럴 수 있음을 보여주는 타인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변화되면서 지속되는 진실한 자아이다. 이것은 주문제작 상품처럼 내걸거나 팔기 위해 만들어놓은 자아가 아니라 내 존재의 심층 깊은 곳에서 저절로 솟구쳐오르는 자아이다. ...중략... 표층자아는 단순하다. 그러나 복잡한 욕망의 층위와 다양한 감성의 충동들을 끌어안는 이 심층자아는 결코 단순할 수 없다. 표층자아와 구분되는 심층자아의 결정적 차이는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 자유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불온한 힘으로 비치게 되는 것이다. -59-60쪽

우리가 누군가로, 어떤 것으로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인물로 된다는 것, 그것은 단지 그의 신체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옷처럼 걸쳐서 살아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 의식의 자기 정체성과 하나로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의식은 신체가 아니다. 어떻게 그 안으로 들어가거나 나오거나 한다는 말이냐. 결국 이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로 되는 일이 불가능하다. 이는 동시에 자기 정체성을 떠나는 것이 불가능함을 반증한다. -69쪽

가령 나는 나를 대상화시켜서 느끼고 회상하고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서조차 우리는 각자 자기 자신으로서, 바꿔 말하면 의식의 자기 정체성을 지닌 채로 그런 경험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나 자신을 볼 수 있고 나 자신을 보는 나 자신을 다시 볼 수 있고, 또 이런 상황은 무한히 반복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나 바라보는 관점으로 물러서기는 하지만 바라보이는 대상으로 머물지는 않는 자아가 있으니 곧 의식의 자기 정체성이다.비판철학자 칸트는 이것을 '순수자아'라고 말했고, 현상학자 후설은 '선험적 자아'라고 말했다. 이것은 몸처럼 변화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그리고 물체가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우리는 이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69쪽

내가 여기서 '자신이 되라'고 한 것은 자기 존재를 긍정하라는 말이 이외의 다른게 아니다. 잠자(<변신>의 주인공>)는 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 변신한 몸과 자기 의식을 미처 화해시키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의 존재, 자기의 현실을 긍정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우리는 충분히 우리 자신으로 되어 있는가. 혹시 될 수 없는 것으로 되고자 하는 크레이그처럼 어리석은 욕망에 부대끼며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존재, 자기의 현실을 외면한 채, 타자와의 불가능한 동화만을 꿈꾸며 시간과 기력을 헛되이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내 존재의 가능성을 충분히 헤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복제라도 하듯이 성형해 내려 일을 꾸미고 있지는 않은가. 어느 영웅이 걸어간 길을 나 자신도 한 치의 착오 없이 따라 걸어가기 위해 내가 갖고 있는 다른 소질과 취향들을 깡그리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느 위인의 삶을 나 자신도 구현하기 위해서 내가 공들여 쌓아온 관계들을 팽개쳐버리고 있지는 않은가.-70쪽

동일자는 이쪽, 타자는 저쪽을 뜻하는 말이었다. 나에게는 당신이 타자고 당신에게는 내가 타자다. 물론 집합적으로도 쓰여서 가령 한국인에게 외국인은 타자이고 외국인에게는 한국인이 타자이며 아시아인에게 유럽인은 타자이고, 유럽인에게 아시아인은 타자다. 이처럼 타자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마치 동쪽과 서쪽, 왼쪽과 오른쪽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듯이.

...중략...

결국 타자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은 상대의 힘, 가령 유령성 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타자성 자체에서 오는 것이라 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타자와의 관계가 우선은 권력 갈등 관계로 맞서게 되는 까닭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동일자들의 폭력도 우선은 타자성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셈이다.-88-89쪽

미셸 푸코에 따르면 타자 앞에 선 동일자의 전략은 결국 두 가지뿐이다. 타자의 차이를 동일화시키거나 아니면 무화시키는 것이다. 전자를 위해서는 지식이, 후자를 위해서는 권력이 동원된다. 동일자의 궁극 목표는 마침내 타자를 남김 없이 자기 영토에 편입시켜 완전한 동일성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타자가 동일성의 영역에 편입된다고 곧 동일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영토 안의 타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 같은 영토 안에 남겨진 타자를 우리는 다른 이름으로 '식민'이라 부른다. 타자의 동일화는 어떤 미명 아래 시도되든 결국 이리의 발톱을 감춘 식민화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이 근세 이후 세계의 동일자로 등장한 유럽이 걸어갔던 역사의 행로라는 것을 안다. -89-90쪽

우리는 흔히 시간이 현재, 과거, 미래의 세 가지 지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가 있어서 역사와 반성이 있고, 미래가 있어서 이상과 희망이 있으며, 현재가 있어서 현실과 삶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부철학의 완성자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이 세 가지 시간지평은 오로지 문법 안에만 존재한다. 과거는 없고 오직 기억만이 있으며, 미래는 없고 다만 기대가 있을 따름이다. 존재하는 시간은 현재, 이 순간뿐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미워하고 존경하고 질투하고 선택하고 거부하는 모든 것들이 이 현재의 지평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즉 삶의 시간은 오직 하나, 현재가 있을 뿐이며, 기억(과거)하고 기대(미래)하는 일들도 모두 이 시간의 지평 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재형 사건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131-132쪽

니체는 현재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삶을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 과거에만 집착하거나 미래에만 매달리는 몽유인을 '역사적 인간'이라고 불렀다. 니체는 이 역사적 인간들이 이 지상에서 불행한 삶을 숙명적으로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만일 행복해지려 한다면 두 가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망각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다. 망각해야 하는 것은 이미 없는 과거, 아직 없는 미래요, 사랑해야 하는 것은 현재 그리고 그 지평 위에서의 삶이다.

니체는 바로 이 점에서 '회상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을 배우라고 했던 플라톤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플라톤은 완전한 것, 진리, 이데아 등은 과거에 이미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과거, 우리도 무죄하고 순결한 영혼이었을 때는 바로 이러한 진리의 세계 속에 흠과 때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었고,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힌 인간으로 태어나게 되면서 이 모든 완전한 것들에 대한 경험과 지식, 진리들을 깡그리 잊게 되었다고 한다. -137-138쪽

"가장 작은 행복이나 가장 큰 행복에서나, 행복으로 하여 행복이게 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뿐이다. 그것은 망각이다. 좀더 학문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비역사적으로 감각하는 능력이다. 일체의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의 순간에 머물러 설 수 없는 사람, 승리의 여신처럼 어지러움도 두려움도 없이 현재의 삶의 지평 위에 설 능력이 없는 사람은 행복이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더욱 나쁜 것은 그런 인간들이 자신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불행에 빠트린다는 것이다." (니체)-139쪽

기억에 매달려 역사가 과잉되면 인간은 인간이기를 멈춘다고 니체는 경고한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뭔가 올바른 것, 건강한 것, 위대한 것, 뭔가 참으로 인간적인 것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는 어느 정도는 망각할 수 있는 능력 속에 있다. 그런 한에서 우리는 이 능력을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고 근원적인 능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망각을 부정한다면 삶 또한 소멸되고 만다. 이 망각의 힘에 의해서 비로소 인간은 인간이 된다." -147쪽

'있음'은 모든 '있는 것'들보다 우선하는 토대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음'은 반드시 '있는 것'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간혹 이런 착각 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있는 것'이 사라지면 '있음'도 함께 사라져버린다고. 그러나 '있음'은 '있는 것'처럼 그렇게 부서지거나 흩어지거나 사라지거나 하는 게 아니다. -236-237쪽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주관의 감정이다. 아무가 아름다운게 아니라 '아우가 아름답다'고 형이 느낀 것이다. 이 사실을 잊어 버리면 두 가지 잘못된 믿음이 생겨난다. 첫째는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대상이 같다는 것이다. 이 둘을 한데 뒤섞어 생각하는 데서 아름다움에 대한 모든 혼란이 시작된다. 쉽게 말하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보거나 듣게 되는 구체적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것' 혹은 '저것'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다르다. 그것은 보거나 듣거나 만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란 오직 '생각하는 것'뿐이다.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려면 아름다운 것, 가령 소녀, 꽃, 노을, 단풍, 시, 그림 같은 것을 넘어서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넘어서서 나아간다'는 것은 눈으로 보기를 멈추고 사념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형이상학, 곧 '추상'이다. 결국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려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넘어서서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세계 안으로 들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261-262쪽

목적 인간 자신은 대체로 불행하다. 원래 목적을 이루는 일이 힘든 과정과 희박한 가능성을 뚫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설령 어쩌다 성공했다 하더라도 목적 인간은 곧장 다른 목적을 찾아 새로운 모험의 길로 나서려 하기 때문이다. 과정이란 그에게는 오직 건너뛰어야 할 정애에 지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그냥 마술로 훌쩍 뒤어넘거나 비행기 같은 것으로 날아가서 도달하고 싶다. 그래서 그는 평생 시간 없다는 것과 바쁘다는 것을 스스로 혼동한다. 신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공평하게 시간을 주었지만, 그는 자신에게만 유독 시간이 없다고 불평한다. 그에게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그저 스스로 바쁘다고 믿는 것 뿐이다.-283쪽

과정 인간은 삶이 A와 B 사이에 놓이는 과정 가운데 있다고 믿는다. 그는 과정 바깥에 있는 어떤 것들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도중에 멈춰 서서 머뭇거리고 서성거리고 심지어 방황하는 것조차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법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삶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도 이런 과정에서 어쩌다 도달하게 되는 지점이 누구나 도달하기를 바라는 지점과 일치할 수 있다. 그때 이 우연의 선물에 고마워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거북해하고 부담스러워한다. -284쪽

세상에 의해 거부된 존재들은 선택 앞에 서야 한다. 쫓겨날 것인가, 나앉을 것인가. 토니 모리슨은 소설 <가장 푸른 눈>에서 '쫓겨나는 것'과 '나앉는 것'을 구분한다. 떠밀려 쫓겨나는 자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세상으로 향하는 닫힌 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배회한다. '두드리라, 열리리라.' 그는 설사 또다시 쫓겨난다 하더라도 정녕 이 문이 다시 열리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그러나 제 발로 나앉은 자는 다르다. 그는 세상을 향한 희망을 스스로 접어버린다. 그는 차라리 다른 곳에 가령 언어, 꿈, 환상 같은 것에 머물고자 한다. 그러나 세상의 힘은 나앉은 자들이 이런 마법의 세계에 오래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을 분류하고 해석하고 조정하고 판단한다. -321쪽

젊은 시절의 사르트르는 "사랑한다는 말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혹은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 혹은 어떤 행동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주장할 때의 사르트르의 견해는 확실히 여자의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새벽에 우유배달 온 토맥과 여자의 짧은 대화로 돌아가보자. 여자는 토맥에게 묻는다. "키스하고 싶어? 껴안고 싶어? 나랑 자고 싶니?" 이것은 물음의 형태를 차용한 사랑에 관한 그녀의 당대적 정의였다. 사랑은 존재하지 않ㅎ는다. 그것은 우리 입의 구강구조를 거쳐서 나오는 바람 소리에 불과하다. 존재하는 것은 키스하고 만지고 껴안고 함께 잠자리에서 성교하는 것뿐이다. 이것을 그녀는 아이스크림집에서 다시 반복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저렇게 피부와 피부를 대서 접촉하고 느끼고 향유하는 것이라고. 여자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녀가 믿는 유일한 것은 신체와 신체의 접촉이다. 이처럼 그 구체적인 확인방식을 떠나서 떠드는 사랑에 관한 모든 논의는 허망하다는 것이다.
-339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젊은 시절의 사랑이 변덕스레 쉽게 변하는 것은 그 사랑이 쾌락적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즐거움을 주는 대상도 달라진다. 이것이 젊은이들이 쉽게 연인이 되었다가 또 쉽게 헤어지는 이유다. 그들의 사랑은 즐거움을 주는 대상의 변화와 더불어 변하며, 그러한 그것이 주는 쾌락도 속절없이 변해버린다. 젊은이들은 또한 성적이다. 그들이 나누는 대부분의 사랑은 정념에 의존하고 또 쾌락을 목적으로 한다. 그들이 금방 사랑에 빠졌다가 하루 만에 헤어지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348쪽

에리히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기술이다"라는 도발적인 명제를 제시하고 이 기술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부연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을 위한 불가결의 요소는 다음 다섯이다. 베풂, 보살핌, 책임, 존경, 인식. 프롬은 특히 마지막 요소, 즉 인식에 특별히 긴 해설을 덧붙인다. "사고에 의한 인식, 즉 심리학적 인식은 사랑이라는 행위를 온전히 인식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나는 타인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 혹은 내가 그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나 불합리하게 왜곡된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오직 내가 인간 존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때만 나는 인간을 궁극적 본질에서, 사랑의 행위에서 인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식은 나를 알고 상대를 아고 나와 상대가 함께 얽힌 종횡의 맥락들을 아는 것이다. 반성은 특히 그것을 흘러간 시간의 지평 위에 되돌려놓고 보는 것이다. 인식과 반성이 결여될 때 우리의 사랑은 도구적 사랑, 쾌락적 사랑으로 굴러떨어질 위기에 시나브로 내몰린다. -351-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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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2-25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마음이 동해서 오래된 정원 다시 보고있었는데.. 이 밑줄긋기가 반갑네요 ㅎㅎ 이 책 보관함에서 몇달째 썩히고 있는데 ㅎㅎ

이잘코군 2008-02-25 08:22   좋아요 0 | URL
소설 <오래된 정원>? :) 나도 그거 오래 전에 읽었는데, 영화는 얼마 전 봤구. 책은 잘 썼어, 재밌고, 내용도 깊고.

Jade 2008-02-25 15:07   좋아요 0 | URL
어제본건 소설말고 영화요 ㅎㅎ 예전엔 안보였던 장면들이 보이더라구요. 영화관에서 두번이나 봤었는데, 역시 난 보고싶은 것만 봤나봐 ㅎㅎ

marr 2008-02-25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멕과 우유배달 여인이 나오는 걸로 보니 키에슬로프스키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군요. 두 사람이 저렇게 멋진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게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그립군요.

이잘코군 2008-02-25 20:38   좋아요 0 | URL
미르님 이 영화를 아시는군요! 저는 아직 못 봤는데. 철학자 김용규씨도 그의 책에서 언급한 바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이 책 역시 사놓고 아직 보지 못했다는. 한번 보고픈 영화입니다.

turnleft 2008-02-26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철학 개념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발탁된 배우라고 할 수 있는데, 종종 저자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정작 설명하고자 한 철학 개념과는 그닥 어울리지 못하는 사례들이 눈에 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조연으로 출연시켜놓고 너무 많이 카메라에 담아 주연이 누구인지 헷갈리게하는 감독 같은 느낌이랄까"

예전에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적어 놓았더군요 ㅋㅋ

이잘코군 2008-02-26 07:55   좋아요 0 | URL
읽고보니 그 말이 잘 맞는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잘 쓴 책이라 생각해요. :) 제가 전에 예스24에 칼럼비스므리하게 시도했던 그런 스타일이라 깜짝 놀랐어요. 제가 썼던 <묵공>과 비슷한 구조였다는.

Kitty 2008-02-26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어요!
저같이 무지몽매한;; 중생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줘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ㅋㅋ

이잘코군 2008-02-26 07:55   좋아요 0 | URL
이거 재밌습니다. 잘 모르는 영화, 잘 모르는 철학자의 철학도 쉽게 풀어서 잘 엮었어요.

프레이야 2008-02-26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나게(^^) 읽었어요.

이잘코군 2008-02-27 00:42   좋아요 0 | URL
네 영화와 철학이 잘 버무려진 책이었어요.
 


  나는 이래저래 순탄한 인생을 살긴 그른 모양이다. 세번째 전과를 했다. 고등학교 때 이과에서 문과로 첫 번째 전과를, 대학 때 경제학에서 철학으로 두 번째 전과를, 그리고 이번에 교직에서 **로 전과를. 내 이력서과 내 자기소개서를 보곤 다들 그렇게 말씀하신다. 좋게 말하면 참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나쁘게 말하면 참 많이 옮겨다니셨군요, 라고. 그래 나 많이 옮겨다니고 너무 하고픈게 많아서 이거저거 다 시도해봤고 내 마음이 가는대로 살아왔다. 어릴 때도 그랬고, 나이먹은 지금도 그렇다. 난 말이다, 언제든 내 마음이 가는대로 나를 내맡겨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며 몸담았던, 햇수로 3년간 몸담았던, 그 직업을 버렸다. 고등학교 때 이과에서 문과로 옮길 때도 그랬듯, 대학 때 경제학에서 철학으로 옮길 때도 그랬듯, 이번에도 어머니는 한 소리 하셨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언제나 그대로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지금의 나를 믿고,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그래도 내 마음대로 가도 될까, 하고 스스로 의심해보곤 했다. 절래절래는 아니어도 갸우뚱하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어머니는 시험 한 번 보지 않고 포기해버린다고 뭐라 하셨다. 그러나 난 '포기'한 게 아니다. '포기'는 내가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 사용하는 단어다. 난 포기 한게 아니란 말이다.그런 식으로 외부의 시각으로 나를 해석해선 곤란하다. 나는 교직을 원한게 아니라 '철학함'의 연속성을 원했다. 애초 대학을 졸업하며 생각했던 여러 갈래의 길을 놔두고 이 길을 택했던 것은, 많은 이들과 철학함을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왜 이 길을 택했냐고 물으면 철학함을 원했다고.

  생각보다 그들은 많이 보수적이었다. 나는 나를 속여가면서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고 싶지 않았고, 집에서 거리가 먼 곳을 힘겹게 찾아간 뒤에도 나를 굽히지 않았다. 난 언제나 나를 드러냈다. 기독교 학교에서 불렀을 때에도 예수를 믿으십니까, 라는 물음에 나는 선뜻 믿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를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도 믿는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게 내 진심이었다. 그건 쉽게 대답할 문제가 아니었다. 날 맘에 들어하신 교감샘께서 나를 쓰기 위해 다시 물으셨다. 대답할 기회를 주셨다. 파스칼이 그런 말을 하잖아요. 신이 있다 없다에 내기를 건다면 어디에 거시겠습니까? 역시 대답하기 어렵다 했다. 

  비기독교 학교인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답했다. 날 속이지 않았고 내가 믿는 그대로, 내 생각 그대로 전달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철학함을 계속 해 나갈 수 없다면, 나는 그 길을 걷지 않겠다 생각했고, 철학함을 이어나갈 수 있는 다른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첫 출근을 하였다. 현장에서 가르치며 철학함을 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나의 철학함을 이어가련다. 내가 원한 건 어차피 특정한 직업이 아니었다. 단지 철학함이었을 뿐. 지금의 직업이 꼭 들어맞는다고 볼 순 없지만 하는 작업 중 절반은 내 뜻을 펼칠 수있는 길이었기에 이쪽으로 급선회했다. 

  대학 때 철학을 선택하면서 나는 특정 직업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단지 그냥 끌려서 갔을 뿐. 먹고 사는 문제는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졸업한 지금 역시 철학과를 나와서 먹고 살기 왜 힘들다고 하는지는 깨달았지만,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대학을 가더라도, 그 시기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철학을 택했을테니까. 더불어 복수전공으로 국문학이나 사회학을 택했을테니까. 한 지인이 그런다. 친구가 심리학과인데 복수전공이라도 해라, 라고 말했더니 정말 복수전공을 했단다. 뭐 했냐 물었더니 어 철학, 그랬단다. 크게 웃어줬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아니까.

  내 인생의 커다란 세 번째 전과를 감행한 첫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만족스럽다. 이제 이 길을 걷는다. 언제 다시, 또, 내가 네 번째 전과를 감행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나도. 난 내 마음이 가는대로 그렇게 살으련다. 내 마음이 철학함의 다른 변주를 원한다면 그곳에 내 발을 돌리련다. 지금은 이 길을 걷는다. 시간이 된다면 3년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바들을 풀어놓을 것이다.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저항하고 싶어도 저항하지 못하는, 분노하고 싶어도 분노하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하나씩 풀어놓으련다. 그 입을 대신하련다.

p.s.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게다. 네 번째 아니냐고. 므흣. 엄밀히 대학에서 전공한 학문과 대학원에서 전공한 학문은 그 이름을 달리하고 있으니. 하지만, 내게 대학에서의 전공과 대학원에서의 전공은 다르지 않다. 같다. 그건 그냥 그 이름이 다를 뿐이고, 사람들의 구분방식이 그럴 뿐이고, 학제구분이 그럴 뿐이다. 그러니 난 전과를 네 번 한게 아니라, 세 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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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2-20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저번에 말한 직종으로 옮긴 거예요? 아무튼 세번째 전과 축하해요! 소신을 밀고 가는 삶, 아프님답고 멋집니다. 지난 3년의 시간도 아프님의 다음 행보에서 소중한 거름이 될 테지요. 잘 하셨어요!!!

2008-02-20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0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anne 2008-02-2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궁금해라. 비밀이신가요?
(방황하는 영혼에게 길잡이를...)

이잘코군 2008-02-21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 네 그쪽이에요. :) 뭐 제가 그렇죠. 주관만 뚜렷해서 지 고집만 세고 클클. 3년의 경험도 이쪽에 오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21:30 속닥님 / 님 비밀댓글 오랫만에 받아봐요. ^^ 감사합니다. 직장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면 새로운 실험을 하나 더 계획 중입니다. 때가 되면 다시 자수(?)할게요.

21:39 속닥님 / 감사합니다. 이 길을 또박또박 걷겠습니다.

쟈스민님 / 오랫만인데욤. 음, 굳이 비밀일 필요는 없지만, 저도 이참에 신비주의를 한겹 써보려고. -_- 난 너무 많이 알려져있어서요. 사소한 것 까지도. 크크. 저도 뭐 하나 비밀 좀 만들어볼래요.

살청님 / 하일지가 누군가 검색해봤더니, 요렇게 나옵니다. "동덕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인문학부 문예창작전공 부교수" 이 분이 소설가인데다 전직 교사셨군요. 엇!!!!!! <진술> 요고 요고 강신일씨가 모노했던 연극 원작 맞죠?!! 으아 이 연극 진짜 완전 완전 좋았는데, 그 원작이 이 분 책이었군요. 전에 알아놓고서 또 까먹고 이런다... -_-

바람돌이 2008-02-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자신만만한 선택은 당연히 포기가 아니죠. 새로운 출발이죠.
축하드려요. 부디 새로운 곳에서 원하던 바를 이루시기를....

깐따삐야 2008-02-2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지는 몰라도 정말 잘되셨다! 축하드려요. 그런 의미에서 간장게장은 아프님께서 사주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ㅋㅋ

이잘코군 2008-02-21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 네 감사합니다. 새 출발이에요. 근무 환경이나 하는 일이나 만족스럽습니다. :)

깐따삐야님 / 감사합니다. 간장게장은 -_- 메피님꺼, 난 호두과자. ㅋㅋㅋㅋ

다락방 2008-02-21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아프락사스님.
정말 소신있게 사시는 멋진 분이시군요.

저는 전과든 뭐든 뭘 바꾼적도 없고, 뭘 시도해본 적도 없는데요.

계속 그렇게 소신대로 밀고 나가셔요. 물론, 어떤걸로 바꾸셨는지 너무나 궁금하지만, 신비주의를 써보기로 하셨다니, 묻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이잘코군 2008-02-21 20:27   좋아요 0 | URL
전 제 주관, 소신 빼면 시쳅니다. :) 그걸로 사는 놈이기 때문에. 할 말은 하고 드러낼 건 드러내는 편입니다. 어떻게 좀 속여볼라고 하는거 잘 못해요. 새 직업 숨겨봐야 신비주의 되는 건 아니지만 - 너무 발가벗어서 - 그래두 신비주의를... :)

비로그인 2008-02-2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일.
그동안 마음고생을 하신듯 한데..
축하합니다. 아프락사스님

승승장구를 기원합니다. 하하


이잘코군 2008-02-21 20:28   좋아요 0 | URL
네 고생 많이 했습니다. 정말. 대신 비정규직 체험도 해보고,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충분히 느낄 만큼 느끼고 나왔다는 건 인생살이의 큰 도움입니다. 이런식으로 각종 직업을 전전하며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2008-02-21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1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08-02-2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 길을 택했냐고 물으면 철학함을 원했다고."

헤에- 멋지잖아, 당신.

이잘코군 2008-02-21 20:30   좋아요 0 | URL
-_- 에헤. 그건 머 말을 좀 멋있게 해서 그런거구, 실제로는 고렇게 짧게는 대답 못하고, 대신 그 내용을 담아서 좀 완화시켜서 발언을 했다는. 결국 머 요약하면 그거지만요. :)

2008-02-21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1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1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1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02-21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핏 보면 이래저래 방황을 하는 듯 보이지만, 그 사람은 한 곳을 보고 쭉 가는 것이고 한번도 방황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아프락사스 님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는 철학에세이의 첫 번째 명제를 설천하면서 이 위에 다시 한마디를 덧붙이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전과가 아니라, 혹은 네 번째 전과가 아니라 모두 한 가지일 뿐이었다"라고...^^

축하합니다!~!

이잘코군 2008-02-21 20:35   좋아요 0 | URL
네. 저는 한 방향만 계속 바라봤습니다. 그게 직업이나 특정한 일이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었기에 그렇게 여러 옷을 갈아입었을 뿐. 다음에 또 다른 무언갈 시도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문구를 들으니 오랫만에 <철학에세이> 꺼내보고 싶군요. 어디에 들어가 있는지 한참 찾아야 할텐데.

프레이야 2008-02-2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출발, 축하드려요.
뭐든 선택한 것에 충실하시리라 믿어요.
무슨일인지는 아마 차츰 들려주실 것 같아요.
신비주의 오래 못하시는 거 다 안다구요^^

이잘코군 2008-02-21 20:35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일에 관해서는 당분간은 그냥 조용히 있고 :) 시간과 기억이 허락한다면 그동안 경험했던 것들을 풀어볼까 합니다.

marr 2008-02-2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번 전과를 했어요.
자신이 좋아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또 얼마나 좋습니까?
70년대 학번인 어떤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옛날에 철학과 간다고 그러면 어디서 돗자리 펼려고 그러냐고 묻고, 사회학과 간다고 하면 사회보는 것도 대학에서 가르치냐고 그랬답니다.
사실 지구에서 제일 많은 광물이 철인데 말입니다. ㅎㅎ

이잘코군 2008-02-21 20:37   좋아요 0 | URL
네. 지금은 철학과에서 돗자리 펴지 않는다는건 사람들이 대략 알지만 - 아마도 논술 붐 때문에 그 인식이 달라졌을 듯 - 여전히 "철학과 나오면 뭐해요"라는 질문은 자주 받습니다.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대답합니다. 할 거 없습니다, 하고.

antitheme 2008-02-2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의 선택이 뭘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하지만 한눈 팔지않고 자신의 주관대로 잘 해나가시리라 믿습니다.

미소프로젝트 2008-02-21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전 용기가 없어서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취업준비를 계속하고 있어요.ㅠ

이매지 2008-02-22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지않은 결정하셨을 것 같아요.
음. 국문과 나와서 뭐해요?라는 질문도 꽤 많이 받습니다ㅎ
요새같아서는 경영쪽빼고는 뭐 죄 그런 소리 들을 듯-_-;;
어쨌거나, 아프님의 새로운 시작이 창창하기를! ㅎ

이잘코군 2008-02-2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티테마님 / 넵. 근데 얼마나 여기에 또 붙어있을지는 저도 몰라요. :) 워낙 다양한 분야를 건드리길 좋아해서. 일단은 만족스럽습니다.

미소프로젝트님 / 첨 뵙는듯. :) 어떤 준비를 하시는지 모르지만 일단 과감히 몸을 날려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너무 '대세'를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매지님 / 그래도 국문과는 '사철'보다는 낫더라구요. 학원을 가더라도 흐름을 타는 과목은 아닌지라 언제나 수요가 있고. :) 철학은 논술과 연계해서 학원으로 갈 수 있긴 하지만, 이제 새 정부 교육 정책 '덕분에' 이쪽도 수요가 없어요. 제가 아는 분은 철학과생이지만 처음부터 언어영역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스타강사가 되었다는. 매지님도 올해 취업 꼭 하세요.

군자란 2008-04-17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 아프님의 방을 방문하면서 즐거운 글 읽었습니다. 혹시 초면에 실례지만 3번째 전과인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혼은 하셨는지? 아이는?나이는? 등등의 현실적인 조건속에서의 님의 3번째 전과를 이해하고 싶은데요. 너무 무례하지요.죄송합니다. 하지만 궁금한건 어쩔수 없네요........답을 안해주셔도 됩니다.

이잘코군 2008-04-17 13:47   좋아요 0 | URL
처음 뵙습니다. :) 결혼은 안했고, 아이도 없구요, 나이는 올해 계란한판 되었습니다. ^^

군자란 2008-04-17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했는데 ...답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님의 서재에 들어와사 정말 즐거웠습니다. 어쩌면 오늘 처음 보았지만 굉장히 낳익은 느낌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잘코군 2008-04-17 21:14   좋아요 0 | URL
^^
 
나는 고발한다 - 해제ㅣ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의 양심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7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구판절판


사법적 오판은 슬픈 일이지만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법부가 틀릴 수도 있고, 군부가 틀릴 수도 있다. 여기서 군부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말이 왜 나오는가? 오판이 내려졌을 때 시급한 단 하나의 의무, 그것은 조속히 오판을 시정하는 것이다. 결정적 증거 앞에서도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날, 바로 그날 진정한 과오가 시작되리라. 사실 어려운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오판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오판을 인정하는 데 괴로움과 망설임이 있었다는 것을 시인할 결심을 하는 날, 바로 그 날 만사가 형통하리라. 그 점을 인식하는 이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쉐레르 케스트네르 씨' 中)-28쪽

청년, 청년들이여! 언제나 정의와 함께 있으라. 그대들의 내면에서 정의의 관념이 희미해지는 날, 그대들은 파멸하리라. 지금 나는 사회적 관계의 보장에 지나지 않는 '법전'의 정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존중해야 하리라. 그러나 좀더 숭고한 관념, 모름지기 인간의 판결이 잘못될 수도 있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정의, 심판자들을 모욕하지 않으면서 기결수의 무죄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정의가 있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법을 향한 그대들의 불타는 열정을 자극하는 모험이 아닌가? 아직 이해관계나 인간관계가 뒤얽힌 이전투구에 휩싸이지 않은 그대들, 아직 어떤 비열한 사건에도 연루되지 않은 그대들, 순수와 선의로 목청껏 외칠 수 있는 그대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정의의 완성을 위해 일어날 것인가? (계속)-67쪽

(이어서) 청년, 청년들이여! 인간성을 지켜라. 관용을 잃지 마라. 설령 우리가 틀렸을지라도, 우리와 함께 있으라. 무고한 자가 끔찍한 형벌을 당하고 있고, 분노에 찬 우리의 가슴이 고통으로 찢어졌다고 우리가 그대들에게 말하지 않는가. 비록 한순간일망정 이 한없는 형벌 앞에서 사람들이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슴이 고통으로 찢어졌다고 우리가 그대들에게 말하지 않는가. 비록 한순간일망정 이 한없는 형벌 앞에서 사람들이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슴이 미어지고, 두 뺨에 눈물이 흐른다. 물론 간수들은 여전히 무정하고 무감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대들,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고, 온갖 비참과 온갖 연민에 민감한 그대들은 어찌된 일인가! 이 세상 어디엔가 부당한 증오를 받으며 죽어가는 순교자가 있을 때, 그대들이 어떻게 그의 대의를 지키고 그를 해방하기 위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대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숭고한 무험을 감행할 것이며, 도대체 누가 위험하지만 훌륭한 대의 속에 몸을 던질 것이며, 도대체 누가 이상적 정의의 이름으로 군중에 대항할 것인가? (계속)-67-68쪽

(이어서) 만일 늙은 기성세대가 그대들의 고귀한 혈기, 고귀한 열정을 대신 불태운다면, 그대들은 얼마나 부끄러울 것인가? 청년들이여, 어디로 가는가, 학생들이여, 어디로 가는가? 거리로 내달리는 그대들, 시위의 물결을 이룬 그대들, 시대의 혼란 속으로 스무 살의 용기와 희망을 던지는 그대들이여...... "이제 우리 함께 가오, 인간과 진실과 정의의 세상을 향하여!"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中)-68쪽

애초에 내가 말한 대로, 진실은 전진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으리라. 사악한 무리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전진이 한 걸음 한 걸음 적시에 이루어지리라. 진실은 그 자체로 온갖 장애물을 분쇄할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진실이 가는 길을 가로막고, 또 얼마간 진실을 땅속에 묻어두는 데 성공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때에도 진실은 땅속에서 자라며, 땅속에서 엄청난 힘을 얻고, 어느 날 폭발의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을 날려버리리라. 앞으로 몇 달 더 거짓과 밀실 속에 진실을 가두어보리라, 그러면 그대들은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재앙을 준비했음을 곧 알게 되리라. ('프랑스에게 보내는 편지' 中)-73쪽

대통령 각하, 진실은 이처럼 단순합니다. 그리고 이 무시무시한 진실은 당신의 통치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길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으며 단지 헌법과 측근의 수인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대로 역시 완수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최후의 승리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한 확신으로 거듭 말씀드립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에서야 '사건'이 진정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오늘에서야 각자의 입장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빈다. 한쪽에는 햇빛이 비치기를 원치 않는 범죄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햇빛이 비칠 때까지 목숨마저도 바칠 정의의 수호자들이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진실이 땅 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머지않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막 가장 멀리까지 울려 퍼질 재앙 중의 재앙을 준비했다는 것을. ('나는 고발한다' 中)-105-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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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항상 문과/이과의 구분이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그만둔 옛 직장의 선생님 한 분은 말할 때마다 문과가 어떻고 이과가 어떻고 이런 식의 구분을 전제로 깔고 뭐든 이야기를 하시곤 했는데, 나는 그 분의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불편했다. 이과가 어떻고, 문과가 어떻고, 요런게 어디 있어. 하시는 말씀의 주제는 전혀 문과/이과를 떠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관련지어 말씀하시는게 마음에 거슬렸다. 사실 이공계열 전공자와 인문계열 전공자의 사고구조의 차이는 어느 정도 존재한다. 존재하지만, 그걸 어떤 이야기와 반드시 연관지어 말할 필요는 없을 뿐더러 그 차이는 대략적인 것일 뿐이다. 아주 넓게 보아 그렇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나의 친한 친구 하나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자연계열-공학계열을 공부하고 있는데,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 지금은 잘 안 그러는거 같은데 -, 자신은 자연계열이라 이렇고, 나는 인문계열이라 이렇고 라고 말하며 단정짓는 경향이 있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자신은 자연계열 전공자 치고는 인문사회과학 책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거나 자연계열 전공자 치고는 인문계열 전공자 식의 사고를 한다는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건 아니다. 자연계열이라고 해서 인문계열에 관심이 적다거나 아니면 책을 읽지 않는다거나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위험하다. 그건 자신의 전공 영역에서 벗어난 부분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를 정당화시켜줄 수 있다, 고. 가령 사회 현실의 문제들.

  어떤 사람이 걸어온 길, 그가 공부해온 길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사고와 가치관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공계열에 오래 머문 사람과 인문계열에 오래 머문 사람은 분명 자신이 공부한 부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그것이 자기를 형성하는 일부분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절대적이라고 믿어서는 안 되며, 절대적으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앞서 말했지만 대략적인 분위기와 성향일 뿐이다. 전공은 어디까지나 전공일 뿐, 끊임없는 가로지르기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발언한 내용 안에 스스로를 가둬둘 필요는 없다. 그건 그 사람을 더욱 이공계스럽게(?), 더욱 인문계스럽게(?) 만들 뿐이다. 나는 이공계라서 이래, 이공계라서 이런데는 관심 없어, 나는 인문계라서 이래, 인문계라서 이런데는 관심 없어, 라는 식의 의식은, 자기를 더 좁게 작게 만들 뿐이다.

  애초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은 따로 없다. 이공계열 인간과 인문계열 인간은 따로 없다. 그건 스스로가 만든 감옥 안에 자기를 집어넣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질 뿐이다. 심리철학을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심리철학에서 논의되는 뇌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습득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예전에 학부 때 교수님께서 당시 관심갖고 공부하시던 영역에서 과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과학책을 뒤적이고 있다고 말씀 하셨는데, 철학자가 왜 과학책을 뒤적여?, 라고 의문부호를 달 것이 아니라,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공계열, 자연계열도 역시 마찬가지다. 과학적 진리를 탐구하고, 쓸모있는 뭔가를 만들 궁리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력, 파장을 고려하고 사유할 필요가 있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끊임없이 가로지르기 할 때 성과는 빛을 발할 것이다.

  학자가 아닌 사람도 마찬가지. 자기를 자기가 형성한 감옥에 가두지 말고 영혼을 풀어헤쳐야 한다. 적어도 이제 난 이공계라서 이래, 난 인문계라서 이래, 라는 말은 입 속으로 쏙! 일종의 이런 선입견들이 자기를 규정 짓고 남을 규정 짓는다. 사족이지만 하나만 더 말하면, 남자들만이 있는 자리에서 으레 당연하다는 듯이 나오는 여성 비하적 발언이나 동네 뒷골목에 있는 뻘건 집 이야기는, 남자라면 당연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는 전제를 깔고 있다. 개인적으로 얼마전 만난 한 선생님께서 여자들도 없는데 어쩌구 저쩌고 하면서 필리핀이 어쩌고 하는 발언을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한동안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그런 분들이 없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없는 자리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이런 주제와 발언들은 그 자리에 있는 같은 성(性)을 지닌 남자를 성희롱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입견이 빚어낸 일상적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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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2-09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아마도 말끝마다 문과니까, 이과니까 하고 토를 달기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분명히 자기가 속한 그룹에 자기가 꼭 들어맞지 않는다는 컴플렉스(?)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포함될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은근히 자기도 모르게 문과냐, 이과냐 하는 문제에 예민해지거든요. 대화중 저도 남들 보기엔 그런 습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나 잠시 반성하고 넘어갑니다 ^^
아무튼 선입관이란 우리 사고에 하등 도움이 안된다니까요~

이잘코군 2008-02-09 16:40   좋아요 0 | URL
네 선입견은 살아가는데 하등 도움이 안돼요. -_- 항상 모든 문제를 선입견에 맞추어 버리기 때문에. 전혀 관련 없는 것들도.

깐따삐야 2008-02-09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순한 흥미 때문이든, 필요 때문이든, 잘 몰랐던 분야라도 뭔가 계기가 생겨서 관심을 갖고 시간을 투자하다 보면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 소양 정도는 갖추게 되는 것 같아요. 타고난 소질이나 자라온 환경에 따라서 좀더 빨리 깨우치고, 늦게 깨우치고의 차이는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처음부터 선입견을 갖는다거나 한계를 규정 짓는 건 뭔가를 알고 배우는데 장애가 되곤 하죠.
사실 저도 "난 원래 수학은 못했으니까" 이런 식으로 간단한 돈 계산도 미뤄버리는 면이 있어요. -_-

이잘코군 2008-02-10 09:0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계기가 생겨서 관심갖고 그러다보면 대략 어느 정도 밑그림은 그리게 돼요. 저도 머 그런건 있어요.

balmas 2008-02-10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씀입니다. ㅎㅎㅎ

이잘코군 2008-02-10 09:09   좋아요 0 | URL
에헷 :)

프레이야 2008-02-1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는 다 그래, 여자는 원래 그래, 이런 식의 말도 마찬가지의 선입견이겠죠.
이과형/문과형 이야기의 끝부분 '사족'이라고 하신 이야기가 그런 말을 하신 거라고
생각되어서요. ^^ 아프님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부탁 드려요.
올해엔 영혼의 틀에서 벗어나 보기, 저도 노력해야겠어요.

이잘코군 2008-02-10 09:11   좋아요 0 | URL
네. 남자는 원래 어떻고, 여자는 원래 어떻고. -_- 요런 말도 싫어해요. 그런게 어딨어. 물론 힘의 강도나 신체적인 특징이나 에또 화성남자 금성여자 처럼 생각의 구조가 어느 정도 다를 수 있다는거 그런걸 가지고 아예 남녀를 절대적으로 구분하려고 들죠. 혜경님두 새해에도 좋은 사진과 글, 영화감상문 부탁해요 :)

도넛공주 2008-02-1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제가 즐겨하는 장난이 생각나네요.전자제품을 좋아하다 보니 사람들이 종종 물어봐요."도넛씬 이과예요?" "네""역시 그래서 그렇구나""사실 문과예요~홋홋""...."

이잘코군 2008-02-10 17:01   좋아요 0 | URL
^^ 재밌는데요. 그럼 문과에요, 라고 대답했으면 뭐라고 상대가 반응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려나요.

marr 2008-02-1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경향신문 "책과삶"에서 소개된 "괴짜심리학"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별자리와 성격 사이에는 실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의외의 실험 결과가 있다. 별자리에 대한 사전지식이 그 사람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저도 혈액형이나 별자리에 나타난 성격이나 심리에 대한 사전 지식을 어릴 때 알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소개된 성격에 부합하려고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이과 학생들은 고등학교에서 "윤리"과목을 아예 배우지 않거나, 1학년 때 잠깐 배우고 맙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자신이 이과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 모른다는 것을 아주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할 때가 많더군요. 마찬가지로 문과 학생들은 기초적인 물리지식을 전혀 모르고 있고 아예 배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 지식이 문과 학생인 자신에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식으로 말합니다.
대학에서도 아직 이와 같은 이상한 구분이 잘 극복되지 않습니다. 과학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잘코군 2008-02-11 09:0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별자리, 혈액형 얘기 많이들 하죠. ^^ 화제거리가 없는 어색한 자리거나 처음 만난 사람일 경우엔 대화를 풀어나가기 좋은 소재이지만, 이걸 심각하게 믿진 않아요. 말씀하신대로 그런거 같아요. 자기가 이렇데, 라고 결론 내리기 때문에 점점 그렇게 변해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공계나 자연계라서 윤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요. 과목으로서 '윤리'로부터만 멀면 괜찮은데, 간혹 윤리적인 면으로부터도 멀어지며 그걸 정당화시키려 하기도 한다는.

건조기후 2008-02-10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자꾸 어떤 기준으로든 구분을 지어 묶어버리고 선입견을 만드는 습성 자체가 참 어리석은 일이죠.. 단지 개개인의 성격이고 취향일 뿐인데 말입니다. 이과나 문과에 속하는 학문적인 특성과 그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의 특성은 분명 별개의 것인데.

근데 요즘 알라딘 서재를 여기저기 많이 둘러보며 느낀 건데 화재의 서재글에 항상 님의 페이퍼가 여러 개씩 링크되어있더라는.. 아핫. 인기가 많은 분이시군여. ^^:

이잘코군 2008-02-11 09:10   좋아요 0 | URL
넵. 그냥 '개인'으로 보는게 가장 선입견관 편견으로부터 벗어난 원초적 상태에 가까울 겁니다. 그간 배워온 학문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지만, 아예 영역을 구분지어버리는 경향이 있죠. 제 글은 한동안 뜸했는데 연휴에 한꺼번에 뻬빠질 하느라구 또 올라가버렸네요. ^^

2008-02-10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1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1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넷 2008-02-1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는 그런 편견이 강한 편이였는데, 여기서 많은 알라디너와 많은 책을 접하다 보니 그나마 그런 편견이 없어진듯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은 완전 공감. 남자들끼리 모여있으면 왜 그런지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정말 불쾌해요. -_-;;;

이잘코군 2008-02-11 09:14   좋아요 0 | URL
그런 사람은 멀리하게 됩니다. 공개적으로 대놓고 것두. 그냥 끼리끼리만 모여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면 모르겠는데, 마치 저 사람도 나와 같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전제를 미리 깔고 들어가는 발언 불쾌합니다. 한번은 동호회 남자들끼리 모여서 같은 동호회 내의 어떤 여자의 가슴이 어떻고 하면서 이야기하는데 불쾌해서 일찍 나온 적도 있습니다.

2008-02-11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1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perky 2008-02-11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공계 사람들이 '난 이과라서 그런것 잘 몰라.' 하는 말이 어쩌면 자기변명차원에서 그런 말 하는건지도 몰라요. (이과였던 제 경우를 보면.-_-) 아무래도 문과쪽 사람들과 얘기하다보면 인문학적 교양면에서 확실히 딸림을 느끼거든요. 인문계 사람들이 보기에 당연한 지식/정보가 이공계 사람들은 모르는 경우가 아주 많다보니..그 쪽팔림을 변명하고자..사실 이공계열에서 인문학적 기본 소양들을 배우려면 독학해야만 하는게 우리나라 현실이거든요. 공돌이는 '단무지'다 (단순,무식,지랄)이라고 무시하는 사회풍조 또한 이공계 사람들이 자기방어차원에서 '나는 이과생이다보니..' '너는 문과생이라서...' 등의 말을 하게 만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잘코군 2008-02-11 09:17   좋아요 0 | URL
음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군요. 앞에서 분위기를 잡아주고 뒤에 들어오는 신입생들은 그런 분위기를 또 받아들이고. 계속 그렇게 반복되는거 같습니다. 교수님들이 더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기도 한다는. 실제로 또 어떤 교수님은 단무지의 전형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쩝. -_-

L.SHIN 2008-02-1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서 인간은 틀 안에 자신을 가둬두어야만 안심을 할까요...쯧..

보석 2008-02-1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대해 잠시 고민해봤습니다. 정형화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쉽지 않은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8-02-11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계열, 자연계열에 각각 강점이 있는 사람들이 있지요..
하지만,
'가로지르기'에 한표!! 하하


이잘코군 2008-02-1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드에스님 / 요렇게 뻬빠로 말했던 저도 머 예외일 수는 없을 거에요. 다만 스스로 많이 의식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걸로 -_- 아닌 척할 뿐. ^^

살청님 / 네 페이퍼 방금 보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석님 / 쉽지 않아요. 어떤 측면에서, 어떤 기준으로든 틀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차이일 뿐.

한사님 / '가로지르기'. 네. 요건 로쟈님 소개하신 '통섭'과 같이 보셔도 됩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또 서로의 영역을 구분없이 가로지르기 하는 것을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걸로 여기는 분들도 많은거 같더라고요. 철학아케데미를 운영하는 이정우 교수가 예전에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거 같던데 동료교수들로부터.

L.SHIN 2008-02-11 22:23   좋아요 0 | URL
인식이 중요하죠. 적어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는 있으니까.^^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ㅡ.,ㅡ
오, 정말 그런 사람들 싫어요.그렇지 않나요.

2008-02-21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1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