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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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일을 날마다 기록하는 것은 고금이 다르지 않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일이 없지 않아 내 한 몸에 모여든 일이 언제고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날이 다르고 달이 다르다. 무릇 사람의 일이란 가까우면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멀어지면 헷갈리며, 아주 멀어지면 잊어버린다. 하지만 일기를 쓴다면 가까운 일은 더욱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먼 일은 헷갈리지 않으며, 아주 먼 일도 잊지 않는다.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일은 일기로 인해 행하기에 좋고, 법도에 어긋나는 일은 일기로 인해 조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기란 것은 이 한 몸의 역사다.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으랴. 나는 글을 배운 이후 지난해에 이르기까지 3,700날 남짓을 살아왔다. 3,700날 동안 있었던 일을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면 꿈을 꾸고 깨어나서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번개가 번쩍번쩍하여 돌아보면 빛이 사라진 것과 같다. 날마다 기록하지 않아서 생긴 잘못이다. (유만주 <흠영>) -27쪽

가난한 집에 가진 거라곤 책 다섯 수레뿐
그것을 제외하면 남길 물건이 전혀 없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서책을 못 떠나니
전생에는 틀림없이 좀벌레였나 보다

(하곤 <책을 뒤적이다>(檢書)) -84쪽

동씨가 세 가지 여가에 독서하다
1,2가 나오면 사언의 글을 짓고, 3,4,5,6이 나오면 오언시를 지으랴. 동우는 자신을 찾아와 배우겠다는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그저 "먼저 백 번을 읽어라. 그러면 뜻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하기만 했다. 여유가 없어 글 읽기가 힘들다고 말한 제자가 있었다. 동우는 세 가지 여가 시간에 공부하라고 했다. "세 가자ㅣ 여가란 무엇입니까?"라고 누군가 물었다. 동우의 답은 이랬다. "겨울은 한 해의 여가요, 밤은 낮의 여가요, 비바람 치는 때는 시간의 여가다."

(배송지의 삼국지주)-238쪽

전답을 사면 뱃속을 배부르게 하는 데 그치지만, 책을 사면 마음과 몸이 살찐다. 전답을 사면 배부름이 제 몸에 그치지만 책을 사면 나의 자손과 후학, 일가붙이와 마을 사람, 난아가 독서를 좋아하는 천하 사람들이 모두 배를 불리게 된다.

(박규수가 유숙도의 삶에서 본보기가 될 만한 인생의 의의를 찾아내 제시하고 그 의미를 밝힌 글) -243쪽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 세상의 현인과 벗 삼는 것이 정녕 옳다. 그러나 천고적 사람을 사귀라고 옛사람이 말하지 않았던가? 이 책에서 다룬 천고의 현인은 모두 내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친구 삼고 싶은 분들이다. 하지만 이 <상고전도> 전체를 샅샅이 뒤적일 필요가 굳이 있겠는가? 가을비 내리고 낙엽 지는 아침이든 대숲으로 난 창가에 큰 눈 내리는 밤이든 한 부를 뽑아 읽는다면 거기에는 속세를 벗어나 숨은 고매한 현자도 있고, 문장에 능한 재사도 있다. 국정을 도와 국사를 꾀하는 선비도 있고, 위대한 업적을 세운 공신도 있으며, 굳세고 방정한 신하도 있고, 찬란하게 의열을 보인 사적도 있다. 이 한 부를 벗어나지 않아도 나의 벗은 충분하다. 내가 날마다 저 여러 현인들과 더불어 노닌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박규수 <상고전도> 中) -244-245쪽

본래 기억하고 암송하는 기송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초학자로서는 기송을 버리면 더욱이 기댈 데가 없다. 그러므로 매일 배운 것을 먼저 정확하게 암송하되 음독에 착오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뒤에 비로소 서산을 세우고, 한 번 읽고 나서는 한 번 암송한다. 그 다음에 한 번 보고, 보고 난 다음에는 다시 읽어 모두 3,40번 되풀이하고나서 그만둔다. 한 권이나 반 권을 다 배웠을 때에는 전에 배운 것까지 포함해 먼저 읽고, 그 다음에는 암송하고 보되, 각각 서너너덧번 되풀이하고 그친다.

글을 읽을 때에는 소리 높여 읽어서는 안 된다. 소리가 높으면 기운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눈을 건성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눈을 돌리면 마음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몸을 흔들어서도 안 된다. 정신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글을 암송할 때 틀려서는 안 되고, 중복해서도 안 된다. 너무 빨라서도 안 되는데 너무 빠르면 조급하고 사나워서 맛이 짧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느려도 안 되는데 너무 느리면 늘어지고 방탕해져서 생각이 들뜨기 때문이다. (계속)-266-267쪽

(이어서)

책을 볼 때에는 문장을 마음속으로 암송하면서 뜻을 곰곰히 생각하여 찾되, 주석을 참조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궁구한다. 한갓 책에 눈을 붙이기만 하고 마음을 두지 않으면 아무 이득이 없다.

위에 말한 세 조목은 나누어 말하면 다르게 보이나, 마음을 한 곳에 집주아여 체득하기를 요구한 점에서는 같다. 모름지기 몸을 거두어 단정히 앉고, 눈은 책을 똑바로 보며, 귀는 거두어들이고, 수족은 함부로 늘리지 말며, 정신을 모아 책에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따라 쉼없이 해나가면 뜻과 맛이 날로 새로워져 저절로 무궁한 묘미가 생기게 된다.

(홍대용, <매헌에게 주는 편지>)-267쪽

"글을 송독하고 사유해야 한다. 글을 송독하면 나의 지식을 풍부히 쌓게 만들고, 그 의미를 사유하면 내가 습득한 지식을 견고하게 만든다. 송독하되 사유하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되고, 사유하되 송독하지 않으면 지식이 고갈된다."(홍길주, <사부송유> 中)-271쪽

기사. 자기에게 필요한 중요한 사건의 대강을 기록해 둔다.
찬언. 내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한 구절이든 두 구절이든 따로 기록해 둔다.
음의. 알기 어려운 어휘를 분류해 써놓는다.
문필. 외워두면 좋을 문장을 따로 기록해 둔다.
범례. 옛 작가가 쓴 독특한 문투를 사례별로 기록해 둔다.
제서관섭인용. 많은 작품들의 상관관계를 따져보고 그 본문을 적어둔다.
취칙. 인생과 사회생활에 쓸모 있을 옛사람의 행위 가운데 본받고 싶은 것을 따로 기록해 둔다.
시재. 시를 쓸 때 이용할 일화나 말을 분류하여 기록해 둔다.
지론. 선배의 주장과 논리에 불만스러운 것이 있으면 자신의 견해를 첨가해 둔다.
궐문. 내가 모르는 어휘나 옛 일 등을 모두 따로 기록해 둔다.

(금나라의 문인 원호문, <시문자경> 中 <독서십법>) -275-276쪽

내가 스승님께 배운 지 이레 되던 날, 스승님은 문사를 공부하라는 글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산석(황상의 아명)아, 문사를 공부하도록 해라!"
나는 머뭇머뭇 부끄러워하며 말씀을 올렸다.
"제게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하고, 둘째는 꽉 막혔고, 셋째는 미욱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공부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병통을 너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병통으로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는 글짓는 재주가 좋은 병통으로 허황한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병통으로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다.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사람은 식견이 넓어지고, 막혔지만 잘 뚫는 사람은 흐름이 거세지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사람은 빛이 난다.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잉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근면함은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갖는 데 있다."

(황상이 정약용을 뵌 날로부터 60주년 되는 날, 75세 노인이 되어 첫 만남을 회상하며 쓴 글, <임술기>) -287-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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