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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블루 - 기술에 휩쓸린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들
조경숙.한지윤 지음 / 코난북스 / 2025년 2월
평점 :
'기술에 휩쓸린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들’이라는 부제가 이 책을 잘 대표한다. 개발자인 두 저자는 AI 시대의 흐름이나 트렌드, 기술의 발전에 대해 말하기보다 AI 기술 이면을 들여다본다. 챗GPT 출현 이후 굉장히 많은 AI 관련 서적이 나왔고, 인간의 미래 직업 전망이나 AI를 사용하는 방법, AI의 발전에 대한 우려 등의 메시지를 담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막연한 기대와 현실적 두려움 사이, 'AI 블루'
'AI 블루’의 ‘블루‘는 ‘메리지 블루’에서의 ‘블루’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메리지 블루는 결혼을 앞둔 당사자가 느끼는 불안, 우울, 혼란을 뜻한다. 결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현실에 대한 두려움 사이의 간극 때문에 발생하는 마음이다. 저자들은 모두 개발 일을 하고 있기에 AI의 발전 속도를 빨리 따라가야만 커리어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 중 한 명은 GPT 출현 시기 즈음 암에 걸렸고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암 치료 후 이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느꼈다고 한다. 나 자신의 불안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감정도 궁금해졌고, 사람들이 AI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물론 설문 응답자들 중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은, 설문에 답할 때의 감정과 인터뷰할 때의 감정이 달라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AI의 발전과 사람들의 적응 속도에 따라 짧은 시기에도 감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몇 이름들은 그 인터뷰이들이다.
사유할 시간을 빼앗는 '전투적인 속도'
“열성적으로 속도에 맞추지 않는 사람이라도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서 말도 안 되게 빠른 변화의 물결을 타야 한다. 이와 같이 전투적인 속도는 이 AI 생태계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에게서 사유할 시간을 소거한다.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 달리다 보면 이 변화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인지, 어떤 방향성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에너지를 빼앗긴다. 윤리적인 판단뿐 아니라, 기술적 적합성 측면에서도 그렇다.”
“국내 개발자 커뮤니티 중 하나인 프로그래머스에서 개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경력 개발자 69.2퍼센트가 ‘스스로의 전문성 부족’을 가장 큰 고민으로 꼽았다고 한다. 이미 경력이 있는 데다 계속 현업 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개발자들의 고민이 ‘전문성 부족’이라는 건 어쩐지 의미심장하다. 개발, 그러니까 현업의 일 그 자체만으로는 개발자의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기술의 개발과 발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불안, 위협,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 기술의 발전을 이용하고 따라가야 하는 다른 산업 종사자들은, 또는 따라갈 생각조차 못 하는 사람들은 변화에 올라타지 못해 도태될 확률이 높다. 사람들 간의 기술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시대적 차이’라고 부를 만한 격차가 생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함정
AI가 일의 많은 부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 그리고 실제로 대체하는 부분이 생기면서 많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수많은 의문이 생기고, 각 의문에 대해 현명한 답을 빨리 찾아야 한다. 머뭇거리는 사이 또 다른 문제들이 생기고 새로운 질문이 생길 테니까.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 BBC 보도를 인용한다. MIT 경영대학원 교수 대니얼 리는 “더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것이 곧 실제로 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AI는 우리 일을 수월하게 도와주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몫을 거뜬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에게 두 사람의 몫을 주지는 않으며, 기업은 같은 일에 절반의 예산을 투여하여 일을 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된다.
다시, 인간의 사유와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이 책은 AI와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를 언급한다. 모두 기술과 사람의 관계라는 주제이다. 저자 조경숙은 “기술을 만들어내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 아닌가. 우리는 늘 기술을 자연적인 재해처럼 혹은 느닷없이 떨어진 기적처럼 여기지만 그 기술들은 인류가 스스로 쌓아온 발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금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문학적 논의가 더 활발해야 하는 이유이다.
최근 서울대 철학과 입시 경쟁률이 높아졌고, 미국에서도 철학 전공자들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기술이 먼저 대체한 것은 역설적으로 개발자들이었다. AI는 인간이 그동안 축적해온 것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주고 있지만, 이 방대한 데이터는 이제 소모되기만 하고 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좋은 창작물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기술은 곧 하향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결국 인간이 사유를 하고 콘텐츠를 창작해야만 AI도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