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클래식에서 성공을 배운다 -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불멸의 도전에 대하여
이지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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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해설서라고 할 수 있는 책을 몇 권 재밌게 읽었다.이 책 또한 유명 음악가들의 생애와 더불어 그들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하지만 단지 음악 이야기가 아니라 남자,특히나 성공 하는 남자들이 가져야 할 '몰입,열정,창조' 대하여 음악가를 이야기에 맞추어 나누어 놓았다. 어떤 음악가에나 '몰입 열정 창조' 는 모두 갖추고 있지만 특히나 그 음악가에게서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의 이야기를 다루어 좀더 주제에 맞게 배려해 놓았다. 남자에게만 '몰입과 열정 그리고 창조' 가 필요할까?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필요한 요소일 듯 하다. 왠지 난 청소년들에게 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몰입이고 열정이고 그리고 창조다. 삭막한 교실에서 열정과 창조를 찾기란 힘들텐데 클래식에서 찾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몰입, '위대한 인물들이 성공할 수박에 없는 이유는 몸담은 분야에서 놀라울 만큼의 집념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과 다르게 그들이 자신들이 창조해 내는 일에 분야에 대하여 남보다 뛰어난 '집념' 몰입을 하기 때문에 더 성공한다고 밝혀 놓았다. 성공이란 얼만큼의 집념을 가지고 몰입을 하느냐에 달려 있을수도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건성건성 월급만 바라며 다니는 사람과 집념을 가지고 하는 사람 사이에는 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일에 대하여 자신이 주인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일의 성취도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비단 그것이 성공과 남자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머리말에도 언급해 놓은 배우 하정우 말을 옮겨 본다. '종로에서 뺨을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 말이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한강이 있어야 해요. 위안을 주는 곳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저만의 한강은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마음의 탈출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음의 탈출구'를 클래식, 음악가들에게서 좀더 깊게 짚어 본다. 그들이 후세에도 명성을 잃지 않고 회자될 수 있는 것은 '집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음악가가 살아가는 동안 명성과 부를 안고 살아간 것은 아니다.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어도 힘겹게 살아간 사람도 있고 자신의 재능을 다 쏟아내지 못하고 너무 열정을 다 쏟아 부어서인지 일찍 생을 마감한 음악가들도 있다. 음악 또한 자신만의 음악적 재능을 쏟아 붓기 보다는 '대중의 마음' 을 읽을 줄 알고 대중성이 있어야,그것을 읽을 줄 알아야 했다.그런면에서 '헨델은 시대를 반영한 대중적인 음악을 창작함으로써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창적인 선율을 선보였다.' 말하자면 헨델은 대세을 읽는 음악가였다면 차이코프시키는 자신의 안에 베인 우울함이 그의 음악안에 녹아 있다. 동성애자여서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으로 허덕인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화하고 치유한 듯 하다.'평생을 성적 정체성으로 고민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완성했다.' 음악가로서 동성애자라는 성적 정체성에 대한 것은 그에겐 위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음악으로 승화시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낸 차이코프스키,나 또한 우울함이 깊게 베이는 날엔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잘 듣는다.우울함은 우울함으로 치유를 한다.

 

천재는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 진다고 했다. 발레리라 강수진의 발이나 축구선수의 발 김연아의 발등은 그들이 한번의 점프를 성공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겪었는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그들의 결과물인 '성공'만 보여지기 때문에 실패를 보지 못한다. 간혹 '실수'를 보지만 그것을 실패와 연관짓지는 않기 때문에 그들이 수없이 흘려보낸 '노력'의 시간을 가늠하지 못한다. 천재적인 음악가 모짜르트,그는 타고난 천재라고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곡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라네.단언컨대 친구요,나만큼 작곡에 많은 시간과 생각을 바치는 사람은 없을걸세. 유명한 작곡가의 음악치고 내가 수십 번에 걸쳐 꼼꼼하게 연구하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야.' 세상에 거져 얻은 것은 쉽게 잃기 마련이다.하지만 자신의 땀으로 얻은 결실은 소중하고 더 오래간다. 천재는 타고나기 보다는 만들어 진다는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클래식 한 곡 찾아 듣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일부러 페이지를 넘겨가며 유투브에서 음악을 찾아 들었다. 이미 알고 있는 곡들도 다시 들어보면 너무 좋았지만 하이든편을 읽으며 <고별교향곡>을 찾아 들었다. '하이든은 서번트리더십을 발휘하여 단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구성원들에게는 휴가라는 보상을 통해 동기부여를 이끌어냈고,후작에게는 넓은 아량과 관대함을 베풀 수 있도록 했다.그는 '파파 하이든'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단원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보통 교향곡은 오케스트라단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데 이 곡은 중간부터 단원들이 자신의 파트를 마치며 퇴장을 한다. 그러니 이 곡을 듣던 '에스테르하지공'은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마지막에 바이얼린 두사람만 남아 처량하게 음악을 끝내는데 몇 번을 들어 보았다. 하이든의 재치가 돋보이는 곡인듯 한데 이런 곡들은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내 클래식이라는 딱딱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설명해 준듯 하다. 저자가 말한 '몰입,열정,창조' 를 음악가들의 생애와 음악에 얼힌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도 분명 중요하겠지만 내게도 '마음의 탈출구'가 되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싶다. 음악은 국경이 없기도 하지만 소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힘을 안겨주는 것 같다. 그 속에 더 많은 것을 찾는 다면 정말 나만의 '한강'을 찾을 수 있는 것이지만 잠시 위안을 찾는 탈출구로 읽어도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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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1-28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 관련 책을 여태 단 한 권도 못 읽었는데, 서란님의 글을 읽고 나니 앞으로는 이 분야의 책들도 종종 읽고 싶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하이든의 음악은 '고별'도 좋고, 트럼펫 협주곡도 참 듣기 좋더라구요.
☞ http://blog.aladin.co.kr/oren/4120717

서란 2012-11-28 13:34   좋아요 0 | URL
전 클래식에 관한 책 몇 권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참 재밌더라구요..,
하이든은 정말 좋은 음악이 너무 많죠~~
 
옥상의 민들레꽃 - 개정판,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박완서 지음, 이경아 그림, 방민호, 조남현 감수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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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박완서님의 동화를 만났는데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다. <옥상의 민들레꽃>,삶이 버겁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 아파트 옥상에서 생명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서 본다. 이 이야기 또한 '궁전' 아파트에서 할머니 두 분이 목숨을 버렸다. 자식들은 할머니들이 남부럽지 않도록 모든 것을 다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할머니들은 목숨을 버렸을까?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는데 그들이 또 다른 빈곤을 느낀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궁정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모여 할머니들이 무언가 부족해서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살이 알려지면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아파트에 흉흉한 소문이 돌까봐 걱정이다. 이름처럼 '궁전' 과 같은 삶과 가격을 원하는 사람들, 그들은 베란다 창문마다 쇠창살을 하자고 하기도 하고 잘 열리지 않는 자물쇠를 하자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아니란 것을 그들도 안다. 엄마와 함께 반상회에 참석한 꼬마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아파트라고 하면 부족함 없는 중산층들이 살고 있는 표면화된 그런 현대 건축 같다. 하지만 이웃과의 단절및 작은 소문에도 아파트 값이 파도친다. 그런데 잇따라 자살이 이러났다고 하면 주위에 소문이 어떻게 날까? 아파트 가격에도 문제를 끼칠 것이며 이름에도 먹칠을 하는 격이된다. 막아야 하는데 그들은 모여서도 서로의 이익을 우선시 할 수 있는 방법만 모색한다. 정작으로 그 문제를 파고 들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할머니들과 친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도 집에서 없어야 할 존재인줄 알고 어린나이지만 목숨을 버리려고 한다. 옥상에 올라가 세상을 등지려고 한 순간 발견한 '옥상의 민들레꽃' 흙도 아닌 먼지가 한 줌 모인 곳에서 목숨을 유지하며 겨우 피어난 노란 꽃인 민들레를 본 순간 '생명'을 느끼는 난 민들레로 인해 희망을 안고 다시 내려온다. 그리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세상을 등진 할머니들이 바랜 것은 큰 것이 아니다. 손주들을 업어서 키우고 싶었고 흙을 일구고 싶었다. 갇혀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자신들의 '희망'을 빼앗긴 할머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산골 학교에서 문 선생님은 이번에도 아이들에게 암탉은 나누어 주셨다. 암탉이 알을 낳으면 팔아서 수학여행을 가는 것을 5년 째 하고 있는 것이다. 봄뫼의 오빠인 한뫼도 그렇게 하여 도시 구경을 갔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봄뫼가 암탉을 키울 차례인데 한뫼가 암탉을 잡아 먹으려고 한다. 왜 일까? 그는 자신에겐 값진 달걀이 도시에선 값어치가 없다는 것을 느껴서 동생에겐 그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무리 값지게 모아 도시 구경을 가면 무엇하나 그만큼의 값어치가 없는 것을. 한뫼의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생각뒤집기를 한다. 그렇다면 도시 아이들을 이곳 산골에서 달걀의 소중함을 느껴보게 하자는 것, 말하자면 체험학습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느껴보게 하겠다는 것이다. 달걀을 팔아 수학여행을 갈 여비를 장만하는 선생님의 생각도 좋고 한뫼의 이야기를 듣고 그 생각 뒤집기를 한 선생님의 또 다른 생각도 참 좋다.

 

<어느 이야기꾼의 수렁>이나 <상> <저녁의 해후>모두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어느 이야기꾼의 수렁>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은 것을 부탁하는 사람과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아는 작가의 벽, 그 벽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작가. 방송국PD를 만나서 참 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자신의 판 덫에 빠진 결과가 되었다. <상> 또한 그와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다. 초등시절 교장선생님 이었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된 사연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이 틀에 갇히는 사람들,하지만 한순간 자책에서 돌아서 나오게 된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현실이란 등 돌리면 그만인것처럼 참 씁쓸하기만 하다. <저녁의 해후>,조카의 선 자리에 나갔다가 오래전 자신의 맞선 상대를 만났다.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된 사연 또한 '궁합' 때문이었는데 조카도 궁합을 보아야만 한다는 것,주인공은 조노인을 통해 잃어버린 것 쓸모 없다고 여긴 것에서 사랑을 깨닫게 되고 반신불수의 남편에게서 존재를 깨닫게 된다. 세상에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란 없다. 나이들고 병들고 나면 퇴물튀급을 당하는 사람들,그들이 처음부터 존재 가치가 없었던 것은 분명 아니다. 그리고 분명 우리가 잊고 있는 조극의 반쪽,그곳에도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생에서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값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까? <저녁의 해후>는 다른 장편소설과 약간은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인 듯 하다. 자신의 자전적 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남자네 집> 등에서 보여 주었던 개풍 박절곡에서의 삶과 서울 유학을 와서 삯바늘하는 어머니와 함께 오빠와의 삶,그리고 오빠의 죽음 이후에 실질적 가장이 되어야 했던 삶등에서 보여지는 강단진 삶에서 '한국전쟁'이란 그녀 삶의 중요한 맥을 이어주고 있다. 박적골, 분명 그곳은 고향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갈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아픔을 간직한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땅, 하지만 그 곳은 저자의 삶에 무한한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이야기라 그런가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고 삶과 자본이란 무엇인가 늘 질문을 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 삶에 분명 돈 보다 소중하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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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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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무한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내 삶이 유한하고 요즘처럼 '유통기한'이 철저하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쏟아져 나오는 때에 정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지난 시월부터 '박완서' 작가의 책을 다시금 읽어보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하여 읽은 책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남자네 집> <아주 오래된 농담> 그리고 이 책으로 이어졌다. 그 전에 제일 기분 좋게 만났던 저자의 책은 <호미>다. 다른 어떤 책보다 더 가깝게 작가를 느끼고 우리 일상생활 속의 '어머니'를 만나는 기분으로 정말 훈훈하고 따뜻하게 읽었는데 더불어 함께 보내준 '봉숭아씨'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직접 뜰에서 키운 씨라고 하여 선뜻 심지를 못했다.그리고 현역으로 마지막 책이라 여겼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었고 <친절한 복희씨>는 나오자마자 감칠맛나게 읽었던 책이다. 저자의 책을 사십여권 넘게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아 빠져 들며 읽어 보고 싶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 몇 권의 책을 만나서일까 소설속에 있던 내용들이 겹치기도 하고 우리 문학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녹여 낸 작가로 저자와 견줄만한 작가가 또 있을까? 그의 책을 읽다보면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해도 그것이 개인의 삶이 아니라 '우리네' 삶이고 역사인듯 참 재밌게 읽을 수 있고 과거를 만날 수 있다. 저자가 만약에 한국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우리 문학사는 바뀌었을 듯 하고 저자의 삶 또한 바뀌었을 듯 하다. 무척 힘들고 질곡의 시간들이었지만 그것이 개인에게도 문학사에도 좋은 밑거름이 되어 40여년의 숙성의 기간을 거쳐 다시금 '문학'으로 재탄생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아무리 그것이 '이게 무슨 소설이야..' 라고 해도 난 소설이라고 본다. 인생은 역시나 한 편의 '소설'이다. 정말 길고 긴 소설일진데 그것이 한국전쟁도 만나고 엎치락 뒤치락 고등어자반처럼 엎치고 자치면서 개인사에도 역사에도 미친 영향이 모두가 함께 나눌 소설로 나왔다는 것은 '박완서' 였기 때문인듯 하다.

 

'그때 나는 문학을 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보면 그가 소설가가 된 배경처럼 '이야기의 힘'에 대하여 나온다. 첩첩산중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연을 벗삼아 크던 그녀가 어머니의 열정에 힘입어 서울로 유학하여 공부하게 된 사연, 삯바느질과 단칸방에서도 자식을 공부시키려는 열의가 넘쳐났던 어머니는 힘든 시간을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도 딸도 그렇게 힘든 시간을 이겨낸다. 그녀에게 모든 것은 이야기였다. 시골뜨기에서 서울 유학생활로의 정착되지 못한 삶에서 내성적이던 그녀에게 '책과 이야기'는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었다. 어디에서나 책을 찾았고 이야기를 찾았던 그녀에게 일본인이 버리고 간 책도 그녀에겐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었던 시절이 있고 피난 시절엔 벽에 붙인 '신문지'라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야기와 책이 없었다면 힘든 시간을 버텨내기란 더 힘들었을텐데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또 다시 그녀 안에서 곰삭은 홍어의 맛처럼 그렇게 톡 쏘듯 훗날 '소설'로 산고를 이겨내고 태어나지 않았을까.

 

'상상력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다.'

사십년의 세월이 그녀에게 홍어가 짚을 만나 삭어가는 시간이듯 그렇게 곰삭는 세월이었는지도 모른다.홍어가 우리 입안에서 제 맛을 찾기까지는 '시간' 즉 세월이 필요하다. 바다에서 건져낸 채로 그냥 밥상에 올랐다면 그 값어치는 떨어졌을텐데 어떻게 삭힌 홍어로 거듭난지 그 유래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유통과정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거친 시간이 더 값지고 맛난 '홍어'로 재탄생 될 수 있었던 것은 곰삭을 수 있는 '시간'이다. 저자 또한 '소설가'를 꿈꾼것도 아니고 국문과를 들어갔지만 한달의 대학생활에서 작가를 꿈꿀 수는 없었을터,어린시절부터 곰삭을 준비를 하듯 사십여년의 세월은 작가 박완서를 곰삭은 소설가로 세상에 내 놓기에 충분했던 듯 싶다. 거기엔 비록 아픔이지만 '한국전쟁'도 있고 아버지의 죽음도 오빠의 죽음도 숙부의 죽음도 첫사랑의 아픔도 모두 곰삭아 있다. 어떻게 보면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정을 책임져야만 했던 여인네들인 '어머니'나 자신 그리고 올케나 그 외 많은 '여인'들의 삶을 보면서 강인한 여인의 삶이 스스로 저장된 것은 아닐까.저자에게 '어머니'와 '시어머니' 또한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듯 하다. 어머니의 반듯하고 자존감 있는 행동이나 말들이 그녀를 존재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직 <엄마의 말뚝>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무척 빨리 읽고 싶고 기대가 된다. 그녀의 삶에서 '죽음'이란 것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삶'을 담당하는 '어머니'라는 존재 또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본다. 그 또한 그렇게 어머니를 닮아가는 '어머니'로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녀가 어느 날 사진을 정리하다가 제일 눈에 들어 온 사진은 손녀딸과 함께 동화책을 보고 있는 사진 이다. 사진 구도도 잘 맞지 않았고 자신이 원하는 그런 사진은 아니지만 그 사진에는 자신이 힘들었던 때,남편과 아들을 보내고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던 때 손녀딸의 탄생은 그를 구원해주듯 다시 세상에 돌여놓아 주었다. 죽음은 또 다른 '생'으로 나타나 그렇게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가 보다. 그런 모든 그녀의 역사가 담겨 있는 이야기는 그동안 읽은 책들의 '행간'을 채워주듯 술술 읽어나갈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읽기전에 박완서 문학앨범인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를 잠깐 죽죽 보게 되었다. 사진과 함께 박완서의 삶이 담겨 있는 책을 보니 소설속에서 상상했던 사진들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그 책의 사진을 빼고 이야기를 보는 책이 이 책인듯 기분 좋게 읽었다. 자신이 세상에 모두 다 쏟아내고도 담아 놓은 '글'이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한편으로는 아껴서 모아 놓았을 수도 있는데 그런 글들이 한데 묶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는 것은 내겐 기분 좋고 반가운 일이다. 남편이 즐겨 하던 '매운탕' 집,그가 가기 마지막에 가서 먹었던 그 집은 근처에도 가기 싫은 집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친정아버지를 보내며 아버지가 마지막에 드셨던 것을 먹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제 두어해 지나고 있는데 스스럼없이 잘 먹고 있다. 거기엔 '세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작가 또한 지인이 무심코 데리고 간 곳이 그 집 그 음식이었던 것,하지만 이십여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일까 단단해져서 그 때의 모든것은 그녀의 숟가락에 담겨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은 거부하지 않고 그녀에게 힘이 되었다. 그 또한 '시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쏟아낸 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아무리 자전적이라고 하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는 '이념'의 대립을 겪었기에 잘못하면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소리 또한 들을 수 있었을테고 개인사를 쏟아 놓다보니 가족에겐 아픔일 수 있을텐데 그것이 '문학'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 참 다행한 일이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글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현역작가'로 머물렀다는 것이 정말 인생의 롤모델로 닮고 싶은 점이다. 그리고 손수 뜰을 일구며 자연과 함께 한 삶이 글속에서 녹아나 더 좋다. 저자의 글은 '시간'과 '자연' 그리고 '가족'을 그리고 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무릎을 베고 듣는것처럼 읽어 나갈 수 있어 참 좋다. 수다쟁이 할머니가 들여주는 옛이야기처럼 막힘없이 술술 읽다보면 또 다른 이야기에 빠져 들고 싶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그렇게 하여 나 또한 한 권 한 권 모으다보니 안읽은 책이 더 많다. 그것은 내가 풀어야할 '숙제'로 서두르지 않고 읽어 나가려고 한다. 한사람의 인생인 팔십평생을 너무 단숨에 읽어나가면 재미가 없을 듯 하다. 내 안에서 홍어가 짚을 만나 곰삭아 가듯 그렇게 삭혀가며 읽어보고 싶다.

 

 박완서 작가는 내게는 롤모델이다. 누구에게나 롤모델로 삶고 싶은 작가일듯 하다. 그가 문학이라는것을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고 사십이라는 늦은 나이에 글을 쓰게 된 이력 또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하고 힘을 준다.그런가 하면 누구도 용기 내지 못하는 개인사를 통한 이야기들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준 듯 하다.늘 글쓰기에 열심이었듯이 저자의 삶이 '글'처럼 보여진다. 그런가하면 저자가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힘을 준 인물중에 '박경리' 선생님 또한 강단진 삶을 보여주어 저자의 짧은 글속에서 또 다른 삶을 만나보는 보람도 느껴본다. 어찌보면 삯바느질로 자식 공부를 시키던 바지런하고 강단지던 '어머니'의 모습을 저자의 삶에서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삶,지금 곁에 없다는 것이 한스럽다. 하지만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겨지는 것인지 세상에 풀어 놓고 간 이야기 보따리가 무척 많다는 것,내가 아직 풀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 기분 좋다. 좋은 것을 아끼듯 그렇게 하나 하나 빼어 읽으며 겨울을 보낼 듯 하다.끝으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감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 많을 읽으라는 것이 남는다. '제가 젊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쓸 때 늙었다고 하는 것은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이 경직되고 진부해졌다는 것입니다. 내 감수성이 진부해지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노력하느냐 하면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부단한 노력없이 그 많은 글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쌀이 엿으로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삭힌 홍어의 톳 쏘는 맛을 얻기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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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 500년 미술사와 미술 시장의 은밀한 뒷이야기
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외 지음, 김주경 옮김 / 시공아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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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은 가격이 얼마나 할까? 책에 나온 가격들을 보니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다. 왜 안그렇겠는가 정말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걸작' 인데.내가 명화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그것도 학교에서는 조금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 스케치북 들고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그림을 조금 그리긴 했지만 학원도 없고 배운적도 없으니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한때는 진로를 이것으로 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었다. 하지만 사정상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먼 곳으로 그림을 배우러 다니는 친구를 부러워 한 적은 있다. 그런데 중3 때 담임선생님이 미술을 전공한 미술선생님이니 얼마나 죽이 착착 맞았을까.미술시간에는 눈이 반짝반짝 하였고 선생님이 보여주는 '명화집' 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재밌고 볼거리 가득하고 꿈이 담긴 책이 되었다. 선생님 자비로 구입을 한 무척 큰 명화집이었는데 시대별로 다 있는 몇 권의 책이었는데 가끔 미술시간에 힘들게 들고 오셔서 보여 주었는데 선명한 명화를 보며 꿈에 젖었던 시간이다. 미술책에서 만나는 아주 작은 그림이 아닌 큰 명화집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때 암기한 '고낭자사인신후'며 화가와 작품들등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아니 세상에서 단 하나로 존재하는 걸작들 100점에 대한 이야기는 한동안 내 눈이 호사를 누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을 또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갤러리나 화랑을 잘 찾는 것도 아니고 미술관 관람을 잘 다니는것도 아니며 고르고 골라서 모아 놓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이니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읽고 보았다. 중학교 때 미술에 흥미를 느껴 그때 '화가,조각가'들에 대한 책을 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었다. 그들의 생애를 만나며 작품과 이야기를 즐겼는데 내가 흥미를 느꼈던 시대는 '르네상스'와 19세기였던 것 같다. 그 중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느 면에서나 천재적이었으니 당연히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는데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 <말과 기수>라는 작품이 실렸다. 여러 방면에 재주가 있던 그는 남겨진 그림으로는 고작 15점 밖에 없단다. 너무 앞서갔고 실험적인 기법들이 내구성을 가지지 못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말과 기수>는 그의 데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한다. '염료로 바탕칠을 한 종이 위에 은첨필로 그린 데생은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습작 단계들이 그대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말탄 기수의 머리 모양이 변한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꼭 한 장의 데생에서 스냅사진을 보는 기분이 든다. 해부학까지 한 다빈치라 그런가 사람과 말의 탄탄한 생명력과 역동성이 보이는 작품으로 2001년도에 경매에 나오게 되었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데생도 놀랍지만 라파엘로의 <뮤즈의 두상>도 데생 작품이며 아름답다. 교황 율리오 2세의 권한 아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한 공간에서 작업을 하던 시절,라파엘로는 첫번째 방 곧 서명실을 꾸미면서 기독교 이론과 플라톤의 이론을 양립시키기로 했다. 라파엘로가 선택한 네 가지 스토리는 <성체 논의> <아테네 학당> <파르나소스> <삼덕상>이었다. 라파엘로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들인 이 벽화들의 습작 60여 점은 잘 알려져 있다.<뮤즈의 두상>은 <파르나소스>를 위한 습작으로 가장 최근에 개인이 소장하게 된 라파엘로의 데생이라고 한다. 지금시대하고는 미의 기준이 많이 다르던 시대라 그런지 풍만하고 오동통하면서도 아름다움이 잘 베인 작품인듯 하다. '감동적인 뮤즈의 모습에는 천재 화가의 부드러움과 영성,우아함이 베어 있다. 이 작품의 가격은 종이에 그린 데생으로서도 또 라파엘로의 작품으로서도 가장 높은 기록을 세웠다. 걸작의 가격은 크기나 소재에 얽매이지 않는 법이다.' 이 작품을 구매한 사람은 중동 사람이라는데 개인이 소장하기 보다는 이런 작품은 미술관에서 더 많은 사람이 누리며 더 좋지 않을까.

 

 

 

로드비코 카라치의 <살마키스와 헤르마프로디토스>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유아 대학살>이다. 카라치의 그림은 영국의 가장 큰 저택들중 하나로 꼽히는 곳에 300년 동안 보존되어 왔고 소장자들은 작가와 작품이름을 잘못 알고 있었단다.그러다 저택의 지붕수리를 위하여 이 그림을 내 놓게 되었고 그림은 오랜 세월 시커멓게 변색 되어 복원을 하게 되었고 섬세한 복원 후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복원후에 작가와 작품명이 밝혀지게 되고 그림의 가격도 올라가고  그림의 뒷 이갸기가 밝혀지게 되면서 그림의 주인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그림이라고 한다. 신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작가의 작품 희소성이 그림을 더 값지게 한 그림이란다. 루벤스의 <유아 대학살>은 살벌하고 끔찍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지만 바로크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화가는 역동적인 대각선 구도와 육체들이 한 덩어리로 뒤엉켜 있는 장면을 탁원하게 표현하여 상상을 초월한 폭력적인 장면을 재현했다.여기서 폭력성은 불균형한 구도에서 느껴지는 혼란과 운동감에 의해 더욱 증폭되고 있다.' 폭력적인 장면이지만 그림은 관능미와 풍만함 아기들의 오동통한 살을 정말 잘 표현했다. 금방 눈 앞에서 보여지는 장면처럼 현실적이며 아름다움이 넘쳐난다고 해야하나,장면은 끔찍한 그림이 주는 아름다움은 아이러니 하면서도 대단하다. 소장자는 미술관에 기증하였다고 하니 그 또한 그림을 아끼는 아름다운 마음이라 할 수 있을 듯.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버지널 앞에 앉은 소녀>와 장앙투안 와토의 <놀라움>이다. 페르메이르는 네덜란드의 화가로 사물과 인물의 신비로운 모습과 침묵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화가라고 하는데 그림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노란색과 청색이 함께 배치된 그림은 과장이나 장식 기교가 없는 듯 하면서도 그림에 자꾸만 시선을 머물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 작품 또한 오랫동안 다른이의 작품으로 알려 오다가 작가가 밝혀지게 되고 작가의 작품수도 적고 짧은 생을 살다간 작가라 더 값진 작품인듯 하다. 와토의 <놀라움>의 운명 또한 놀랍다.160년 동안 사라졌다가 영국의 어느 시골 화실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림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 명작에 대한 가치를 몰랐던 것은 당연하다. 이 그림은 다른 그림과 짝을 이루고 있는 그림인데 여왕조차 복사본으로 가지고 있는 그림이라고 하니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더 많은 사람이 그림의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미술관등에 기중되면 좋을텐데 말이다. 명작이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것이라 소장자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복사본이나 그외의 것으로 즐길 수 밖에 없다. 그림을 소장하기 위하여 재벌가들의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및 경매회사의 보이지 않는 술수가 씁쓸하게 만든다.

 

 

 

에드가르 드가의 <쉬고 있는 무희>와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이다. 드가는 미술책에서 많이 접한 '무용수'의 그림들이 주는 순간 포착이 주는 역동성일 듯 하다. 무희들의 자세나 쉬는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해 낸 드가,그는 자연속에 캔버스를 세우지 않고 '기억 속에서 본 것만'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아름다운 무희들을 그림녀서 이미 지나간 순간을 '기억' 의 포착으로 잘 그녀낸 듯 하다. '드가는 공간을 구도를 잡을 때 매우 독창적인 차원을 도입해다. 매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점,혹은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보는 시점을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역동성이 느껴지고 살아 있는 듯 하다. 19세기 인상파 중에 고흐의 삶은 많이 알려져 있고 나 또한 고흐의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불행한 그의 인생과는 다르게 그의 그림들은 열정이 담겨 있고 천재적이다. 이 그림은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은 그림으로 이 그림 이후에 나타나는 극도의 긴장감이 나타나지 않는 작품이라고 한다. 반 고흐는 그림이야말로 '자신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피뢰침'이라고 했다한다. 천재적인 열정이 그를 미치게 했는지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그림들을 보면 치열한 예술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 정말 좋다. 그의 정신상태하고는 다르게 그림은 내겐 편안함을 준다. 최고의 그림들은 그 생이 또한 순탄치만은 않다. 이 그림 또한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소장자에게 간 듯 하다.

 

 

 

마르크 샤갈의 <생일>과 로이 릭턴스타인의 <오...올라잇>이다.샤갈의 <샐인>은 1923년에 완성되어 <생일>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두 연이니 입을 맞차고 있고 그로인해 하나가 된 감격으로 떨리는 육체는 더 이상 중력의 법칠을 견대 낼 없어서 공간을 떠다닌다.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한 연인은 모든 법칙을 깨고 기이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첫키스를 하는 순간에 귓 속에서 '뎅뎅뎅' 종소리가 울리는 듯 하고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 순간을 잘 표현한 것처럼 연인은 무중력 상태에서 입맞춤을 하고 있다. 기이한 그림이면서도 재밌는 그림인듯 하다. '세계는 외부에 있다.' 라고 쓴 로이 릭턴스타인,신문 속의 연재 만화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워홀이 초기에 추구하던 것과 만난다. 이 작품의 운명 또한 순탄치 못한 듯 하다.

 

 

 

피카소의 작품들. '최고의 가격' 이라는 설명은 수많은 해석을 부추기고, 미술 시장이 투자가들의 손에서 놀아난다는 잘못된 이미지를 킬 수도 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 등장하는 회화와  조각들은 모두 주요 컬렉션에서 뽑은 것들이고, 대부분 각 시대마다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들이다. 알다시피 각 시대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저마다 달랐지만, 주요 컬렉션들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각 시대별로 정말 최고의 작가와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모아 놓은 가상의 미술관처럼 책을 펼치고 있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 그림과 작가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함께 그림의 그동안 우리 앞에 오기까지의 '운명'에 대하여 그리고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고난의 시간들을 짤막하게 소개해 놓았는데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걸작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요즘은 금이나 명화에 투자를 하는 기업이나 사람들이 많다. 희소가치 때문에 부르는게 값이 될 걸작들,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아 빛을 발하고 있고 그 가치는 '무한대'라고 할 수 있는 그림들의 운명은 어디가 끝일지 모른다. 그림의 가치를 몰라 화실이나 어느 구석에서 오랜시간 동안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기도 하고 자신의 죽음과 함께 재로 묻어 달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기전에 명화는 명화로 존재해야할 듯 하다. 돈과 개인의 재력과 경매사의 숨겨진 비리가 씁쓸하게 했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점을 눈으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린 호사는 잊을 수 없을 듯 하다. 지금까지 존재해 왔듯이 더 오랜시간 존재하길 바래본다.

 

<이미지 저작권은 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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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히말라야 - 유방암도 이긴 아홉 여인들의 히말라야 등반기
한국유방암환우회합창단 엮음 / 이콘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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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이라고 정말 같은 병을 앓아봐야 어떤 병이 어떻게 아픈지 알지 옆에 있는 가족도 내 아픔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가까운 지인들도 내 아픔을 털어 놓는다고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내기 일쑤지 내 아픔을 그들의 가슴에 담아 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은 나의 아픔도 자신의 아픔도 안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은 소개만으로도 괜히 읽어봐야할 것만 같았다. 내가 유방암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나 또한 양쪽 가슴에 근종이 있어 한동안 혼자서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그렇다고 옆에 있는 가족에게 말을 해도 내 아픔과 걱정을 함께 나누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았다. 내게도 몽우리가 하나도 아니고 세개나 있었다. 아니 내가 만져서 알아 낸 것은 두 개였고 그런 이유로 종합검진을 받으며 그 부분을 좀더 세세하게 초음파를 받아 보니 하나가 더 발견되었다. 갑자기 하늘이 까맣게 변한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듯 멍했지만 있는것 어쩌겠는가 검사하고 결과를 받아 들이고 순순히 따르기로 맘을 먹고 나니 조금 숨통이 트였다.

 

그렇게 하여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게 되었다. 혼자서 진료를 받고 암검사까지 받고 나니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조금은 초조하고 내가 어디까지 준비를 해 놓아야 할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그에 관한 검색을 나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혼자서 끙끙거리다 딸들에게 알려야 할 듯 하여 알리고나니 모두가 걱정하게 되었고 다행히 암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나와서 어찌할까 하다가 하나가 자꾸 통증을 유발하는 것 같아 다른 병원으로 옮겨 제거수술을 받았다. 그 전에 친정아버지께서 폐암으로 내가 근종이 있는 부위에 똑같이 혹처럼 크게 나온 부분이 있었는데 가시는 마지막 길에서도 난 그 부분을 손으로 잡고 놓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생각을 하니 나 또한 가만히 놔두면 해가 될까 하여 아니 너무도 크게 밖으로 튀어 나오고 심장에 통증이 있어 상담을 했더니 제거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혼자 담담하게 수술을 받고 왔다. 하지만 또 하나 큰것이 자리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작다. 그것이 올해 팔월의 일이고 그 다음 구월엔 폐경과 비슷한 증세가 있어 병원을 찾았던 자궁 내막에 언제 자리했는지 기생하는 혹이 발견되고 그 또한 암검사를 거쳤는데 다행히 암은 아니지만 적출을 해야만 한다고 하여 시월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로 인해 건강은 바닥까지 떨어지고 내겐 휴식같은 시간이 주어졌고 아이들을 낳을 때하고는 다르게 나이가 들어 아프다보니 내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 혹사만 하고 살아 온 것은 아닐까.

 

아직 온전하지 않은 건강이지만 다행히 하루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어 가고 수혈을 받아서인지 그만그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분명 수술전과 수술후는 다르게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오래동안 허리병으로 고생을 했는데 수술 후 허리병이 없어졌다. 감쪽같이.그런가하면 앞으로 더욱 더 철저하게 관리를 해 주어야 하는 것들이 남아 있지만 정말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고 다져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내가 아파하는 동안 옆에서 옆지기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미안하다고,아니 함께 아파해줄 수 없음을 몹시 안타까워 했다. 그런가하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이야기를 듣고 비교를 하게 되는가 하면 금방 일어나 예전과 같이 일상으로 돌아 올것같이 서두르는 나도 발견하게 되지만 몸이 많이 지쳐 있고 몹시 힘든 시간을 지나왔음을 알기에 앞으론 정말 그동안 뒤로 미루던 가까운 뒷산이라도 자주 올르며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몇 해 전부터 산을 잘 오르지 못하는데 등산을 하게 되었고 자연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지만 어찌보면 그때부터 내 몸에서 녀석들은 기생을 시작했는지 모른다.그 시기부터 아프기 시작했으니. 검사보다는 자가진단으로 '괜찮겠지' 하면서 미루던 것이 큰 병을 키운 듯 하다. 병에는 '자가진단' '자신만만'을 하면 안된다. 검사를 받고 대처를 했어야 했는데 '설마 내게 그런 일이..' 라고 늘 자만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한국유방암환우회'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이야기를 읽는 듯 하여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내가 몹시 아팠던 때 생각도 나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검사를 받고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하여 힘든 시간을 견디던 그 시간들이 오버랩되어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다.적출수술을 받고 퇴원을 하였다가 잘못되어 심한 하혈로 인해 사선을 넘나들던 응급상황이 발생하던 아픔을 겪어야 했고 그 순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딸들'과 이 시점에서 죽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왔는데,앞으로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은데 여기서 주저 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더 호흡을 가다듬고 들숨과 날숨으로 날 일으켜 세웠던 시간들.여자에겐 정말 중요한 자존심인 '가슴'을 유방암에 빼앗긴다는 것은 나 또한 받아 들인다는 것이 힘들것 같지만 녀석에게 내 목숨을 내주는 것보다는 더 나은 선택이고 내가 살 수 있는 길이라면. 세상은 사는 것이 더 문제다. 삶과 죽음은 분명 같은 얼굴이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라는 말처럼 내가 존재해야 그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안에는 내가 바로 서야 모두가 바로 선다. 울집만 봐도 나 하나 아픔으로 인해 잠시 흔들흔들,값어치를 따질 수 없고 표가 나지 않던 '주부'의 몫이 나 하나 아픔으로 인해 모든 곳에서 나타났다. 엄마가 건강해야 모두가 웃을 수 있고 가정이 온전할 수 있다.

 

아픔을 겪고 일어난 환우,아니 마음과 몸이 건강한 아줌마들이 히말라야를 올랐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뒷산만 올라도 헉헉 거리며 힘들어 하는데 몇 천미터를 거뜬하게,산고와 유방암보다 더 힘든 '고산병'을 이겨내며 올랐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고 삶에서 그보다 더 힘든 일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라 본다. 히말라야를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몇 번 만났다. 그 길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니란 것을 알고 모두가 또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로망의 산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유방암'을 겪고 이겨낸 아줌마들이 가정을 뒤로 하고 아니 오로지 자신의 존재만으로 그곳을 올랐다는 것은 히말라야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았다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것이 우리나라의 산에서도 분명 찾았을테지만 모두가 함께 힘든 시간을 이겨내며 다져진 '환우애'가 돈돈하게 서로를 더 단단히 결속시켜 주고 세상에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으로 똘똘뭉친 여장부가 되게 하지 않았을까. 내가 과연 히말라야를 간다면 오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몇 번을 해 보았다. 내가 오른 최고의 산은 겨우 천미터 였는데 그보다 다섯배는 높은 산을 고산병과 싸워가며 오를 수 있을까? 아줌마의 힘이 병을 이겨낸 '의지'가 일구어낸 힘은 아닐까.

 

'행복은 만들어 가는 과정이지 빨리 도달하는 것은 아니라고 느끼며 걷는 그날을 말이다.' 병을 이겨냈거나 아픔을 이겨내고 나면 내게 주어진 그 다음의 시간들은 '감사'하게 받아 들이게 된다.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지금의 삶을 감사하며 산다.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 알고 좀더 기분 좋고 더 열심히 그리고 나 자신을 찾아가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하루 하루 행복을 만들어 가며 말이다. 온 몸에 쥐가 나서 '하산'의 명이 떨어졌던 분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다시금 재충전하여 그들과 합류 할 수 있던 그 에너지처럼 '내일'을 알 수 없는 삶,덤으로 주어진 시간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신 아홉 분의 여전사들의 이야기는 눈물겨우면서도 당차고 앞으로 우리가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야 함을 말해준다. '암'이란 이젠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의 이야기가 될지 모르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희망을 놓아선 안되는 것이 또한 삶인듯 하다. 희박한 산소를 마시고 고산병과 싸우며 여전사들이 히말라야를 올랐듯이 살아가야할 이유가 분명히 있는 세상,앞으로의 시간은 좀더 웃으면서 희망을 충전하며 살아갈 일이다. 그래야 병이 비집고 들어 올 틈을 줄일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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