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의 민들레꽃 - 개정판,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박완서 지음, 이경아 그림, 방민호, 조남현 감수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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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박완서님의 동화를 만났는데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다. <옥상의 민들레꽃>,삶이 버겁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 아파트 옥상에서 생명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서 본다. 이 이야기 또한 '궁전' 아파트에서 할머니 두 분이 목숨을 버렸다. 자식들은 할머니들이 남부럽지 않도록 모든 것을 다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할머니들은 목숨을 버렸을까?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는데 그들이 또 다른 빈곤을 느낀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궁정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모여 할머니들이 무언가 부족해서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살이 알려지면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아파트에 흉흉한 소문이 돌까봐 걱정이다. 이름처럼 '궁전' 과 같은 삶과 가격을 원하는 사람들, 그들은 베란다 창문마다 쇠창살을 하자고 하기도 하고 잘 열리지 않는 자물쇠를 하자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아니란 것을 그들도 안다. 엄마와 함께 반상회에 참석한 꼬마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아파트라고 하면 부족함 없는 중산층들이 살고 있는 표면화된 그런 현대 건축 같다. 하지만 이웃과의 단절및 작은 소문에도 아파트 값이 파도친다. 그런데 잇따라 자살이 이러났다고 하면 주위에 소문이 어떻게 날까? 아파트 가격에도 문제를 끼칠 것이며 이름에도 먹칠을 하는 격이된다. 막아야 하는데 그들은 모여서도 서로의 이익을 우선시 할 수 있는 방법만 모색한다. 정작으로 그 문제를 파고 들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할머니들과 친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도 집에서 없어야 할 존재인줄 알고 어린나이지만 목숨을 버리려고 한다. 옥상에 올라가 세상을 등지려고 한 순간 발견한 '옥상의 민들레꽃' 흙도 아닌 먼지가 한 줌 모인 곳에서 목숨을 유지하며 겨우 피어난 노란 꽃인 민들레를 본 순간 '생명'을 느끼는 난 민들레로 인해 희망을 안고 다시 내려온다. 그리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세상을 등진 할머니들이 바랜 것은 큰 것이 아니다. 손주들을 업어서 키우고 싶었고 흙을 일구고 싶었다. 갇혀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자신들의 '희망'을 빼앗긴 할머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산골 학교에서 문 선생님은 이번에도 아이들에게 암탉은 나누어 주셨다. 암탉이 알을 낳으면 팔아서 수학여행을 가는 것을 5년 째 하고 있는 것이다. 봄뫼의 오빠인 한뫼도 그렇게 하여 도시 구경을 갔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봄뫼가 암탉을 키울 차례인데 한뫼가 암탉을 잡아 먹으려고 한다. 왜 일까? 그는 자신에겐 값진 달걀이 도시에선 값어치가 없다는 것을 느껴서 동생에겐 그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무리 값지게 모아 도시 구경을 가면 무엇하나 그만큼의 값어치가 없는 것을. 한뫼의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생각뒤집기를 한다. 그렇다면 도시 아이들을 이곳 산골에서 달걀의 소중함을 느껴보게 하자는 것, 말하자면 체험학습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느껴보게 하겠다는 것이다. 달걀을 팔아 수학여행을 갈 여비를 장만하는 선생님의 생각도 좋고 한뫼의 이야기를 듣고 그 생각 뒤집기를 한 선생님의 또 다른 생각도 참 좋다.

 

<어느 이야기꾼의 수렁>이나 <상> <저녁의 해후>모두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어느 이야기꾼의 수렁>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은 것을 부탁하는 사람과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아는 작가의 벽, 그 벽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작가. 방송국PD를 만나서 참 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자신의 판 덫에 빠진 결과가 되었다. <상> 또한 그와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다. 초등시절 교장선생님 이었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된 사연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이 틀에 갇히는 사람들,하지만 한순간 자책에서 돌아서 나오게 된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현실이란 등 돌리면 그만인것처럼 참 씁쓸하기만 하다. <저녁의 해후>,조카의 선 자리에 나갔다가 오래전 자신의 맞선 상대를 만났다.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된 사연 또한 '궁합' 때문이었는데 조카도 궁합을 보아야만 한다는 것,주인공은 조노인을 통해 잃어버린 것 쓸모 없다고 여긴 것에서 사랑을 깨닫게 되고 반신불수의 남편에게서 존재를 깨닫게 된다. 세상에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란 없다. 나이들고 병들고 나면 퇴물튀급을 당하는 사람들,그들이 처음부터 존재 가치가 없었던 것은 분명 아니다. 그리고 분명 우리가 잊고 있는 조극의 반쪽,그곳에도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생에서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값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까? <저녁의 해후>는 다른 장편소설과 약간은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인 듯 하다. 자신의 자전적 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남자네 집> 등에서 보여 주었던 개풍 박절곡에서의 삶과 서울 유학을 와서 삯바늘하는 어머니와 함께 오빠와의 삶,그리고 오빠의 죽음 이후에 실질적 가장이 되어야 했던 삶등에서 보여지는 강단진 삶에서 '한국전쟁'이란 그녀 삶의 중요한 맥을 이어주고 있다. 박적골, 분명 그곳은 고향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갈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아픔을 간직한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땅, 하지만 그 곳은 저자의 삶에 무한한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이야기라 그런가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고 삶과 자본이란 무엇인가 늘 질문을 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 삶에 분명 돈 보다 소중하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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