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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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무한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내 삶이 유한하고 요즘처럼 '유통기한'이 철저하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쏟아져 나오는 때에 정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지난 시월부터 '박완서' 작가의 책을 다시금 읽어보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하여 읽은 책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남자네 집> <아주 오래된 농담> 그리고 이 책으로 이어졌다. 그 전에 제일 기분 좋게 만났던 저자의 책은 <호미>다. 다른 어떤 책보다 더 가깝게 작가를 느끼고 우리 일상생활 속의 '어머니'를 만나는 기분으로 정말 훈훈하고 따뜻하게 읽었는데 더불어 함께 보내준 '봉숭아씨'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직접 뜰에서 키운 씨라고 하여 선뜻 심지를 못했다.그리고 현역으로 마지막 책이라 여겼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었고 <친절한 복희씨>는 나오자마자 감칠맛나게 읽었던 책이다. 저자의 책을 사십여권 넘게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아 빠져 들며 읽어 보고 싶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 몇 권의 책을 만나서일까 소설속에 있던 내용들이 겹치기도 하고 우리 문학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녹여 낸 작가로 저자와 견줄만한 작가가 또 있을까? 그의 책을 읽다보면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해도 그것이 개인의 삶이 아니라 '우리네' 삶이고 역사인듯 참 재밌게 읽을 수 있고 과거를 만날 수 있다. 저자가 만약에 한국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우리 문학사는 바뀌었을 듯 하고 저자의 삶 또한 바뀌었을 듯 하다. 무척 힘들고 질곡의 시간들이었지만 그것이 개인에게도 문학사에도 좋은 밑거름이 되어 40여년의 숙성의 기간을 거쳐 다시금 '문학'으로 재탄생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아무리 그것이 '이게 무슨 소설이야..' 라고 해도 난 소설이라고 본다. 인생은 역시나 한 편의 '소설'이다. 정말 길고 긴 소설일진데 그것이 한국전쟁도 만나고 엎치락 뒤치락 고등어자반처럼 엎치고 자치면서 개인사에도 역사에도 미친 영향이 모두가 함께 나눌 소설로 나왔다는 것은 '박완서' 였기 때문인듯 하다.

 

'그때 나는 문학을 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보면 그가 소설가가 된 배경처럼 '이야기의 힘'에 대하여 나온다. 첩첩산중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연을 벗삼아 크던 그녀가 어머니의 열정에 힘입어 서울로 유학하여 공부하게 된 사연, 삯바느질과 단칸방에서도 자식을 공부시키려는 열의가 넘쳐났던 어머니는 힘든 시간을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도 딸도 그렇게 힘든 시간을 이겨낸다. 그녀에게 모든 것은 이야기였다. 시골뜨기에서 서울 유학생활로의 정착되지 못한 삶에서 내성적이던 그녀에게 '책과 이야기'는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었다. 어디에서나 책을 찾았고 이야기를 찾았던 그녀에게 일본인이 버리고 간 책도 그녀에겐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었던 시절이 있고 피난 시절엔 벽에 붙인 '신문지'라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야기와 책이 없었다면 힘든 시간을 버텨내기란 더 힘들었을텐데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또 다시 그녀 안에서 곰삭은 홍어의 맛처럼 그렇게 톡 쏘듯 훗날 '소설'로 산고를 이겨내고 태어나지 않았을까.

 

'상상력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다.'

사십년의 세월이 그녀에게 홍어가 짚을 만나 삭어가는 시간이듯 그렇게 곰삭는 세월이었는지도 모른다.홍어가 우리 입안에서 제 맛을 찾기까지는 '시간' 즉 세월이 필요하다. 바다에서 건져낸 채로 그냥 밥상에 올랐다면 그 값어치는 떨어졌을텐데 어떻게 삭힌 홍어로 거듭난지 그 유래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유통과정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거친 시간이 더 값지고 맛난 '홍어'로 재탄생 될 수 있었던 것은 곰삭을 수 있는 '시간'이다. 저자 또한 '소설가'를 꿈꾼것도 아니고 국문과를 들어갔지만 한달의 대학생활에서 작가를 꿈꿀 수는 없었을터,어린시절부터 곰삭을 준비를 하듯 사십여년의 세월은 작가 박완서를 곰삭은 소설가로 세상에 내 놓기에 충분했던 듯 싶다. 거기엔 비록 아픔이지만 '한국전쟁'도 있고 아버지의 죽음도 오빠의 죽음도 숙부의 죽음도 첫사랑의 아픔도 모두 곰삭아 있다. 어떻게 보면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정을 책임져야만 했던 여인네들인 '어머니'나 자신 그리고 올케나 그 외 많은 '여인'들의 삶을 보면서 강인한 여인의 삶이 스스로 저장된 것은 아닐까.저자에게 '어머니'와 '시어머니' 또한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듯 하다. 어머니의 반듯하고 자존감 있는 행동이나 말들이 그녀를 존재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직 <엄마의 말뚝>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무척 빨리 읽고 싶고 기대가 된다. 그녀의 삶에서 '죽음'이란 것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삶'을 담당하는 '어머니'라는 존재 또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본다. 그 또한 그렇게 어머니를 닮아가는 '어머니'로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녀가 어느 날 사진을 정리하다가 제일 눈에 들어 온 사진은 손녀딸과 함께 동화책을 보고 있는 사진 이다. 사진 구도도 잘 맞지 않았고 자신이 원하는 그런 사진은 아니지만 그 사진에는 자신이 힘들었던 때,남편과 아들을 보내고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던 때 손녀딸의 탄생은 그를 구원해주듯 다시 세상에 돌여놓아 주었다. 죽음은 또 다른 '생'으로 나타나 그렇게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가 보다. 그런 모든 그녀의 역사가 담겨 있는 이야기는 그동안 읽은 책들의 '행간'을 채워주듯 술술 읽어나갈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읽기전에 박완서 문학앨범인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를 잠깐 죽죽 보게 되었다. 사진과 함께 박완서의 삶이 담겨 있는 책을 보니 소설속에서 상상했던 사진들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그 책의 사진을 빼고 이야기를 보는 책이 이 책인듯 기분 좋게 읽었다. 자신이 세상에 모두 다 쏟아내고도 담아 놓은 '글'이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한편으로는 아껴서 모아 놓았을 수도 있는데 그런 글들이 한데 묶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는 것은 내겐 기분 좋고 반가운 일이다. 남편이 즐겨 하던 '매운탕' 집,그가 가기 마지막에 가서 먹었던 그 집은 근처에도 가기 싫은 집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친정아버지를 보내며 아버지가 마지막에 드셨던 것을 먹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제 두어해 지나고 있는데 스스럼없이 잘 먹고 있다. 거기엔 '세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작가 또한 지인이 무심코 데리고 간 곳이 그 집 그 음식이었던 것,하지만 이십여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일까 단단해져서 그 때의 모든것은 그녀의 숟가락에 담겨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은 거부하지 않고 그녀에게 힘이 되었다. 그 또한 '시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쏟아낸 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아무리 자전적이라고 하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는 '이념'의 대립을 겪었기에 잘못하면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소리 또한 들을 수 있었을테고 개인사를 쏟아 놓다보니 가족에겐 아픔일 수 있을텐데 그것이 '문학'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 참 다행한 일이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글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현역작가'로 머물렀다는 것이 정말 인생의 롤모델로 닮고 싶은 점이다. 그리고 손수 뜰을 일구며 자연과 함께 한 삶이 글속에서 녹아나 더 좋다. 저자의 글은 '시간'과 '자연' 그리고 '가족'을 그리고 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무릎을 베고 듣는것처럼 읽어 나갈 수 있어 참 좋다. 수다쟁이 할머니가 들여주는 옛이야기처럼 막힘없이 술술 읽다보면 또 다른 이야기에 빠져 들고 싶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그렇게 하여 나 또한 한 권 한 권 모으다보니 안읽은 책이 더 많다. 그것은 내가 풀어야할 '숙제'로 서두르지 않고 읽어 나가려고 한다. 한사람의 인생인 팔십평생을 너무 단숨에 읽어나가면 재미가 없을 듯 하다. 내 안에서 홍어가 짚을 만나 곰삭아 가듯 그렇게 삭혀가며 읽어보고 싶다.

 

 박완서 작가는 내게는 롤모델이다. 누구에게나 롤모델로 삶고 싶은 작가일듯 하다. 그가 문학이라는것을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고 사십이라는 늦은 나이에 글을 쓰게 된 이력 또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하고 힘을 준다.그런가 하면 누구도 용기 내지 못하는 개인사를 통한 이야기들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준 듯 하다.늘 글쓰기에 열심이었듯이 저자의 삶이 '글'처럼 보여진다. 그런가하면 저자가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힘을 준 인물중에 '박경리' 선생님 또한 강단진 삶을 보여주어 저자의 짧은 글속에서 또 다른 삶을 만나보는 보람도 느껴본다. 어찌보면 삯바느질로 자식 공부를 시키던 바지런하고 강단지던 '어머니'의 모습을 저자의 삶에서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삶,지금 곁에 없다는 것이 한스럽다. 하지만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겨지는 것인지 세상에 풀어 놓고 간 이야기 보따리가 무척 많다는 것,내가 아직 풀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 기분 좋다. 좋은 것을 아끼듯 그렇게 하나 하나 빼어 읽으며 겨울을 보낼 듯 하다.끝으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감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 많을 읽으라는 것이 남는다. '제가 젊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쓸 때 늙었다고 하는 것은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이 경직되고 진부해졌다는 것입니다. 내 감수성이 진부해지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노력하느냐 하면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부단한 노력없이 그 많은 글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쌀이 엿으로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삭힌 홍어의 톳 쏘는 맛을 얻기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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