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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평점 :
꼭 그렇다거나 항상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글을 쓴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내게는 그렇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나 스스로의 ‘강제’가 즐겁다. 어수선했던 요즘 같아서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지만, 어쩌랴. 알라딘 신간평가단 리뷰작성일을 이틀이나 넘겼다. 기분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죄송합니다. 이번 회차 마지막이라 근사하게 잘 쓰려고, 기한도 잘 맞추려고 했는데, 제가 저번주에는 불끈하고, 흥분하고, 후회하고, 생각하느라 리뷰를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사람이 가장 행복할 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다. 자기의 시간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다. ‘노예’란 자신의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극한경쟁의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산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산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산다.
나는 종종 나를 소설가라고 소개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다고 부러워하는 회사원이나 주부들을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심히 의심스럽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지? 당신이 무의식 중에 정말로 원하는 것은, 회사원이나 주부로서 안정된 삶을 살면서 소설가나 화가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삶이 아닐까?’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19쪽)
사람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건, 일상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많은 경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자신에게 돈을 줄 수 있는 일을 선택한다. 말로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다니 너무 멋져요. 너무 낭만적이예요. 당신은 행복하겠어요.”고 하지만, 실제로는 ‘돈’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해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삶을 선택한다. 대부분 그렇다. 그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고, 그것 또한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가끔,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멋지고 근사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불편한 삶까지도 감수하는 그들의 진짜 모습을 엿보게 될 때, 그럴 때, 웬지 짠한 마음이 든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밥을 먹게 되어 좋다. 밥상머리의 주된 이야깃거리는 대처에서 홀로 사는 아들 녀석 즉 가련하기 짝이 없는 가난하고 볼품없는 내가 대체 뭘 먹고 사느냐다. 어느 날 나는 생각 없이 라면 먹지요,라고 했는데 아마도 그런 말을 내뱉은 이유는 내 한심한 신세를 견디는 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강조해두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파나 양파 혹은 계란을 넣어 먹느냐고 물었고 나는 귀찮아서 그냥 라면만 끓여 먹는다고 대답했다. 그때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라면엔 계란을 넣어야지! 라면만 먹으면 죽어! (<라면엔 계란>, 14쪽)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과 명예, 인기를 얻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돈과 명예, 인기가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성실하게 해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행복할 때가 있다. 시와 소설, 내가 사랑하는 멋진 문장들, 내가 좋아하는 근사한 글을 써 주는 모든 ‘작가들’을 대표해, 손홍규님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고맙습니다.
당신의 산문이, 병원 보호자 침대에 누워, 멈춘 것 같은 시간과 씨름하던 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라면을 먹으며 써내려갔을 당신의 문장이, 여러번 제게 웃음을 줬습니다.
고맙습니다, 작가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