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뇌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인가’의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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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 자체 - 현대 과학에 숨어 있는, 실재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울프 다니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동아시아 / 2023년 8월
평점 :
이 책의 주장 8가지는 챕터의 제목과 같다.
Ⅰ. 모든 것은 물리학이다
Ⅱ. 살아 있는 존재는 기계가 아니다
Ⅲ. 우주는 수학이 아니다
Ⅳ. 모형은 실재와 같지 않다
Ⅴ. 컴퓨터는 의식이 없다
Ⅵ.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Ⅶ.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Ⅷ. 자유의지는 없다
이 책의 제일 중요한 문장, 이 책의 결론을 포함하는 문장은 이 책의 첫 문단에 나온다.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겠다. 살아 있는 존재는 기계가 아니고, 우리 머리 밖에는 수학이 존재하지 않고, 실재하는 세계는 시뮬레이션이 아니고, 컴퓨터는 생각하지 못하고, 의식은 환각이 아니고, 의지는 자유롭지 않다. (21쪽)
이러한 주장, 이러한 결론은 자아라는 의식이 좌뇌의 속임으로써 완벽하게 환상이라는 근래 과학의 ‘최신 유행’과는 정반대다. 생명과 의식에 대한 부분이다.
내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생명과 의식이 포함된다. 끊임없이 현존하는 불가분의 주관적 1인칭 시점도 그중 하나다. 우리는 세계 바깥에 설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몸으로서 세계 한가운데에 선 채 유일하게 존재하는 시점인 내부로부터 세계를 바라본다. (33쪽)
나는 저자의 주장에 수긍하는데, 뇌와 자아, 뇌의 물질성과 영혼에 대해서는 이전에 써놓은 글에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다 한 것 같다. 내 글에 내 글을 인용하는 나의 게으름을 부끄러워하며. <나와 뇌>,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인가’의 사이에서>.
제일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의식’에 관한 것이다.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의 대니얼 데닛의 주장은 저자의 주장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계산주의 마음 이론’을 주장하는 대니얼 등은 의식과 계산의 연관성에 방점을 찍는다.
계산주의 마음 이론의 핵심은 의식을 가진 존재가 수를 셀 수 있는 것으로 보건대 의식과 계산이 서로 연관된 듯하다는 관찰로부터 도출된다. 그 둘의 관계는 인과적이며 의식이라는 신비한 현상의 원인이 (우리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계산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심지어 충분히 복잡한 계산에서는 항상 의식이 생겨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지만. (155쪽)
저자는 인공지능이 의식을 갖고 있다고 믿을 때의 위험(178쪽)을 말한다. 이런 착각이 인권 같은 인간적 가치를 상대화할 위험을 가진다고 경고하며, 생명 없는 물건들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대할 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자율 주행차는 물론 챗GPT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논의와 엔트로피, 강한 창발과 약한 창발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지만, 모태 문과인 내가 무언가를 서술할 정도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아 흥미로웠다는 이야기만 남겨 둔다.
이론 물리학자에게서 들어야 할 이야기라면 수학과 물리 정도를 예상할 수 있을 텐데 생명과 의식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리학에서 설 자리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아가 존재할 수 있는가의 물음(152쪽)에 대해 ‘정의상 과학이 다룰 수 없는 사안이라 선언’하는 태도 역시 과학의 최첨단을 좌지우지하는 물리학자로서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닌가 싶다.
이어서 읽으면 좋은 책들을 골라본다. 읽으려는 건 아니고, 그냥 골라만 둔다.
<괴델, 에셔, 바흐>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
<생명 속의 마음>
<물고기는 알고 있다>
살아 있는 정신은 이 세상 너머에서 비롯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정신이라면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죽음을 극복할 능력을 가진 정신은 생명이 없는 물질보다 훨씬 거대한 것, 인간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드는 바로 그것임이 틀림없었다. 이것이 이원론의 개념이다. 살아 있는 육체는 생명이 없는 물질로 치부되어 버려졌다. 물론 정교하게 제작되기는 했지만, 불멸하고 비물질적인 정신에 의해 조종되는 기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 P29
진화와 유전부호가 발견되면서 생명의 본질 자체가 순수한 정보이자 일련의 글자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르면 유전 정보는 유기체를 동물이나 식물의 형태로 조합하는 방법이며, 그 유일한 목적은 자신을 더 많이 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논리에는 중요한 허점이 있다. 부호는 읽어줄 사람이 없으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A, C, G, T라는 글자 수십억 개로 이루어진 인간유전체가 바로 그런 예다. - P45
모든 판단은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동료 인간에게 어떻게 느끼는지 묻고 그들의 대답과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과 생물학적 기원에 근거해 다른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럴듯하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온전히 이해했다고는 결코 확신할 수 없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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