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연구원이었던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는 37살이 되는 1996년 12월 10일 아침, 자신의 뇌가 정보 처리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음을 알게 된다. 뇌졸중이었다. 개복 수술 후, 8년 이상 뇌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되돌리기 위해 일상의 모든 기술을 다시 배운다. 그녀가 경험한 뇌의 손상, 이로 인한 사고 체계의 변화와 뇌수술 후 회복 과정을 담은 것이 이 책이다.
출혈이 일어난 지점은 그녀의 좌뇌였는데, 이로 인해 언어와 사고의 순차적 처리가 불가능해졌다. 인지능력과 포괄적인 개념은 물론 시간 감각 또한 사라졌다. 긴급한 순간을 그녀는 이렇게 적는다.
당시 나는 왜 응급 전화를 걸지 않았을까? 두개골 안에서 커져가고 있던 출혈 분위는 숫자의 이해를 담당하는 영역 바로 위였다. 9-1-1이라는 코드를 인식하는 뉴런들이 피 웅덩이에서 헤엄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개념이 더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집주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출산휴가 중이라 집에 있었던 그녀는 기꺼이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을 텐데. 하지만 주위 사람들과 맺어온 관계의 큰 그림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그녀의 파일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거리로 나가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은 결코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무능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어떻게 하면 도움을 청할 수 있는지 기억해내려고 발버둥치는 것밖에 없었다. (37쪽)
이뿐만이 아니다. 좌뇌의 정위연합 영역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자 신체 경계를 인식하는 능력이 피부 끝까지 미치지 못했다. 단일하고 견고한 실체로서의 자아상이 무너진 것이다. 스스로를 견고한 존재라고 말하는 좌뇌의 판단이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유동체 자각 상태가 되었고, 그녀는 스스로를 끝없이 움직이는 유동적 세상에서 ‘내부에 액체가 차 있는 주머니’로 인식했다(59쪽). 좌뇌가 멈춤으로 해서 박자 감각이 달팽이처럼 느려졌고,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너무 빨라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좌뇌의 판단이 사라지자 단일하고 견고한 실체로서의 자아상이 무너졌다는 그녀의 말은 ‘자아라는 통합적 느낌은 좌뇌의 속임’이라는 미치오 가쿠의 주장과 일치한다.
하나로 통일된 ‘나’라는 느낌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의식 속에는 서로 경쟁하면서 종종 모순까지 일으키는 여러 경향이 혼재되어 있지만, 좌뇌는 모든 불일치를 무시하고 논리의 틈새를 어떻게든 메워서 ‘나’라는 하나의 느낌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서 좌뇌는 이 세상의 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경솔하고 불합리한 변명을 끊임없이 늘어놓는 것이다. (『마음의 미래』, 100쪽)
좌뇌에 손상을 입었지만 의식을 잃지 않았던 저자는 자신을 에너지의 흐름 속에 있는 존재로 인식했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이 뒤섞이고, 모든 화소에서 에너지가 사방으로 분출되어 하나로 흘러가는 광경을 보면서, 저자는 대상들 사이의 물리적 경계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회고한다. 나 자신 주위 환경과 분리시키지 못하고,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나’와 세상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렇게 좌뇌의 손상으로 그녀는 자아 개념을 ‘잃어버렸지만’, 우뇌의 지배력이 강력해짐으로 해서 오히려 특별한 만족감을 경험한다.
좌뇌의 지성 활동이 멈추자 내 자신이 기적적인 생명이라는 내적 자각이 마음속에 가득 차올랐다. 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우뇌는 단 한 번도 내가 예전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향해 생명의 빛을 내뿜는 존재였다. 내게 다른 사람들의 세상과 연결시켜줄 신체와 뇌가 있고 없고를 떠나, 그저 나 자신을 세포들이 빚어낸 걸작이라고 여겼다. 좌뇌의 부정적 판단이 사라지자 나는 나를 완벽하고 전체적이며, 현재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존재로 바라볼 수 있었다. (61쪽)
그녀의 회복 과정은 신기하고 놀랍다. 그녀는 아이처럼 걷는 법, 말하는 법, 읽는 법, 쓰는 법, 퍼즐 맞추는 법을 배웠다. 침대와 욕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걷는 연습을 했고, 걷기가 끝나면 여섯 시간씩 잠을 자야 했다.(87쪽) 힘들고 어려운 재활 과정이었지만, 지혜롭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도움으로 그녀는 다시 그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좌뇌 특정 부위의 손상을 통해 그녀는 학문적으로 이해했던 인간의 두뇌에 대해 좀 더 실질적으로 알게 된다. 그녀가 말한다.
왼쪽 뇌는 내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연약한 개인이라고 생각한다. 오른쪽 뇌는 내 존재의 중심에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 이런 세포들이 죽고 3차원 세상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겠지만, 이것은 내 에너지가 고요한 희열의 바다로 다시 돌아가 흡수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자 내가 이곳에 머물며 내 삶을 구성하는 세포들을 건강하게 유지하느라 노력했던 시간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165쪽)
끝까지 읽지 못한 책 『나는 뇌가 아니다』의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나는 비물질적 실재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그것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상식적 통찰이라고 본다. 나는 나 자신을 단지 물질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18쪽) 『숨결이 바람될 때』의 저자 폴 칼라니티는 우리의 정체성은 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165쪽), 우리의 인생에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는 과학이 신 뿐만 아니라 사랑, 증오, 의미 같은 우리 인생의 중요한 일면들의 형이상학적 결정권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201쪽)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인간이 의미에 집착할 뿐,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종교는 더 이상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지 못 한다. 종교인이라고 다를 바 없다. 종교 생활을 좋아하고, 규칙적으로 종교 활동을 할 수는 있지만, 인생의 의미,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테다.
나는 인간이 별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에 감동받지만, 내 존재가 끝없는 우주로 한없이 흩어진다는 주장에는 자꾸 망설여진다.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뇌의 명령에 따라 생존을 위해, 유전자를 위해, 번식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라는 주장에도 비슷한 마음이다. 무조건적인 엄마의 헌신, 될 수 있으면 내편이 되려고 하는 남편, 나의 분신 딸, 중1이어도 귀여운 아들, 친구가 내어주는 파스타, 내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손길, 헤어질 때 나를 안아주던 선배, 첫사랑의 기억, 아쉬움, 후회,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 이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기에 내게 인생은 너무 과분하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아름답고, 찬란하지 않지만 소중하다.
뇌에 대한 책을 더 찾아 읽기로 한다. 내가 가진 답 이외의 다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