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고 나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던 문단은 여기다.
메리 셸리의 유명한 일기가 주로 자신과 퍼시 셸리의 독서 목록 일람표라는 사실이 그녀의 이례적인 과묵함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일화는 메리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 대다수 작가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지적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빈번하게 감정적인 행위였음을 강조한다. 특히 메리 자신은 어머니를 전혀 몰랐고, 사랑하는 남자와 가출한 뒤 아버지가 자신을 명백하게 거부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메리가 자신을 정의하는 주요한 방식은 (그녀가 『프랑켄슈타인을 썼던 시기, 그리고 셸리와 함께한 초창기 때는 확실하게) 일차적으로는 독서, 그 다음으로는 쓰기였다. (417쪽)
메리의 일기가 사실 독서 기록이었다는 것. 그게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래도 되는구나, 하고 허락 받는 느낌이었다.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쳤다. 모든 사람이, 모든 국가가 똑같은 상황, 똑같은 위기에 처했다. 열 나도, 토해도, 바람 불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학교에 가야 했던, 개근상에 목숨 걸었던 기억이 있는 세대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학교 가지 않는 날들’이 오래 이어졌다. 아침, 점심, 저녁.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의 지난한 반복이 계속됐다. 2주마다 이어지는 ‘온라인 수업 연장’ 발표에 집 안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물론 내가 맡은 쪽이 비(울분과 슬픔과 원망의) 쪽이었다.
아무 곳도 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현재’의 ‘답답함’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시작하는 마음은 언제나 화이팅이 넘치지만 결국 남은 것은 아침, 점심, 저녁의 식단표였다. 장보기(20분), 크린토피아(2분), 커피숍(3분), 도서관(10분)에 머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콕. 남은 시간을 모두 집안일에 쓴 것은 아니지만 집 안에 (갇혀) 있을수 밖에 없는 매일이었다. 코로나가 얼추 수그러들면서 코로나 일기가 여러 권 출간되었다. 똑같은 시간을, 정확히는 더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밥을 짓고 밥을 먹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그리고 기록을 남겼다. 개인의 기록, 지극히 사적인 기록들이, 시대를 표현하는 한 면이 되었다.
<알쓸신잡>의 후속편의 후속편인 <알쓸인잡>을 즐겨 본다. RM이 보고 싶어서 보는 건 아니고(RM을 좋아하기는 한다), 심채경 보고 싶어서 본다. 김영하도 같이 나와서 좋다.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심채경 씨가 중학교 때 썼던 일기 이야기를 했다. 데스노트와 같았던, 극한 감정과 미움의 발산 장소였던 일기가 있었기에 자신이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받아서 법의학자 이호 씨가 이런 말을 하시는 거다. 나의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건 미래를 생각하는 거거든요. 희망 없인 일기를 쓰지 않아요.
이 말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던 건, 내가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된 ‘비밀용’ 일기는 후에 ‘제출용’ 일기가 필요 없어진 중학교, 고등학교 때를 지나 대학 때까지도 이어졌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일기를 계속 썼다. 주로 일상적인 일을 기록했는데, 당시의 생각, 고민, 걱정 그리고 기대가 담겨 있었다. (마무리는 항상 기도였다. 이 습관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기를 계속해 써왔던 내가, 일기를 ‘끊었던’ 때가 퇴사 직후였다.
큰애보다 5살 정도 어린아이를 가진 친구에게 ‘말일기’를 쓰라 가르쳐주었다. 처음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말을 연습하는 아이들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말들을 잘 기록해 놓으라고 알려주었다. 모범생인 내 친구는 조언대로 따랐고, 지금도 가끔 ‘네 덕분에 아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잘 남아있다’면서 고마워한다.
하지만, 나는 정작. 정작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아이가 너무 예뻤고 너무 귀했고 또 너무 사랑스러웠지만, 만족했고, 행복했지만,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 앞에는, 이 아이의 삶 앞에는 크고 신나고 놀라운 내일이, 미래가 펼쳐져 있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이제, 끝났다고. 나한테 기대하는 다른 미래는 이제 없다고. 그때의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결심이 잦은 ‘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기쓰기를 새로 다짐하게 되는 건, 알라딘의 존경하는 이웃 몰리님의 글 덕분이다. 몰리님의 글을 캡처해서 핸드폰에 넣어둔다. 꺼내서 한 번 더 읽고 다시 결심한다. (https://blog.aladin.co.kr/zauberberg/14236599)
그리고 이 책.
츠바이크는 이미 숱하게 쓰이고 읽히고 전해진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여러 사료를 폭넓게 조사한다. 중요한 기록은 일기와 편지이다. 츠바이크는 이렇게 쓴다.
그뒤의 나날은 불멸의 문자로 세계사에 새겨져 있다. 단 한 권의 책만은 그렇지 않은데, 그것은 불행하게도 둔감하기 짝이 없는 루이16세, 그가 썼던 일기장이다. 그 일기장의 7월 11일의 대목에는 "아무 일도 없음. 네케르 씨 출발"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며, 국왕의 권력을 결정적으로 때려부순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이 일어났던 7월14일 역시 똑같은 비극적인 언어, "아무 일도 없음" 이라고만 적혀있다 ㅡ 즉 사냥도 하지 않고 사슴을 쏘아 잡은 일도 없었으므로 유달리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파리에서는 이날을 전혀 다른 날로 생각했다. 국민들은 그날을 자유 의식의 탄생일로서 축하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261쪽)
이 책을 읽어야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루이 16세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매사에 긍정적이었고 성격이 온화했다. 피난 가는 와중에도 식욕이 줄어들지 않았고, 먹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모욕당했을 때도 밤이면 숙면을 취했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겠다고 고집 부리는 일도 흔하지 않았다. 그가 쓴다. 아무 일도 없음.
평범한 시대에 살았더라면, 그는 좋은 농부, 좋은 귀족, 좋은 왕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대는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는 끝까지 우유부단했기에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프랑스의 왕인 그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한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라는 ‘대사건’ 앞에서도 그는 쓴다. ‘아무 일도 없음’. 더 잘 볼 수 있는 위치에서도 그는 보지 못했다. 더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판단의 몫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사냥’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사냥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이렇게 세 권의 다이어리를 준비했다. 알라딘의 피너츠는 독서 기록용이고, 스***의 빨간 다이어리는 속마음 토크를 위한 일기용이다. 달인 선물로 받게 된 마티스 다이어리는 메모용으로 정했다(제일 마음에 든다). 그래서 다시 부르는 나의 노래는.
내 젊음의 빈 노트엔 무엇을 그려야 할까.
내 젊음의 빈 노트엔 무엇을 써야만 하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리들 사랑의 이야기.
이 노래 모르시는 분은 유튜브에서 ‘젊음의 노트’ 검색 바랍니다. 생각보다 옛날 노래라 깜짝 놀라실 수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