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제 읽은 책은 <트렌드 코리아 2023>이 아니고. 아니고.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이다. 이 책은 다락방님의 책탑 페이퍼(여기 : https://blog.aladin.co.kr/fallen77/14172618) 에서 알게 된 책이고,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삶과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제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고 가끔 죽음과 관련된 책들을 읽기는 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책들은 이렇게 세 권. <슬픈 불멸주의자>, <죽음은 두렵지 않다>, <엔드 오브 타임>.
생명의 신비와 죽음의 비밀. 나는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인간이란,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다. 아무도 내가 태어나리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은 채 ‘이렇게’ 이 세상에 ‘태어나버린’ 내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맞이하게 될 죽음.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고, 내가 가진 종교의 내세관은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회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 그리고 속죄. 구원의 과정이 완료된 이후의 죽음은 그렇게 무섭거나 두려운 과정이 아니다. 죽음은 현세와 내세를 연결하는 작은 문과 같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죽음이 궁금하다. 특별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관심이 많다. 그 신비한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비밀을 어떻게 대하는지.
<한낮의 우울>, <유쾌한 우울증의 세계>,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자살 역시 관심 가는 분야이다. 작년에는 우울증에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자살과 우울증과의 연관성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자살에 대한 이해와 "바른 행동" 사이의 상관관계는 흥미로운 연구 분야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돌이켜보면, 어느 누구도 그걸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짐 삼촌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해 따위가 중요치 않으며, 이해 여부가 진정으로 너그러운 정신을 갖는 데 어떤 장애도 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이해의 결핍이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로 작용하여 연민을 향한 본능마저 억제시켜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 충격적인 죽음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또 우리 가족에게는 무슨 말을 해줘야 옳은지를 놓고 골몰하고 있었다. 이 책의 취지 중 하나는 자살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돕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보살핌과 너그러움을 베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비로소 자살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 10쪽)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자살을 이겨내기 위해 애쓰는 저자의 모습, 그리고 개인적 슬픔을 넘어서서 자살을 탐구해야 할 영역으로 받아들여 하나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애쓰는 저자의 모습이 인상 깊다.
34쪽까지 읽었다. 어제 반납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안녕!했다. 그래서 오늘 읽을 책은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16세기 브라질에서 가톨릭과 식인의 만남’이 부제다. 반납일까지 널널하다. 읽어보자.
이와 대조적으로 심리학부(다른 학부도 아니고 바로 심리학부!) 동료와 교수들은 도무지 어떤 반응이 적절할지 깨닫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염려하기보다는 내 유전자의 이상 유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친구가 있는가 하면("자살은 유전 아냐?"), 대부분의 동료와 교수들은 내 아버지의 죽음을 아예 무시했다. 그중에서도 정신분석학 계통의 학자이던 임상 지도교수는 특히 정도가 심해 내 아버지의 자살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무능력을 정신분석학의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로 위장하려 했으나 속이 들여다보는 헛수고일 뿐이어서 오히려 애처롭기만 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자살에 대한 지적 이해를 필요로 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자(그게 가능한 사람은 사실 몇 안 된다) 본연의 선한 심성마저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 P11
텍사스 대학교 의과대학의 정신과 의사들은 경보와 기각파의 중간 지점에서 균형을 잘 잡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담당했던 환자가 자살로 사망한 경험을 했기에 잠재한 위험과 공포를 뚜렷이 이해했다. 그들은 자살 위험 평가기준, 자살행동의 치료법을 숙지하고 충실히 따랐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중재에는 한계가 있음을, 정말 꼭 그래야 한다면 스스로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궁극적인 재량을 각자가 갖고 있음을 이해했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 이 정신과 의사들은 낮에는 병원에서 업무를 잘 수행하고 밤에는 집에서 편안한 잠을 자는 사람들이었다. - P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