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읽었다.
필요한 것보다 많이 생산됨에도 배고픈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는 곡물들, 지옥 같은 삶을 살면서 우리 식탁에 오를 시간을 기다리는 동물들, 무한대로 공급되는 양식장의 연어 새끼들. 많이 먹고, 더 많이 먹으려는 인간의 탐욕은 지구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식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지구가 변하고 있다. 대기의 불균형과 온난화, 녹아내리는 빙하와 해수면의 상승은 기후 위기를 불러온다. 몇 년 만의 가뭄, 몇 년 만의 폭우, 몇 년 만의 태풍은 이제 매년 찾아올 듯하다. 암울한 지구의 배앓이를 멈추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저자는 희망을 품으라고 말한다.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초국가적 대응이 요구되지만, 가능할까. 희망을 품어도 될까 두려워진다.
대부분의 가정과 아파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는 것은 전기 온수 장치다. 물을 데우려면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체 전력의 절반 정도가 필요하다…. 넓은 공간을 따뜻하게 덥히거나 시원하게 만드는 히터와 에어컨 등 냉난방 기계들의 전력을 다 합하면 전체 전기료 3분의 1에 해당할 것이다. 추운 날 방 안의 온도가 좀 낮아도, 더운 계절에 온도가 좀 높아도 참을 수 있다면 에너지를 꽤 많이 절약할 수 있다. 에어컨이 그중 조금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빨래 건조기, 스토브, 식기세척기, 냉장고, 냉동고 같은 것들의 전기를 모두 합하면 가정에서 쓰는 전기의 15퍼센트 정도 차지한다. (250-251쪽)
방법은 설거지할 때 가능하면 온수를 사용하지 않고, 샤워를 자주 하지 않고, 겨울에는 춥게, 여름에는 덥게 지내고, 건조기, 스토브, 진공청소기의 사용 시간을 줄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에어 프라이어도 스토브의 일종으로 본다면 에어 프라이어까지.
지난주에는 마켓컬리의 앱을 다운받고 결제 직전까지 갔다가 마지막에 마음을 바꿨다. 마켓컬리는 포화된 택배업계에 새벽배송이라는 신세계를 열어 대박을 터뜨렸는데, 마켓컬리를 따라 다른 업체에서도 새벽배송을 늘려가는 추세이다. 나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너무 행복해서 ‘잠잘 때가 제일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내가 행복하게 자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일한다는 생각이, 특별히 나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이 불편해 새벽배송이 꺼려졌다. 그래도 호기심에 쿠팡프레시를 두 번 이용해 봤는데, 아침 6시 40분에 집 앞에 물건이 놓여있으니 신기하기는 했다. 하지만 실온보관, 냉장, 냉동의 물품이 각각 따로 포장되다 보니 재활용 쓰레기가 만만치 않게 나왔다. 그래서 두 번 이용하고 말았는데,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메뉴 돌려막기가 한계에 도달해 마켓컬리를 기웃거려보았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이 여러 개 보여 주문하려 했더니, 내가 사는 지역은 ‘새벽배송’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새벽배송’도’ 가능한 게 아니라, 새벽배송’만’ 가능하다. 생각해보니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들이 다 새벽배송을 선택하는데, 물건을 낮에 받겠다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차량이 이동하는 것 자체가 회사 입장으로서는 낭비다. 결국 주문을 포기했다.
나는 주로 한살림과 동네마트를 이용한다. 동네슈퍼는 없어진 지 오래고 대기업 이름을 가진 동네마트다. 우리 집 식구들이 많이 먹지 않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둘인지라 이것저것 사다 보면 장바구니 하나로는 어림도 없다. 과일에 간식거리까지 더하면 손이 두 개로는 부족하다. 이 짐을 다 들고 언덕길을 오를 수가 없다. 오를 수는 있지만, 너무 힘들다. 그러니, 나는 장 볼 때 차를 가져가게 되고, 탄소를 배출하게 된다. 방법은? 내가 들 수 있는 만큼만 구매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매일 아침 시장에 가야 한다. 매일매일, 그날의 먹거리를 위해. 새벽배송을 피하고 나면 탄소 배출이 나를 막고, 탄소 배출을 피해가려면 매일 시장에 가야 한다.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에서 방송하는 <알릴레오 북’s>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저번 주, 이번 주 책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었는데, 패널 중 한 명이 정혜윤 피디였다. 마지막 시간에 이 책 말고 환경에 대해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냐 사회자가 물었더니, 정 피디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 3부작 <미친 아담 시리즈>를 추천했다. 꼭 집어서, 1권 『오릭스와 크레이크』. 우리가 지금 이대로 살았을 때,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를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말도 더했다.
주장이나 데이터, 선언문이나 합의서가 인간이 이루어야 하는 중요한 결정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하지만, 나는 소설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남북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평가가 가능한 것처럼, 우리의 미래를 엿보고, 우리의 현실을 바꾸기로 결정하는 작은 시작점이, 소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에 희망을 건다. 덜 소비하고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