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성으로 날아간 작가/Zen in the art of writing/Fahrenheit 451/화씨 451도
‘몰리님’(몰리님, 안녕하세요^^)의 페이퍼를 읽고 알게 된 책 『Zen in the art of writing』의 한글판이다. 20세기 SF 문학의 전설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을 읽은 후에 ‘단편의 제왕 레이 브래드버리의 창작 에세이’를 읽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이 책은 나름대로 재미있고 유익하다.
대개는 우연이다. 글은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더구나 갑작스레, 툭 완성된다. 딱히 특정한 유형의 글을 새롭게 써보려 한 것도 아니다. 그런 글은 자신의 삶과 악몽 속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법이다. 어느 순간 주위를 돌아보고는 새로운 무언가를 완성했음을 깨닫는 것이다. (39쪽)
돈 때문에 일생 동안 모은 모든 것을 외면하지 말자.
지적인 글을 출판하고자 하는 허영심에 자기 자신을 외면하지 말자. 자신을 남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그럼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어주는 내면을 외면하지 말자. (76쪽)
글쓰기가 갖는 일반적인 효용 예를 들면 치유로써의 글쓰기에 더해, 나는 소설쓰기에는 또 다른 독특하고 특별한 기운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글은 만든이의 손을 벗어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작품은 글쓴이보다 위대하고 글쓴이보다 훌륭하다. 나는 그 중에서도 소설이 글쓴이에게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글이 툭 완성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세상, 완성된 하나의 세계로 드러나는 건 소설을 통해서라고, 난 생각한다. 그래서 『Fahrenheit 451』를 준비했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창조한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이 문이 너무 좁을 경우를 대비해 옆문도 생각해 두었다. 『화씨 451도』.
2. Born a Crime
트레버 노아의 『Born a Crime』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주제별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고통의 시간을 겪은 사람들이 모두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듯, 특별한 경험 그 자체는 경험 중의 하나일 뿐이다. 흑인만큼 까맣지 않고, 백인만큼 하얗지 않으면서, 인디언도 아닌 ‘올리브색’, 밝은 피부’의 사람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살아야했던 그의 경험은 정말 특별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을 미워했을 상황에서 트레버 노아는 그 상황을 이겨내고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남았다. 특별한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어냈다. 이런 말 하는 게 너무 뻔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트레버 노아에게는 그것이 사실이어서, 그도 그렇게 인정하고 있기에 이렇게 쓴다. 그가 이렇게 건강하고 유쾌할 수 있는 건, 그의 어머니 덕분이다.
If my mother had one goal, it was to free my mind. My mother spoke to me like an adult, which was unusual. In South Africa, kids play with kids and adults talk to adults. The adults supervise you, but they don’t get down on your level and talk to you. My mom did. All the time. I was like her best friend. She was always telling me stories, giving me lessons, Bible lessons especially. She was big into Psalms. I had to read Psalms every day. She would quiz me on it. “What does the passage mean? What does it mean to you? How do you apply it to your life?” That was every day of my life. My mom did what school didn’t. She taught me how to think. (68)
그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기로 선택했고, 아이의 아빠를 선택했고, 그리고 그 아이를, 학교 최고의 말썽꾸러기 아들을 이렇게 잘 길러냈다. 이 책의 부제는 ‘Stories from a South African Childhood’이다. 그의 이야기가 더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나는 더 듣고 싶다. 이제 남겨진 두 챕터를 아껴 읽는 이유다.
3. 정희진처럼 읽기/문화의 위치/성의 변증법
호미 바바를 계기로 『정희진처럼 읽기』를 다시 읽고 있다. 3-4년 전쯤에 읽었던 책이니까 혹시 그 사이에 내가 읽은 책이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 역시나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걸 확인해가면서. 두 번 도전했다가 두 번 실패한 『성의 변증법』에 대한 문단이 눈에 들어온다.
가족, 국가 등 사회 단위가 인간의 성 활동에 기초해 만들어진다는 원리는 프로이트, 뒤르캠(Emile Durkheim), 마르쿠제(Herbert Marcuse) 이론의 출발점이다. 파이어스톤은 남성 이론의 모순을 해명하고 발전시켰을 뿐이다. 여성운동에 헌신하면서 25살의 나이에 말이다. 『성의 변증법』을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작, 여성학의 고전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부정의하다. 이 책은 그냥 인류의 고전이다. (남성이 쓴 고전도 특정 분야의 것이긴 마찬가지다.) (103쪽)
플래그잇이 붙어 있고 한 쪽 전체가 줄쳐져 있는 문단은 이런 문단.
물건 사는 일을 제일 싫어한다. 운전면허가 없고, 인터넷, 휴대 전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업무는 이메일로만 처리하고 생계를 위한 강의 외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결혼식은 물론 장례식, 동창회에 가지 않는다. 나는 어머니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보내드렸다. 원고를 많이 쓰지만 컴퓨터는 40만 원대에 문서 기능만 되는 넷북이다. 화장품, 의류, 구두, 보석류, 액세서리 같은 ‘여성 용품’은 당연히 없다. 겨울에는 나는 로션을 바르지 않고 맨살로 산다. (32쪽)
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녀의 저항에 밑줄을 그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페미니즘 실천에 대한 응원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의 사람들만이, 자신의 신념이 이끄는대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다.
이번에는 다른 문단에 밑줄을 긋는다. 공부. 입시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인생을, 삶을 두고 ‘공부’한다고 말할 때, 그리고 구체적으로 ‘책’을 통해 공부한다고 할 때, 정희진 선생님은 묻기 전에 들어야 할 적확한 대답을 이미 해주고 계신다. 내가 묻기도 전에, 내게 필요한 답을.
책을 읽은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습득이고, 하나는 지도 그리기(mapping)이다. 전자는 말 그대로 책의 내용을 익히고 내용을 이해해서 필자의 주장을 취하는(take) 것이다. 별로 효율적이지 않다. 반면 후자는 책 내용을 익히는 데 초점이 있기보다는 읽고 있는 내용을 기존의 자기 지식에 배치(trans/form 혹은 re/make)하는 것이다. 습득은 객관적, 일방적, 수동적 작업인 반면에 배치는 주관적, 상호적, 갈등적이다. 자기만의 사유, 자기만의 인식에서 읽은 내용을 알맞은 곳에 놓으려면 책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책의 위상과 저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자기 입장이 있어야 하고, 자기 입장이 전체 지식 체계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가, 그리고 또 지금 이 책은 그 자리의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37쪽)
4. 캘리번과 마녀/ 혁명의 영점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 대망의 2월 도서는 『캘리번과 마녀』 그리고 『혁명의 영점』이다. 엄청난 기대와 기대감을 부인할 수 없다. 『캘리번과 마녀』는 도서관 책으로 읽었는데, 읽자마자 ‘아, 이 책은 도서관 책으로 읽을 책이 아니야!’하며 바로 책을 구입했다. (구입하신 모든 분들의 현명한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책을 받고 나니 뭔가 달랐다. 뭔지 모르겠는데 뭔가 달랐다. 책표지 가로 세로가 바뀌었다. 『혁명의 영점』과의 세트 속 책표지와 그냥 『캘리번과 마녀』 책표지가 다르다. 도서관 책과 비교해보니 삽화의 화질도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아쉬운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 책이, 이 귀한 책이 4쇄를 찍었다는데 대해 나는 오직 감사할 뿐이다. (저는 2017년말에 구입했습니다)
난, 정희진 선생님의 공부법과 트레버 노아 엄마의 질문이 서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여성학 책이 특히 여성들에게 잘 읽혀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복잡한 이야기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들이지만 그것이 실제 자신의 삶, 실패 그리고 절망과 겹쳐지기 때문에, 여성들이 환호하고 열광하는 것이다. 억압에 직시하는 건 두려운 일이지만 그것만이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길이다.
새 책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