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외 문학의 세계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최병근 옮김 / 책세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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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13

"날 영원히 기억한다고요? 그러실 필요없어요. 어차피 잊게 될 테니까요.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 그냥 저를 잊어주세요."


요새 책을 거의 못 읽었다. 일도 좀 바빴지만 눈이 많이 피로해서 그랬다. 모니터를 계속 보는 일을 해서 그런가? 책도 그렇게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집에 오면 일단 눈을 감고 있으려고 했다. 확실히 눈을 감고 있으면 눈이 편해지더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눈이 핵심인데... 그래서 눈 영양제도 먹고 있다 ㅋ 이게 다 2월에 책을 적게 읽은 내 핑계일 뿐이다.



시간도 없고 눈이 아픈 와중에도 아주 좋은 책을 만났다. 바로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귀향>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책에는 표제작을 포함한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어쩜 이렇게 5편 모두 좋은지. 단편만다 아련함이 느껴졌다. 다시 러시아 문학(러시아 말고...)에 대한 애정이 불타올랐다. 가장 좋았던 두편의 단편을 소개해 본다.



<귀향>

대학교 1학년때 나온 김동률의 <귀향>이란 노래를 아주 좋아했었다. 그 이후로 나에게 귀향이라는 단어는 애뜻함이였다. 20년이 지난 후 만난 플라토노프의 <귀향> 역시 애뜻함 그 자체가 되었다.


오랜 전쟁 기간동안 군생활을 했던 이바노프는 제대 명령을 받고 군대를 떠난다. 하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젠 이곳이 익숙해서 였을까? 그리고 고향으로 가기위한 기차역에서 미샤라는, 역시 군대에서 보조요리사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가는 여인을 만난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가을의 풍경은 음울하고 슬퍼 보였다. 이 순간 마샤와 이바노프를 집으로 실어 갈 기차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잿빛 공간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사람에게 위안과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람의 마음밖에 없다.] P.9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낀 이바노프는 고향으로 가는 대신 미샤의 목적지에서 내린다. 왜인지 모르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혼자인 미샤 역시 이바노프와 함께 있는게 나쁘지 않았지만 둘은 함께 할 수 없었다. 이틀 후 이바노프는 고향으로 떠난다.

[이바노프는 철도 사령부에 체류 신고를 마치고 마샤와 함께 이 도시에 머물렀다. 사실 그는 4년째 보지 못한 아내와 두 자식이 기 다리고 있는 집으로 하루 빨리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바노프는 가족과의 설렘과 기쁨의 재회를 뒤로 미루고 있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이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유의 시간을 좀더갖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P.11



집에 도착한 이바노프는 모든게 낯설기만하다. 첫째 아들은 너무 어른이 되어버렸고, 딸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아내 역시 무언가를 숨기는 듯 하며 편하지가 않다. 내가 변한걸까, 가족이 변한걸까? 그의 몸은 귀향했지만, 마음은 아직까지 귀향하지 못했다.

[한편 이바노프에게 고향집은 여전히 이상하고 낯설었다. 아내는 피로에 지친 얼굴이었지만, 예전의 모습 그대로 어여쁘고 다소곳했 다. 당연히 그래야 하듯 많이 자라긴 했지만, 아이들도 자신에게서 태어난 그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왠지 이바노프는 귀향의 기쁨을 만끽할 수 없었다. 가족들과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것인가.] P.21



언제쯤 나의 귀향은 끝나는 걸까?

[모든 사랑은 무언가에 대한 필요와 외로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런 부족함도 느끼지 못하고 외로워하지도 않는다면 결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P.43





결론은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한데, 이바노프의 내적 갈등과 치유의 과정이 잘 그려진 작품이었다. 왜 사람은 떠나고 싶은 곳(군대) 인데도 그곳에 익숙해지면 그곳을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그리워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오랜 시간 후에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도 잘 적응하고, 그래서 과거의 아픔을 지워나갈 수 있을것이다, 어딘가엔가 돌아갈 곳만 있다면.






<포투단강>

이 작품 역시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귀향하는 니키타에 대한 이야기이다. 포투단강을 따라 집으로 가는 니키타는 이제 이십대 초반일 뿐이었다. 어린나이에 전쟁이라는 참상을 경험한 그의 마음에는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향에는 이제 나이든 아버지만이 남아있었고, 고향에서 그는 어린시절 잠시 알고 지냈던 류바라는 여자와 재회한다. 나름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던 류바였지만, 이제 그녀의 주변에 남은 가족은 없었고, 그녀는 혼자서 굶주림을 버티면서 힘겹게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니키타는 연민을 느낀다.

[니키타는 나무가 제대로 타고 있는지 지켜보다 가끔 류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주 어쩌다 한 번씩 류바를 쳐다본 다음 다시 불길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니키타는 류바가 자 신의 시선을 싫증낼까 두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니키타 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된다는 것이 아쉬웠다.] P.95



과거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니키타는 목공일을 하고 류바는 의사가 된다. 그리고 두사람은 서로를 의지하게 되고 결국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이 두 사람의 행복을 불러오진 못한다. 그들은 함께 있음에도 거리를 느끼게 되고 말하지 못할 눈물을 몰래 흘린다. 전쟁의 후유증 때문이었을까,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더이상 그녀를 위로할 수 없었던 니키타는 결국 집을 나간다. 그리고 방랑을 시작한다.

[한번은 니키타가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지, 함께 살지 아니면 따로 살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봄까지는 행복을 느낄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가능한 한 빨리 과학원의 의학 공부를 마쳐야 하고 그 다음은 그때 가봐야 알게 될 거라고 했다. 니키타는 이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고 류바 때문에 지금 그가 느끼는 행 복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사실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는 확신이 없었다.] P.99



아직 포투단강은 얼어있었고, 아직 봄은 오질 않았다. 봄이 오면 돌아갈수 있을까? 그때까지 류바는 니키타를 기다리고 있을까? 봄이 오면 아픔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곧 나을 거예요. 사람들이 죽는 건 혼자서 아프기 때문이죠. 누 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하지만 지금 당신 곁에는 내가 있잖아요."] P.103




<포투단강>의 경우 왜 니키타가 집을 나갔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 중이다. 해설을 보면 답(?)이 써있긴 한데 그게 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꼭 아픔의 이유를 알아야만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




러시아 단편 하면 체호프랑 이반 부닌만 떠올렸는데, 여기에 플라토노프도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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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3-03-01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건 사람의 마음 밖에 없다. 정곡을 찌르는 감동이네요. 예전에 읽었던 포투단 강 인용문을 보니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러시아 문학 고프네요.ㅋㅎ
3월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새파랑님. ^^

새파랑 2023-03-01 11:16   좋아요 1 | URL
이미 읽으셨군요. 역시~!!
모나리지님도 즐거운 3월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청아 2023-03-01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동률<귀향>저 아직도 아주 좋아합니다ㅋ 떠나고 싶으면서 떠나기 싫고 또 떠나고 싶고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심리가 사람에겐 늘 있는것 같아요. ^^

새파랑 2023-03-01 18:47   좋아요 1 | URL
요새 일이 많아서 저는

떠나고 싶습니다 ㅋ 전 역마살이 있는거 같아요 ^^

바람돌이 2023-03-01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기억 기억.... 세상에 좋은 작가는 다 새파랑님이 소개해주시는듯요. ^^

새파랑 2023-03-01 18:47   좋아요 1 | URL
요책 좋습니다. 실망하시지 않을거에요. 잘 기억해주세요~!!

페넬로페 2023-03-01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부터 저도 눈이 약해지면서 눈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눈영양제를 꼭 챙겨먹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새파랑님!
눈 건강 유의하시고요,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새파랑님 덕분에 또 좋은 작품을 알게 되었어요^^

새파랑 2023-03-04 23:29   좋아요 1 | URL
눈이 정말 중요한거 같아요 ㅋ 요즘은 헨폰도 잘 안하고 있습니다 ㅡㅡ 그래서 그런지 좀 괜찮아지는거 같아요 ㅋ

희선 2023-03-02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이 안 좋을 때는 자주 쉬는 게 좋지요 천천히라도 새파랑 님이 좋아하게 된 소설을 만나서 기뻤겠네요 사람은 가까이 있다 멀리 떨어지면 마음도 좀 멀어지겠지요 식구는 다시 함께 살면 나아질지... 이 소설에서는 나아졌다니 다행이네요


희선

새파랑 2023-03-04 23:30   좋아요 0 | URL
몸이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왠지 조금씩 멀어지는거 같아요. 그러다 다시 함께 하면 가까워지는거 같아도 예전같지는 않고.. 뮈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요 ^^

그레이스 2023-03-03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동률 귀향 좋아하는 일인 추가요^^
이 책도 장바구니에 추가요~^^

새파랑 2023-03-04 23:31   좋아요 1 | URL
역시 책잘알 음잘알 그레이스님! 그레이스님 취향에 맞을거 같아요 ^^

페크pek0501 2023-03-07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라토노프, 검색해 보겠습니당~~

새파랑 2023-03-08 20:29   좋아요 0 | URL
좋습니다~! 성수기 끝나면 전작할겁니다~!!

coolcat329 2023-03-08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라토로프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요. 코틀로반 먼저 읽어보고 이 책도 기억할게요~

새파랑님 건강이 젤 중요하니 맘 편히 하시고 휴식의 시간 가지시길요~

새파랑 2023-03-08 20:30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역시 중요한건 건강! 쿨캣님도 항상 건강 잘 챙기세요 ^^

물감 2023-03-17 0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살아계시죠? ㅋㅋㅋ

새파랑 2023-03-18 11:20   좋아요 2 | URL
안부를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새 뭐 하는게 있어서 북플이랑 책을 아예 못하고 있네요 ㅜㅜ 다다음주부터 잘 하겠습니다~!!

scott 2023-03-17 11: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어디선가100권 책탑 쌓아 놓고 계실것 같응 ㅋㅋㅋ

새파랑 2023-03-18 11:21   좋아요 2 | URL
이번달에 책 1권도 못읽고 있습니다 ㅜㅜ 담달부터는 몰아서 보겠습니다~!!

희선 2023-03-27 0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어느새 삼월 마지막 주예요 주말부터 사월 시작이군요 이번 한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년 삼월 얼마 남지 않았다니... 새파랑 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새파랑 2023-03-27 08:46   좋아요 1 | URL
오늘부터 다시 독서모드로 들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