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설>은 오사카의 상류계층이었지만 이제는 몰락한 네 자매와 당시 오사카 지방의 풍속을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단순히 풍속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마치 그 시대로 옮겨간 것처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대가의 글쓰기는 이런거구나! 하는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자매는 네 자매 이지만, 실제로 함께 생활하고 엮여 있는 건 둘째 사치코, 셋째 유키고, 넷째 다에코 세 자매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그린 세 자매는 모두 매력적이다 (첫째 제외). But 리뷰를 쓰려다가 갑자기 그녀들의 MBTI가 궁금해졌다. 분석해보자면,



1. 세 자매중 유일하게 결혼한 둘째 사치코는 명실상부 이 책의 주인공이 확실하며, 자매들의 구심점이자 내조도 잘하고 자매들도 잘 챙기고 게다가 예쁘기까지 한 팔방미인이다. 게다가 마음은 어찌나 착한지 다른 사람이 기분나빠 할까봐 늘 조심하고 걱정에 걱정이며, 타인을 위해 내 한몸 희생쯤은 당연하게 한다. (MBTI 추측 : ESFJ)



2. 반면 셋째 유키코는 사치코와는 다르다. 완전 내성적이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지 않으며 소극적이다. 게다가 자신에게 온 전화도 받지 않는다. 전형적인 오사카 전통 여인의 모습이랄까? 그렇다고 자기 생각이 없지는 않다. 다만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세설>의 부제를 짓는다면 ‘유키코 시집 보내기‘ 이다. 읽으면서 내가 답답해지는 순간도 많았다. 왜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말을 못하는지...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너무 사랑스럽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MBTI 추측 : INFP)



3. 막내 다에코는 (당시기준) 현대 여성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다른 여인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일을 하면서 독립해서 살아가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건 일단 쟁취한다. 그리고 자유연애까지...당시 일본 기준으로는 언니가 시집을 가야 동생이 시집을 갈 수 있었는데, 셋째 언니인 유키코가 시집을 못가다보니 본인도 시집을 못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다에코는 뭔가 막(?) 사는 느낌이 들었다. (MBTI 추측 : ISTP)



4. 그래도 <세설>에서 가장 고생한 사람을 꼽으라면 사치코‘의 남편 ‘데이노스케‘일 것이다. 부지런하고, 착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주고, 부인에게 충성하고, 사고치는 처제들을 뒷바라지 하는 형부인 ‘데이노스케‘는 진정 보살중의 보살이다. 아마 작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의 모습이 ‘데이노스케‘가 아닐까 싶다. (MBTI 추측 : ENTJ)



이지 않을까 싶다 ㅋㅋ <세설>을 읽어보신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다니자키 준이치로‘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그냥 글 잘쓰는 변태(?) 탐미주의 작가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고, 일본 근대문학의 대가라는 평에 딱 맞는 작가였다.



Ps. 이제 더이상 읽고 싶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은 없어보인다. (유명하거나 괜찮은 작품은 다 읽은듯...) 나중에 종합 페이퍼를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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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3-12-12 1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요새 mbti 공부중이십니까ㅋㅋㅋㅋ 꽤 자주 언급하시네요ㅋㅋㅋ

새파랑 2023-12-12 20:02   좋아요 0 | URL
ㅋㅋ mbti의 특성은 잘 몰랐다가 최근에 좀 알아서 했습니다 ㅋㅋ 사실 이해는 못하고 있습니다 ㅡㅡ

잠자냥 2023-12-12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재미있는 페이퍼인데…. 세설 읽은 지 오래인 데다 MBTI 각각의 특성을 잘 몰라서 매치가 안 되는 안타까움이…. 다니자키 준이치로 mbti는?! ㅋㅋㅋㅋㅋ 혈액형은 B형일 거 같습니다만 ㅋㅋㅋ

새파랑 2023-12-12 20:03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 mbti 공부가 필요합니다~!! 다니자키는 P가 확실합니다 ㅋㅋ

B형은 사이코 아닌가요? ㅋ

페넬로페 2023-12-12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의 mbti 분석, 과연 확실한가?}
이 답을 위해서 꼭 이 책을 읽어야겠어요
ㅎㅎ
근데 먼저 mbti 공부부터 해야 하나요?

새파랑 2023-12-12 22:53   좋아요 1 | URL
ㅋㅋ 저도 mbti 인터넷에서 대충 봐서 정확하지 않습니다 ㅡㅡ

세설 재미있어요 ^^

cyrus 2023-12-13 0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INEP로 나왔는데요, 상대방에게 진짜 할 말이 있으면 입 밖에 꺼내기 전에 몇 분 정도 고민해요. 말해야겠다고 결론 내리면 얘기하고요, 아리송하다 싶으면 침묵해요. 저는 나름 사려 깊은 발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

새파랑 2023-12-13 08:19   좋아요 0 | URL
오 INFP ㅋ 시이러스님하고 유키코 성격이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강단이 있는~!! 책 좋아하시는 분들중에 INFP가 많을거 같아요 ㅋ

유부만두 2023-12-13 0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셋째딸 시집보내기 작전이지만 지루할만 할 때 막내의 사건이 터져줘서 읽었어요. MBTI 오 인물들 보기! 새파랑님의 해석이 참신하네요. ^^

새파랑 2023-12-13 08:21   좋아요 0 | URL
아 ㅋㅋ 진짜 속터집니다. 도대체 유키코 시집은 가는거야? 이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ㅋㅋ

세 자매의 성격이 다 다르니까 너무 웃기더라구요 ~! 그래서 한번 써봤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3-12-14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세설 읽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파랑 2023-12-14 14:1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은 재미있게 읽으실거 같습니다~! 순한맛 다니자키 준이치로 입니다 ㅋㅋ
 
나의 친구들 페이지터너스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빛소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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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77

˝고독이 나를 짓누른다. 친구가 그립다. 진실한 친구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가족이든 친구든 내편이 적어도 한명은 있어야 한다. 가족은 최소한의 내편이다. 그런데 가족이 없다면? 그러면 친구나 애인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런데 나만 원한다고 해서 관계가 형성될수 있을까? 관계는 언제나 쌍방이다.

[이런 나의 탄식을 곁에서 들어줄 사람이라면 아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그 누구하고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거리를 헤매다 밤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손톱만큼밖에 안 되는 우정과 사랑이라도 얻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것이다.] P.37



에마뉘엘 보브의 <나의 친구들>은 이런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쟁 상이용사인 주인공 ‘빅토르‘는 3개월마다 주는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그에게는 가족도 없다. 오직 쥐꼬리만한 연금뿐이다. 외로움과 가난에다가 일할 의지도 없다. 몸이 안좋다는 건 핑계일지도 모른다. 전쟁터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그는 자신의 몸을 결코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보통은 죽음에 대해 곧 잊어버리지만, 누군가와 기약없이 헤어진다거나 하면 나도 모르게 ‘나는 외톨이로 살다가 이대로 죽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슬픈 마음으로 비야르를 쳐다보았다.] P.46



원래부터 그랬던건 아닐것이다. 그의 왜곡된, 편협한 관점은 전쟁의 후유증 때문일 것이다. 그의 가난과 성격때문에 누구도 그와 가까워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의 탓으로만 몰아붙일 수는 없다. 그가 상이용사가 된게 그의 탓이 아니고, 전쟁의 후유증을 그가선택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늘 그렇다. 아무도 나의 애정에 대답해 주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저 몇 명의 친구를 갖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그럼에도 늘 나는 외톨이다. 다들 나를 기대하게 만들고, 그렇게 박절하게 떠나가 버린다. 나는 정말 운도 없다.] P.50



그는 외롭다. 그래서 친구를 간절히 원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조금의 노력을 해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꺼려한다. 가끔 그에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다가오면 그는 변덕이 생겨서 그들을 밀어내거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해서 그들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나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나는 외로운데, 친구가 있어야 살아갈수 있는데....


결국 그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고독을 받아들인다. 언젠가는 나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고독, 얼마나 아름답고 또 슬픈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고독은 더할 나위 없이 숭고하지만, 내 뜻과 상관없는 오랜 세월의 고독은 한없이 서글프다. 강한 사람은 고독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친구가 없으면 외롭다.] P.174




제목은 <나의 친구들>이고, 목차는 그가 만난 사람들 목록이지만 그들은 ‘빅토르‘의 친구들은 아니었다. 그는 그들을 친구로, 연인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단 한사람도 그와 관계를 이어가진 못했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함께 있으면서 고독해져야 하고 상처를 받지만 그럼에도 다시 사람을 찾는걸까? 그건 아마 사람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

˝결국 우리는 그렇게 외롭지 않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 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
결국 우리는 그렇게 혼자 남지 않기 위해 끝없이 서로를 속일 수 밖에 없는 비겁한 존재.˝
-넬 Meaningless



Ps. 내용은 친구라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엄청 진지한건 아니고 약간 코믹하다. 그럼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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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11-19 1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몇군데 느닷없이 코믹했어요ㅋ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더 시대를 넘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일지 모르겠어요. 새파랑님 리뷰 너무 좋네요!

거기다 넬의 노래로 마무리하시다니요ㅜ.ㅜ

새파랑 2023-11-19 20:11   좋아요 2 | URL
시대를 넘어선 공감~!! 이래서 고전을 읽나 봅니다~! 그냥 단순히 읽어도 재미있고,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책 미미님 때문에 구매했습니다 ㅋㅋ 아 넬 3집 들을때마다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되네요 ㅡㅡ

페넬로페 2023-11-19 2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워 친구가 필요하면 좀 다정하면 될텐데 꼭 괴팍하더라고요 ㅠㅠ
하지만 전쟁을 겪지 않아 그들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할수도 있겠네요.
관계란 언제나 어려워요.

새파랑 2023-11-19 22:18   좋아요 2 | URL
주인공이 과대망상이 있긴 한데 좀 안쓰러우면서도 귀엽습니다 ㅋㅋ요즘 시대에 대입해봐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금방 기대하고 금방 실증나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제일 어려운거 같아요 ㅜㅜ

희선 2023-11-20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친구 사귀기 어렵죠 친구를 오래 붙잡아 두는 것도... 그런 거 잘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가만히 있어도 친구가 오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 조금 부럽기도 합니다 친구가 오고 떠나지 않는... 마음은 주고받는 거기도 하다는데 그게 아니어도 괜찮은 사람도 있더군요


희선

새파랑 2023-11-20 11:12   좋아요 3 | URL
사귀는 것보다 관계를 지속하는게 정말 어려운거 같아요. 사람 관계가 진짜 어려운가 봅니다. 다른것보다 더 신기한거 같아요~!!

yamoo 2023-11-20 09: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글을 읽고 전에는 알지 못했던 능력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조만간 페이퍼를 쓸 요량입니다. 요기 글좀 가져가 쓸게욤~~ㅎㅎ

새파랑 2023-11-20 11:13   좋아요 1 | URL
어떤 능력을지 궁금합니다 ㅋ 뭐 가져갈 글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N23076

˝선물 같은 거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오늘은 ‘윌리엄 트레버‘의 <운명의 꼭두각시>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긱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가지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내가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판된 책은 다 읽을 정도로 트레버의 팬이고, 리뷰도 다 썼지만 이 책은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해 여름, 7월 마지막 주와 8월 내내, 그리고 9월의 3일간 난 평생 그 여름을 사랑해왔다.]  P.165



일단 트레버의 작품 중에서도 독특한 편이고, 다른 어떤 소설하고도 비교를 해봐도 매우 유니크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리뷰를 읽는 순간 스포가 되기 때문에,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분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리뷰를 쓰는게 귀찮아서 그런건 아님...)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4장은 윌리,
2장,5장은 메리엔,
3장,6장은 이멜다
의 이야기이다. 구성을 보면 정말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4,5,6장은 대단히 짧다. 그런데 대단히 강렬하다.

[나는 우리가 걷고 또 걷는 동안 당신이 격식을 차리느라 지루하다는 말을 못 한 건 아닌지, 그게 궁금했다. ˝우리는 킬네이에 갈 수도 있어요.˝ 내가 제안했다. ˝당신에게 킬네이를 보여주면 좋을 텐데.˝ 당신은 미소 지으며 그러고 싶지만 당신에게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라고 말했다. 당신과 함께면 슬플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P.168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더 간단하다. ‘복수 그리고 피할수 없는 운명‘ 이라고 할까나.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 단지 그렇게 만나는 일과 사람이 꼭 행복을 가져다 주는 건 아닐뿐...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만 가능한 것도 있고...

[˝내 말은, 이멜다, 일이 그렇게 된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일은 우연히 일어난단다.˝]  P.291



그저 가업을 이어받고 싶었던 주인공 ‘윌리‘는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해 사랑 대신 복수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의 운명의 변곡점에 끼어든 사람이 바로 ‘메리엔‘이다. 그녀가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운명은 분명히 바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정을 할 필요는 없을듯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두 사람은 ‘운명의 꼭두각시‘ 처럼 만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만남이었다고나 할까?

[당신 방 앞에 선 나는 아주 가볍게라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저 문을 열었다. 모든 두려움과 도덕이, 세상의 모든 잣대가 내게서 사라졌다. 난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당신이 알아야 한다는 것 말고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면 당신이 적어도 약간의 위안을 얻을지 모른다는 것 말고는. 난 램프를 화장대에 올려놓고 당신 이름을 불렀다.]  P.198



각자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최선의 행동과 선택을 하지만 그 결과가 언제나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한번의 선택이 최악의 불행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인간은 의지를  가지고 있기에 선택을 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서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살 수는 없으니.

[그는 사진속의 미소를 짓고 그가 사랑하는 소녀는 밀짚모자 띠에 조화 장미를 달고 있다. 그들은 딸의 미친 상념 속 짧은 서사시에서 자신들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이 끝에 볼로냐 소녀의 머리 위를 떠돌던 성체만큼이나 놀라운 기적이 있음을 안다. 그들은 오늘같은 날이 허락된 것에 감사하고, 추함이라곤 없는 딸의 고요한 세계의 은총에 감사한다.]  P.336



잔혹한 운명일지라도 사람은 작은 희망을 가지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인내하고, 사랑을 꿈꾼다. 인생이 아름다운건 사람 때문이다.




Ps 1. 영국과 아일랜드 간의 역사적/종교적 갈등을 공부하고 이책을 읽으면 이해가 한층 쉬울것이다.

Ps 2. 이게 다 러드킨 중사 때문이다.

Ps 3. 한겨레출판사에서 나온 윌리엄 트레버 작품들의 책탑이다. 너무 뿌듯하다. 여섯권 모두 100점  만점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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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3-11-18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아 놓으니, 책들이 무척 예쁘네요..^^

새파랑 2023-11-18 18:38   좋아요 1 | URL
알록달록 완전 마음에 듭니다 ㅋ 한겨레출판사에서 더 많이 번역해주면 좋겠습니다~!!

페넬로페 2023-11-18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찌찌뽕~~
저도 며칠간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고민하고 있는데 정말 힘드네요 ㅠㅠ
책탑이 넘 예쁜데
읽을 때 계속 책을 양손에 잡고 있어야해서 좀 많이 불편해요.출판사가 이 점을 고려해줬으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3-11-18 18:48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리뷰를 기다리다가 제가 먼저 썼습니다 ㅋ 리뷰 밀린게 많아서 일단 급하게 썼습니다~!! 그런 불편함이 있었군요. 전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어서요 ㅋㅋ

미미 2023-11-18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이렇게 쌓아 놓으니 참 근사합니다ㅋㅋ새파랑님이
독특하다고 강조하시니 더 궁금하고요. 지금 밀린 책이 많지만<운명의 꼭두각시>를 꼭 읽어봐야겠네요.

새파랑 2023-11-18 21:50   좋아요 1 | URL
전 이런 구성의 책을 처음 읽어봤습니다 ㅋ 트레버 장편중에는 이 책이 가장 좋은거 같아요~!!
이 책은 소장각입니다~!!

Falstaff 2023-11-18 2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리뷰 써놓았습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켈트의 꿈 읽은 것이 도움이 되더군요.

새파랑 2023-11-18 21:52   좋아요 3 | URL
폴스타프님의 리뷰가 너무 궁금합니다~! <켈트의 꿈>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한번 읽었을때는 좀 어리둥절했고 다시 읽으니까 아! 이랬습니다. 역시 트레버는 좋네요~!!

페넬로페 2023-11-19 01:20   좋아요 2 | URL
저도 켈트의 꿈
읽어봐야겠어요.

Falstaff 2023-11-19 07:14   좋아요 2 | URL
제 독후감은 12월 13일 올라올 겁니다. 지금 읽어봤는데, 참 드럽게 못 썼더군요.
˝이게 다 러드킨 중사 때문이다.˝
저는 이게 불만이라 별 하나 깠습니다. 학살, 폭력, 범죄자들은 이산하가 말했듯이 언제나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인간들입니다. 이 평범한 배추 장수 한 명이 없어진다고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없었어도 퀸턴 가는 거덜이 났을 테니까요.

새파랑 2023-11-19 08:48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엄마의 러드킨에 대한 원망(집착?) 때문에 후손들이 운명의 굴레에 갇혔다고 생각했는데 ㅋ 생각해보니 러드킨이 아니었더라도 윌리와 메리엔은 만날 운명이었긴 하네요~!!

그레이스 2023-11-19 09: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트레버는 새파랑님과 폴스타프님 리뷰로부터..!

새파랑 2023-11-19 09:47   좋아요 1 | URL
저는 리뷰를 쓰다만거 같아서 민망하네요 ㅋ 이 작품 그레이스님이 좋아하실거 같아요~!!

자목련 2023-11-20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이 사진을 보니 트레버의 전작을 모으고 싶은 열망이 마구마구!

새파랑 2023-11-20 11:36   좋아요 0 | URL
트레버는 사랑! 입니다! 모아놓으니 더 예쁜거 같아요~!!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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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75

"사랑 밖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사랑 안에는 알 수 없는 것들뿐이다."


만약 내가 '보뱅'의 <그리움의 정원에서> 보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그렇게 감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통해서 저자인 '보뱅'의 '지슬렌'에 대한 마음을 알고나니, 이 책이 온통 '지슬렌'이라는 여인과 그녀 주변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움의 정원에서>보다는 덜 직접적이었지만, 애틋함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사랑의 본성이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이 사실 이야말로 사랑이 갖춘 위엄이자, 사랑의 놀라운 특성 이다. 소음과 부산함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온갖 발작으로부터도 훌쩍 떨어져,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사랑은, 그리고 사랑의 가볍고 경쾌한 자각이자 더없이 겸허한 형상이며 각성한 얼굴인 시(詩)는, 심오한 기다림이고 달콤한 기다림이다. 부드럽고도 오묘하게 반짝이는 희망이다.] P.36



'보뱅'이 보는 주위의 모든 것은 다 그녀를 향해 있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릴케'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휴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하느님의 이야기를 할때도 그 중심에는 한 여인이 있고, 그녀는 아마 '지슬렌'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내가 책을 읽는건, 보기 위해서예요. 삶의 반짝이는 고통을, 현실에서보다 더 잘 보기 위해서예요. 위안을 받자고 책을 읽는 게 아닙니다. 난 위로받을 길 없는 사람이니까.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에요. 이해해야 할 건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책을 읽는 건 내 삶 속에서 괴로워하는 생명을 보기 위해섭니다. 그저 보려는 겁니다.] P.88



그리고 그녀에 대한 마음의 결정판이 이 책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표제작인 <작은 파티 드레스>이다. 이 작품은 그냥 예술이었다. 몇번을 읽어도 아름다웠고, 몇번을 읽을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였다. 그리고 산문이라기보다는 시라고 부르는게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우리 안엔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없다. 색깔도 형태도 없는 기다림이 있을 뿐.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 기다림은 공기와 공기가 섞이듯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지루함의 절정이라고나 할 수 있는 기다림. 이 기다림이 그곳에 항시 존재 했던 건 아니다. 우리가 항시 무였던 것도,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다. 유년기의 우리는 전부였고, 신은 우리 영역의 미미한 일부에 불과했었 다. 풀밭 속의 풀잎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P.119


[내 고독의 물방앗간에 당신은 새벽처럼 들어와 불길처럼 나아갔다. 당신은 내 영혼 속에 범람하는 강물처럼 들어왔고, 당신의 웃음이 내 영토를 흠뻑 적셨다. 내 안으로 돌아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암흑천지에 큰 태양 하나가 돌고 있었다. 만물이 죽은 땅에 옹달샘 하나가 춤추고 있었다. 그토록 가녀린 여자가 그렇게나 큰 자리를 차지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P.121


[그런 다음 당신은 떠나버렸다. 배신을 한 건 아니었다. 당신 안에 나 있는, 굴곡이 단순한 같은 길을 따라간 것일 뿐. 당신은 눈처럼 하얀 작은 드레스도 가지고 가버렸다. 이 드레스는 더 이상 내 삶에서 춤추지 않았고 내 꿈속에서 맴돌지도 않았다. 내가 잠을 청하며 눈을 감은 순간 눈꺼풀 밑에서 펄럭였을 뿐. 눈과 세상 사이, 바로 그곳에서. 세월의 바람을 맞으며 열에 들떠 펄럭였다. 비애의 뇌우가 그것을 가슴 위로 내리쳤다. 금 간 유리창 위로 내려지는 덧문처럼.] P.122


[당신이 내 고독의 원인은 아니다. 고독은 당신보다 훨씬 앞서 내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당신은, 그것을 깨어나게 한 당신은 그 고독을 가장 닮은 여자일 뿐.] P.124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리뷰 이기 때문에 아닐수도 있지만, '지슬렌'을 염두해 두고 이 작품을 썼다고 생각하고 다시 읽으니 이해하기가 더 쉬웠다. 어떻게 하면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걸까? 마음의 정화가 필요한 분들에게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Ps. T가 읽으면 재미없을수도 있음. F에게는 강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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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13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파랑 오늘 드레스 입고 남편 마중 나가요.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제가 T라서 그런지 보뱅 책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사놓고 안 읽은 게 이 책입니다.... 뭔가 오글거릴 거 같은데;;; 곧 읽어보기로.

새파랑 2023-11-13 11:11   좋아요 0 | URL
오 안읽으셨군요 ㅋ 저는 처음 한번 읽었을때는 응? 이랬는데 재독하니 응!! 이랬습니다 ㅋㅋ

좀 오글거리실수도 있습니다 ~!!

자목련 2023-11-13 15:35   좋아요 2 | URL
오글거림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잠자냥 님도 이 책 좋아하실 것 같아요.

수이 2023-11-13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가 읽어본 보뱅 책 중에서 제일 에러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보뱅이니까. 티건 에프건 그와 무관하게 이 책은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이 읽어야 제일 흡입력 빠를 거 같긴 합니다. 읽었을 당시에도 그런 걸 느꼈어요. 근데 확실히 오글오글이네요, 첨부하신 문장들 다시 읽어도;;

새파랑 2023-11-13 11:13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러셨군요. 저는 이제 두권 읽었는데 두권다 너무 좋았습니다 ㅋ 역시 T에겐 무리인 작품인걸까요? 제가 오글거리는걸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아서 좋았습니다 ^^

다락방 2023-11-13 1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옴마낫.
F 인 저는 이 책 읽으면서 T 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F 취향이 아님요.

잠자냥 2023-11-13 11:09   좋아요 2 | URL
안 되겠다, 내가 오늘 집에 가서 드레스 입고 읽어볼게.

새파랑 2023-11-13 11:14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T가 이 책을 좋아하긴 힘들거 같은데...

확실한건 다락방님 P 이신듯 ㅋㅋㅋ

오늘 점심은 순대국밥 만두 드시길 바라겠습니다~!!

새파랑 2023-11-13 11:32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드레스 입고 은오님과 함께 읽어보세요 ㅋㅋㅋ

잠자냥 2023-11-13 11:3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술파랑이 제 웃음버튼 자주 눌러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3-11-13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산문집이 <가벼운 마음>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좋았어요. <그리움의 정원>을 읽고 먼저 읽었어야 했을까요. 그런데 그 좋음을 리뷰로 쓰고 싶은데, 그러다 지금까지 리뷰는 못 쓰고 있어요. <그리움의 정원>도 읽고 다시 이 책도 읽고, 또 남은 보뱅의 책도 읽고...

새파랑 2023-11-13 15:41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도 보뱅 좋아하시는군요~! <가벼운 마음>아직 못들여놨는데 이것도 곧 들이려고 합니다 ~!!
올해가 가기전에 보뱅 완독이 목표입니다~!!

<그리움의 정원> 완전 좋습니다 ㅜㅜ

페넬로페 2023-11-13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슬렌이란 여인에 대한 사랑의 글이 보뱅의 책에 계속 나오나봐요.
저는 T인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최근에 ‘운명의 꼭두각시‘가 넘 좋아 그걸 능가할지 모르겠어요.

새파랑 2023-11-13 20:53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이 T이신가요?
ㅡㅡ 예상외입니다ㅋㅋ

<운명의 꼭두각시> 너무 좋습니다. 아직 리뷰 쓰기를 아까는 중입니다 ㅋ 삼독하고 리뷰 써야지 하고 있습니다 (과연...)

전 이 책 보다는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더 추천합니다~!!

독서괭 2023-11-15 1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이 백자평에 ‘T든 F든‘이라고 쓴 이유가 여기 있었군요? ㅋㅋ 사랑감성 충만한 새파랑님에게 어울리는 책인 것 같네요. 그런데 그리움~이 더 좋다고요? 알겠습니다. 전 이미 <지극히 낮으신>을 먼저 찜해놔서..

새파랑 2023-11-15 18:52   좋아요 1 | URL
사랑감성이 충만하지는 않은데 ㅋ
저도 <지극히 낮으신> 읽어보려고 합니다~!!

물감 2023-11-16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요즘 원픽이 보뱅인가요?ㅋㅋㅋ
이분 작품이 꽤 많던데, 전작 읽기 파이팅입니다ㅋㅋㅋㅋ
저도 시간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새파랑 2023-11-16 12:15   좋아요 1 | URL
요새 보뱅에 꽂혔습니다~!@ 물감님에게는 좀 안맞으실 수 있을거 같아요 ㅋ

전작하기에는 몇권 출판 안되었고 얇아서 금방 할수있을거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3-11-16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t, f 얘기가 여기서 나왔군요. ㅎㅎ
제가 보기엔 n과 s의 차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저도 보뱅은 수집 중입니다.^^

새파랑 2023-11-16 15:39   좋아요 1 | URL
그럼 N에게 잘 맞을까요? ㅋ 전 NF여서 ㅋ 보뱅 책 내용도 좋고 표지도 좋고 최고입니다~!!
 
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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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74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고 '파스칼 키냐르' 읽을만 하네! 하고 다음으로 집어든게 <로마의 테라스>인데, 아이고야...거의 <릴케 단편선> 급이었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 사랑때문에 얼굴에 화상을 입고 떠돌이 인생을 살아야 했던 판화가 '옴므'의 일생을 다룬 작품인데, ('키냐르'의 작품들이 이런 예술가의 일생을 다른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그녀가 아닌 어떤 여인에게서도 나는 더이상 아무런 기쁨도 느낄 수 없었지. 내게 간절한 것은 그런 기쁨이 아니라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야. 내가 평생을 바쳐 오직 하나의 육체, 내가 늘 꿈꾸던 포옹의 자세를 취한 육체만을 그렸던 건 그때문일세.] P.8



일단 형식이 정말 독특하다. 4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장은 짧고, 어떤 장은 길다. 그리고 장과 장이 연결되는건 아니고, 장별로도 느낌이 다 다르다. 시간순으로 배열된 것도 아니고, 의식의 흐름도 아니다. 해설을 보니 이 책을 47개의 판화작품들이 모인 작품이라고 한다.

[“사람은 늙어갈 수록, 자신이 통과하는 풍경의 광채에서 몸을 빼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네. 바람과 세월에 닳고, 피로와 기쁨에 탄력 잃은 살갗, 갖가지 체모, 눈물, 땀방울, 손톱과 머리카락. 이런 것들이 마치 낙엽이나 죽은 나뭇가지처럼 땅에 떨어져, 두툼한 살갗 외부로 점점 더 빈번히 빠져나가는 영혼을 흩어지게 하지. 마지막 떠남은 사실상 흩어짐에 불 과해. 늙어갈수록 나는 내가 도처에 있음을 느끼네. 이제 내 육체 속에는 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 두렵네. 내 살갗이 지나치게 얇아졌고, 구멍이 더 많이 생겼다고 느끼지. 난 혼자 중얼거리네. '언젠가 풍경이 나를 통과하겠지.”] P.83



그래서 재독하면서 47개의 각 장들이 47개의 판화 작품에 대한 묘사라고 이해하고 다시 읽으니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역시 이런 어려운 책은 해설을 먼저 읽는게 현명한것 같다. 해설을 보니 어느정도 이해를 했다.(그래봤자 10퍼센트 정도 이해했으려나...)

[그녀들의 커다란 존 재는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그 그림자도 점점 진해지 지, 상실된 것은 언제나 옳은 거야. 나는 사랑을 더러운 속임수라고 부르겠어.] P.138



이 책을 처음 읽었을때는 별 넷이었는데, 재독하고 나서는 별 다섯이었다. 무조건 두번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몸므'가 동판에 예술을 새겼다면, 작가인 '키냐르'는 종이에 예술을 새겼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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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12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 안 마시고도 취한 듯한 독서 효과. 일부러 노린 술파랑.

새파랑 2023-11-12 19:45   좋아요 1 | URL
ㅋㅋㅋ 오늘은 그래도 허접하게나마 읽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 카페와서 리뷰를 쓰고 있습니디~!!

꼬마요정 2023-11-12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키냐르 어려워보여요!! 그래도 새파랑 님 리뷰 보니까 읽어보고 싶긴 합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3-11-12 23:10   좋아요 1 | URL
키냐르 작품 어렵긴 한데 매력이 넘치는거 같습니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기분? ㅋㅋ 꼬마요정님이야 쉽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페넬로페 2023-11-12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읽고 재독이나 삼독을 하면 꼭 별 다섯이 되더라고요. 작가들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얼마나 고심하며 썼는지도 느껴지고요. 이 책 많이 어려울 것 같은데 이런 책 완독하면 뿌듯하잖아요.

새파랑 2023-11-12 23:34   좋아요 1 | URL
확실히 해설을 읽고 재독을 이어서 하면 안보이던게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요새는 한번 읽은 책은 재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트레버 신작은 세번 읽었습니다 ㅋㅋ 리뷰 써야되는데 ㅎㅎ

yamoo 2023-11-13 1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키냐르...음...로마의 테라스까정 좋았습니다.
새파랑 님께 <부테스>를 추천드립니다. 전 부테스 읽고 더이상 키냐르는 안 읽어요..ㅎㅎ
<부테스>를 보시고 좋으시면 계속 죽~~ 즐독하시면 됩니다...네, 제겐 부테스가 한계엾어요..ㅎㅎ

새파랑 2023-11-13 10:20   좋아요 1 | URL
부테스 일단 메모 하겠습니다 ㅋㅋ 키냐르는 한번 읽고는 이해하기 어렵더라구요 ㅜㅜ
너무 예술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yamoo님 처럼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저는 좀 힘들었습니다 ㅋㅋㅋ

꼬마요정 2023-11-13 11:57   좋아요 1 | URL
제가 키냐르 작품을 <부테스>로 처음 접하고 키냐르 책을 읽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새파랑 2023-11-13 12:18   좋아요 1 | URL
앗 ㅋㅋㅋ 그정도인가요? 읽기가 겁나는군요 ㅜㅜ

페크pek0501 2023-11-13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인 경우, 재독은 필수죠^^

새파랑 2023-11-13 15:02   좋아요 1 | URL
재독 필수, 삼독 선택, 사독 이상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