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에 전망이 없다고 여겨졌을 때, 이대로는 안 된다고 나온 교육잡지가 바로 "민들레"였다.

 

공교육이 무너져가고 있을 때, 학교 붕괴, 교실 붕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집단괴롭힘 및 왕따로 과연 이게 교육일까 할 때, 이런 방법으로 교육을 해보자고 한 잡지가 "민들레"였는데...

 

벌써 100호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교육에 관해서 10년 넘게 이야기를 해왔으면 이제는 할 이야기를 거의 다 했을 법도 한데, "민들레"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은 교육은 그때그때 또 새롭게 다가오는 화수분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호는 "농사"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고, 음식이 자신의 입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과 힘들 과정을 거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현실에서 농사는 케케묵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교육은 늘 오래 된 것에서 시작하고, 오래된 것에서 미래를 발견한다.

 

"농사" 역시 마찬가지다. 농사는 우리가 없앨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생존할 수가 없다. 살아갈 필수요소가 바로 농사다.

 

공기와 같이 필수적임에도 공기와 같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농사고, 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에서 늘 뒤로 밀리는 것이 농업정책이다.

 

하다못해 핸드폰을 팔아서 쌀을 사오면 되지 않느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농업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 이나라 정치권력의 모습이다.

 

이런 사회분위기는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해진다. 이런 것은 가르칠 필요도 없다. 학생들 스스로 본능적으로 사회에서 무엇을 존중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농사는 힘들뿐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자기 생명을 유지시켜주는데 상관없다고... 이러니 음식물 쓰레기가 사회문제가 되곤 하지.

 

그 귀한 음식을 남겨도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는 사회, 오히려 수많은 음식물 쓰레기가 풍요의 상징이 된 사회는 그다지 좋은 사회는 아니다.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방법,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자신이 그 음식을 구해보는 일이다. 씨앗부터 땅고르기, 돌보기, 수확하기, 요리하기, 먹기까지의 과정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해보면 음식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음식은 다른 또 하나의 생명임을, 그 생명을 내가 먹고 있음을 알게 되기에 음식물 쓰레기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또 음식이 자신의 입에 들어오기까지의 그 긴 과정을 통해 조급함을 버리고 기다림을 익힐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이 자연스레 교육이 된다. 무어라고 교과과정에 적혀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 점을 이번 "민들레"에서 강조하고 있다.

 

적어도 농사를 통해서 생명의 존귀함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단, 강요는 안된다.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점을 이번 호 대안학교에서 농사교육을 받은 학생의 글(조영서, 농사 예찬?)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래저래 생각할 것이 많은 이번 민들레 98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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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4-1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잡지도 있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ㅜㅜ

kinye91 2015-04-1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달에 나오는 격월간지인데, 교육 분야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글들이 많은 책이에요.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나온 지가 벌써 15년도 넘었네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이런 말을 해야 하나. 너무도 큰일이 일어났으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진실은 저 멀리 사라지고, 언제 진실이 다가올지도 모르는, 그런 나날들.

 

서럽다.

 

진실이 묻혀 있는데, 돈을 따지기만 하는, 사람의 생명이 어찌 돈으로 환산될 수 있으며, 진실이 돈으로 계산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컴컴한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는 진실을 건져올려야 하는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하고자 하지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족쇄를 채우고 있는 현실.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을 읽다.

 

그 시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다시 서러움에 물들다. 바다는 이제 기쁨이 아니라, 희망이 아니라, 도전이 아니라 슬픔이고 서러움이다.

 

아직까지는. 언젠가 바다는 다시 희망이요 기쁨이고 또 도전이 되리라. 그렇게 되어야 하리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묻혀 있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진실이 밝혀지는 날, 밀물처럼 다가왔던 서러움이, 나와 함께 했던 서러움이 사라지리라. 사라지게 되리라.

 

이 시집에 있는 '바다'라는 시... 어쩌면 지금 바다를 보며, 파도를 보며, 그것들이 모두 서러움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4월의 바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4월의 바다는 나에게는 서러움의 바다, 슬픔의 바라로만 남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다시 바다가 희망과 도전의 바다가 될 수 있기를...

 

     바다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 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2003년 재판 12쇄.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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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4-17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 이용하시면 시는 박스칸으로 들어가 집니다.^^

kinye91 2015-04-1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밑줄긋기를 이용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실향민이다

 

이동순의 시 물의 노래를 읽다

일제강점기에, 전쟁으로, 난개발로, 댐으로

고향을 잃은 사람, 실향민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져 눈물이 울컥하는데

그 시들과

첨탑 위 노동자들,

송전탑 반대하는 산 위 노인들,

구럼바위 앞 사람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바닷속을

깊게깊게 응시하던 팽목항 사람들,

그들과 함께 애달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는 모두 실향민이다.

어미의 뱃속에서 나와 탯줄이 끊긴 순간

가정에서 학교로, 직장으로, 아이들 학교를 따라 가는 순간

자신의 사상을 잃고 시류에 영합하는 순간

자본에 휘둘려, 권력에 휘둘려 사람임을 잃는 순간

무엇을 잃었는지, 어떻게 떠나왔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가는 순간

우리는 모두 실향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랬더니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나 천년왕국을 갈구할 때

사람들이 윤회의 굴레에 떨어져 해탈을 꿈꿀 때

이미 실향민이 되었다는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실향민인데, 저만은 아닌 양

좀더 약한 사람을 핍박하고 쫓아낼 때

그들은 영혼까지도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니

제 상실을 알지 못하고, 제 비참을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모두 실향민이라고 우리

함께 기대어야 한다고

외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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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만개했다. 한껏 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렇게 우리에게도 봄이 왔으면.

 

지금 우리는 경제에 목매고 있다. 문제는 경제다. 답도 경제다. 오로지 경제뿐이다. 그런데 경제만 이야기하면서, 경제를 이루는 사람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제가 우리를 옭죄고 있지만, 경제의 정체는 모른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말은 많은데, 내 삶은 경제와 상관없는지 경제와 삶이 따로 놀고 있다.

 

봄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는데, 경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경제가 좋아지만 살림살이가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실업률은 점점 올라가고, 문 닫는 가게들이 많으며,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으로 전환이 되고, 비정규직들은 재계약에 실패를 하는 걸까?

 

왜 어른들의 지갑은 점점 얇아지는데, 경제는 회복되고 있다고 할까?

 

자신의 한 몸 쉴 집을 얻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전세마저도 얻기 힘들어져 아이들이 커갈수록 집이 넓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집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으니, 이 놈의 경제야, 너는 달팽이의 집처럼 사람들의 몸에 떡 붙어 있지 않고 어디 갔느냐.

 

너는 달팽이가 아닌 민달팽이처럼 사람들의 몸에서 떠나갔느냐. 그냥 그렇게 약한 몸을 내보이게, 그 몸 하나 들어 쉴 수 없게...그렇게...

 

공공요금이 오르고, 세금도 실질적으로 오르고, 그렇다고 연금 혜택은 상대적으로 줄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수치상 경제는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

 

경제는 도깨빈가 보다. 사람들과 상관없이, 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그런.

 

박성우의 "거미"라는 시집을 읽다. 역시 헌책방에 구한 시집. 첫시인 '거미'가 너무 우울하다. 세상에 허공에 발을 딛고 집을 짓는 거미라도 되면 좋겠는데, 오히려 거미줄에 걸린 곧 목숨을 잃을 작은 존재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그런 생애. 그래서 이 시는 슬프다. 지금도 이렇게 거미줄에 걸린 사람들이 많으므로.

 

이 시집에는 이런 작고 약한 존재들이 많이 나온다. 경제와는 상관없이 제 한 몸 돌보기 힘든 존재들. 그러나 생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것. 비록 집도 없고, 길이 없는 허공 중에 몸을 맡기고 있을지라도, 길을 만들어가야 함을.

 

박성우의 '민달팽이'라는 시. 이 땅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시라는 생각이 든다. 민달팽이의 없는 집,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경제. 우리는 이런 민달팽이같은 존재들인지...

 

아니다, 비록 작더라도 제 몸을 쉴 수 있게 하는 달팽이처럼, 그런 작은 집을 우리 모두 가질 수 있게... 그렇게 해야겠다. 슬프지만 '민달팽이' 시 보자. 그리고 이런 일이 없게, 정말로 경제가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바라며...

 

 

민달팽이

 

그가 귀가를 한다

저 민달팽이의 등은

지나치게 가벼워서 무거워 보인다

 

걷는다는 표현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바닥까지 처진 어깨가

천천히 길을 밀고 나간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는

늘어진 양어깨가 다리였으므로

빨래처럼 처진 몸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어깨에 신는 신발은 없으니, 당장

닳아질 희망의 뒤축이 없어서 좋겠다 그에게도

한때는 감미로운 집이 있었다

아이스크림 같은 집,

 

너무나 달콤하게 흘러내린

똥 같은 집

똥집도 안 파는 포장마차 같은 집

잠시 멈춘 그가 집을 지나친다

어쩌다가

아이들만 누수시켜놓은 집

 

한사코 그의 목에 감겨 있는

저 실없는 실업,

그의 목을 한껏 조이고 있다

 

박성우, 거미, 창작과비평사, 2002년 초판. 46-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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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지속되고 있다. 몇 일 전에 비가 와서 나름 해갈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겨울부터 시작된 가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양강댐의 저수량이 물이 넘실넘실 때를 잊고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며, 동네에 있는 작은 개울들은 물이 언제 있었냐는 듯 제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파삭파삭, 등산로의 흙들은 물기를 잃고 너무도 가벼워져 사람들의 발길에 사방으로 흩어지기만 하고...

 

자연만 그러하겠는가. 지금 우리네 삶이 바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삶을 촉촉히 적셔줄 단비가 그리운 지금인데...

 

사람들 마음이 메말라가면서 세상은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그렇게 힘들어지는 세상 속에서도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은 있으니, 세상이 점점 더 불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때 우리들 마음을 적셔줄 단비. 강물을 흐르게 물을 채워줄 단비. 그런 단비를 그리워하는데...

 

한참 흘러야 할 인생을 멈추게 하지 말고, 풍성하게 물이 차 있어야 할 인생을 팍팍하게 마르게 하지 말고, 다시 흐르게 한다면 우리 사회가 좀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런 정치를, 그런 사회를 그리워하는데, 그런 그리움을 고재종의 시에서 찾았다. 우리들이 웃으며, 촉촉하게 살아갈 날들을 그리워하며...

 

우리 인생을 채워줄 단비... 그립다.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

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듯

굽이굽이 굽이치다 끊기다

다시 온몸을 세차게 뒤틀던 강은 거기

아침 햇살에 샛노란 숭어가 튀어오르게도

했었지. 무언가 다 놓쳐버리고

문득 황황해하듯 홀로 강둑에 선 오늘,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대잎은 시퍼렇게 치솟아오르며

무어라 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낱 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다는 것인가.

 

고재종,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문학동네. 2005년 1판 3쇄. 1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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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5-04-0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이 너무 좋아 첫 문장부터 `시`인 줄 알았습니다.^^;;

kinye91 2015-04-0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마음이 촉촉해졌으면 하는 4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