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살아가리라. 아무리 세상이 험난해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폐허가 되어도 자연은 생명을 이어나간다. 그게 바로 자연이다.

 

누가 그랬다지 않은가. 하늘은 자비롭지 않다고. 하늘은 우리에게 온갖 시련을 준다. 우리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를 누르는 힘과 그것에서 우리를 이끄는 힘이 균형을 이루면서.

 

손진은의 시집을 읽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도서관에서 빌렸다.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숲이 설레는 것은 하나의 힘만이 아니다. 두 힘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숲은 설렌다.

 

그래서 시집을 읽어가는데... 만물이 생동하는 이 봄에, 지금 철쭉이 한창인데... 이제 곧 숲은 푸르름을 자랑하리라. 그 푸르름 속에서 온갖 생명이 살아가리라. 그 생명 속에는 죽음도 있으리라. 죽음도 함께 껴안고 가는 숲. 그게 바로 자연이고, 생명이다.

 

이 시집의 첫시가 마음을 울린다.

 

 - 서시

 

부챗살 모양 잎을 늘어뜨린 채

큰 나무가 그늘 드리울 때

작고 앙증한 줄기 끝에 여린 잎들이며 꽃을 매단

어린것들 날아오르려 퍼득거린다

솟아오르고 누르려는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이 두근거리는 몸짓들 사이로 스며들어

그 속에서 자라는 죽음이며 상처까지를 어루만지는 햇살

전율하는 숲이 반쯤은 솟아오르고

반쯤은 스스로 억누를 때

열려진 사물들 속에서

잎파랑처럼 알 수 없는 느낌으로 떠는 모든 육체들

그 힘으로 구름은 하늘에 천천히 흐르고

그 힘으로 가볍게 떠 있는 공중의 새들

 

손진은,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민음사, 2007년 개정판 1쇄. 11쪽.

 

이 시에서 시집의 제목을 따왔다. 그만큼 생명의 존재에 대해서 느낌을 주는 시다. 이런 시를 읽으며 생명에 대해서, 생명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팽팽한 균형 속에서 이루어짐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존재다.

 

이제 곧 숲은 자신의 푸르름으로 하늘의 푸르름과 경계를 그을 것이다. 그 경계 속에서 우리는 온갖 생명을 만나게 될 것이다. 숲이 밀어올리는 힘과 하늘이 내려누르는 힘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그 균형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 봄에, 우리는 우리의 약동하는 생명 속에서 그 생명의 힘을 지탱해주는 죽음도 기억해야 하리라. 죽음과 생명은 균형을 통해 우리를 이끌고 있음을.

 

그레도 우선 봄을 만끽하라. 눈 앞에 주어진 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명의 균형을 잃는 일이니. 잊지 말 것은 잊지 말고, 즐길 것은 즐기고...

 

화창한 이 봄에... 이렇게 생명의 균형을 노래한 시를 읽는 즐거움도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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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뿌릴 두고

한 자리에 있기만 해선

꽃을 피우지 못 해

산들바람에도

날아가야 한다고

민들레 씨앗들이

제 존재를 허공에 날려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제가 뿌리 내릴 곳을 향해

다른 풀들이 있는 곳

다른 꽃들이 있는 곳

팍팍한 땅

전혀 꽃피울 수 없을 것 같은

보도블록 사이에도

씨앗들은 제 자릴 잡아

꽃을 피운다.

 

꽃을 피워야 민들레 씨앗인 것을

 

하나 가끔은 아주 가끔은

제 자리를 찾지 못 하고

허공으로만

떠도는 것들이 있으니

제 뿌리를 떠났으나

꽃 필 곳을 찾지 못 하고

헤매고만 있는 것들이 있으니

 

허공에 넘쳐나는

하얀

민들레 씨앗,

 

제 자리를 찾지 못한

,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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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편한 날들.

 

차가운 물 속에 자식을 잃은 사람들을 다시 물로 몰아내려 하고 있는 현실.

 

통행의 자유는 어느 순간 허락한 곳만을 통행할 수 있는 자유로 바뀌었고, 명박산성 이후 사라졌다고 믿었던 산성이 이번엔 근혜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으니...

 

자고로 산성이란 도피의 공간일 뿐인데... 국민들은 산성 바깥에 있고, 소수 집단만 산성 안에 있는 형국. 여기에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가 버린 상태.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없는데, 왜 산성을 쌓았지. 최근 드라마로 징비록을 하던데, 전란 중에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던 왕이 그래도 큰소리를 치던데... 왕이 도망간 궁궐, 백성들이 어떻게 했는지가 역사책에 너무도 잘 나와 있어서 다시금 산성을 쌓았는지.

 

무엇보다, 물로 죽은, 물에 실종된 사람을 둔 유가족, 실종자 가족들을 다시 물로 몰아내려 하는 일은 이건 정말 해서는 안되지 않나.

 

본시 물은 백성이고,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왕인데, 어찌 물로 물인 백성을 몰아내려 하는지, 그것도 물로 생명을 앗긴 사람들에게. 여기다 각종 손해배상 청구에 엄정한 수사를 통한 처벌을 호언하고 있는 경찰들까지.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을 따스하게 감싸주지 못할 망정, 아무리 봄이라고 하더라도 차가운 물, 날카로운 물을 그들의 머리 위로, 그들의 몸 위로 날려서야 되겠는가.

 

그들에게는 그런 물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세, 또 얼마나 힘들겠냐는 위로,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주어야 하는데.

 

도대체 이 땅에 사랑이 남아 있는지, 적어도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한다고 입만 열면 말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국민에 대한 사랑이, 나라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는지 의심스러운 나날들이다.

 

그들이 국민을 사랑한다면 울타리 안에 남아 있는 99마리의 양도 중요하지만 울타리 밖으로 나간 단 한 마리의 양에게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사랑의 실천이고, 위정자가 지녀야 할 태도 아닌가.

 

최근에 시를 많이 읽는다. 신문이고 텔레비전이고 하도 안 좋은 소식들, 눈 막고 귀 막고 싶은 소식들만 들려서, 그래도 시를 읽으며 마음을 추스리고 싶기 때문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300호 특집으로 편집한 시집, "쨍한 사랑 노래"를 다시 읽었다.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사랑을 시를 통해서라도 느끼기 위해서. 그러다 황동규의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를 읽고 아, 이거다 했다.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꽂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저 샛노란 유채꽃

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이국(異國)의 햇빛 속에서 겁도 없이.

 

박혜경,이광호 엮음, 쨍한 사랑 노래, 문학과지성사, 2005년. 71-72쪽

 

이게 바로 정치인들이 지녀야 할 자세 아닌가.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지녀야 할 자세 아닌가. 나서지 않고 국민을 위해서 궂은일을 하는 것. 국민들이 궂은일에 마음쓰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하는 것.

 

국민들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씻어내주는 일. 그것이 바로 설거지고, 그런 설거지가 사랑 아니겠는가.

 

너무도 쨍한 사랑. 그것은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남모르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궂은일을 해 놓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환하게 웃을 수 있게, 세상은 봄이 왔으나 마음은 아직도 겨울인 사람들에게 그들 마음에도 봄을 맞을 수 있게 하는 일, 그런 설거지.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설거지 대상을 국민으로 삼은 것은 아닌지... 물의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겨눠졌던 물줄기는, 그들의 응어리를, 그들의 한을 씻어내는 쪽으로 가야했는데...

 

도대체 어떤 설거지를 하는 거지? 우리나라 경찰들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말로는 국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신들만 앞에 나서서 가면서 국민들이 설거지 해야만 하는 것들만 남겨놓고, 국민들이 오히려 설거지를 하게 만들지.

 

정치인들, 위정자들, 그리고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말로만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국민을 위해서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물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을 향해서 그 물줄기가 칼날처럼 날아와서는 안된다. 물줄기는 국민들의 응어리를 씻어내는, 국민들이 치워야 할 것들을 설거지해주는 쪽으로 향해야 한다.

 

그래서 이 시처럼 행동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정말 국민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런 생각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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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에 전망이 없다고 여겨졌을 때, 이대로는 안 된다고 나온 교육잡지가 바로 "민들레"였다.

 

공교육이 무너져가고 있을 때, 학교 붕괴, 교실 붕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집단괴롭힘 및 왕따로 과연 이게 교육일까 할 때, 이런 방법으로 교육을 해보자고 한 잡지가 "민들레"였는데...

 

벌써 100호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교육에 관해서 10년 넘게 이야기를 해왔으면 이제는 할 이야기를 거의 다 했을 법도 한데, "민들레"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은 교육은 그때그때 또 새롭게 다가오는 화수분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호는 "농사"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고, 음식이 자신의 입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과 힘들 과정을 거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현실에서 농사는 케케묵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교육은 늘 오래 된 것에서 시작하고, 오래된 것에서 미래를 발견한다.

 

"농사" 역시 마찬가지다. 농사는 우리가 없앨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생존할 수가 없다. 살아갈 필수요소가 바로 농사다.

 

공기와 같이 필수적임에도 공기와 같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농사고, 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에서 늘 뒤로 밀리는 것이 농업정책이다.

 

하다못해 핸드폰을 팔아서 쌀을 사오면 되지 않느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농업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 이나라 정치권력의 모습이다.

 

이런 사회분위기는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해진다. 이런 것은 가르칠 필요도 없다. 학생들 스스로 본능적으로 사회에서 무엇을 존중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농사는 힘들뿐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자기 생명을 유지시켜주는데 상관없다고... 이러니 음식물 쓰레기가 사회문제가 되곤 하지.

 

그 귀한 음식을 남겨도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는 사회, 오히려 수많은 음식물 쓰레기가 풍요의 상징이 된 사회는 그다지 좋은 사회는 아니다.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방법,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자신이 그 음식을 구해보는 일이다. 씨앗부터 땅고르기, 돌보기, 수확하기, 요리하기, 먹기까지의 과정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해보면 음식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음식은 다른 또 하나의 생명임을, 그 생명을 내가 먹고 있음을 알게 되기에 음식물 쓰레기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또 음식이 자신의 입에 들어오기까지의 그 긴 과정을 통해 조급함을 버리고 기다림을 익힐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이 자연스레 교육이 된다. 무어라고 교과과정에 적혀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 점을 이번 "민들레"에서 강조하고 있다.

 

적어도 농사를 통해서 생명의 존귀함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단, 강요는 안된다.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점을 이번 호 대안학교에서 농사교육을 받은 학생의 글(조영서, 농사 예찬?)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래저래 생각할 것이 많은 이번 민들레 98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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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4-1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잡지도 있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ㅜㅜ

kinye91 2015-04-1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달에 나오는 격월간지인데, 교육 분야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글들이 많은 책이에요.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나온 지가 벌써 15년도 넘었네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이런 말을 해야 하나. 너무도 큰일이 일어났으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진실은 저 멀리 사라지고, 언제 진실이 다가올지도 모르는, 그런 나날들.

 

서럽다.

 

진실이 묻혀 있는데, 돈을 따지기만 하는, 사람의 생명이 어찌 돈으로 환산될 수 있으며, 진실이 돈으로 계산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컴컴한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는 진실을 건져올려야 하는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하고자 하지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족쇄를 채우고 있는 현실.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을 읽다.

 

그 시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다시 서러움에 물들다. 바다는 이제 기쁨이 아니라, 희망이 아니라, 도전이 아니라 슬픔이고 서러움이다.

 

아직까지는. 언젠가 바다는 다시 희망이요 기쁨이고 또 도전이 되리라. 그렇게 되어야 하리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묻혀 있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진실이 밝혀지는 날, 밀물처럼 다가왔던 서러움이, 나와 함께 했던 서러움이 사라지리라. 사라지게 되리라.

 

이 시집에 있는 '바다'라는 시... 어쩌면 지금 바다를 보며, 파도를 보며, 그것들이 모두 서러움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4월의 바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4월의 바다는 나에게는 서러움의 바다, 슬픔의 바라로만 남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다시 바다가 희망과 도전의 바다가 될 수 있기를...

 

     바다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 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2003년 재판 12쇄.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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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4-17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 이용하시면 시는 박스칸으로 들어가 집니다.^^

kinye91 2015-04-1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밑줄긋기를 이용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