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만개했다. 한껏 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렇게 우리에게도 봄이 왔으면.

 

지금 우리는 경제에 목매고 있다. 문제는 경제다. 답도 경제다. 오로지 경제뿐이다. 그런데 경제만 이야기하면서, 경제를 이루는 사람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제가 우리를 옭죄고 있지만, 경제의 정체는 모른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말은 많은데, 내 삶은 경제와 상관없는지 경제와 삶이 따로 놀고 있다.

 

봄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는데, 경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경제가 좋아지만 살림살이가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실업률은 점점 올라가고, 문 닫는 가게들이 많으며,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으로 전환이 되고, 비정규직들은 재계약에 실패를 하는 걸까?

 

왜 어른들의 지갑은 점점 얇아지는데, 경제는 회복되고 있다고 할까?

 

자신의 한 몸 쉴 집을 얻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전세마저도 얻기 힘들어져 아이들이 커갈수록 집이 넓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집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으니, 이 놈의 경제야, 너는 달팽이의 집처럼 사람들의 몸에 떡 붙어 있지 않고 어디 갔느냐.

 

너는 달팽이가 아닌 민달팽이처럼 사람들의 몸에서 떠나갔느냐. 그냥 그렇게 약한 몸을 내보이게, 그 몸 하나 들어 쉴 수 없게...그렇게...

 

공공요금이 오르고, 세금도 실질적으로 오르고, 그렇다고 연금 혜택은 상대적으로 줄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수치상 경제는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

 

경제는 도깨빈가 보다. 사람들과 상관없이, 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그런.

 

박성우의 "거미"라는 시집을 읽다. 역시 헌책방에 구한 시집. 첫시인 '거미'가 너무 우울하다. 세상에 허공에 발을 딛고 집을 짓는 거미라도 되면 좋겠는데, 오히려 거미줄에 걸린 곧 목숨을 잃을 작은 존재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그런 생애. 그래서 이 시는 슬프다. 지금도 이렇게 거미줄에 걸린 사람들이 많으므로.

 

이 시집에는 이런 작고 약한 존재들이 많이 나온다. 경제와는 상관없이 제 한 몸 돌보기 힘든 존재들. 그러나 생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것. 비록 집도 없고, 길이 없는 허공 중에 몸을 맡기고 있을지라도, 길을 만들어가야 함을.

 

박성우의 '민달팽이'라는 시. 이 땅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시라는 생각이 든다. 민달팽이의 없는 집,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경제. 우리는 이런 민달팽이같은 존재들인지...

 

아니다, 비록 작더라도 제 몸을 쉴 수 있게 하는 달팽이처럼, 그런 작은 집을 우리 모두 가질 수 있게... 그렇게 해야겠다. 슬프지만 '민달팽이' 시 보자. 그리고 이런 일이 없게, 정말로 경제가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바라며...

 

 

민달팽이

 

그가 귀가를 한다

저 민달팽이의 등은

지나치게 가벼워서 무거워 보인다

 

걷는다는 표현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바닥까지 처진 어깨가

천천히 길을 밀고 나간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는

늘어진 양어깨가 다리였으므로

빨래처럼 처진 몸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어깨에 신는 신발은 없으니, 당장

닳아질 희망의 뒤축이 없어서 좋겠다 그에게도

한때는 감미로운 집이 있었다

아이스크림 같은 집,

 

너무나 달콤하게 흘러내린

똥 같은 집

똥집도 안 파는 포장마차 같은 집

잠시 멈춘 그가 집을 지나친다

어쩌다가

아이들만 누수시켜놓은 집

 

한사코 그의 목에 감겨 있는

저 실없는 실업,

그의 목을 한껏 조이고 있다

 

박성우, 거미, 창작과비평사, 2002년 초판. 46-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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