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지속되고 있다. 몇 일 전에 비가 와서 나름 해갈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겨울부터 시작된 가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양강댐의 저수량이 물이 넘실넘실 때를 잊고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며, 동네에 있는 작은 개울들은 물이 언제 있었냐는 듯 제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파삭파삭, 등산로의 흙들은 물기를 잃고 너무도 가벼워져 사람들의 발길에 사방으로 흩어지기만 하고...

 

자연만 그러하겠는가. 지금 우리네 삶이 바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삶을 촉촉히 적셔줄 단비가 그리운 지금인데...

 

사람들 마음이 메말라가면서 세상은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그렇게 힘들어지는 세상 속에서도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은 있으니, 세상이 점점 더 불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때 우리들 마음을 적셔줄 단비. 강물을 흐르게 물을 채워줄 단비. 그런 단비를 그리워하는데...

 

한참 흘러야 할 인생을 멈추게 하지 말고, 풍성하게 물이 차 있어야 할 인생을 팍팍하게 마르게 하지 말고, 다시 흐르게 한다면 우리 사회가 좀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런 정치를, 그런 사회를 그리워하는데, 그런 그리움을 고재종의 시에서 찾았다. 우리들이 웃으며, 촉촉하게 살아갈 날들을 그리워하며...

 

우리 인생을 채워줄 단비... 그립다.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

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듯

굽이굽이 굽이치다 끊기다

다시 온몸을 세차게 뒤틀던 강은 거기

아침 햇살에 샛노란 숭어가 튀어오르게도

했었지. 무언가 다 놓쳐버리고

문득 황황해하듯 홀로 강둑에 선 오늘,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대잎은 시퍼렇게 치솟아오르며

무어라 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낱 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다는 것인가.

 

고재종,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문학동네. 2005년 1판 3쇄. 1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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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5-04-0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이 너무 좋아 첫 문장부터 `시`인 줄 알았습니다.^^;;

kinye91 2015-04-0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마음이 촉촉해졌으면 하는 4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