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이런 말을 해야 하나. 너무도 큰일이 일어났으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진실은 저 멀리 사라지고, 언제 진실이 다가올지도 모르는, 그런 나날들.
서럽다.
진실이 묻혀 있는데, 돈을 따지기만 하는, 사람의 생명이 어찌 돈으로 환산될 수 있으며, 진실이 돈으로 계산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컴컴한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는 진실을 건져올려야 하는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하고자 하지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족쇄를 채우고 있는 현실.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을 읽다.
그 시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다시 서러움에 물들다. 바다는 이제 기쁨이 아니라, 희망이 아니라, 도전이 아니라 슬픔이고 서러움이다.
아직까지는. 언젠가 바다는 다시 희망이요 기쁨이고 또 도전이 되리라. 그렇게 되어야 하리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묻혀 있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진실이 밝혀지는 날, 밀물처럼 다가왔던 서러움이, 나와 함께 했던 서러움이 사라지리라. 사라지게 되리라.
이 시집에 있는 '바다'라는 시... 어쩌면 지금 바다를 보며, 파도를 보며, 그것들이 모두 서러움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4월의 바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4월의 바다는 나에게는 서러움의 바다, 슬픔의 바라로만 남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다시 바다가 희망과 도전의 바다가 될 수 있기를...
바다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 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2003년 재판 12쇄. 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