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 KODEF 안보총서 70
워드 윌슨 지음, 임윤갑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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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나온 책이다. 책 제목도 보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던 책. 다른 책을 읽다가 우연히 이 책 제목을 보고 읽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래서 책읽기는 좋다. 계속해서 다른 책을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지금 북핵으로 인한 위기 국면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이 핵개발을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으며, 이에 편승한 특정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진실...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이런 의문이 들었는데... 이 책은 북핵 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을 수정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전세계적으로 핵무기에 관해서 우리가 상식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어쩌면 잘못된 관념에 기반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한다.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진실은 무엇일까? 제목들만 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화1 : 핵무기는 적에게 충격과 공포를 준다

신화2 : 파괴는 전쟁에서 이기게 해준다

신화3 : 위기 핵억제는 효과가 있다

신화4 : 핵무기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한다

신화5 : 핵무기의 대안은 없다

 

일본이 항복한 이유는 원자폭탄의 위력때문이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만 이야기되어 왔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것이 바로 신화1이라고 한다. 핵무기 이전에도 재래식 무기들 역시 적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었으며, 핵무기 자체가 적에게 즉각적인,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일본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도 최고전쟁지도회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들이 이 회의를 한 것은 원자폭탄때문이 아니라 소련의 참전때문이었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원자폭탄이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냈다는 것은 허구라고 주장한다.

 

일본 군부가 자신들의 패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적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폭탄을 들먹였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때와 소련이 참전을 결정했을 때 일본 최고전쟁지도회의 개최 여부를 역사적 자료로써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화2는 무엇일까? 폭탄 하나로 도시를 날려버리는 파괴, 이런 파괴는 전쟁에서 이기게 해준다는 신화. 핵폭탄이 떨어지기 전에도 일본의 많은 도시들은 이미 대량 파괴되었다는 사실...

 

전쟁에서 도시들이 파괴되었지만 항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그 극단적인 예가 바로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와,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폐허가 된 모스크바지만, 그들은 항복하지 않았다는 것.

 

일본 역시 이미 대다수의 도시가 파괴되었지만 무조건 항복을 하려고는 하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면 이런 핵폭탄으로 인한 파괴가 전쟁에서 이기게 해준다는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

 

핵무기는 핵억제력을 지니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신화3,4에 대해서 저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한다.

 

핵억제력이 있다고 하지만 쿠바 사태 때 일촉즉발의 위기상황까지 갔던 것, 중동 전쟁이 일어난 것 등등을 보면 핵이 있다고 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우리가 안전하게 산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실, 강대국들이 핵을 지니고 있지만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소련과 미국과의 전쟁,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 등을 보면 핵이 전쟁을 억제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핵이 있었음에도 전쟁이 일어난 우리나라 6.25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을 보면 핵은 전쟁을 억제하지도 않고 세계 평화의 유지에 전적으로 기여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핵은 무기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좀더 강력한 무기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핵무기가 적을 항복하게 하거나 적을 굴복시켜 평화를 유지하는데 유일한 도구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불필요한 무기일 수도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게 신화5가 자연스레 부정당하게 된다.

 

그런데도 북한이 핵무기를 지녀야만 미국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다고, 미국이 자신들을 넘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이 다섯 가지 신화가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봉쇄정책을 펴는 것 역시 이런 다섯 가지 신화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 신화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익 집단들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얻기 위해 다섯 가지 신화를 사실로 퍼뜨린다. 사람들에게 핵무기가 아니면 큰일이 날 것처럼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세상은 그렇게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핵무기에 대한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새로운 대안은 있다. 그 대안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느 나라도 핵무기 개발을 해서는 안된다.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들은 핵무기 개선이나 핵무기에 관한 다른 연구를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끝부분에 나와 있는 이야기다.

 

이렇게 우리는 핵무기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것들이 진정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사실인지...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핵무기에 관해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주고 있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특히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꼭. 

 

핵무기를 어떻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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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0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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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1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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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1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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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성교육
페기 오렌스타인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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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국의 '성'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자칭이든 타칭이든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알려진 미국의 '성' 이야기다.

 

'성'에 대해서 금기시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성개방이 잘 이루어져 있는 나라라고, 남자와 여자의 성 평등이 잘 이루어져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성' 이야기다.

 

미국이 양성평등이 잘 이루어진 나라라고?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말미에 가면 네덜란드 이야기가 나온다. 네덜란드가 얼마나 성교육이 잘되어 있는 나라인지, 저자는 네덜란드의 부모들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겨우 미국을 배우자고 하고 있는 중인데, 그 미국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일텐데 - 사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성평등 지수가 높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여성을 수단으로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 - 네덜란드에 대해서 말하면 무엇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성교육 분야에서는 우리나라는 가장 보수적인 면을 보이는 나라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이 '순결교육'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콘돔을 써야 한다는 정도... 이게 미국을 따라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데도,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페미니즘 성교육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데... 영어 제목을 보면 'GIRLS AND SEX'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우리나라 번역본에서 붙인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이라는 제목은 내용을 포괄적으로 의미할 뿐이다.

 

사실, 성교육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미국 소녀(소년들? 또는 여자와 남자들?)들의 성생활 보고서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사례들이 풍부하게 나오기 때문인데 - 이런 글쓰기가 미국식 책을 이루는 기본 구성방식이기도 하다 - 이 사례들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는 '성' 문화를 확립하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성' 사례들은 미국의 '성' 생활이다. 미국 십대들의 '성' 생활이다. 첫장면부터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미국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겠지만...

 

십대들이 오럴 섹스를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 그것을 섹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저 애무 정도의 수준으로 생각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임신의 위험이 없고 등등의 생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하여 십대 남자들이 십대 여자들에게 오럴 섹스를 시킨다는 것, 관계를 해치기 싫은 여학생들이 해준다는 것... 이런 내용으로 책은 시작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육해야 하지? 페미니즘 성교육은 이런 오럴 섹스에 대해서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싫으면 싫다고 해야 한다는 것,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까지 가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는 오럴 섹스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오럴 섹스라고 이름을 붙일 정도면 이미 섹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개정 2012.12.18.>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에 의하면 오럴 섹스는 유사강간에 해당한다. 범법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청소년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런 행위를 우리나라 법의 잣대로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충격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에서 책은 좀더 성교육에 가까운 쪽으로 나아간다.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훅업 문화, 이를 가볍게 만나 즐기기 정도로 해석해도 좋을텐데, 이런 문화에서 청소년들이 '성'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훅업 문화에서 오럴 섹스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 성폭행까지 나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이 훅업 문화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술'이고, '술'로 인해 '성폭행'까지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게 문제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자신의 몸과 상대의 몸의 즐거움을 일깨우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사정에 그치고 마는, 남성의 일방적인 발산이 이루어지는 그런 '성'문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오럴 섹스가 자주 일어난다고 해도,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해주는 경우가 많고, 남자가 여자에게 해주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너무도 적다는 것. 즉, 이런 행위 자체도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양성 평등이 잘 이루이진 것 같이 보이는 미국에서 대학에서든, 고등학교에서든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것도 가해자의 잘못이 아닌 피해자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 요즘은 분위가기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성교육은 어떤 것이어야 하나? 여성이나 남성, 일방적인 한 쪽만을 위한 성교육은 없다는 것. 성교육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존중에서 상대의 몸과 마음에 대한 존중과 함께 해야만 한다는 것.

 

성을 두 개의 성으로만 나누는 것에 대해서도 이 책은 반대하고 있다. 동성애에 관한 장이 있는데... 미국 역시 우리나라와 달리 동성애에 관해서는 그다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성교육이 네덜란드에서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고, 미국에서도 이런 성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책의 끝부분에서 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성'을 즐길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성'은 감추고 으슥한 곳에서 남몰래 행해야 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가 더 즐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미국 청소년들의 '성' 실태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 충격적이랄 수 있는 그런 '실태'를 앞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른들이 막는다고, 가린다고 청소년들의 '성생활'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청소년들은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성'생활을 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어른들이 할 일은 이들의 그런 '성생활'을 막는 성교육이 아니라 이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서로를 존중하는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 '성교육'이다. 페미니즘 성교육은 여성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성에게 해당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 성교육이다. 그것이 양성이든, 동성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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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0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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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0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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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12: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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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 1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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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 인권이 해답이다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표창원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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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해답이다'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이다. 인권연대에서 기획한 책으로, 여러 사람의 강연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참여한 사람들은 표창원, 오인영, 선우현, 이희수, 고병헌이다. 인권 하면 인권과 관련이 있는 단체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범죄를 다루거나, 역사를 가르치거나, 철학을 가르치거나, 이슬람에 대한 전문가, 그리고 교육전문가들인 이 사람들이 이 책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만큼 인권은 어느 한 분야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인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이 책 145쪽에 보면 선우현이 철학에 대해서 강연을 하면서 철학의 첫번째 명제로 철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한다.

 

즉, 철학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함이라는 것이다. 철학함이라는 것은 우리 삶 속에서 철학을 실현한다는 의미다. 지식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인권도 이와 마찬가지다. 인권은 지식으로만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인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그리고 인권은 지식이 아니라 삶 자체여야 한다.

 

삶 자체인 인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표창원은 '폭력'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폭력은 인권을 이야기할 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정당한 폭력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라는 질문과 통하기도 한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이것은 소수에게는 폭력일텐데, 다수에게는 정당한 폭력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을 삶에 더 가져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바로 다수와 소수의 문제이고,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인영은 토도로프와 앨버트 허시먼의 논의를 빌려와 이야기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토도로프에게서, 지배자들의 논리를 허시먼에게서 빌려온다.

 

민주주의의 원리로는 주권재민, 개인의 자유, 진보 세 가지가 있는 반면에 지배자들은 무용명제, 역효과 명제, 위험 명제를 들어 민주주의를 방해. 저지한다고 한다.

 

이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 위해서는 바로 철학이 필요한데, 이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또 표면에 머물지 않고 깊이 있는 본질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이를 선우현의 논의에서 배울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도구를 가지고 이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가 아는 이슬람은 폭력적이고 악이기만 할까.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종교일까? 그 점에 대해 이희수가 이야기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병헌은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평화를 가르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결국 평화를 가르친다는 것은 자신이 평화를 위해 산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서 바로 가르침은 지식을 전달만 하는, 명사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바로 동사여야 함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이다.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권에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인권이 바로 우리 삶임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바로 인권임을, 인권은 이렇게 우리 삶 모든 분야에서 나타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가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그런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법은 바로 인권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삶으로, 실천으로 받아들일 때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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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6월의 함성과 미래의 목소리
대구참여연대 엮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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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특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한 무더기로 그냥 평가받을 때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 대표적인 것이 지역 차별이다.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 여기에 개인은 없다. 민주국가라면 시민은 없는 상태, 그것이 바로 지역 차별이다.

 

그런데 역차별도 있다. 힘이 없어서 차별받는 경우도 있지만, 힘이 있어서 차별받는 경우도 있다. 이때 차별은 어떤 불이익이라기보다는 경원시된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

 

그 지역 중 하나가 바로 대구 아닌가 싶다. 대구에서 대통령이 많이 나왔고, 소위 TK라고 하여 대구, 경북에서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니, 이들 지역 출신은 어떤 특혜를 받는다는 인식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 더해 대구 경북 지역하면 보수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역시 차별이다. 대구 경북 지역이라고 해서 모두가 보수일 리도 없고, 모든 일에서 다 보수일 수도 없다.

 

또한 보수라는 말이 악용되어서 그렇지 보수란 좋은 의미 아니던가. 몇몇 수구세력들에 의해 보수라는 말이 잘못 쓰였고, 그 잘못 쓰인 말이 특정 지역에 덧씌워져서 모두가 그런 양 도매로 넘어가게 된 경우라고 하겠다.

 

인식이 어떻든 대구에도 진보적인 사람이 있고, 보수적인 사람, 수구적인 사람, 중도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대구를 재단하는 일을 삼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구에서 일어난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에 대하여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이 그 당시 세대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긴 책이기 때문이다.

 

대구에서도 진보적인 움직임이 많았고, 독재가 판칠 때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들고 일어난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

 

우리나라가 그나마 절차적 민주주의를 마련하는데 대구 역시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대구에서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 엄혹했던 80년대를 지내면서 87년 민주화 운동 당시에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떻게 참여했는지를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단지 87년 6월 민주화 운동만이 아니라 그 전에도 1960년에는 이승만 독재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60-70년대를 통해서는 박정희 군사 독재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었던 대구가 대대적인 탄압으로 움츠러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민주 투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도시였다는 것.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에 함께 했다는 것, 그것이 지금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또 우리나라 최초로 대통령을 탄핵하여 국민 주권을 실현할 수 있었다는 것.

 

이 책의 말미에 요즘 대구 청년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민주주의를 배반한 대통령은 지역 유무를 떠나서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정 지역이 아니라 민주주의 실현 여부를 따지는 그런 세대들이 사회의 주류로 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대구의 87년 6월 민주화 운동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의미가 있다. 서울이나 광주의 기록은 많다고 하는데, 상대적으로 대구의 기록은 적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때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니, 각 지역이 자신의 지역에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을 기록으로 남긴다면 그것을 통해서 후대 세대들이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벌써 30년 전 87년 민주화 운동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노력은 바로 2016년 촛불집회, 그리고 2017년 탄핵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것과 같다.

 

이것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한층 더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을 때 더 큰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지금 50대들에겐 30년 전 그 날을 떠올리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젊은이들에겐 지금은 꼰대처럼 보이는 기성세대들도 자신들과 같이 열정을 지니고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더 소중한 책이기도 하고.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늘 고맙고,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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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5 1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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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6 1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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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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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0일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다. 교사 한 명을 포함하여 학생 12명이 죽고 20여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었다. 총기 규제가 거의 없는 미국에서 지금도 빈번하게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지만 고등학교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은 거의 없었나 보다. 이 사건이 미국에 굉장한 충격을 안겨준 것을 보니.

 

이 사건이 있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원인 규명에 목소리를 냈다. 학교 따돌림이 문제라느니, 가정 교육이 잘못되었다느니, 총기 소지가 자유로워서 그랬다느니, 아이들의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느니, 또는 아이들이 약물을 복용했다느니, 잘못된 종교때문이라느니... 많은 원인 진단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명확한 원인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 이 사건을 일으킨 부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언론에서는 가정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단 한 줄이라도 기사 또는 방송을 내보내면 그 부모는 속절없이 죄인이 되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쓴 수 클리볼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자식을 괴물로 잘못 키운 죄인이 되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겨를도 없이 왜 자신의 자식이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려고 든다. 도대체 왜 내 자식이? 무슨 이유로? 답을 찾지 못한다. 아니 답은 없다.

 

수 클리볼드의 아들인 딜런은 집에서는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세상 어느 부모에게 자신의 자식이 나쁜 아이이겠는가. 부모 말 잘 듣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그런 자식들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자식이 어느날 살인자가 되어 자신들 앞에 나타난다.

 

부모들이 느낄 당혹, 절망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수 클리볼드도 마찬가지다. 정신을 추스릴 수가 없다. 처음에는 믿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도 희생자일 뿐이라고... 그러다 처절한 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살인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한 살인에 자신의 아들이 가담한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아들은 살인자라는 것을. 절망 끝에 서게 된다.

 

이육사의 '절정'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된다. 수 클리볼드의 심정은 바로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곳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육사 '절정 2-3연)

 

절망의 끝. 그러나 엄마의 사랑은 아들을 감싸안는다. 아들이 살인을 저지른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자신의 아들임을 인정한다. 자신에게는 사랑스런 아들이었음을.

 

그렇다면 한 발 나아가야 한다. 수 클리볼드는 처절하게 아들과 지내온 날들을 되돌아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되돌아보면서 아들이 자신에게 수많은 신호를 보냈음을 파악하게 된다.

 

아들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심한 절망에 빠져 있었다. 술도 마셨으며 총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들과 대화를 잘했고, 아들은 착하게 살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사건을 일으키기 몇 해전부터 사소한 사고를 일으키고는 했지만 이는 아들들이 커나가면서 겪게 되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부모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부모는 우선 자식을 믿어주지 않는가. 게다가 폭력적인 가정교육을 방침으로 삼지 않는 부모라면 더더구나.

 

이들은 아들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들을 놓치고, 결국 아들은 살인-자살을 감행하기에 이르른다. 사건이 벌어진 뒤 수 클리볼드는 이 사태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처절한 노력이다. 그리고 그 노력 끝에 이 책을 내기까지 한다.

 

피해자들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고, 자기의 아들과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일이 특별한 아이, 특이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명심하라고... 이런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다고.

 

그래서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들을 잘 살펴야 한다고... 겉모습만으로 아이들을 판단하지 말라고.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영화를 보고 미국의 총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총기문제보다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아이에게 어떻게 관심을 주어야 하는가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찜찜한 마음을 거두지 못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뇌에 문제가 있으면 사고를 치기 쉽다. 수 클리볼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뇌에 문제가 있어도 증상을 안다면 예방할 수 있다. 그것을 부모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즉 행동에는 유전보다는 환경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 그것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한 발 더 나아갔으면 했다. 미국의 총기 소지 자유에 대해 총기 규제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쪽으로 말이다. 물론 이 책에도 총기 소지 자유에 대해 비판적인 부분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쉽게 총을 소지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순간적인 분노가 총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고, 계획적인 총기 사고를 일으킬 개연성을 더 높이기 때문에 총기 난사 사건을 개인적인 뇌 문제, 심리 문제, 가정 문제로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사회문제로까지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다. 그런 공이 잘못 튀어도 치명적이지 않은 환경을 만들 의무가 어른들에게 있지 않을까.

 

아이들을 잘 살피고, 대화를 꾸준히 하며, 그들의 뇌건강도 보살펴야 하고, 또 사회적인 환경 변화도 이끌어야 하니, 부모 노릇하기 참 어렵다. 하지만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부모들이 해야만 할 일이다. 그래야만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수 클리볼드는 이 책을 통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의 고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고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비록 총기난사 사건 같은 일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도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으니 이 책을 꼼꼼하게 읽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부모로 살아가기 정말 힘들다. 하지만 부모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갖고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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