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함에 대하여 - 악에 대한 성찰 철학자의 돌 2
애덤 모턴 지음, 변진경 옮김 / 돌베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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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만물의 영장이고, 지금은 신의 위치에까지 오르려 하는 인간(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인데도 세상은 선함과 더불어 악함이 공존하고 있다.

 

적어도 신은 선함 자체 아니던가.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는 존재는 신이 아니다. 또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로만 신의 위치에 도달하였다느니, 만물의 영장이니 하고 있고, 실제 행동은 오히려 악마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악행들을 보라. 지금도 민주주의의 선도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벌어지는 온갖 총기난사 사건, 또 혐오 범죄들을 보라. 인간의 선함을 믿기에는 너무도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꼭 이런 악함만으로 인류가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 선한 의도로도 막대한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는 처음에 트루먼과 밀로셰비치를 비교한다. 트루먼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 투여하는 것을 승인했다.

 

그 결과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으며, 대를 이어서 고통을 받고 있다. 하지만 트루먼을 악한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반면에 어쩌면 트루먼보다도 더 적은 영향을 끼친 밀로셰비치는 악한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트루먼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밀로셰비치는 다른 인종을 없애기 위해서 자신의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악이란 실수나 잘못된 행동과 어떻게 대비될까?

 

저자는 처음에 이렇게 말한다.

 

'악한 행동이란 예측되는 결과가 타인의 고통이나 굴욕을 수반하는 행동이며, 실행이 고려되면 안 되는 행동이다.' (96쪽)

 

이렇게만 하면 잘못된 행동이나 악한 행동이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 정의에 따르면 트루먼이나 밀로셰비치나 다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자신이 선택한 행동들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위해와 모욕을 금지하는 의무적 장벽을 회피할 수 있는 전략 또는 학습된 절차를 통해 행동을 결정할 경우, 그 행동은 악하다.' (98쪽)

 

조금 더 구체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 정의에서 트루먼과 밀로셰비치는 구분될 수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악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결과를 예측하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경우 악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악을 행할 때 어떤 장벽을 만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장벽 앞에서 돌아선다. 그래서 악한 행동이 우리 인간 모두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장벽을 넘어선다. 처음에는 우연히 넘어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반복되면서 그들은 이 장벽을 넘어서는 방법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는 '악'에 지배당하게 된다. 이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혼란스럽고 위태로워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악에 대하여 탐구를 하는 이 책이 궁극적 목표로 삼은 것은 악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나는 것이다. 악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각의 힘이다.

 

아렌트는 생각없음에서 악이 나왔다고, 악은 특별한 사람이 저지르는 짓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충분히 저지를 수 있음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말했다. '악의 평범성'이라고.

 

그렇다면 악은 우리에게도 있고, 우리 사회에도 있다. 악이라는 것은 난 악이다라고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던 형태로든 잠복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악은 발현되지 못하게 하는 장벽 앞에서 멈춰 있는 것이다. 이게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 있는 악이다. 보통 사회에 있는 악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장벽이 무너진다면 보통 사람이 악한이 된다. 보통 사회가 악한 사회가 된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방법, 어떤 때 악의 장벽이 무너지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상상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악의 장벽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한다. 사회에서 증오, 혐오 범죄가 넘쳐나는 것은, 한 사회가 전체주의로 가는 것은 악의 장벽이 무너졌을 때 일어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라 한다. 무엇이 악한 행동인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었어라는 말은 진실을 가리는 말이다. 어쩔 수 없었더라도 자신이 한 행동은 악한 행동임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악한 행동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악한 행동을 한 사람과 화해하거나 용서하더라도 진실은 밝혀야 한다. 그 다음에야 악한 행동을 막을 수가 있게 된다.

 

이 책의 번역자는 이 책과 더불어 우리나라 '세월호' 사건을 떠올린다. 누구의 실수인가? 잘못된 행동인가? 아니면 악한 행동인가?

 

이 책에 나와 있는 정의와 비교해 보라. 그들은 그때 어떻게 행동해야 했는가? 선장은, 승무원은, 해경은, 재난구호를 책임지고 있는 관료들은, 최종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켜줘야 하는 대통령은?

 

진실 규명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회가 조금 더 좋은 쪽으로 갈 수 있는 길, 악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악의 장벽을 어떤 순간 넘을 수 있는지 상상해서, 악의 장벽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 바로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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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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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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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 - 한국, 타이완, 오끼나와를 가다
서승 지음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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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다.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나 북한의 김정은이나 여기에 일본의 아베나 모두 험악한 말들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나라 보수 집단도 마찬가지다.

 

이 말들에 의하면 이미 한반도에는 폭탄이 여러 번 터지고도 남았을텐데, 다행스럽게도 아직 실제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말 폭탄들만 터지고 있을 뿐.

 

그러나 방귀도 자주 뀌면 똥이 나올 수 있다고, 이런 평화와 거리가 먼 말들이 오고가는 중에 말이 아닌 폭탄이 오고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지금 동아시아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위기를 중재할 나라가 없다는 것도 문제고. 예전에는 6자회담이다 뭐다 했는데, 미국이나 일본은 중재할 생각이 전혀 없고,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으며,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우리나라 역시 갈등 국면으로 치닫고 있으며, 러시아는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상태고, 북한은 오로지 제 길을 가련다고 핵폭탄 제조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동아시아의 평화는 참으로 요원하다. 이럴 때 평화를 생각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생존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모두의 파멸일 뿐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뿐이니 말이다.

 

조금 오래 되었지만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이라는 책을 지금에야 읽었다. 지금만큼 평화가 필요한 때가 없는데, 최근 십 년간은 더욱 평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때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서승은 재일교포로 우리나라에 와서 19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으로 차별을 받았으며, 한국에서는 간첩이라는 누명을 받고 감옥 생활을 한 그는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 일본에서 교수로 살아가고 있다.

 

단지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확대하여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지식인으로서의 교수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올해 나온 이명원의 책과도 연결이 된다. 이명원이 오키나와와 우리나라를 연결시키고 있다면 그 전에 나온 이 책에서는 오키나와와 우리나라 뿐이 아니라 타이완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모두 일본의 식민지 경험을 한 나라들이고, 일본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은 나라다. 오키나와는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타이완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타이완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만큼 일본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과는커녕 오히려 더 큰소리를 치고 있는 형국이니, 미국을 뒷배경으로 하는 것치고는 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서승은 일본이 이렇게 된 데에는 과거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크다고 한다. 천황제를 유지하고 있는 그들은 과거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과는 곧 천황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천황을 비롯한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니, 이들에게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저지른 일을 사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막히게도 그들은 피해자 의식을 지니고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보다는 원자폭탄을 맞았다는 피해의식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남북분단의 책임이 자기들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한 책임만을 묻고자 한다. 이를 빌미로 북한과의 어떤 대화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들이 오히려 피해자란다.

 

이런 후안무치한 행위들로 인해 타이완, 오키나와, 그리고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이웃 나라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한 다음에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일본이 첫발을 내딛지 않기 때문이다.

 

서승의 이 책에 그런 주장이 잘 나와 있다. 그렇다. 지금은 평화가 절실한 때이다. 험악한 말들의 폭탄이 그냥 사라지게, 평화가 정착되게 할 때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리고 일본에게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재무장하지 마라고... 북한을 위협하는 발언도 하지 말라고... 또한 미국에게도 마찬가지로 요구해야 한다. 남북한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우선은 당사자인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분명 타이완, 오키나와, 우리나라는 피해자다. 이들 나라에 대한 가해자는 일본이다. 그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일본은 미국에게는 피해자일지 모르지만 우리들에게는 아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은 분명 가해자다. 그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게 해야 한다.

 

서승은 감옥에서 나온 뒤부터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여러 활동을 해왔다. 그가 해온 활동들에 대한 글들을 묶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비록 어떤 글은 10년 전에 발표되기는 했지만 이 글에서 주장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만큼 동아시아 평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제는 동아시아에서 평화가 정착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잘살 수 있다.

 

이 책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준다. 지금 같은 때에는 더욱 절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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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6 14: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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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6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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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섬 -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
이명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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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섬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와 오키나와를. 우리나라를 섬이라고 하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가 있지만, 육로로 다른 나라를 갈 수 없는 상황이니, 섬이라는 표현이 그리 잘못된 표현도 아니다. 저자 역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범위를 좁히면 오키나와와 제주도를 두 섬으로 연관시킬 수도 있다.)

 

오키나와는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는 곳이다. 관광지로 인기 있는 곳인데, 이곳에 얼마나 많은 비극이 묻혀 있는지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키나와에는 수많은 비극이 감춰져 있다. 그리고 그 비극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오키나와는 독립된 국가로 존재했다가 일본에 병합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는 미국의 지배에 들어갔다가 1970년대에 들어 다시 일본 영토로 복귀한다.

 

오키나와가 일본 영토로 다시 복귀했다고 해서 오키나와의 비극이 끝난 것은 아니다. 비극은 그 다음에 더 심화되었다. 이유는 일본에 만들어진 미군기지가 대부분 오키나와로 이전한 것이다. 결국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를 감싸안고 있는 땅이 된 것이다.

 

이것이 땅 문제이겠는가. 미군기지가 있다는 것은 평화의 섬이라기보다는 갈등의 섬, 언제든 자신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섬이라는 의미가 되지 않겠는가.

 

중국과 미국의 갈등, 북한과 미국의 갈등에서 오키나와는 언제는 군대가 출격할 수 있는 장소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러니 오키나와는 평화의 섬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중국과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드 배치' 문제만 보아도, 방패라고 하는 '사드'가 오히려 평화를 위협하는 그런 존재로 군림하고 있지 않은가.

 

대외관계뿐만이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고, 이것으로 인해 평화가 정착되기 보다는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니... 오키나와와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나 오키나와가 이렇게 된 데에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이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키나와에 대해서도 전쟁 중에 죽은 사람들, 학살 당한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은 반성과 책임을 지지 않으며,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징용이나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에 대해서 반성도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오키나와와 우리나라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오키나와의 역사를 살펴본다. 오키나와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곧 우리나라 역사를 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3부라 할 수 있는 오키나와에서 온 편지를 읽다보면 우리나라 상황과 자꾸 겹쳐진다. 겹쳐질 수밖에 없다. 오키나와에 끌려가서 군속이나 위안부가 된 조선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들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미군기지 이전을 주장하는 사람이 오키나와 지사로 뽑혔다고 하고, 우리나라 역시 탄핵을 통해 민주정권을 세웠으니, 지금도 오키나와와 우리나라는 비슷하게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평화를 이루는데 오키나와와 우리나라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점을 생각하면서 미군기지에 대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관광지로 유명한 오키나와, 그곳에 중첩되어 있는 역사를 알게 해주는 책이고, 또한 오키나와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그리고 세계 평화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오키나와로 여행하기 전에 먼저 읽으면 더 좋을 책이기도 하고...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잘 읽었다. 유사성이 많은 오키나와와 우리나라, 좀더 범위를 좁히면 오키나와와 제주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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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희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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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도대체 이 전쟁이란 것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라리의 이 책은 전쟁 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전쟁 문화사라고 하지만 전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 또는 전쟁에 대해 느끼는 감수성의 변천사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이전에 번역된 그의 두 저작,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 사이에 이 책을 놓는다면 무리일까?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누르고 지구상에서 인간 종으로 살아남은 이유도 결국은 전쟁이지 않을까. 인류가 신의 위치까지 오르려고 하는데, 올라가게 되는 가장 주요한 요소가 바로 전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만든 각종 무기들은 최신 과학과 기술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들은 주로 전쟁에서 나온다. 생각도, 경험도.

 

지혜와 신 사이에 전쟁이 있다. 처음에는 정신이 우세하지만, 곧 육체가 우세해지는 그런 전쟁에 대한 관점.

 

근대 초기까지는 사람들은 전쟁에서 감정을 잘 다루지 않았다. 감정을 다루지 않은 이유는 인간의 육체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명예라는 정신적인 요소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나 또는 심리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1740년부터 1865년까지의 시기에 벌어진 전쟁에 대한 회고록이나 글들을 통해 그는 그 이전의 전쟁에 대한 관념과 이 때의 관념, 그리고 현대의 관념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정신만이 중요했던 1740년 이전의 전쟁에서는 죽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명예가 문제가 된다. 정신을 지키는 것, 정신을 잘 지키면 육체적 고통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 1740년 이전의 전쟁에 대한 관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때의 전쟁에서 몇 명이 전사를 했고, 몇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때의 전쟁에서 중요한 일은 명예를 지켰느냐 하는 것이다. 정신적 가치가 우위에 있던 시대...

 

이런 정신적 가치를 대변하는 장군, 사령관들. 이들에게 군사 개개인의 목숨은 아무런 중요성이 없는, 그냥 장기판의 말같은 존재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육체는 정신에 예속된 존재였고, 정신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버려도 좋을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1740년에서 1865년 사이의 전쟁에서는 서서히 육체가 부상을 하기 시작한다. 정신의 자리에 육체가 자리잡는다.

 

고통, 그것이 무시될 수 없다. 시대가 현대로 오면 올수록 전쟁의 비참함이 대두되고, 전쟁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 중심을 이루게 된다.

 

그것도 전쟁에 대한 감정은 좋은 쪽보다는 안 좋은 쪽으로 작동을 한다. 가족도 몰라볼 정도록 폭삭 늙어서 돌아온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 전투를 하기 전에 느꼈던 감정들, 전쟁 동안에 일어나는 온갖 부조리, 비참함 등등.

 

이제 전쟁은 육체를 떠난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육체의 문제가 된다. 그것도 개개인의 육체 문제가 된다. 나와 남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대를 넘어 남의 죽음을 통해 내 죽음을 인식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죽음만이 아니라 부상을 통해서도 전쟁의 비참함을 내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내 감정이 작동한다. 이런 감정이 작동하면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게 된다. 자연스레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데...

 

장군 한 명에게 집중되었던 전쟁이 이제는 병사들 개개인에게 집중되기 시작한다. 장기판의 말들이 장기를 두는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렇게 전쟁에 대한 관점이 바뀌기 시작한다.

 

1913년. 소위 '벨 에포크'라고 하는, 그 아름다운 시절에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하기를 열망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1914년에 일어나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자신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고, 또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하는 경험으로서의 전쟁에.

 

그러나 이들은 전쟁의 비참함, 고통, 참혹함만을 느낀다. 전쟁에서 환멸을 느낀다. 이들은 전쟁은 인간에게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 전쟁으로 인한 경험으로 얻은 지식보다는 다른 경험으로 얻는 지식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하라리가 전쟁 문화사라 할 수 있는 '극한의 경험'을 쓴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일테다. 전쟁에 대해서 환상을 절대로 품지 말라고.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근대 시대의 다양한 전쟁 경험담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경험담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오늘날의 전쟁 문화를 헤쳐 나갈 길을 조금이나마 쉽게 찾도록 돕는 것이다. 475쪽

 

그렇다. 전쟁은 결코 우리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현대에 들어 우리나라 역시 혹독한 전쟁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전쟁은 결코 낭만이나 환상이 아님을 우리는 오래 되지 않은 과거에 이미 경험했지 않은가.

 

그럼에도 지금 우리나라 정세는 전쟁의 위험에 처해 있다. 다시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 하라리의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전쟁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경험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해야만 한다.

 

그것이 신을 꿈꾸는(호모 데우스) 인간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전쟁에 대한 감정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굳이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극한의 경험'을 하기 위해 전쟁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방대한 자료들, 구체적인 회고록들, 그리고 그들을 통한 전쟁에 대한 감정, 생각의 변화... 단지 과거의 변화를 정리한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책은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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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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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7 08: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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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 비행청소년 8
장성익 지음, 신병근 그림 / 풀빛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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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되는 것 아니겠는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이 소외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여기에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서 최강의 강자로 살아남게 된 이유 역시 소통하는 능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어떤 특정한 때에만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때도 없이 소통하는 존재였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시도때도 없이 소통하는 존재, 그런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다. 그렇게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고, 공동체를 통해서 자신들의 삶을 누려왔다. 근대화, 산업화가 되기 전까지는.

 

근대화, 산업화는 이런 공동체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동체는 방해가 되었다. 따라서 공동체를 해체해야 했다. 사람들을 노동력으로 부려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협동하고 소통하며 살아간다면 노동력을 확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여 근대화 되면서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떼어냈다. 그것을 개인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공동체는 낡은 것, 개인의 자유를 옭아매는 것이라는 선전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파편화된 개인이 탄생했고, 공동체는 무너져 갔다. 무너져 간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앞만 보고 달렸다. 주변의 사람들은 함께 가는 사람들이 아닌 제쳐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행복을 추구했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왜지? 이런 의문이 생겼고, 여기서 경쟁과 이윤으로만 점철된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생활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사회에도, 지구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시,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연대하고 소통하는 동물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공동체들이 생겨났고, 그런 공동체를 확산시켜 나갔다.

 

이 책은 그런 공동체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청소년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쓰인 글인데, 공동체의 뜻부터 시작하여 전통적인 공동체, 지금의 공동체, 공동체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협동조합에 대해서 살피고, 이런 공동체에 대한 다른 시각도 소개한다.

 

공동체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공동체에도 수많은 난관이 있다는 것, 해체된 공동체도 있다는 것, 지금 공동체는 다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 그러나 공동체는 늘 위기를 겪어왔고, 그것을 극복해 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 청소년들은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사회가 변할 수 있으니까. 나만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잘사는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공동체이기에, 위기 상황에 공동체가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머리를 맞대고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것.

 

우리나라 공동체, 협동조합 운동 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협동조합 운동도 소개해주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맺음말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가지 기둥은 권력과 통치와 지배의 논리로 무장한 국가 시스템, 그리고 이윤과 경쟁과 효율의 논리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입니다. ... 이에 맞서, 나아가 이를 넘어서서, 이윤이 아닌 호혜와 협동을 경제 규칙으로 만들고, 경쟁이 아닌 연대와 공생을 사회 원리로 만들며, 지배가 아닌 자율과 자치를 정치 규범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공동체 운동입니다. (286-287쪽)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면 바로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공동체는 한번에 훅 하고 오지 않는다.

 

공동체는 각 개인의 꾸준한 노력으로 오게 된다. 밑에서부터, 작은 것에서부터, 지속적으로 행해질 때 강한 힘으로 어느 순간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학생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제시해주고 있다.

 

성공해도 좋고, 실패해도 좋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는 것, 무언가를 해보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며 인공지능 운운하며, 인간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고 하는 이 때, 인간이 설 자리를 찾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이 살 자리를 찾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답은 '공동체'에 있다.

 

이런 공동체에 대해서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동체의 앞날은 밝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아마도 이 점을 생각했으리라.

 

이제는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주의가 필요한 때다. 그 점을 명심하고, 이 책을 읽으면 우리 사회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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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5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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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5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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