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이시카와 이쓰코 지음, 손지연 옮김 / 삼천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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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 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이제 알겠다."

 

이 말이 떠오른다. 이제야 피눈물의 의미를 알았단 말인가? 자신의 행동으로 또다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정작 그 피눈물을 닦아줘도 시원찮을 사람이 그 눈에 피눈물을 나게 해 놓고.

 

광화문에 나가 보았다. 일본 대사관 근처, 소녀상이 있다. 촛불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이 소녀상과 사진도 찍는다. 그 옆에는 천막이 있고 젊은이들이 소녀상 곁을 지키고 있다.

 

겨울이 되니 소녀상에 목도리를 둘러주고, 장갑을 끼워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소녀상은 추워 보인다. 사람들의 훈기가 소녀상 주변을 감싸고 있지만, 소녀상을 지켜주어야 할 정부가 지켜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소녀상이 언제 어디로 사라질지 몰라 그 곁에 천막을 치고 지키는 젊은이들, 그들을 따뜻하게 정부가 감싸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촛불들이 소녀상의 목도리, 장갑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일본 정부와 협상을 했다고, 그것이 협상인지도 의문이지만, 소녀상을 감싸줄 우리 정부가 앞서서 소녀상을 힘들게 하고 있다. 소녀상을 힘들게 하는 정부의 수장, 그 정부를 이끌었던 사람, 일본과의 협상을 주도했던 사람이 자기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고 한다.

 

'피눈물'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다. 그가 한번이라도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던 분들의 눈물을 닦아준 적이 있던가. 아니 그들의 눈물을 바라본 적이라도 있던가. 그분들이 피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혹시 일본정부와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부는 민간인들이 저지른 일일 뿐이고, 일본 군부가 관여한, 일본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에 대해서 알기는 하는지 의문이다. 진실을 알고 있다면 일본군 위안부가 피해자로 있는 나라의 수장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요즘 떠돌고 있는 '피눈물'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일본군 위안부로 어린 나이에 끌려가 온갖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지내다 일본이 패망한 뒤에 고향에 돌아와서도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

 

이보다 더 돌아오지도 못한 사람들, 그들의 원한이 쌓이고 쌓여 어떻게든 풀어줘야 하는데, 그것을 풀어줄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현실.

 

오히려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이제는 몇 분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들의 눈에 또다시 피눈물이 나게 하고 있다.

 

일본인이 쓴 책이다. 양심적인 일본인들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지니고, 이를 잊지 않고 사죄하고 일본 정부가 책임지게 하려는 사람들도 꽤 있다. 비록 '아베'라는 일본 총리가 군국주의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 일본에서는 양심적인 사람이 꽤 있다.

 

소녀들의 편지글로 시작한다. 위안부에 대해 처음 알게 되는 일본 소녀들, 자기 나이 또래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위안부 얘기를 듣고, 그것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내용으로 책은 전개된다.

 

르포와 편지글이 주를 이루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여기에 시가 등장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이런 비극이, 이들이 흘려야 했던 피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고 있다는 것에 분노를 넘어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책을 읽어가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 진실에 직면했을 때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음도.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접하고 점점 변해가는 학생들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진실은 사람을 움직인다.

 

그런데 가해자인 일본에게 피해자인 우리나라 정부가 강하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를, 그리고 책임을 질 것을 요청해야 하는데, 겨우 돈 몇 푼에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했으니, 위안부 분들의 눈에 더 많은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다.

 

이 책 역시 일본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단다. 일본 우익들에게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런 책은 아이들이 읽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일본 인터넷 서점에 이 책에 혹평이 실려 있다는데... (243-234쪽 참조)

 

이런 혹평이 실렸다는 것은 그만큼 이 책이 많이 읽힌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저자 역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고 계속 자료 조사를 하여 개정판을 냈다. 이 책은 그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일본에서만 이러겠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일본군 위안부에 관심을 가지고 낸 책, 또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소녀상은 있다.  (윤정모의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선삐였다와 영화 '귀향' 등)

 

소녀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사죄하고 제대로 책임을 져도. 왜냐하면 소녀상은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알려주는 각성제이기 때문이다.

 

제발 자기 눈에서 피눈물 난다고 징징대지 말고,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마음을 지니고 행동했으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가볍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생생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하는.

 

우리나라 학생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무심한 정치인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도대체 학자라 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 이 책 좀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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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야록 -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개화와 망국의 역사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2
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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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 보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鳥獸哀鳴海嶽瀕 / 槿花世界己沈淪 / 秋燈掩券懷千古 / 難作人間識字人) 

 

첫구의 瀕자룰 대부분 嚬자로 쓰고 있던데, 이 책에서는 이 瀕자를 쓰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 뜻을 보면 이 嚬자가 맞을 듯한데... 457쪽.)

 

이게 남 얘긴가? 먼 과거의 이야기인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전 한 지식인이 죽기 전에 쓴 시인데, 이 시가 지금도 우리 가슴에 남아 있는 까닭은?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소위 식자(識字)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마치 자신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이 지내고 있으니.

 

소위 글자를 안다고 하는 사람, 배운 사람, 지식인의 책무란 무엇인가? 사회가 이 지경이 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견제하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것이 글을 아는 사람의 힘듦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는 상대를 비판하는 지식인은 많이 보아도 이 지경까지 이른 책임을 지겠다는, 또는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선언을 한 지식인을 보지 못했다.

 

지식인들이 지식팔이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그들에게 글을 아느 것에 대한 책무를 다시금 일깨워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날들이다.

 

이 지점에서 황현의 매천야록은 절절하게 다가온다. 시골에 내려가 살고 있던 선비, 나라에서 그다지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없는 선비가 그럼에도 자신이 선비로 글을 읽고 지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나라가 망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막지도 못한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지식팔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책임은커녕 나라의 혼란을, 나라의 망해감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이용한 지식팔이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들이 지금까지 호의호식하면서 살고 있으면서 역사에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있으니.

 

그러나 그 와중에도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꼭 있다. 황현도 마찬가지다. 그는 고종1년부터 대한제국이 망하는 날까지의 역사를 기록해 놓기로 한다.

 

후대에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 기억 속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 미래를 살아가는 방법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 하나하나는 지식인의 책무를 이행한 것이 된다.

 

그리고 합방이 된 후, 그는 자신의 글 아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위에 언급한 절명시는 그 중의 일부다.

 

시골에 내려가 신문이나 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한 책인데, 사실관계가 다른 것도 있긴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책이다.

 

정말 지금 이런 모습이 과거에도 있었음을 읽게 되고 씁쓸한 마음을 지니게 되는데, 구한말이라고 하는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한 지식인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그가 기록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성찰하여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방대한 내용을 편역자가 중요한 사항으로 발췌하여 정리해 놓은 책이기 때문에 읽기도 편하고, 역사적 사실을 간략하게 잘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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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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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제목을 보면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게 나랴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지금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아마도 긴 세월을 또다시 한탄 속에서 보내야 하리라.

 

그러니 '리셋"이란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는데...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리셋은 현실부정에 불과하다. 무언가 새로움을 추구한다기보다는 현실이 너무도 암울하니, 차라리 이런 현실을 싹 엎어버리고 싶다는 말이 바로 "리셋"이다.

 

그러므로 "리셋"은 "혁명"과는 다른 개념으로 쓰인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리셋"은 부정적인 의미로 "혁명"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리셋과 혁명은 다르다. 순전히 이념형적인 측면에서 볼 때, 혁명가들이 민중 혹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리셋은 철저한 파괴를 주장한다. 혁명이 '천년왕국'적이라면 리셋은 '허무주의적 종말론'에 가깝다. ... 혁명이 하나의 '역사성'으로서의 계급투쟁을 꿈꾼다면 리셋은 역사 그 자체의 종식을 원한다.  181-182쪽.

 

이 말에 의하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리셋"을 꿈꾸는 사람들은 너무도 현실이 힘들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살기 힘드니 나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망하자고, 같이 망하면 덜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에 리셋을 주장하게 된다.

 

결국 이런 리셋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겐 희망이란 없는 것이다. 희망이 없다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존엄을 잃은 곳에서는 더이상 희망은 없다. 상호 연대성도 없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의도적 노력에 의해 '가까스로'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것은 존엄과 안전이다. 167쪽

 

이렇게 지금까지 이루어왔던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노력들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한 투쟁을 통해서 확보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조금만 부주의하거나 무관심해지면 인간의 존엄과 안전은 쉽게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국가로부터 안전한가? 라고 질문을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경주 지진으로 대표되듯이 자연재해로부터도 국가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으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도 잘 지켜주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면에서는 아예 벼랑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

 

이렇게 벼랑으로 내몰린 우리들은 결국 각자도생의 길로 가는데, 각자도생의 길은 공동체적 해결을 부정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개인적인 노력과 사적인 노력, 공동체적인 노력과 공적인 노력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는 지금 공동체적인 노력이나 공적인 노력은 사라지고, 오로지 개인적인, 또는 사적인 노력만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인데, 개인적인 노력에는 결국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는, 사회적 인간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존재의미를 부정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사적인 노력은 어떤 일을 사적으로 해결하는 모습, 그 사적인 것에는 자신의 현재 조건이 바탕이 되므로, 이는 차이와 차별로 나타나고, 이런 사적인 노력을 중시하다보면 공적인 노력은 아예 부정하게 되는 현실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리셋'을 이야기하는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사적인 노력만을 이야기하는 사회인 것이다. 전혀 평등하지 않은데, 평등을 가장하여 책임을 개인의 노력 여하로 전가하는 것, 결코 출발점이나 조건이 같지 않음에도 철저하게 개인으로 해체하여 책임을 묻는 것.

 

그러니 약한 개인은 자꾸만 뒤쳐지고 밀려나고 쫓겨날 수밖에 없음에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도 안 된다는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데, 지배층에서 이런 무력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을 통치하는데 가장 유용한 방법이 무력한 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러이러한 힘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에 빠지면 그 다음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진다. ... 한국의 지배계급은 말과 글의 힘을 박살내고 무기력을 통해 통치한다. 175쪽.

 

이런 무력감으로 인해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행위보다는, 함께 망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리셋'을 주장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셋'은 부정에만 머문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혁명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이 확 바뀔 것이라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그런 방법은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이종영의 논의를 빌려와 혁명을 두 과정으로 나누고 있다. 확 변하는 혁명I과 그 혁명을 이루어가는 과정인 혁명II로 이야기한다. 이 혁명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데 이 책의 장점이 있다.

 

혁명은 어떤 순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혁명의 과정에 혁명이 내재해 있음을, 그런 혁명의 과정이 들어있지 않은 혁명은 '리셋'과 다름 없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왜 이 과정이 중요할까? 그것은 이 구절에서 알 수가 있다.

미리 경험해 본 자만이 '이후'를 준비할 수도 있고, 맞이할 수도 있고, 살아갈 수 있도 있다는 점이다. 살아보지 않은 자는 살아갈 수 없다. 살아봄의 경험이 선순환을 만들 수도 있고, 살아보지 못함의 경험이 완전히 폐쇄적인 악순환의 고리로 빠지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전환'의 가능성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이후'를 미리 살아볼 수 있는가 하는 데 달려 있다.  188쪽.

 

이 말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여기에서 혁명을 살아야 한다. 혁명을 내 삶에서 경험하지 않으면 혁명이란 없다. 즉, 내가 춤출 곳을 영원히 찾아 헤매는 곳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내가 춤추고 있어야 한다.

 

춤출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춤추는 곳을 점점 확대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혁명이다. 그런 혁명은 어떤 순간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리 힘든 순간이더라도 웃음을 영원히 잃지는 않기 때문이다.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한다는 것이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면, 나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연대할 수 있는 때가 오게 된다. 그런 때를 만드는 것,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변하고, 다가가야 한다.

 

이는 내가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말로 기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존재는 나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함께 망하자고 하지 않는다. 함께 살자고 한다. 함께 가자고 한다. 내 말과 네 말이 만나 새로운 말을 만들게 한다.

 

우리는 말들을 통하여 관계를 형성해가기 때문이다. 이 때 말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하여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되어 가는 말이다. 이 말들을 매개로 우리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 사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똑똑한 소비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의 말을 새로운 제안으로 돌려줄 아는 '협력의 기술자'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활성화되고 보호받고 안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 시대와 사회에 대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안전을 위해 활동을 중지하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바로 활동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우리 존재의 사활이 걸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9쪽.

 

이렇게 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그 관계에서는 경쟁보다는 협력이, 증오보다는 사랑이, 절망보다는 희망이 싹튼다. 이 상태에서는 '리셋'을 꿈꾸기보다는 '혁명'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된다.

 

나만이 아니라 함께... 지금 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다. '리셋'이 아닌 '혁명'을 할 수 있는, 그런 관계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우리는 '혁명'의 순간들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내 곁에 있는 존재들과 함께... 그런 존재들을 우린 시민이라고 한다. 동료 시민, 시민 동료.

우리 모두는 모든 곳에서 동료 시민이다. 우리가 동료로서 평등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서 있는 법이 같다는 것을 말한다.  212쪽,

두 번째로 동료 시만이 된다는 것은 그들을 나와 같은 행위의 주체, 특히 말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213쪽.

 

이런 동료 시민들... 나는 하나의 점이다. 하나의 점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내 곁에 있는 사람도 역시 하나의 점이다. 하나의 점과 점이 광장에서 평등하게 만난다. 이 평등한 만남 속에서 점은 선이 된다. 선들이 모여 면을 이룬다. 거대한 면들이 함께 입체가 된다.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그 세상은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고 절규하는 모습에서 이 책의 뒷표지에 있는 말처럼 '멈춘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다. 하나의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입체로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갈 때다. 그러므로 이 책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나왔다. 세상을 바꿀 가장 좋은 때에 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됐는지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있지만, 문제가 밝혀지면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으니... '리셋'이란 말로 '혁명'이라는 답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혁명'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너무 과격하다고 느낀다면 '개혁'이라고 하자. '변화'라고 하자. 아니면 '진보'라고 하자.

 

우리는 지금 바로 이런 순간에 서 있으니까.

 

덧글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에 응모하여 책을 받고 쓴 서평이다. 지금 상황과 관련지어 제목을 보면서 꼭 책을 읽고 싶었다. 비록 읽지 않고 생각했던 '리셋'의 개념이 내 생각과는 달랐지만, 제목에서 '리셋'이라고 한 것을 '혁명이나 변화, 진보'로 바꾸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다 망하자가 아니라, 함께 살자고 외칠 때이니까... 또 우리는 지금 광장에서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이 책 흥미롭게 잘 읽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다. 생각거리. 말할 거리. 말들과 말들이 만날 수 있게...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 가슴에서 싹을 틔워 행위로 나아가게 하는 말들, 그런 말들의 만남.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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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의 배신 - 청년을 거부하는 국가 사회를 거부하는 청년
조한혜정.엄기호 외 지음 / 창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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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럴 줄은 몰랐다는 말을 절로 하는 시대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하다는 심정이 들 정도의 시대다.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전국에서 거의 200만의 사람들이 모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배신의 정치. 국민을 배신하고 특정한 몇몇 개인에게만 이익이 돌아가게 한 그런 배신.

 

눈 뜨고 코 베인 식으로 국민들은 엄청난 배신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이런 배신이 예전부터 우리 사회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청년들에 대한 배신이다.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기성세대는 다음에 올 세대들이 제대로 성장하게 해야 하고, 청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적어도 청년들이 생존의 위협없이 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게 할 의무가 기성세대에게 있다. 그리고 청년들은 당연히 기성세대들이 그런 환경을 만들었으리라 생각을 한다. 그것이 인류가 생존해나갈 기본적인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에 투자를 하지 않고, 그들이 제대로 자라게 하지 않은 종족은 계속 유지가 될 수 없음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이런 질문을 하면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힘들다. 지금 청년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받는 순간부터 이들은 무한경쟁체제에 들어서고, 승자독식을 경험하며, 협동보다는 경쟁을 먼저 몸으로 익히게 된다. 그러나 교육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 들어선 순간 대다수의 청년들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빚더미에 올라 앉아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요즘 유행하는 '금수저, 흙수저'란 말이 나오는데, 돈 좀 있는 집 자식들은 학비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지만, 돈이 없는 집 자식들은 학비를 충당하느라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을 내기도 힘들어진다.

 

게다가 엄청나게 비싼 학비로 인해 빚은 점점 더 늘어나게 되고, 이들이 기껏 대학을 마치고도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을 가능성은 낮다. 학점이 경제력에 비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무한경쟁을 실현하는 직장에서는 정규직이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적 노동현실은 사람을 기계처럼 일하게 만든다. 몇 년 일하다보면 자신의 몸과 정신이 소진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청년들이 셀 수 없이 많게 된다. 삶은 없고 오로지 처절한 생존만이 남아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연애, 결혼, 출산은 남의 이야기가 된다. 삼포세대란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삼포만이 아니다. 오포, 칠포에 이어 아예 N포 세대란 말까지 나온다.

 

평생을 생존을 위해서 이렇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외국으로 나가자는, 이런 '헬조선'을 벗어나는 '탈조선'을 하자는 청년들이 나온다. 그러나 '탈조선'을 한 그들 역시 생존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즉 '탈조선'에서도 '금수저, 흙수저'의 처지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다.

 

이건 배신이다. 청년에 대한 배신. 우리 미래에 대한 배신. 이런 사회에 청년들이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걸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들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사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그런 청년들이 너무도 많은 현실, 그게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 책에서 그런 청년들의 모습을 너무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암담한 청년들의 삶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청년들에게 어떤 희망도 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도 볼 수 있고.

 

이건 청년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노력을 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들은 정말로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노력을 한다. 그래도 이 사회에 적응하려고.

 

하지만 이런 청년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네 노력이 아직도 부족하다거나, 너는 능력이 없다는 조소와 냉대 뿐이다. 정말 '헬조선'이다. 지옥이다. 배신만이 난무하는 사회다.

 

배신의 시대임을 온몸으로 느끼는 세대들이 바로 청년세대들 아닌가. 이들이 쓰는 말 중에 그 많은 '벌레들(䖝)'은 이런 시대를 언어로써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청년들의 암담한 현실만을 이야기하면 다가 아니다. 그러면 안된다. 이렇게 현실을 적시하는 것은 현실을 바로 인식하게 함이다.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청년들만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바꿔가야 배신의 사회에서 신뢰의 사회로, 경쟁의 사회에서 협동의 사회로, '헬조선'에서 '헤븐조선 또는 헤븐 마을'로 바꿔야 한다. (영어와 우리말이 붙은 용어가 만들어졌는데... 사회에서 쓰는 말이니 그대로 쓴다. 지옥조선, 천국조선, 천국마을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니...)

 

어떻게? 이 책의 말미에 몇 가지 방안이 나와 있다. 이미 시작하고 있는 청년들, 기성세대들도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을 단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한쪽에서 한탄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새로운 사회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그런 방법들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간단히 몇 가지만 이야기하면 우선은 기본소득으로 통칭될 수 있는, '청년 국민/시민 배당제도'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전국민 기본소득이 당장 실현하기 힘들다면 우선 청년들에게만이라도 기본소득을 배당하자는 것이다. 이들이 이 소득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현재를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성남시와 서울시에서 어느 정도 시도하고 있는데, 정작 이를 지원하고 지지해주어야 할 정부에서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런 지자체의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청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돈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돈은 기본일 뿐이다. 이것과 더불어 '자치/협치적 삶의 공간 만들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함께 삶... 그래서 '헤븐 마을 만들기'를 하자고 한다. 지옥이 아닌 천국. 환대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 만들기. 그렇게 살아가기.

 

이런 공동체 만들기를 위해 교육제도를 바꾸자고 한다. 교육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경쟁과 적대의 교육에서 협동과 환대의 교육으로, 진정한 인간적 만남을 이루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그 방편으로 '갭이어' 제도와 '전환학년제'를 소개하고 있다.

 

적어도 한 해 정도 자신을 돌아볼 또는 그냥 쉴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여행을 해도 좋고, 그냥 쉬어도 좋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좋고... 마음 놓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는 것. 이와 비슷하게 운영되는 사례가 있지만 아직 전면적으로 실시는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제도들이 전면적으로 실시될 때 배신의 사회에서 믿음의 사회로, 그래서 절망의 지옥의 나라에서 희망의 천국의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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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폭력 검은 저항 - KKK의 탄생과 흑인 민권 이야기 생각하는 돌 16
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김충선 옮김, 오찬호 해제 / 돌베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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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파농의 책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떠올랐다. 하얀 폭력, 검은 저항이라니... 분명 인종문제와 관련이 있는 책이라는 생각.

 

작은 제목에 KKK의 탄생과 흑인 민권 이야기라고 하니, 오호라 미국 이야기군.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책이군 하는 생각. 백인우월주의자들과 그에 맞서는 흑인의 이야기를 파농의 책, 백인을 추종하려는 흑인을 비판한 책에 빗대어 제목을 붙였다.

 

원래 영어식 제목은 이게 아니었을텐데, 번역을 우리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붙였다. 파농의 책들이 이미 읽힌 상태에서 흑인들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데는 이만한 제목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파농의 책은 흑인을 중심으로 흑인의 내면에 숨어들은 백인성 추구를 비판하는 내용이라면, 이 책은 백인들이 흑인들을 어떻게 차별하고 억압했는지를 중심으로 다룬다.

 

흑인 민권 이야기라고 하지만, 흑인들이 인간으로 대접받기 위해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가 중심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는 영어 원래 제목대로 KKK라는 단체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가 중심이다.

 

남북전쟁에서 퇴역한 군인 여섯 명이 모여 어느날 우리 모임 하나 만들자는 말에서 만들어진 단체. 시작이 이렇게 우연에서 출발했지만, 이들의 우연은 곧 필연이 된다. 이름이 참 거창하겠단 생각을 하지만, 이 단어는 겨우 '모임-모임'이라는 뜻이라니..

 

이렇게 노예제를 찬성했던 남부에서 흑인들이 자신들과 동등해지기를 바라지 않았던 백인들이 흑인들의 권리가 신장될수록 자신들의 권리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미국 남부 백인들은 어떤 두려움을 느꼈으리라. 이 두려움이 이들을 뭉치게 만들고, 폭력적으로 만든다. 힘으로 자신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자신들은 우월하다는 감정까지 가세하니, 흑인들이 자신들과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흑인들이 재산을 가진 것도, 교육을 받는 것도, 투표를 하는 것도, 또 흑인들에게 이런 권리를 알려주는 백인도 그들은 용납할 수 없다.

 

그 결과 그들은 폭력 행위를 벌인다. 혼자서는 하지 못하던 일을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저지른다. 자신들의 나약함을 가면과 집단 속에 숨겨두고 폭력으로 해소를 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하얀 폭력이다.

 

흑인들에 대한 테러, 흑인을 도와주는 백인들에 대한 테러. 남북전쟁에서 노예해방을 지지하는 북군이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남부 흑인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KKK의 폭력 앞에서 이들은 속수무책 당하기만 한다. 간혹 고소를 해도 백인은 무죄로 풀려나고 흑인들만 무고죄로 기소당하고 구속당한다. 게다가 KKK에 의해서 목숨을 잃기도 하고.

 

결국 연방정부가 개입해 사태가 어느 정도 무마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흑인들의 희생이 많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희생될 줄 알면서도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고 묵묵히 그곳에서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 그 사람들에 의해서 흑인 민권은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흑인과 백인의 구분은 불필요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시키는 일에서 흑인이냐 백인이냐 하는 인종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고, 그들이 자유민으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얻어내고 지켜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비록 전쟁에서 패했다고 하더라도 남부의 백인들 중 처벌받은 사람은 극히 드물고, 이들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흑인들을 예전처럼 지배하려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적 안정을 원하던 북부의 정치인들이 미적거린 데서 흑인들은 몇 년 동안 극심한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비록 희생을 치렀더라도 그들은 이제 자유민의 삶에서 노예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런 자각, 이런 생활이 지지자들을 불러 모았으며, 스스로의 자각과 활동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하나씩 하나씩 찾아갈 수 있었다. 이것을 검은 저항이라고 한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간혹 폭력적인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비폭력 저항을 한다. 떠나라는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집을 지키는 것, 학교에 가지 말라는 말에 학교에 가는 것 등 폭력이 아닌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일들을 그냥 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려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저항이 된다. 이렇듯 검은 저항에는 비폭력이, 인간의 존엄이, 인권이 담겨 있다.

 

그것이 노예해방선언이 이루어진 다음에도 무려 100여 년의 시간이 더 걸렸을지라도.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완전한 인간적 존엄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들도 똑같은 인간임을 명심하게 한다.

 

이 책을 우리 사회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비단 미국이 아니라 우리 역시 이런 차별의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은지.. 어쩌면 미국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차별을 우리도 지니고 있지 않은지... 파농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노란 피부, 하얀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책, 바로 이 책이다. 다시금 미국에서 이런 차별주의가 일어나고 있다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한 번 자유민이 된 사람은 다시는 노예가 될 수 없듯이, 이미 신장된 인권은 후퇴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이 자리에서 확보된 인권이 후퇴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여기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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