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망각
김용진.박중석.심인보 지음 / 다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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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라면 제목을 아마도 '친일과 기억'이라고 붙였겠지. 친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그런데 '친일과 망각'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니, 아마도 그 의미는 친일의 주체들이 (이들 중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미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기억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반성이나 책임을 질 수도 없게 되었다) 또는 그 후손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망각' 쪽에 서 있지 않나 하는 마음이 작동했으리라.

 

우리 사회에서 반발을 일으키는 말들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두 단어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친일'이고 하나는 '빨갱이'(종북이니 좌파니 다 같은 의미로 이 말에 포함시킨다)다.

 

'친일'이라는 말이 주로 보수 쪽의 반발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말이라면, '빨갱이'라는 말은 주로 진보 쪽의 반발을 많이 불러일으킨다. 아마 상대방을 비방하는데 이 말들보다 좋은 말은 없을 터. 또한 그들이 처한 위치가 그만큼 다르다는 말도 될 것이고.

 

그런데 과연 이 말들이 실체가 있느냐 하면 그게 참 모호하다. 실체 없는 말들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기도 한다. 또 한 때 이 말들이 막 나왔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쏙 들어가 버리고 만다.

 

'친일'은 분명 실체가 있는 말이어야 하는데.... 당사자들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고, 이제는 자식 정도가 아니라 2대, 3대 후손들을 대상으로 너희 조상이 친일을 했다고 해야 하니, 조상의 잘못을 후손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식으로, 왜 나에게? 난 아무 상관도 없는데? (지금 자신의 자리를 잘 돌아보면, 아무 상관도 없는데... 라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텐데)라는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후손들 가운데 조상의 친일을 인정하는 사람도 드무니... 법적 소송을 통해서 자신의 조상이 친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려는 일까지도 하고 있으니... '친일'이라는 말이 정확한 실체로 다가오지 않고 상대를 비방하는 말로 전이되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빨갱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건 아예 상대방을 찍어누르려고 쓰는 말이니, '친일'이라는 말과 같은 위상에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말이다. 실체를 찾기 힘든 말.

 

그러니 책 제목에서 친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관점이 '망각'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잊고 싶고, 다시 언급되지 않았으면 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는 '친일'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다. '기억'을 하고 있어야 '용서'를 할 수 있다. '망각' 속에 함께 빠져 있다가는 '용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망각' 속에서 허우적 댈 뿐이다.

 

이 책은 해방 70년을 맞이하여 친일 문제를 다룬 방송에서 '취재한 내용 중 핵심적인 사실과 다큐멘터리에서 제대로 담지 못한 내용, 취재 뒷얘기 등을 엮어서' (9쪽) 낸 것이다. 따라서 <친일과 망각>이라는 방송을 본 사람들에게는 그 방송을 더 풍부하게 하는 책이 될 것이고, 방송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친일의 잔재들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는 책일 될 것이다.

 

친일파 후손들을 추적하여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업, 교육 수준, 경제적 조건 등을 살펴보고 있다. 결과는 우리가 추측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면도 있기는 하지만 - 이는 책에도 나오는데, 친일파들의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권력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 후손이 가장 많이 택한 직업이 의사, 교수 등이라는 사실 - 대체로 우리의 추측과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직업들이 대체로 좋으며,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고, 경제적 수준 역시 상류층에 해당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 이것은 그들이 직접 친일을 한 조상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더라도 그가 물려준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는 쉽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독립운동가들의 자손들은? 이들과 거의 대칭이 되는 삶을 산다고 보면 된다. 직업도 변변찮고, 교육 수준도 낮으며 - 하다못해 대학 중퇴 수준의 학력이 높은 편에 속한다 - 경제적으로도 빈곤 수준에 가깝다는 사실.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출발점이 후손들의 삶을 결정해 주는 주요 요소로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이건 문제다. 출발점이 다르면, 그 출발점을 고쳐주는 역할을 국가가 해야 했음에도, 하지 못 했음을 - 안 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듯, 그래서 '친일'을 직접 친일을 한 당사자들과 그 후손들이 '망각' 했지만, 이것을 바로잡아야 할 나라도 '망각' 했음을, 그것도 '의도적으로 망각' 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게 이 책이 지닌 의미다. 친일파들의 후손들에게 무슨 연좌제를 씌워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출발은 이미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그것을 기억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용서'가 나오고, '화해'가 된다. 바람직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처음이 시작도 안 되고 있는데... 이 <친일과 망각>이라는 방송을 통해서, 또 이런 책을 통해서 그 처음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망각' 속에 완전히 빠지지 않았음을... 그래서 '친일'이라는 말이 보수층을 겨냥하는 화살로 아직도 작동하고 있음을, 이것이 화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정'이 우선되어야 함을... 최소한 '기억'해야 함을.

 

특히 후손들은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접한 조상들의 모습과 사회적으로 판단되는 조상들의 모습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조상이, 공적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 수도 있음을 먼저 생각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다음이 시작될 수 있다.

 

여전히 친일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무슨무슨 위원회들 해체된 상태고, 아직도 정확히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니...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친일'은 실체가 있는 활동이었으니... 그 실체를 기록으로 남겨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 '망각'의 반대 편에 서 있어야 하는 존재들, 바로 '기억'의 편에 서 있어야 할 존재는 바로 우리들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상기시켜준다.

 

덧글

 

의문 1. 153쪽. 친일파 정교원에 대한 설명 중 ... 그는 1944년 3월 중일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1940년 4월 29일자로 욱일중수장을 받았다.  -> 년도가 앞뒤가 안 맞는다. 반민규명위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를 볼 수 없는 나로서는 앞뒤 년도 중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의문 2. 227쪽. 일제 강점기 시기, 누군가는 일제에 종속적으로 협력했고, 또 누군가는 일제에 저항했으며, 어떤 이들은 반일도 극일도 아닌 '회식지대'에서 살아가기도 했다. -> 이건 누가 봐도 오타겠지. 회식지대... 회색지대

 

아쉬운 점. 책에 부록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 (줄여서 반민규명위)에서 발표한 1006명의 명단을 실어줬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활동을 요약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분야별 명단만이라도.  

 

마음을 울리는, 너무도 슬픈 사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시... '아들에게' (189쪽) 독립운동으로 평생을 바친 분이 이승만에게 쫒겨나고... 그 아들 둘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죽고, 셋째 아들이 자동차 운전으로 부친을 부양하는 모습. 그 아들에게 준 당당한 시. 그러나 우리는 지금 심산 김창숙을 더 존경하는가? 아니면 성균관대를 인수한 삼성 일가를 더 선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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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흔적을 걷다 - 남산 위에 신사 제주 아래 벙커
정명섭 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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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고 난 지 70년이 지났다. 70년 대충 따져도 두 세대가 바뀐 세월이고, 강산은 무려 7번이나 바뀌어야 한 세월이다. 이것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기간의 두 배를 독립된 국가로 지내오게 된 세월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프랑스를 예로 들면 그들은 독일치하에서 몇 년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전쟁이 끝난 다음에 독일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발빠르게, 또 치열하게 움직였다. 7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에 나치 독일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아니라는 답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프랑스는 몇 년 안 된 나치 독일의 지배에서 이루어진 잔재들을 깨끗이 청소하려고 했는데... 우리는 무려 36년이라는 (정확하게 34년 11개월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통칭 우리는 36년이라고 한다) 세월을 일제 지배에서 지내왔으니... 얼마나 많은 잔재들이 남아 있겠는가.

 

그러므로 프랑스보다 더 치열하고 끈기있게 일제 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엉뚱하게 일제가 우리나라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식의 억지주장은 좀 아니라고 보고)

 

가장 중요한 것이 우선 인적 청산이었을텐데...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독립운동가들이 감옥에 가기도 하고, 그 자손들은 힘들게 살고,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그 자손들 역시 대대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현실이다.

 

인적 청산이 안 되었으니, 나머지들이 제대로 청산되었을 리가 만무하다. 기껏해야 보존하여 기억해야 할 것들을 그냥 없애버리거나 또는 망각 속에 묻어버리고 만 경우가 허다하다.

 

어디에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고. 최근에야 많은 학자들과 사람들이 일제의 잔재를 찾아 보존하고 기억할 것과 없애버려야 할 것들을 구분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단적인 예가 요즘 벌어지고 있는 위안부 배상금 문제... 일본이 배상금이라는 용어를 절대로 쓰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10억 엔을 받아 왔는데... 일본이 왜 그 돈을 주겠는가? 위안부 제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인권말살 정책이었음을 시인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직도 살아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는데... 정부는 이 문제를 명확하게 단도리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는데...

 

눈에 보이는 현안마저도 이렇듯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고 있는 실정에서 무슨 일제 잔재를 청산하겠는가. 인적 청산에 이어 제대로 된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일제의 잔재를 껴안고 살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나라 곳곳에 일제 잔재가 있다고 하는데... 여러 번 가 본 곳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하고 지나쳤던 곳들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이 책을 보니, 부끄럽게도.

 

이렇게 역사의식이 없어서야 하면서 나를 자책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꼭 나만의 문제이겠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처럼 이렇게 모르고 지나치는 일제 잔재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서울 한복판에서부터 제주도까지 일제 잔재는 아직도 남아 있다. 남아서 일제시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일제시대를 기억 속에서 밀어내 버리고 있는 중은 아닌지...

 

이 책에 나오는 일제 잔재들은 주로 관공서라든지, 우리나라 농민들을 착취했던 지주들의 집, 유물, 그리고 군사시설들이다. (구체적인 흔적들이나 장소는 책을 읽거나 찾아보면 될 듯)

 

특히 서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군사시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만큼 일제는 우리나라 곳곳에 자신들의 군사시설을 남겨 놓았고, 이 군사시설이 나중에 미군에 의해 또 우리나라 군에 의해 유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덕분에 일제의 흔적이 남아 그 시대를 증언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 증언들이 학자들에게만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데... 지금 모습은 일제의 흔적이라는 것들은 학자들의 공부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우리는 현대사의 비극을 제대로 공부하고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은 반만 맞는다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뿐만이 아니라 현재도 없다고...

 

이 말이 가슴에 팍 와 닿았다. 그래 역사를 잊으면 현재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일제의 흔적을 걷는 것이 아니라, 일제의 흔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차라리 이 책의 제목처럼 일제 잔재를 청산해서 일제의 흔적이 역사의 기억으로만 우리에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일제의 잔재 속에서 헤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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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6-10-04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일제의 잔재나 흔적이 우리 한반도 곳곳뿐만 아니라 한국인 마음 속에까지 너무나 넓고 깊숙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일제의 잔재나 흔적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죠. 저는 우리 한국인들이 일제 식민지적 의식 구조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고 봅니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식민지 노예의 의식 구조 속에 아직도 갇혀 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한국/한국인들이 진정으로 자주독립하는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위 글 가운데 《그리고 아직도 살아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는데... 정부는 이 문제를 명확하게 단도리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는 문장 속에 일본어에서 온 외래어가 있는데요. 아시고 쓰신 것인지요? 즉 많은 사람들이 “단도리”를 우리말로 잘못 알고 있어서 한번 말씀드려 보는 것입니다만...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네요.

단도리(だんどり, 段取り)는 원래 일을 해 나가는 순서, 방법, 절차 또는 그것을 정하는 일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최신판에서 삭제하고 채비, 단속, 준비 등으로 순화한 단어라고 합니다. 혹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kinye91 2016-10-04 10:32   좋아요 0 | URL
아하, 감사합니다. 부끄럽게도 `단도리`라는 말이 일본 말에서 온 줄 모르고 썼어요. 우리말에 일본말의 잔재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 가운에 그런 말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아요.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가져야 하는데, 아직은 그게 잘 안되고 있어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말 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암살 - 왜곡된 현대사의 서막
박태균.정창현 지음 / 역사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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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면서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나서 이제는 제 나라를 세울 때인데, 이 때부터 일제로부터도 암살당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제 동포들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원통했을까.

 

그렇게 우리나라 현대사가 시작되었고,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서막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말해주고 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자는 말에는 이들의 노력을, 죽음을 배제하자는 말이 포함되어 있을텐데,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정치 신념을 펼치려 했던 사람들을 우리나라 역사에서 괄호치려는 그런 모습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더 한심하다고 생각한 것은 제 동포의 손에 죽임을 당한 지도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철저하게 밝혀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기본적인 사실들만이라도 밝혔어야 하는데, 당시 경찰과 법원은 도대체 한 일이 없으니...)

 

오히려 그들이 죽음에 경찰이 관여되어 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고, 더 높은 선에서도 그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음에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도 경찰, 검찰, 재판부에 대한 불신이 이때부터 싹트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하는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인은 다섯 명이다. 암살 당한 순서대로 하면 '현준혁,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 구'다.  

 

이들을 다시 인지도 순으로 배열하면 김구>여운형>송진우>장덕수>현준혁 순이 아닐까 하는데...

 

해방직후에 암살당한 현준혁은 사회주의자라는 점에서, 또 북한에서 암살당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고, 그의 암살이 남한의 정치계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고, 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지 않다.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머지 네 사람은 남한에서 암살당했고, 당시 정치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암살은 남한의 정치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영향 하에서 이승만 독재 정권이 탄생하게 되고, 그의 독주가 시작된다.

 

이승만의 독주 속에서 진상규명은 물 건너 가 버리고, 지금도 우리는 그들의 암살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해방 정국의 극심한 혼란 상황에서 이렇듯 암살이 빈번했던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남과 북의 분단을 초래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온건한 보수주의자였던 송진우의 죽음으로 온건보수 쪽은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고, 중도 좌파 정도의 평가를 받던 여운형의 죽음으로 좌우합작이 물 건너 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과 남북 분단이 이루어지기 더 쉬워졌으며, 장덕수의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확립하려는 카드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

 

여기에 김구의 죽음으로 인해 이승만 독재를 견제하고 물리칠 수 있는 가장 큰 정치가가 사라져 버렸으니...

 

이들의 죽음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인가? 암살의 배후를 캐는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이 암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더 많으므로...

 

아직도 미국의 비밀문서 중에 해제되지 않은 것이 있어 이들 암살의 전모를 밝히기는 힘들다고 한다. 게다가 이제는 암살의 관련자들이 모두 세상을 떴으니... 기록에 의해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최근까지의 결과로 이들 정치가들의 암살에 얽힌 배후와 의미를 파악해 보여주려는 노력을 한 것이 이 책이다. 따라서 이런 역사를 알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지닌 의미일 것이다.

 

덧글   

 

읽다가 발견한 소소한 오류와 동의하기 힘든 부분

 

1. 22쪽. 고은의 시 인용 첫구절에서 1995년은 -> 1945년으로 수정되어야 하고

 

2. 120쪽. 장경근은 ... 1960년 3.15 부정선거 때에는 내무부 장관으로서 부정선거를 총체적으로 지휘한 인물이다. -> 이상하다. 이 부분은. 내가 알기론 내무부 장관으로 3.15 부정선거를 지휘한 인물은 최인규인데... 최인규 편을 찾아보면 그렇게 나오고, 그가 부정선거 죄목으로 사형당한 걸로 나오는데...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하다.

 

3. 229쪽.  미군은 결국 6월 29일 철수를 끝냈다. 바로 김구가 암살 당하기 3일 전이었다.  -> 김구가 암살 당한 3일 후였다가 맞는다. 240쪽에는 미군이 철수하기 3일 전이라고 제대로 나온다.

 

4. 그 다음 납득하기 힘든 부분 : 여운형 편에서... "지도자의 삶은 그 자체가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 여운형은 통일정부가 수립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 그 자신에게 전혀 책임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 이전보다 더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134-135쪽)

 

이런 말이 있는데, 이건 참... 여운형은 미군정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으나 무시당했고, 경찰은 그의 암살에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정계은퇴? 그건 정치가로서의 책임이 아니지 않은가.

 

여기에 여운형은 개인 경호원을 두었으니, 그는 자신이 할 만큼 했다고 보는데... 또하나 해방 정국에서 훌륭한 정치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한다.

 

간디를 보라. 그 역시 죽음을 예견했음에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순간을 모면한 정치가는 훌륭한 정치가일 수 없다.

 

죽음의 길을 알고도 가야 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삶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여운형 편의 말미에서 한 주장은 여운형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동의하기는 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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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 - 평생 가난할 운명에 놓인 청년들
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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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답답한 현실이다. 어쩌면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일 수도 있다. 이 터널 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나 터널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는 상황.

 

여기에 누군가 분명 터널의 끝이 있고, 그 끝이 멀지 않았음을, 빛이 비추는 곳에 다가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안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꿈꿀 수 있을텐데.

 

아마도 지금 우리나라 청년들이 처한 위치가 바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힌 사람들과 같지 않을까 한다.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도대체 밖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그렇다고 누구도 청년들에게 터널의 끝이 있다고, 그 끝을 향해 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할 뿐이다. 그러니 청년들은 더욱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수밖에.

 

사회 문제를 개인 문제로 돌려놓아,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청년 개인들이 지어야 하는 상태,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도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요, 혹 능력이 있다손치더라도 일자리를 가려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는 상태.

 

그러나 과연 그것이 청년들의 책임일까? 우석훈은 벌써 몇 년 전에 "88만 원 세대"를 써서 우리나라 청년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평균임금 88만 원을 받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그러니 청년들은 토익을 버리고 단결해서 짱돌을 들라고 했었다.

 

하지만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 청년들이 짱돌을 들기 위해서는 지금 힘든 현실이 개인이 책임져야 할 상황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하고, 그 책임 중에서도 더 큰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음을 알려주고 깨닫게 해야 하는데... 오로지 청년들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 아니었던가.

 

그래서 오찬호가 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나왔고. 청년들이 각개격파되어 함께 단결해서 사회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오로지 자신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 중에서도 더 뒤쳐진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상황에 처하고 만 현실.

 

씁씁한 현실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그런 현실이었다. 88만 원 세대를 필두로, 삼포 세대, 오포 세대 등등의 비극적인 말들이 청년들을 수식하는 말이 되어 왔는데...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이게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고, 유럽도 미국도 문제는 많지만 그래도 일본과 우리나라가 직면해 있는 문제보다는 덜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일본의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런데, 추천글에도 나와 있지만, 이름과 지명을 우리나라 것으로 바꾸면 그대로 우리나라 현실이 된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일본 청년들의 문제는 바로 우리나라 청년들의 문제다. 그리고 그런 청년들은 다른 이름을 또 하나 얻게 되었다. 바로 "빈곤 세대"

 

아무리 노력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대라는 말이다. 물론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청년들은 예외다. 가정 환경에 따라서 일생의 삶이 규정되는 사회, 중세의 신분 사회도 아닌데, 자본으로 그렇게 되도록 흘러가는 이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것이 문제다. 잘못 되었다. 잘못되었음을 알면 고쳐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기성세대가 지닌 편견의 굴레들.

 

'일하면 수입이 생긴다. 가족이 도와줄 것이다. 청년들은 건강하다. 옛날엔 더 힘들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이것은 일본의 기성세대가 지닌 편견이지만 우리나라 기성세대가 지닌 편견과도 같다. 어떻게 이렇게 거울을 보는 듯이 똑같을 수가 있는지...

 

일해도 빚만 늘어나고 있는 현실, 가족붕괴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가족이 도와주는지, 오히려 가족이 청년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경우가 많고, 장시간 노동에 온갖 스트레스를 받는 청년들이 건강할 리가 없고, 옛날엔 더 힘들었다고 하지만 그때는 터널의 끝에 빛이 보였다.

 

그 빛을 보고 나아가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으니, 이 말엔 좀 문제가 있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고통의 굴레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 사서도 한다는 것은 나아진다는 가능성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여기에 더해 주거 문제, 교육 문제 등 정말로 우리나라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그대로 나와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이대로 두면 안된다. 이 책에서 노인들을 '하류노인'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는데, 하류노인 문제는 빈곤세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 빈곤세대들이 노인이 되면 자연스레 하류노인이 될테니 말이다.

 

그리고 청년들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 주거 문제로 제대로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자연스레 출산율은 저하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모두가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빈곤한 청년과 하류 노인들...

 

그것은 온전한 사회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가고 있는데... 막을 방법은? 아니, 막아야 한다. 대책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유용하다.

 

'노동조합의 활동, 장학금제도의 도입과 부유층 과세, 청소년대책과의 연대, 주거비 보조제도와 충실한 주택정책, 빈곤세대여, 목소리를 높이자'

 

이것이 이 책에서 제시한 대책이다. 우리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노동자로 살아가면 노동조합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여기에 대학 등록금, 우리나라 역시 너무도 과도한 등록금으로 인해 반값 등록금 투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공약이기도 했지만, 정치인들의 공약은 공약(空約)이 되어 버렸으니,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고, 노인들은 쪽방촌에서 청년들은 고시촌에서 사는 그런 주거 형태는 비인간적이기에 더 좋은 주거정책이 실시되도록 주장해야 한다.

 

일본 청년들의 이야기지만 결코 일본 청년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럼으로 우리 역시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출구 없는 터널이 아닌, 출구가 보이는, 그 출구를 안내하는 빛이 있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렇게 살기 힘들어진 것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혼자가 아닌 함께 해결책을 마련하려 노력해야 한다.

 

짱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차별에 찬성하지는 말아야 하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에 가입해서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이고, 기성세대들은 그런 청년들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고 기성세대 자신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나라 일본. 그러나 청년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어쩜 이리도 똑같은지...

 

일본의 빈곤세대, 우리의 88만 원 세대, 삼포, 오포 세대... 이런 말들이 나도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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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쟁취
표트르 알렉세이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여연.강도은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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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해보니 이 책의 번역본이 두 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이 책을 골랐는데, 그렇다고 두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크로포트킨의 책은 다 읽고 싶어한다)

 

번역본이 어떤 책이든 두 책 모두 크로포트킨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잘 전달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은 예전에, 아주 오래 전에 우리 말로 번역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나키스트가 바로 크로포트킨이고, 이 책은 크로포트킨의 책들 중에서 "상호부조론'과 더불어 잘 알려진 책이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도 아나키즘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공부됐고 또 그를 자신의 사상으로 삼은 사람도 많았다고 하는데, 해방이 되고 나서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아나키즘은 서서히 사라져 가고 말았다. 그러다 최근에 들어서 다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나키즘에 관한 책이 다시금 나오기 시작한 것, 재번역되는 것은 이런 추세를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경쟁과 배제를 통해서 앞만 보고 달리며 주위 사람들을 내친 지난 날들이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이제는 경쟁과 배제보다는 포용과 협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으로 우리는 이 지구라는 섬에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자연환경이 나빠지고 있으며, (올해의 이 기록적인 더위를 보라. 이것이 올 한 해로 끝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온갖 종교들이 극심한 갈등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이 때에 '자치, 자율, 협동(상호연대)'을 주장하는 아나키즘이 다시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치, 자율, 협동(상호연대)'는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류에 대한 사랑이 아나키즘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제목은 과격하다고 할 수 있는 "빵의 쟁취"를 읽으면서 '쟁치'란 말 밑에 깔려 있는 사랑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크로포트킨이 아나키즘을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인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인류가 그 신뢰를 다시 살려 함께 잘 살아가려면 '사적 소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는 바로 인류에 대한 사랑을 강하게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게 하면 누가 일을 하겠는가? 라는 반론에 대해서 크로포트킨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의미 있는 삶을 살려는 욕구가 있고, 그 욕구를 누구의 간섭 또 지배를 받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펼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이런 반론들에 대한 크로포트킨의 주장은 '반론들'이란 장에 잘 나타나 있다. 꼭 그 장이 아니더라도 이 책 내내 크로포트킨은 이런 반론에 대한 재반박을 하고 있다. 인류에 대한 믿음,그리고 지금의 현조건에서도 인류는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아나키즘의 기본 사상은 바로 사랑이다. 인류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 모두가 좋은 삶을 살 권리가 있음을, 그리고 충분히 가능함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상이다.

 

결코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가능함을 이 책에서는 공업, 농업 등 구체적인 경제적인 요소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물론 과학기술에 대해서 크로포트킨은 그 부작용을 심각하게 겪지 않은 시대에 살아서 지금보다는 낙관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 농업 부분에서 기술을 적용하는 문제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한계른 시대적인 한계이고, 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나키스트의 자세일테니... 오히려 지금의 현실과 그의 주장을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 좋은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구체적인 사항들이야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 현실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되지만, 이 한 가지는 꼭 명심해야겠다.

 

크로포트킨이 이 책에서, 아니 그의 삶에서 주장한 것 바로, 이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 한다.

 

"모든 것이 모두에게 속한다! 남자와 여자가 일을 공평하게 분담해서 한다면, 그들은 함께 생산한 것을 공정하게 나눌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눈 것들은 그들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주기에 충분하다. 더 이상 '일할 권리' 혹은 '각자는 자신이 일한 결과물들을 모두 가져간다'와 같은 애매한 문구들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선언하는 것은 '좋은 삶을 살 권리'이다. '모두가 좋은 삶을 살 권리!'이다."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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