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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 삶의 정치 그리고 살림살이의 재구성을 향해
하승우 지음 / 이매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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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삼척에서 핵발전소 유치를 두고 주민투표가 있었다.

 

이미 삼척에 핵발전소를건설하기로 했었는데, 이번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삼척시장으로 출마한 사람의 공약이 주민투표에 핵발전소 유치 여부를 부치기로 한다는 것이었고, 이 공약을 실천한 것이다.

 

투표율이 개표를 할 수 있는 선을 넘었고, 개표 결과 핵발전소 유치 반대로 결정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 중앙정부에서, 또 법무부에서 이런 주민투표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나온 것.

 

법적 효력?

 

자신이 사는 곳에 자신의 삶이 걸려 있는 문제를 주민 스스로 투표를 통해 결정했는데, 그것이 법적 효력이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지? 핵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를 누가 쓰지?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이 쓰나, 아니다. 핵발전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쓴다. 그런데 결정은 정부에서 한다.

 

지방에서 당사자들이 할 수가 없다. 당사자들이 어렵게 성사시킨 주민투표도 법적 효력이 없다고 무시한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 사회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문제가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형식만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법적 절차라는 형식적 절차만이 중요하지, 실질적인 내용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과는 관계가 먼 사람이 결정해준 대로 따라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종. 아니 이 정도면 말살이다. 지방자치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지방의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은 중앙정부에 종속이 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자신의 삶터를 중심으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우리가 진정 민주주의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이론으로 아나키즘을 들고 있다.

 

아나키즘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에 이론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런 이론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나온 이론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던, 불가능한 이론이 아니라 충분히 실현가능한 이론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아나키즘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어떤 결정된 이론이라기보다는 그 상황에 맞게 실천해 가는 이론임을 보여 풀뿌리 민주주의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삶터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과 연결되어 가는 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개념이 '연방주의'와 '협동'이다.

 

중앙집중적인 지금 우리 상태에서는 삼척의 경우와 같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 수가 없다. 연방주의 처럼 각 지방이 독립적인 정치, 경제적 힘을 지니고 대등한 관계들을 맺어갈 때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협동이 필수적이다. 경쟁보다는 협동을, 대등한, 너를 나로 보는 그러한 인식부터 시작하는 아나키즘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아나키즘. 여기에 대해서 인식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실천이 이루어진다면 형식적인 법 구절에 얽매여 사람들을 옭아매는 제도를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삶에 관한 정치를 소수의 정치가 계급에게 맡기고, 자신의 삶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정책들을 만들어내는 정치가 계급에게 내 권리를 위임하지 않고, 내 삶에 관계되는 정치에 내 스스로 참여하는 능동적인 권리를 찾게 되는 방법이 풀뿌리 민주주의이고, 아나키즘이다.

 

지금, 우리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얼마나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가?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한 결과 아니던가.

 

내 권리를 찾아오는 것. 내 삶터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내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

 

내 삶터와 같이 다른 사람의 삶터도 존중해주는 모습. 그런 모습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삶.

 

그게 가능하게 하는 정치. 그것이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듯이 아나키즘이다.

 

내 권리 찾기. 이게 바로 지금 해야 할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런 정치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할 만한 좋은 글들.

33쪽. 대의민주주의는 이성의 구실만을 강조할 뿐 아니라 선거라는 정치적 경쟁의 장 밖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갈등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제거하려 든다. 대의민주주의 정치는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 개입을 부정하고 시민의 정치 행위를 가로막는다. ... 대의민주주의는 시민의 삶을 수동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정치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제거하거나 정치를 경제에 예속시킨다. 그러면서 정치는 점점 더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민중의 정치란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불가능하다. 고대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전환은 민주주의를 축소하거나 민주주의의 방향을 전환시켰다.

48쪽. 공간적 의미에서 벗어나면 풀뿌리 운동은 단지 지역운동을 뜻하지 않고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이 스스로의 삶의 공간에서 집단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삶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가려는 의식적인 활동"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50쪽. 인간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예정된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51쪽. 풀뿌리 정치는 `합의`나 `순수함`보다 `차이`와 `혼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대화와 조직화만으로 부족하다. 앞서 말한 배제의 문제를 해결하고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려면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53쪽. 풀뿌리 운동은 경쟁과 생존 투쟁을 극복하고 공생과 자율의 삶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자, 내 삶의 경험이나 의식하고 분리되지 않은 정치 구조를 만드는 행위이며, 삶 자체를 정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풀뿌리 운동은 개인이 사회라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서로 돕고 보살피는 호혜의 관계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54쪽.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아닌가. 정답이 없기 때문에 둥글게 모여 앉아 지혜를 모아보자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95쪽. 협동조합이야말로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기대를 건 삶의 양식이었다.

139쪽. 아나키스트들의 지향은 다양했지만, 기본은 `자유로운 코뮌` 또는 `자율적인 코뮌`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민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고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체계, 생산하고 교환하고소비하는 체계가 사유화되지 않고 사회화된 체계, 그곳이 바로 코뮌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를 위해 아나키스트들은 사회혁명이 필요하다고 봤다. 아나키스트들은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혁명`을 주장했다.

157쪽. 아나키즘은 모든 권력에 맞선 반대, 모든 조직에 맞선 반대, 모든 질서에 맞선 반대가 아니라, 제어할 수 없고 집중화된 권력을 향한 비판이다. 따라서 `반강권주의`가 적절한 번역이다.

168쪽. 타자를 대상화시키지 않아야 서로 보살피며 자치와 자급의 삶을 살 수 있다.

169쪽. 법치주의에서는 법 자체만큼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중요하며, 그 과정에 시민의 참여가 보장돼야만 한다.

190쪽. 연방 국가는 `유기적인 분리`의 원칙을 따라서 모든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만큼 분리시켜야 하며, 공공 행정은 전적으로 공개되고 통제돼야 한다. 이런 정부 아래에서 아나키즘은 시민과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기 질서를 재구성하고 공동체 간의 관계를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220쪽. 국유화는 민중을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며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지만, 민중이 스스로 그 권리를 지키고 확장시킬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국유화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 회의하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기회나 그럴 이유도 줄어든다. 따라서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에 맞선 저항은 국유보다 `공동의 소유`와 `공적인 소유`를 지향해야 한다.

221쪽. 공유가 자연스러운 원리로 사회에 자리 잡으려면 협동을 내세운 다양한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져야 한다. 아나키즘은 국가와 자본을 대체할 힘을 만들지 않으면 실제로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힘은 외부의 지원이 아니라 바로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만들어져야 했다.

235쪽. 아나키즘은 중앙 집중화된 혁명 조직이 아니라 각자의 살림살이를 지지할 수 있는 다양한 조직들 간의 연계와 단단한 삶의 그물망이 아직 오지 않은 사회를 도래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도래할 사회는 그 사회를 도래하게 만드는 방법에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하게 믿었다. ... 손을 잡으려면 서로 마주보며 서로의 존재에 눈을 떠야 한다. 그런 마주봄의 계기는 바로 교육이다. ... 농업 노동과 공업 노동을 결합하려면 교육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243쪽. 아나키즘의 주체는 자기에 눈 뜨며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존재다.

251쪽. 정치인들에게 공적인 일을 떠맡긴 채 공적인 시민의 성격을 잃고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 갇힌 개인은 인간의 본질적이고 자주적인 특성, 곧 적극적인 공동체 참여를 통한 자아의 실현이라는 특성을 잃어버린다. 자본주의와 권위주의는 사람들의 이런 자각과 성장을 가로막으려 온갖 노력을 다한다.

277쪽. 연방주의의 과제는 단순히 국가기구를 해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권을 통해 지역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그런 지역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궁극적으로 국제적인 규모의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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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여름언덕 공동선 총서 1
제임스 C. 스콧 지음, 김훈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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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제목이 참 도발적이다. 아나키스트 하면 테러리스트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은데, 책 제목부터 모두가 아나키스트라니?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라고 하지 않나? 무정부주의자라고 하면 반정부주의자, 반국가주의자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무정부주의자 하면 왠지 위험인물로 취급당할 것 같은 느낌이 되는데, 이렇게 도발적인 제목을 붙여도 되나.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아나키즘에 대한 인식이 확장이 되었고,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나타났으며, 아나키즘의 주요 언어로 에스페란토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뜬금없이 우리가 모두 아나키스트라니...

 

도대체 아나키스트가 뭐길래 그럴까? 아나키스트에 대한 이 책의 정의부터 보자. 물론 이 책의 지은이가 정의한 내용은 아니다. 옮긴이가 '옮긴이의 말'에서 한 말인데, 이 책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을 사람 살기 더 힘들게 만드는 온갖 이념과 제도와 조직과 기관과 시스템과 못생긴 인간들의 전제적 강압과 착취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고, 상호부조의 정신에 의해서 서로 도우면서 진화하는 것을 지향하고, 인간의 자유와 자주성과 창의성과 자발성을 돋워줘서 세상을 좀 더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꿈이 곧 아나키즘이다.

  아나키즘은 국적이 없고 경계선이 없고 차별이 없고 착취가 없는 '세상을 보는 따듯한 눈길'이다.  - 214쪽.

 

이것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그렇다면 누가 아나키스트가 되지 않고자 하겠는가.

 

이렇게 좋은 아나키즘에 대해서 우리는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나키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지은이 역시 아나키즘에 대해서 사상의 핵심이라든가, 사상가들의 사상이라든가 하는 것을 이야기해주기 보다는 자신이 겪은 일을 중심으로 아나키즘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물론 아나키즘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제도들의 비합리성, 비자주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단일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우리들의 자발성과 창의성 또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이것들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 바로 아나키즘임을 알게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도 그렇다. 학교라는 제도가 알게모르게 사람들을 통제, 훈육하는 역할을 하는데, 또 학교를 통해 배출된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적 의제를 결정하려는 모습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극서이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아주 사소한 예로 신호등을 들고 있다. 신호등이 교통안전을 지켜준다는 신화 속에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이기 보다는 그 신호체계를 무작정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 네덜란드의 한 마을에서 신호등을 없앨을 때 일어난 일을 들어, 우리들이 권력, 제도에 굴복하여 우리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자본주의 이론이나 맑스주의에서 비판하고 있는 프티부르조아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프티부르조아는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본성일지도 모른다는 것. 누구나 자신이 살 만큼의 땅과 집을 지니고 싶어한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자율성과 자유, 생계를 보장하는 방법이라는 것. 이런 프티부르조아들이 서로 협력하는 사회가 더 바람직한 사회일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시각이다. 사적 소유를 없애려고 했던 시도들이 무력화된 지금, 대자본이 모든 것을 잠식해 가고 있는 지금, 소농, 자영업자, 자유노동자 등 프키부르조아들을 배격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삶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점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아나키즘이 어떤 지점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온전한 개인성을 바탕으로 한 상호 협동. 바로 이것이 아나키즘이라는 생각. 그런 사회가 바로 유토피아 아닐까.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라, 모든 것이 표준화된 사회가 아니라, 우연에 기댄, 그러나 그 우연 속에서도 규칙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사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자기 개성을 뽐내면서도 서로 어울려 멋진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아나키즘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다시 다가온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아래 생각하기에 좋은 문장.

65쪽. 카리스마의 핵심조건은 아주 주의 깊게 듣기와 반응하기다. ... 사회 밑바닥 계층 사람들은 대체로 최상위 계층 사람들보다 더 잘 듣는 편이다.

75쪽. 질서, 합리성, 추상성, 이름 일람표의 종합적인 명료성, 풍경, 건축술, 작업 공정 등은 위계 권력에 도움이 된다.

83쪽. 다양성을 지닌 환경에서 가장 잘 자라고 번성하는 사례가 꼭 식물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입증되고 있다. 인간의 본성도 역시 변화와 다양성을 좋아해서 협소한 획일성을 피하려는 성향을 지닌 듯하다.

109쪽. 개방성의 정도는 어떤 활동이나 제도(그것의 형식, 목적, 규칙들)가 그런 활동을 수행하거나 그런 제도 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욕구에 의해서 얼마만큼 수정되거나 병경될 수 있느냐에 따라 가늠이 된다.

113쪽. 포유동물들은 요란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것을 포함한, 얼핏 무질서해 보이는 놀이를 통해서 신체적 기능 조정과 신체적 능력, 정서적 조절, 사회화와 적응과 소속과 사회적 신호와 신뢰와 실험 등의 능력을 계발한다.

... 놀 기회를 박탈당한 인간들은 폭력적인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르거나 우울증에 빠지거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불신하는 경향이 아주 높다.

122쪽. 공립학교 시스템의 크나큰 비극은 그것이 대체로 단일 제품 생산 공장이라는 점이다. ... 이런 제품은 대체 어떤 제품일까? 그것은 협소하게 구획된 특정한 형태의 분석적 지성 혹은 재능이다.

134쪽. 우리의 일상 삶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관행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또 우리의 일상 관례들과 기대치에 너무나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136쪽. 나는 붉은 신호등 철거를 책임감 있는 운전법과 시민 예절을 훈련하는 온건한 형태의 연습으로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이건 내가 경험한 일인데...예전에 베트남에 갔을 때 신호등이 없었다. 알아서 차들과 자전거, 오토바이, 그리고 보행자들이 길을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문제는 없었다!)

137쪽, 교통 관리의 공유 공간 개념은 차량 운전자와 자전거 운전자와 보행자들의 지성과 양식, 주의 깊은 관찰에 의지하고 있다.

139쪽. 자주성과 자유는 상호부조의 정신과 더불어 무정부주의적 감성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144쪽. 하위 계급 사람들은 국가의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는 변경에서 살거나 작은 재산과 결부된 최소한의 권리 정도만을 누리며 국가 안에서 사는 두 가지 형태의 삶을 통해 상대적인 자율성과 자주성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많은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땅 한 뙈기와 자기 집과 자기 가게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엄청난 욕구는 주로 행동의 자유와 자주성과 그런 재산들이 제공해주는 안전이라는 현실적인 이익뿐 아니라 자신의 존엄성과 지위, 작은 재산과 결부된 명예(국가나 이웃 사람들의 눈에 비친)도 함께 확보하려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185-186쪽. 양적으로 우수성, 질을 평가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수량적인 감사 시스템에 주로 의지하는 것이 안겨주는 진정한 피해는 활발한 민주적 토의의 일부가 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들을 회의장에서 다루지 않고 중립적이라고 하는 전문가들의 수중에 맡기는 데서 온다. 원래 공적인 영역에 속해야 마땅할 것들을 그 영역에서 빠앗아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수많은 시민과 공동체의 삶의 기회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 과정에서의 이러한 사이비 탈정치화다.


아나키즘 사상가들과 선동적이지 않은 포퓰리스트들이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 확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민주적인 시민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참여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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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이 기본소득
바티스트 밀롱도 지음, 권효정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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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연금제도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람들 입이라기 보다는 정치권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야 할 듯하기도 하지만, 어떻든 요즘은 공무원 연금제도에 대해서 설왕설래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더해서 누리교육과정 지원에 관해서 교육감들이 내년에는 예산 편성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또 도마에 오르고 있는데, 대통령의 공약 사업이었던 누리교육과정 지원을 중앙정부에서는 하지 않고, 오로지 지자체와 교육청에 떠넘긴 결과 다른 교육활동을 할 수 없다는 교육감들의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공무원 연금제도나 누리교육과정이나 모두 세금과 관련이 있다. 세금은 국민 복지하고도 관련이 되고, 또한 세금은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하나가 되는데...

 

이런 논쟁 과정을 보면서 기본소득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름대로 홍보도 하고 있지만, 기본소득을 받아들이고 정책에 반영하려는 정당은 녹색당이 유일하다시피 하고, 유력 정당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데...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일괄적으로 일정한 액수의 돈을 지급하자는 정책이다. 여기에는 어떤 조건도 없다.

 

이 책의 겉표지에 쓰여 있는 대로 "모두 주자, 그냥 주자!"인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국민들이 굶어죽는 일은 없을 것이니, 사회적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소득에 관한 책. 주로 경제학 용어와 어려운 수식이 많이 나와 머리가 아팠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기본소득에 대한 필요성과 그에 대한 반론을 이야기해주고, 반론에 대해서 재반박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쉽게 읽힌다.

 

또 기본소득의 도입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에서 기본소득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생각도 들고...

 

세금이 국민의 의무라면 기본소득은 국가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는 모든 국민이 돈에 구애됨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국민의 최소 생활 비용을 보전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정리를 한다면 기본소득 논의는 당연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기본소득이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 기본소득 제도가 도입이 되면 국민들이 일을 안할 것이냐 할 것이냐? 무임 승차자는 어떻게 하느냐? 등등에 대한 논의를 할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은 당연히 도입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바로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점이다.

 

국가의 의무, 기본소득.

 

이걸 전제하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걸 전제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한 기본소득 연구 결과에 의하면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85%의 국민이 이득을 보게 된다고 한다. 손해를 보는 사람은, 비록 세금이 더 오를지라도 15%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 15%도 자신의 생활이 곤란해질 정도로 손해를 보지도 않는다. 이들은 아주 약간의 손해만 볼 뿐이다. 15%가 세금 면에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생활을 한다면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에 이 15%도 마냥 손해만 보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은 우리 모두를 좋게 만드는 제도이다. 또한 사람은 태어났다는 것 자체로 존귀한 존재가 된다. 그는 태어나서 함께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유형 무형의 사회활동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활동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이 가치가 있는 일에 소득을 주는 일,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이런 기본소득은 평등한 사회로 가는데, 행복한 사회로 가는 길이 된다.

 

이런 과정을 쉽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우리보다도 노동시간이 한참 적은 프랑스도 노동시간이 많다고 하는 사람, 이제는 성장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지금 이 세기에는 반드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

 

명료하게 자신의 주장을 잘 펼치고 있다. 복지제도, 기본소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참으로 좋을 책이다.

 

물론 많이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은 이런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책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할테니까. 그래서 이런 책은 힘없는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 읽고 힘없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정책을 만들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공무원 연금제도나 누리교육과정에 대한 이런 논의들이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의미가 없어질테니, 좀더 큰 틀에서 우리 사회의 논쟁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 점에서도 많은 참조가 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구절 중 생각할 만하거나 기억할 만한 글들이 아래에 있다.

32쪽. 누구라도 살 만한 집, 좋은 음식, 충분한 물과 에너지, 보살핌을 누려야 한다. 교육받고, 문화를 누리고, 교통․통신수단을 사용할 권리 역시 뺏겨서는 안 된다.

35쪽. 사회소득은 공유화된 소득이다. 사회 구성원이 모두 사회적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보고 일부의 경제적 부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가게 하려는 장치이다.
... 이 사회소득은 사실상 사회적 급여라고 할 수 있다.
... 평생월급이라 할 수 있다.

44쪽. 좌파에게 기본소득은 사회 변혁의 도구이자 노동가치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 말은 일하지 않고 살아도 될 만큼의 돈을 지불받아야 하며,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82쪽. 기본소득은 소득을 지급하고 소비도 하게 되므로 시장경제적 메커니즘의 틀 안에 있다는 것과, 일해서 얻은 ‘두 번째 소득’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점을 우선 밝히고자 한다. 이것이 기본소득의 장점이자 최대 결점이다.
... 기본소득은 노동시장을 없앨 수 없다.

93쪽. 기본소득을 통해 구체화되고 또한 일할 권리를 통해 추구해야 하는 바는 바로 개인이 원할 때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와,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면서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02쪽. 기본소득에는 ... 개인이 어떤 활동을 하든 그 활동이 사회 전체의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136쪽-137쪽. 기본소득의 장점 중 하나는 사회의 힘든 일을 어떻게 분배하고, 관리할 것인가라는 건강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것이다.
... 고통스런 일자리에서 벗어나고픈 바람이 기본소득 도입을 가능하게 하고, 이 제도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한 일 분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38쪽. 우리는 이제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어야 한다. 바로 "덜 일하기 위해 모두 일하라!"이다.

142쪽. 기본소득은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각 개인이 충분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보편적 사회보장제도이자, 모든 이가 사회적 부의 증대에 기여할 수 있도록 참여하는 보편적 보조금이라는 점이다.

152쪽. 보편적 보조금, 가본소득은 높은 비용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투자다.

171쪽. 이제 평등사회를 상상하자.
...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일을 균등하게 나누고, 자유시간이 가장 큰 부가 되며, 무상이 기본이 되고, 심지어 기본소득도 필요 없는 사회, 이것이 바로 평등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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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을 묻다 -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권보드래.천정환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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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인 지금 왜 "1960년을 묻다"란 책이 나왔을까? 그게 의문이었다. 이 의문점에 대해서 이 책의 작가들은 여는 글에서 답을 하고 있다.

 

1960년대는 지금 우리를 규정하는 시원이라고... 따라서 1960년대를 보면 지금의 우리를 알 수 있다고.

 

  우리는 '좋은 전설'로 아직 살아 있는 1960년대와, 우리들 삶과 마음속의 어두운 망령인 1960년대를 함께 성찰하고 한꺼번에 벗어나야 한다. 사실 그럴 만한 때가 되지 않았는가? 여는 글에서 7-8쪽

 

1960년대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하는가? 바로 4·19다. 그리고 이 4.19는 5.16으로 끝나게 된다. 민주와 자유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던 4.19. 그리고 이런 4,19를 계승했다고 표방하면서 오히려 4.19를 무덤으로 끌고 가버린 5,16.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5.16에 침묵하거나 찬성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군사독재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 1960년대.

 

1960년대의 문화, 사회,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서 연구한 결과물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너무도 전문적이어서 학자들이나 또는 전공자들이나 보아야 하는 책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전문적인 연구서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표현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50년 우리 사회가 궁금한 사람이 읽으면 재미있게 읽거나 또는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작은 제목이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이라고 달고 있어서 박정희라는 개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하는 점을 제목에 부각시키고 있지만, 이 책 내용에서는 박정희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로 인해서 문화가 어떻게 왜곡되거나 변질되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살피고 있을 뿐이다.

 

하여 '1960년을 묻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1960년대 중에서도 정치사와 경제사는 빠지게 된다. 문화를 중심으로 1960년대를 살핀 책이라고 보면 된다.

 

4.19이후 단 1년 만에 5.16이라는 군사쿠테타로 인해 자유는 저 멀리 사라지고, 민주 역시 역사의 뒤안길에 머물러 있게 되고, 문화는 군사정권의 논리에 의해 왜곡되기 시작하고, 국민들은 그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맛보기 시작한 때.

 

알게 모르게 경제 논리가 사회에 침투해  자유와 민주를 경제가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하는 때. 그런 전환점. 그래서 1960년대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의 시원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과정과 비슷한 일을 우리는 겪지 않았던가.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을 거쳐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헌... 그러나 지금은 다시 한계에 봉착하고 1990년대의 아이엠에프를 거쳐 우리 삶을 장악한 경제논리.

 

결국 경제논리에 의해 다른 것들이 다 묻혀버린 지금 이 시대를 1960년대는 미리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1960년을 묻는 행위는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를 묻는 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60년대를 거쳐 암울한 70년대, 그러나 곧 80년대가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인간은 밥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들이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갇혀 오로지 경제논리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지금... 어쩌면 지금은 1960년대의 쌍생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쌍생아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한 번 겪었다. 알고 있다. 이 알고 있음을 행위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도 다시 1960년을 물어야 한다. 묻는 행위, 이것은 행동하겠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같은 길을 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리고 답을 찾았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덧글

 

다른 부분도 다 읽을 만하고 재미도 있지만 특히 4장 "내 귀에 도청장치"는 간첩을 다룬 이야기로서 지금 시대와 비교하면서 읽으면 참 생각할 것이 많다. 헤겔 철학의 권위자인 임석진이 어떻게 동백림 사건과 연결이 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송두율과 비교하면서 보여주고 있는 장면... 어쩌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많은 간첩사건들... 1960년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이 4장에서는 처절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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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없는 세상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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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상상은 인간이 가진 능력이다. 이 상상으로 인해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또한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말해야 한다.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닌 상상의 힘이 아니던가.

 

이 상상을 거꾸로 적용해 본다. 인간이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하고. 지구에서 갑자기 인간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물론 짧은 시간은 아니겠지만 긴 시간을 거쳐 자연은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만들어갈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이룩해 놓은 문명을 자연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흉악한 문명인 원자력 조차도 나중에는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건 상상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별들의 생애에 따라 이 지구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런 상상, 인간없는 세상에 대한 상상... 한 번쯤은 해보았을 상상이다. 하지만 이 상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진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상상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나타나도록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사라진다면... 어느 정도 시일이 걸려서 자연이 회복되는지를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단지 상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장소를 연구함으로써 현실로써 보여주고 있다는데 이 책의 장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비무장지대로 나오는데, 이렇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연이 어떻게 복원되어 가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몇 군데 있으며, 인간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곳, 특히 핵실험이나 핵폐기물들을 버려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야생보호구역으로 설정한 곳이 있다고 하는데, 이들 장소들이 어떻게 복원되어 가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인간없는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은 단지 상상만을 다룬 책이 아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책도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지금 우리 인간이 초래한 환경 재앙에 대해서 경고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대로 나가면 인류는 멸망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단지 시간 문제라는 것.

 

단지 인구수만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대부분의 물건들이 자연에는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다못해 바닷가 모래 속에도 잘게 분해된 플라스틱 분자들이 엄청나게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니...

 

인류는 자신들의 능력을 믿고 한없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데, 그런 전초들을 지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고, 이미 그러한 모습을 먼저 보여준 곳을 찾아 우리에게 설명해줌으로써 인간없는 세상에 대한 상상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함을 우리에게 경고해주고 있는 책이다.

 

지구상에 생명체들이 존재하게 된 이후,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의 생명을 담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빚진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을 인간이 자신의 지능만 믿고 망각해버리는 과정이 근대문명의 발달과정이다. 하여 우리는 다른 생명체에 우리가 빚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그들에게 받을 빚만 있다고 믿고 있는 듯이 활동하였다.

 

다른 존재는 전혀 의미가 없다는 듯이 살아온 근대, 현대의 모습이 어떻게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게 되었는지를 '인간없는 세상'이라는 상상할 수 있는, 상상하게 하는 제목을 붙여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 인간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생명체에 불과하다. 우리 역시 지구라는 공간을 벗어나서는 아직까지는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이 책의 지은이는 마지막 부분에서 인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데... 인구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부터 바꿀 생각을 해야 한다. 인구 문제가 해결이 되면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는지, 또는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면 인구 문제도 해결이 될 수 있는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질문이겠지만...

 

우리의 생활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인간없는 세상'이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이 단지 상상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이 책은 구체적인 자료 조사로 지구 곳곳을, 지구 역사를 살피면서 지구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설명해주고 있는 아주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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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ie 2014-11-20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가 아니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게 더 큰 문제겠죠 ㅠㅠ 리뷰만 읽어도 가슴이 아프네요 ㅠㅠ 잘 읽었습니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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