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안도현 시인은 절필을 선언했다.

 

이러한 시대에 시를 쓴다는 일이 부질없다고.

 

시를 통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할 수 있는데,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시는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그는 이제 그럴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세상을 따스한 눈으로 보던 그가, 그런 시를 썼던 그가 이제는 절필을 하다니.

 

마치, '서울로 가는 전봉준'처럼 형형한 눈동자를 빛내고는 있지만, 세상 변혁에 실패한 사람처럼.

 

그러더니 며칠 전에는 안도현 시인이 기소  당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가 한 말이 빌미가 되어 검찰이 그를 기소했다는데, 그는 자신의 일을 국민들이 판단해 줄 거라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놓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신청을 하기 위해 가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었는데, 역시 나는 여기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느꼈다.

 

시인은 알게모르게 시대를, 자신의 운명을 시를 통해서 표출하고 있다지만, 그를 시인이게 만들어준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지금 그의 모습과 겹쳐질 줄이야.

 

서울로 압송되어 가는 전봉준. 자신의 꿈이 실현되지 않고, 세상 변혁에 실패하고, 결국 죽으러 가는 그 길에 그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세상을 쏘아보는 눈빛. 형형한 눈빛이 뇌리에 박히는 그 사진.

 

그는 가지만, 그의 뜻은 가지 않겠다고 하는 그 눈빛.

 

서울로 가는 전봉준, 재판정으로 가는 안도현. 그의 시를 여기에 적어본다.

 

시인이 재판정이 아닌, 시를 써야할 자리에 있기를 바라면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 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 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 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지 못하였네

못다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 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 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안도현, 서울로 가는 전봉준, 민음사, 1994년 중판. 44-45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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