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 북한문학
신형기.오성호.이선미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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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에서도 블랙리스트 문제가 불거졌는데...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기와 성향이 맞지 않는 작가들을 배제하는 정책을 펴는 정부가 과연 민주주의 정부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렇다고 반성하지도 않고 잘못을 남에게만 미루고 있는 형편이니, 문화강국이 되긴 애초부터 힘든 일이었나 보다. 문화강국이란 다양성을 보장하는 분위기에서 나올 수 있을텐데... 블랙리스트라니...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문학을 하는데도 정부와 성향이 맞지 않으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간다. 그렇다면 북한 문학을 하는 사람은?

 

블랙리스트 정도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받을 수준이 될테다. 다행스럽게 북한을 찬양하는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문학을 정리해서 소개하는 정도면 국가보안법에는 걸리지 않나 보다.

 

우리나라 내로라 하는 출판사에서 '북한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으니 말이다. 그래도 검색해 보면 이 책은 품절이란다. 아마도 국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나 유용한 책이라서 더이상 나오지 않나 보다.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케이스뿐만이 아니라 비닐로 포장되어 전혀 뜯어보지도 않은 듯한 이 책을 발견했다. 무척 두껍다. 1500쪽이 넘으니 엄청 방대한 양이다. 게다가 가격이 만만치 않다. 6만원이다.

 

그러나 중고서점의 장점이 무엇인가? 한참 싼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이 책 정가의 약 40%에 샀다는 기억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북한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문학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영원히 다른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영구분단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찌됐든 통일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일을 위해서는 남과 북의 언어가 교류되어야 하고, 문화가 교류되어야 한다. 이런 문화 교류의 대표적인 예가 문학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남과 북 사이의 문학에서는 번역이라는 또 하나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냥 출판된 것을 읽고 감상하면 된다. 남에서는 북의 문학을, 북에서는 남의 문학을 이렇게 서로 감상하다 보면 다양성 속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분단 추구의 문학이 아니라 통일 지향의 문학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해방직후부터 김일성 사망까지의 기간 동안에 북한에서 창작된 시와 소설 중에서 선자들이 (신형기, 오성호, 이선미) 엄선해서 실은 작품들이 있다.

 

읽으면서 북한과 우리나라 문학이 엄청난 차이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서로 교류를 하지 않으면 문학에서도 분단이 고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됐다.

 

우리나라 문학이 걸어온 길과는 너무도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 결말이 보이는 소설들, 그런 결말을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는 소설들, 그 소설들과 비슷한 주제를 지니고 있는 시들...

 

이 책에 실린 문학작품들은 다양성보다는 주제에서 통일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다양한 문학적 실험보다는 그 사회에 맞는 문학을 하도록 유도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미 지나온 시대의 문학이기에, 그 상황에서 이런 문학이 중심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또 분단된 문학에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작업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

 

하여간 극도로 경색된 남과 북의 상황. 이제는 어떤 교류도 없는 상황. 통일을 서로 원한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통일과는 반대로 가고 있는 상황.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류가 되어야 한다.

 

가벼운 교류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학인들, 학자들, 경제인들, 체육인들 이런 사람들부터 교류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다양한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이 그런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하며.. 비록 지금은 그러하지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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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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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펼쳤다가 조금 읽다가 다시 내려놓은 책인지 모른다.

 

도대체 무슨 소설이 이래? 하다가, 이건 소설도 아니다, 소설에 무슨 주가 더 많냐 하다가, 그만두자 하다가 그래도 보르헤스인데, 자꾸 인용이 되는 작가인데 한 권쯤은 아니 한 편쯤은 읽어야 하지 않나 하다가.

 

몇 년을 묵혀두었다가 다시 펼쳐 들고 읽어도 역시 모르겠다. 환상적 사실주의라고 하는데 마치 사실인 것처럼 진술을 하고 있지만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여 놓은 것이 보르헤스의 소설이라고 하는데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니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 알 수가 없다.

 

환상과 사실을 구분하기 힘드니... 참.

 

이 책에는 많은 단편들이 묶여 있는데, 이 단편집의 이름이 [픽션들]이다. 픽션이란 허구라는 뜻이니 이 소설들에서 나오는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들이 아무리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는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그것들이 어떻게 교묘하게 비틀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소설들이 대부분이고, 2부는 그래도 나름대로 사건이 있는 소설들이 제법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물과 인물의 갈등이 잘 드러나 있다기보다는, 인물과 인물의 갈등이 있더라도 그것이 묘하게 표현되고 있어서 안개 속을 헤매듯 흐릿한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런 갈등이 잘 드러나 있는 소설이 '죽음과 나침반' 정도 또는 '칼의 형상' 정도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1부의 소설을 읽다가 혹시 몇백억 년이 지나서 지금의 역사가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이 이 소설을 발견한다면, 이것을 소설로 볼까 역사로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들은 이 소설을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렇게 재구성한 역사를 마치 정통한 역사인 양 가르치고 배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만큼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면 역사인지 허구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1부에 실린 소설 제목 몇 개를 보자.

 

'틀뢴, 우크발,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바빌로니아의 복권', '바벨의 도서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소설을 읽게 되면 무슨 고고학적 사실을 추구하는 연구서 정도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이것들이 분명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소설이니까. 소설이라고 알고 읽기 때문이다.

 

그다지 마음에는 와닿지 않지만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다 읽었다는 점, 읽어가다 보니 자연스레 속도가 붙고 흥미도 생긴다는 점. 무엇이라고 딱 정리를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리 못 읽을 소설도 아니라는 점.

 

특히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는 사실을 기억한다는 것과 그것을 가지고 사고를 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하는 점, 우리가 세세한 점을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통찰에 이르기 위해서는 기억만으로는 안 된다는 점.

 

사실들을 꿰는 일반화, 개념화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 소설을 통해서 작가가 직접 주장하고 있고, 이는 역사를 공부할 때 역사적 사실들을 암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사실들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어떤 것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기도 했고...

 

역시 소설을 읽을 때 명심해야 할 것들은 지엽적인 사건, 사실들 하나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면만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배신자와 영웅이 같은 인물일 수도 있다는 점, 영웅에게서 어쩌면 우리를 배신하는 배신자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역시 보르헤스의 소설은 어렵다. 다시 읽어도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서양의 문학과 역사, 지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어느 부분이 역사적 사실을 비틀었는지를 알고 읽으면 보르헤스의 소설이 재미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비록 '기억의 천재 푸네스'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유럽의 문화, 문학, 역사, 지리를 안다면 이 소설들 속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많은 요소들이 한 줄로 꿰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아직은 그렇지 못하기에 그의 소설은 어렵다. 재미를 느끼기도 힘들다. 그러나 주를 무시하고 그냥 본문만 소설이지 하면서 읽으면 그리 못 읽을 소설도 아니다. 이해나 해석은 뒤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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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와 한국의 시인들 고려대학교출판부 인문사회과학총서 64
김재혁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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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알게 된 것이 언제였던가. 아니 안 적은 있었던가. 그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를 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릴케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인이다. 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릴케를 잘 모르면서도 한컴 타자연습에 있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이 릴케가 나오니, 이름을 들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학창시절에, 중학교 때쯤이던가, 책받침을 써야 하던 그 때, 연예인들의 사진이 책받침에 등장하기 전에 책받침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소재들이 시였고, 그 중에 릴케의 시도 있었다.

 

그렇게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함께 책받침을 통해 릴케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냥 시인으로. 그를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없이. 왜 그가 이렇게 유명한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아마도 내게 다가온 시는 '가을날'이었을 것이다.

 

가을날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풀어줍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하도록 명해 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낮을 주시어,

무르익는 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가는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이제 집에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 것이며,

깨어 앉아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이 구를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방황할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주연 옮김, 검은 고양이, 민음사. 1994 개정증보판 1쇄. 22쪽.)

 

아마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언어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가을을 맞이하여 겸허하게 기도하는 그런 느낌을 받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기도조의 시로써 나에게 다가왔는데, 무언가 애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그런 시들이었는데, 그런 릴케를 우리나라 시인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시창작에 참조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릴케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살핀 책이 되는데, 일제시대에는 박용철과 윤동주, 해방이 되고 난 뒤에는 김춘수, 김현승, 전봉건, 김수영, 박희진, 허만하, 이성복, 김기택 등이 릴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릴케의 시에서도 영향을 받고, 그의 시가 지닌 소재라든지, 표현방식에서 영향을 받은 시인들, 그리고 시를 살펴 알려주고 있으며, 릴케의 산문에서 시적 지향점을 찾았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릴케의 산문으로 유명한 것이 두 편인데, 그 중 하나는 "말테의 수기"이고 또 하나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모두 릴케가 시를 대하는 태도를 알게 해주는 산문들인데, 그런 글을 읽고 자신의 시창작에 영감을 얻은 우리나라 시인들이 한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릴케의 영향이 이렇게 지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릴케의 시를 그냥 따라한 것이 아니라 시인의 성향과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 그의 시를 창조적, 능동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방적인 영향이 아니라 변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그래서 우리나라 시가 더욱 풍요로워졌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비교문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향관계를 살펴 창조적 변용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밝히고 우리나라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그런 연구.

 

새삼 예전에 교과서에서 배웠던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를 다시 읽으면서 릴케의 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살펴보는 좋은 시긴이었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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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
묘조 기요코 지음, 이민희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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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살아있을 때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은 것보다 죽은 다음에 받은 관심이 훨씬 크고, 그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작가는 살아있을 때 인기가 있다가 죽은 다음에는 곧 잊혀지고 마는데, 그래서 문학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지도 못하는데, 카프카는 몇몇 작품으로 또 일기로 편지로 세계 문학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그의 작품 중에서 "변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읽는 작품, 읽지 않았어도 얘기는 들어본 작품이지 않은가.

 

그가 쓴 작품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는데...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해서 다원적인 해석이 되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카프카는 문학에 자신의 전 삶을 걸었던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평가받아 왔다. 작품에서 완전을 추구하기에 미완성 작품이 많았다고, 그가 죽으면서 남긴 유언은 자신의 작품을 모두 폐기하라는 것.

 

유언집행자인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의 유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가 남긴 작품들을 출판해서 전세계에 알렸다는 것.

 

이 정도는 모두가 공유하는 사항이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카프카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문학은 도끼여야 한다'는 그런 말.

 

그만큼 그는 문학에서만은 완전함을, 범속함을 뛰어넘으려고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물론 문학에서 완전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카프카 하면 생각나는 우울, 절망, 고독 등을 전복시킨다.

 

카프카는 명랑하고 재치가 있으며 여자를 좋아하고 또 장사에도 무척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할 줄 알았다는 것. 비령한 카프카가 되나?

 

그렇게 카프카의 편지와 작품과 일기를 연관시켜 주장하고 있다.

 

카프카가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순진무구하지 않았음은 알고 있었으니 별 다른 문제는 아닌데, 그가 장삿속에도 밝았다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고 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했다는 것, 특히 자신이 만난 여인들과 가족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카프카란 사람이 문학에만 목숨을 걸었다면 그가 보험공사의 직원으로 끝까지 다니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이 있고 살아야 하고 무명작가에 불과한 카프카가 직업을 그만두긴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들고, 그러기에 더욱 직업과 문학의 경계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긴 힘들다. 이 책을 읽었음에도.

 

여자 관계, 특히 이 책은 펠리체 바우어로 알려진 카프카와 두 번 약혼을 하고 모두 파기하게 되는 여자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이 책에서는 펠리스로 나오는데 - 독일어로 읽는 것이 (펠리체는 독일 사람이니)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또 우리나라 카프카 전집에도 펠리체로 번역이 되어 있으니, 펠리체로 한다 - 그 여인이 능력있는 여인이었기에 카프카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고... 외모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서 카프카의 관심 밖이었으나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에서 관심을 얻었다는 관점이다.

 

이는 카프카가 경제에 큰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하고, 그것을 그의 편지와 일기와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니, 특히 작가들은 자신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길 얼마나 갈망하는가... 직업을 가져서 시간을 뺏기지 않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면 하고 바라는 작가들이 많으니, 이를 카프카의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 카프카의 다른 면에 대한 고찰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다. 이 모든 것을 합쳐서 카프카가 되는 것이니.

 

한 가지 새로운 주장은 카프카의 작품은 모두 카프카의 편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가 작품을 출간하지 않겠다고 한 것, 유언으로 모두 불태우라고 한 것도 역시 작품을 출간하라는 주장, 그렇게 하라는 의도를 보인 것이라는 주장인데...

 

세상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읽히지 않길 바라겠는가. 그러니 편지가 읽는 사람을 생각하고 쓰여지듯이 작품 역시 읽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고 쓴다. 말은 "읽지 마, 읽지 마." 하지만 작가들의 이 말은 "제발 내 작품 읽어 줘."라는 것.

 

읽어달라는 말을 돌려서 작품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카프카의 작품이라는 말인데...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것이 카프카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카프카답다. 자기 작품에 흥미를 느끼게 만들고 있으니까.

 

읽기는 편한 책이다. 그리고 카프카의 작품에 대해서 편지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도 해주는 책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 생각은 이 책의 내용은 결국 '카프카다운 카프카'였다는 것. 새롭다기보다는 카프카에 대한 생각을 더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

 

덧글

 

203쪽 소소한 오타... 사실 관계 바로잡을 것.

 

'혼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발리와 요제프 폴락은 1912년 9월 15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 이듬해인 1913년 1월에 여동생인 발리가 결혼했고...' 라고 되어 있는데, 앞뒤가 안 맞는다. 1912년 9월에는 결혼식이 아니라 약혼식이다. 이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 이 사실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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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동 시전집
김규동 지음 / 창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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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규동 시인,  1925년에 세상에 나와 2011년에 돌아가시다. 작은 거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분. 전집에 실려 있는 사진을 보면 주위 사람들과 키 차이가 꽤 난다. 그리고 체격도 참으로 왜소하다. 그러나 김규동 시인을 회상한 사람들의 글과 그 자신의 글, 그리고 시를 보면 작은 체격에도 큰 마음을 품고 사신 분이 아닌가 한다.

 

군사독재시절에는 거리에 앞장서서 나서기도 했던 분이고, 시를 통해서도 현실이 정의롭지 못함을 고발한 분이기도 하다.

 

북쪽이 고향인데, 스승인 김기림 선생을 만나러 왔다가 이산가족이 되어 버린 시인. 돌아가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교정을 본 것이 이 시전집이다.

 

시인의 시들이 거의 모두(혹시 발표되지 않은 원고를 누군가가 유고로 갖고 있는지는 모르니까) 실은 시집이 바로 이 시전집이다.

 

앞부분에는 김규동 시인의 생전에 활동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몇 장 있고, 사진도 그리 많지도 않다. 깔끔한 시인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발표된 시집 순서대로 - 중복된 것은 빼고 - 실려 있다. 뒷부분에는 미발표 시들과 이동순 교수의 김규동 시 해설이 실려 있다.

 

실로 한 시인의 모든 시들을 모아놓은 방대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인이 시로 활동한 것이 60년이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시집 또한 적은 편, 작은 편에 든다고 할 수 있다.

 

1948년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한 시인이 2005년까지 9편의 시집을 냈다는 것은 다작이 아니라 과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치열하게 삶을 살았고, 시를 썼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김규동 시인은 '하나의 무덤'으로 먼저 다가왔다. 남북이 대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쟁까지 겪고도 아직까지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우리들에게 이 시는 '죽어서 비로소 하나가 된 함경도 어부의 아들인 미소년과 지리산 기슭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김일병이 어떻게 해서 한 무덤 속에 나란히 누워, 서로 손잡고 지리산 한라산 백두산 금강산을 다녀오며 평등하게 자유로이 살고 있다는 내용. 죽어서 비로소 형제의 우애를 굳게 맹서'하게 되었다고 하는 시.

 

이제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함께 웃으며 함께 손잡고 다녀야 하지 않겠냐던 시인, 그런 시인이 결국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으니...

 

처음부터 시집을 주욱 읽어가다 보면 시인의 시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알 수 있고, 그럼에도 시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시는 어떤 시인가를 알 수 있다.

 

시인은 시를 통하여 사회로부터 도피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시를 통하여 현실로 돌아오려고 했다. 현실과의 만남, 그것이 바로 시인이 추구하는 시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 투쟁을 위해서 희생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인의 삶이었던 분단된 삶. 이북에 두고온 가족,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통일에 대한 열망이 시를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시인이 만났던 또다른 시인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시인들 중에 '목마와 숙녀'를 쓴 박인환에 대한 시가 가장 많다. 그만큼 시인에게는 요절한 박인환 시인이 안타까운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김규동 시인, 작은 몸집에 또 60평생 넘게 쓴 시치고는 작은 시집이지만 그 분의 삶은 컸고, 이 시집 또한 울림이 큰 시집이다.

 

9편의 시집을 순서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비와 광장(1955년 산호장), 현대의 신화(1958년 덕연문화사), 죽음 속의 영웅(1977년 근역서재), 깨끗한 희망(1985년 창작과비평사), 하나의 세상(1987년 자유문학사), 오늘밤 기러기떼는(1989년 동광출판사), 생명의 노래(1991년 한길사), 길은 멀어도(시선집, 1991년 미래사), 느릅나무에게(2005년 창비), 미간 시편

 

 

여기에 김규동 시인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시인이 쓴 자전적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를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시인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래, 내게는 김규동 시인의 대표작인 이 '하나의 무덤'을 여기에 적는 것으로 그의 시전집에 대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하나의 무덤

 

탱크를 몰고 나왔던

함경도 어부의 아들인 미소년과

지리산 기슭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김일병이

어떻게 해서

한 무덤 속에 나란히 누웠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세월이 흐르고

산천은 변했으나

여기서는 예포가 울리는 일도 없고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는 이도 없다

그들이 지녔던 일체의 쇠붙이는

흙에 묻혀 한줌 가루가 된 지 오래고

여러 짐슬들이

그들과 더불어 함께 놀고

구름이 또한 두 넋을 가상히 여겨

그들의 머리 위에 정답게 머문다

김일병이 미소년의 손을 잡고

지리산 한라산 구경하러 다녀왔는가 하면

미소년은

김일병과 어깨동무하여

백두산 금강산 개마고원도 돌아왔단다

오도가도 못하는 휴전선도

훨훨 날아다니며

해와 달을 벗하여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았다

남북의 두 젊은이는

통일된 삼천리 강토 위에서

평등하게 자유로이 살고 있다

이 허술한 언덕

잡초 우거진 남녘 기슭에

누가 억울한 두 전사자의 시체를

함께 묻어줬는지

잘은 모르지만

여기를 지나는 이는

죽어서 비로소

형제의 우애를 굳게 맹서한

젊은 남북 전사의 가엾은 넋 앞에

다만 머리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김규동 시전집, 창비. 2011년. 375-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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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7-02-10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사 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블랙리스트 사건의 장본인은 관저에 처 박혀서 시간 끌기로 나오고 있으니 정말 화가 납니다.

kinye91 2017-02-10 12:3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어째 자꾸 안 좋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바로잡히겠지요.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