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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동 시전집
김규동 지음 / 창비 / 2011년 2월
평점 :
고 김규동 시인, 1925년에 세상에 나와 2011년에 돌아가시다. 작은 거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분. 전집에 실려 있는 사진을 보면 주위 사람들과 키 차이가 꽤 난다. 그리고 체격도 참으로 왜소하다. 그러나 김규동 시인을 회상한 사람들의 글과 그 자신의 글, 그리고 시를 보면 작은 체격에도 큰 마음을 품고 사신 분이 아닌가 한다.
군사독재시절에는 거리에 앞장서서 나서기도 했던 분이고, 시를 통해서도 현실이 정의롭지 못함을 고발한 분이기도 하다.
북쪽이 고향인데, 스승인 김기림 선생을 만나러 왔다가 이산가족이 되어 버린 시인. 돌아가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교정을 본 것이 이 시전집이다.
시인의 시들이 거의 모두(혹시 발표되지 않은 원고를 누군가가 유고로 갖고 있는지는 모르니까) 실은 시집이 바로 이 시전집이다.
앞부분에는 김규동 시인의 생전에 활동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몇 장 있고, 사진도 그리 많지도 않다. 깔끔한 시인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발표된 시집 순서대로 - 중복된 것은 빼고 - 실려 있다. 뒷부분에는 미발표 시들과 이동순 교수의 김규동 시 해설이 실려 있다.
실로 한 시인의 모든 시들을 모아놓은 방대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인이 시로 활동한 것이 60년이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시집 또한 적은 편, 작은 편에 든다고 할 수 있다.
1948년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한 시인이 2005년까지 9편의 시집을 냈다는 것은 다작이 아니라 과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치열하게 삶을 살았고, 시를 썼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김규동 시인은 '하나의 무덤'으로 먼저 다가왔다. 남북이 대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쟁까지 겪고도 아직까지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우리들에게 이 시는 '죽어서 비로소 하나가 된 함경도 어부의 아들인 미소년과 지리산 기슭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김일병이 어떻게 해서 한 무덤 속에 나란히 누워, 서로 손잡고 지리산 한라산 백두산 금강산을 다녀오며 평등하게 자유로이 살고 있다는 내용. 죽어서 비로소 형제의 우애를 굳게 맹서'하게 되었다고 하는 시.
이제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함께 웃으며 함께 손잡고 다녀야 하지 않겠냐던 시인, 그런 시인이 결국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으니...
처음부터 시집을 주욱 읽어가다 보면 시인의 시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알 수 있고, 그럼에도 시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시는 어떤 시인가를 알 수 있다.
시인은 시를 통하여 사회로부터 도피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시를 통하여 현실로 돌아오려고 했다. 현실과의 만남, 그것이 바로 시인이 추구하는 시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 투쟁을 위해서 희생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인의 삶이었던 분단된 삶. 이북에 두고온 가족,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통일에 대한 열망이 시를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시인이 만났던 또다른 시인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시인들 중에 '목마와 숙녀'를 쓴 박인환에 대한 시가 가장 많다. 그만큼 시인에게는 요절한 박인환 시인이 안타까운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김규동 시인, 작은 몸집에 또 60평생 넘게 쓴 시치고는 작은 시집이지만 그 분의 삶은 컸고, 이 시집 또한 울림이 큰 시집이다.
9편의 시집을 순서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비와 광장(1955년 산호장), 현대의 신화(1958년 덕연문화사), 죽음 속의 영웅(1977년 근역서재), 깨끗한 희망(1985년 창작과비평사), 하나의 세상(1987년 자유문학사), 오늘밤 기러기떼는(1989년 동광출판사), 생명의 노래(1991년 한길사), 길은 멀어도(시선집, 1991년 미래사), 느릅나무에게(2005년 창비), 미간 시편
여기에 김규동 시인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시인이 쓴 자전적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를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시인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래, 내게는 김규동 시인의 대표작인 이 '하나의 무덤'을 여기에 적는 것으로 그의 시전집에 대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하나의 무덤
탱크를 몰고 나왔던
함경도 어부의 아들인 미소년과
지리산 기슭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김일병이
어떻게 해서
한 무덤 속에 나란히 누웠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세월이 흐르고
산천은 변했으나
여기서는 예포가 울리는 일도 없고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는 이도 없다
그들이 지녔던 일체의 쇠붙이는
흙에 묻혀 한줌 가루가 된 지 오래고
여러 짐슬들이
그들과 더불어 함께 놀고
구름이 또한 두 넋을 가상히 여겨
그들의 머리 위에 정답게 머문다
김일병이 미소년의 손을 잡고
지리산 한라산 구경하러 다녀왔는가 하면
미소년은
김일병과 어깨동무하여
백두산 금강산 개마고원도 돌아왔단다
오도가도 못하는 휴전선도
훨훨 날아다니며
해와 달을 벗하여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았다
남북의 두 젊은이는
통일된 삼천리 강토 위에서
평등하게 자유로이 살고 있다
이 허술한 언덕
잡초 우거진 남녘 기슭에
누가 억울한 두 전사자의 시체를
함께 묻어줬는지
잘은 모르지만
여기를 지나는 이는
죽어서 비로소
형제의 우애를 굳게 맹서한
젊은 남북 전사의 가엾은 넋 앞에
다만 머리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김규동 시전집, 창비. 2011년. 375-3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