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시가 아니다 세계사 시인선 139
이승훈 지음 / 세계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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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도발적이다. 시인이 시집을 내면서 제목을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하다니. 이런 식의 제목을 본 적이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이었던가.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한 제목.

 

시인은 '자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집 [비누](2004) 이후 내가 관심을 둔 것은 한마디로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 ... 이런 시쓰기가 노리는 것은 시 따로 인생 따로 노는 이 시대 시인들의 위선과 오만을 미적으로 비판하고 근대 부르조아 예술이 강조한 이른바 자율성 미학을 파괴하고 일상과 예술의 단절을 극복함에 있다. 물론 이런 극복이 현실 환원주의나 거친 리얼리즘으로 퇴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不二 사상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삶에는 무슨 의미도 본질도 없고 그저 흘러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아방가르드 니힐리즘을 사랑하자.'

 

그러면서 시집의 뒷부분에 비평가의 해설을 실지 않고 본인의 시론을 싣고 있다. 시집으로서는 특이한 형식이다. 시론의 제목도 또한 특이하다. '누가 코끼리를 보았는가'다.

 

결국 시란 무엇이다라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시가 언어로 이루어지는 이상, 본질과 실제 또 그를 반영하는 문제에서 어떤 미끄러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이 간혹 말하듯이 말하고 싶은 무엇이 있는데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 마음이 언어로 표현되었을 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온전히 드러나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현실을 그대로 옮긴다'고 했는데, 이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기에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언어로 표현했다고 하지만, 그래서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그 언어로 인해서 '이것은 시가 된 것'이다.

 

시론에서도 나오지만 뒤샹이 변기를 가지고 '샘'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변기는 예술이 된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도 비록 시인 이승훈이 또는 대학교수 이승훈이, 한 가정의 구성원인 이승훈이 겪은 일들을 사실적으로 - 사실 사실적으로라는 말은 많이 고민해야 한다. 과연 사실적으로 우리의 생활을 표현할 수 있을까. 언어 자체가 이미 사실에서 벗어나 있는데 - 표현했다고 하지만, 언어로 표현된 순간, 그 사실들은 다른 상황에 자리잡게 된다.

 

만약 이러한 일들을 일기에 적었다면 일기라고 할테고, 수필로 발표했다면 수필이 되었을테고, 시론이라는 주장하는 글로 발표했다면 시론이 되었을 거다. 그러나 분명 시인은 '시'라고 발표했다.

 

시인이 시로 발표했을 경우, 그 언어들은 시로 인정을 받는다. 그것이 언어의 사회성이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 시인이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것은 시이다'라는 주장을 좀더 강하게 하는 것이다.

 

시란 특정인의 것만이 아니라, 특정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우리의 생활 자체가 시가 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이 들린다.

 

어차피 언어라는 것 자체가 사실과 떨어져 있는 것이니,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실들, 사건들은 시가 될 수 있음을, 시를 특정한 형식에 가둬두어서는 안 됨을 시로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집을 읽어가면서 또 시론을 읽으면서 시론에 불교의 예를 든 것 때문인지 십우도(심우도라고도 한다)가 자꾸 생각났다.

 

그 중 유명한 십우도의 열 가지 과정은 다음과 같은데...

 

1. 심우() -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속을 헤맴 

2. 견적() - 소 발자국을 발견함 

3. 견우() - 동자가 멀리서 소를 발견함 

4. 득우(牛) - 동자가 소를 붙잡아서 막 고삐를 씌움 

5. 목우() - 거친 소를 자연스럽게 놓아두더라도 저절로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게끔 길들임 

6. 기우귀가() -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면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옴 

7. 망우존인() - 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은 소는 온데간데 없고 자기만 남아 있음

8. 인우구망() - 소 다음에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상태

9. 반본환원(源) 이제 주객이 텅빈 원상 속에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침

10. 입전수수() -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감

 

시 쓰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무엇이 시일까를 찾아 헤매다 시를 발견하고 시를 쓰다가 결국 시도 잊고 자신도 잊는 단계에 이르는 상태. 시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상태가 8. 인우구망 정도 아닐까 하는데...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자신의 삶 자체가 시가 되는 상태, 그런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 자체도 시가 되는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즉,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해탈은 자신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참선 이후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는 저잣거리로 나오지 않던가.

 

시도 마찬가지다. 시인 자신만의 세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 아니 사람들의 삶 자체도 시가 되는 경지... 그런 경지를 어쩌면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 멋대로의 곡해일 수 있지만, 불교의 십우도와 이 시집의 시들, 그리고 시론이 연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도대체 어떤 시들이냐고? 그냥 시집의 맨 처음에 실린 시만 인용해 본다. 이 시집의 시들은 다 이런 형식의 이런 내용의 시들이다.

 

담배

 

  깊은 밤 술에 취해 택시를 타면 담배 생각이 나고 난 기사 옆 자리에 앉아 기사에게 말한다 담배 한 대만 피웁시다 그러세요 어떤 기사는 허락하고 에이 좀 참으세요 어떤 기사는 참으란다 깊은 밤엔 많은 기사들이 담배를 허락하고 난 창문을 반쯤 열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담배가 떨어져 기사에게 담배를 빌릴 때도 있다 어느 해던가? 성냥을 켜던 나를 보고 기사가 말했지 선생님 이상하네요 아니 켜기 쉬운 라이터를 두고 왜 성냥을 넣고 다니십니까? 네 성냥이 좋아서요 라이터는 무겁고 성냥은 가볍잖아요? 그런 밤도 있었다

 

이승훈, 이것은 시가 아니다. 세계사. 2007년 초판 2쇄.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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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에 사무치다
서정춘 지음 / 글상걸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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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

 

서정춘의 시는 짧다. 그렇게 짧을 수가 없다. 점점 길어지는 요즘 시에 비한다면 서정춘이 쓴 시는 '아하, 나는 시간보다 재능이 모자라 더 짧게는 못 썼소' (시인의 말. 33쪽)라고 말할 정도로 짧다.

 

그렇다고 일본의 하이쿠와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일본의 하이쿠가 우리나라 선시(禪詩)와 같은 느낌을 준다면 서정춘의 시는 선시보다는 서정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무언가 마음을 끌어당기며, 짧은 시구절 속에서도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하고, 그 장면을 통하여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짧지는 길고 큰 울림을 주는 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첫시집 '죽편'을 읽고 든 생각이 이 시집을 읽으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시들의 길이만 짧은 것이 아니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29편이다. 대부분의 시집들에 수록된 시들이 80편에서 120편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면 많이도 적은 분량이다.

 

그만큼 절제된 시들이 실렸다고 보면 된다. 시인의 감정이 극도로 절제되어 표현된 시들이 또 절제되어 시집에 수록되었다.

 

29편의 시, 그것도 짧은 시들이기에 읽고 또 읽고, 자꾸 읽게 된다.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읽으면서 장면을 떠올리고, 생각에 잠기고 시가 주는 느낌에 푹 젖게 된다.

 

그래서 읽는 시간은 짧아도 시를 느끼는 시간은 짧지 않다.

 

 

시집이 참 마음에 든다

 

시집을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출판사인 글상걸상에서 기계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든 시집이란다.

 

시집이라고 하면 사람의 손때가 묻은 느낌을 주는 것이 더 좋은데, 그에 딱 알맞다. 겉표지부터 느낌이 참 좋다. 게다가 시집 제목을 시인이 직접 쓴 글씨로 장식했다. 이보다 더 손맛을 느낄 수 있게 할 수 없다.

 

옛책을 만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표지와 책의 제본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이 또한 좋다. 종이의 두께가 시의 길이와 반비례해서 두깝워서 좋다. 시집을 넘길 때 손에 잡히는 그 두터움이 손끝에 남는다.

 

 

이 시집에 실린 시 중에 첫시집 '죽편'과 통하는 시 한 편을 보기로 한다.

 

대나무 1

 

벼(稻)과의

풀이

나무가 되기까지

살아 온 날까지

살아 갈 높이의

아찔함이었을.

 

서정춘, 이슬에 사무치다. 글상걸상, 2016년. 9쪽.  

 

왜 대나무가 절개의 상징이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고 읊으며, '사시에 푸르다'고 대나무의 절개를 칭송하고, 그래서 친구라고 노래했지만, 대나무가 그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는 '벼과의 풀이' 지난한 세월을 꿈꾸며 버티며 지내온 세월이 더해져 커다란 '나무'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아찔함'을 이겨냈을 때 비로소 풀이 나무가 되고, 우리에게 삶을 알려주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 그래서 대나무는 본래부터 나무가 아니었음을.

 

우리의 인생에서도 우리가 살아온 날들은 과거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날들의 높이, 그것의 아찔함이었음을 생각하도록 한다. 그런 아찔함이 없었다면, 그 아찔함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냥 풀로 살아가야 한다.

 

이토록 참 짧은 시들이 모여 있는 시집이다. 서두르지 않고 손으로 만든 시집이기도 하고. 그래서 소중하다. 시의 길이도 짧고 수록된 시의 양도 적지만 어떤 시들보다 길고 깊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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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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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은 내게는 친숙하지 않은 시인이다. 물론 문학과지성사에서 그의 시집이 꽤 나왔기 때문에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의 시집을 사거나 시를 읽은 기억은 없다.

 

무엇인가 그의 의사라는 직업과 동화작가 마해송의 아들이라는 점, 우리나라에 살지 않고 미국에 살고 있다는 점이 그를 내게서 멀어지게 했나 보다.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어도 되니 마종기의 시는 나중에 읽자 하는 생각, 여기에 그가 의사라는 직업과 문학을 융합하여 의학과 문학이라는 분야에서도 글을 썼으니 시인보다는 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냥 그렇게 넘어갔었는데...

 

헌책방에서 이 책을 보자 이번에는 마종기의 책도 한 번 읽어보자, 얼마나 좋은 기회냐 본인이 자신의 시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책인데... 이런 생각으로 사게 된 책.

 

사실 2대에 걸쳐 문학을 하는 경우가 꽤 많다. '남한산성'이나 '칼의 노래'로 알려진 김훈도 아버지가 소설가였으며, 작년에 '채식주의자'로 외국문학상을 타서 유명해진 한강 역시 아버지가 소설가 한승원이고, 시인으로 유명한 황동규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이니, 이렇게 2대에 걸쳐 문학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마종기도 그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선 그는 의사로서의 경험을 시에 잘 살려 표현하고 있고 - 이것은 이 책의 앞부분에 잘 나온다 - 그가 미국에 간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고 - 그가 무슨 시국사건에 관련되어 군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것이 얼핏 이 책에 나온다, 그때 석방 조건으로 구금 되었을 때의 일을 말하지 않는다와 우리나라를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다가 있었다고 한다 -  또 읽으면서 마종기의 시를 읽지 않았다고 했는데 다른 책이나 매체를 통해 접해본 시들이 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 덕으로 시인이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세 번의 추천을 거쳐 시인이 되었으며, 시를 어렵게 쓰는 것이 아닌 읽는 사람이 이해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지니고 시를 썼기에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또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자신의 상황에 맞는 시들을 발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시인이 직접 자신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 이 책은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것이다.

 

시인이 등단 50주년을 맞이하여 50편의 시를 고르고, 그 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고, 뒷 부분에 후배시인들이 말하는 마종기 시인 또는 마종기 시가 있기에 마종기라는 시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내 시가 내 독백이고 주장이고 진심이고 노래이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한 편의 시를 쓴다.' (142쪽)

 

이 말은 시에 그의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이고, 이런 마음이 독자에게 전달이 될 수 있도록 시를 쓰고 있다는 말이다. 시가 독자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상황, 그것을 생각하고 그는 시를 쓴다고도 할 수 있다.

 

한 편 한 편의 시를 읽는 재미도 좋고, 그 시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문에서 본 기사가 떠올랐다. 이제는 공대생도 인문학을 공부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는. 그렇게 교육정책을 추진한다는. 그런데, 인문학을 공부해야만 이라는 말은 인문학을 이수해야만 이라는 말로 들리는데... 이수한다고 꼭 인문학적 성찰을 하는 것은 아닌데...

 

오히려 인문학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조건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지... 무슨 학점만 따면 다 인문학적 소양이 생기는 것이 아닐테니 말이다. 이건 가장 눈에 보이는, 그러나 가장 인문학하고 거리가 먼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이 책 214쪽에 있는 마종기 시인의 의과생 동기들의 이야기를 보자.

 

'... 내 의대 동기들은 의대 졸업 대 대학 졸업 자격을 검사한다는 학사고시라는 것을 치렀는데, 그 중 국어 시험에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 언제나 점잖은 적 말이 없구나. / 관이 향기로운 너는 /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라는 예문의 시에서 "모가지가 긴 이 짐승"은 아래 중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사슴을 뽑지 않고 기린을 뽑은 친구들이다.' (214쪽)

 

노천명이 '사슴'이라는 시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건 문제도 아닌데... 이 시를 모르고 있는 사람이거나 또는 배웠지만 금방 잊어버린 사람에게는 당연히 기린일 수 있는 문제. 그러나 이때 의과생들이 과연 국어 과목을 배우지 않았는가. 국어라는 시험이 의대 졸업 학사고시에도 있었다는데... 이건 교과목 이수의 문제가 아니다. 인문학이 생활과 함께 하는 문화 조성이 먼저다. 그 점을 고민하지 않는 것.

 

그러나 마종기 시인은 이런 친구들이 자신의 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인문학 정신 아니겠는가 등등. 

 

이런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여러모로 재미있는, 생각할거리가 있는 이 책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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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5 - 완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5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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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긴 소설의 끝이다. 5부는 장발장이다. 드디어 우리의 주인공이 제목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자신이 원하던 일을 이룬다.

 

양심을 지키는 일, 자신에게 거짓이 없는 삶. 다른 사람을 속이며 살기는 쉽지만 자신을 속이며 살기는 힘들다.

 

장발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을 코제트를 위해서 고백을 한다.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 없었다는 것.

 

여기에 마리우스의 태도는 장발장을 배척한다. 젊은 시절 단 한 번의 실수가 영원히 죄수라는 낙인을 찍는 것. 얼마나 잔인한 일이냐.

 

사람은 실수를 한다. 신이 아니기에. 그러나 그 실수를 바로잡는 것도 바로 인간이다. 실수가 영원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용서를 받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용서는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다. 그런데도 장발장은 그렇게 고귀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받는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용서의 모습이 바로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와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자베르의 자살이다. 그는 자신의 원칙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다. 인간이 만든 법률과 신의 영역인 사랑이 충돌을 하고, 결국 인간의 법률이 완전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 그가 자신의 삶을 끝낼 수밖에.

 

용서가 마지막까지 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용서는 바로 인간의 삶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 그런 용서받을 수 있는 행위를 한 사람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 소설은 그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장발장은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에서야 진실을 알게 된 마리우스와 코제트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 사실 코제트는 장발장을 늘 인정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다만, 마리우스에 대한 사랑에 장발장이 뒤로 밀려가고 있었을 뿐.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사람살이의 기본이다 - 자신에게서 비로소 용서를 받게 된다.

 

행복한 미소를 띠고 죽는 것, 공자가 말한 오복 중에 고종명(考終命)이라는 것이 있는데, 장발장은 이런 죽음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제 미리엘 주교의 곁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5부에서는 마리우스를 구출하고, 자베르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살을 하게 되고, 악한인 테나르디에는 여전히 악한으로 살아가게 되고,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행복한 결혼, 그리고 장발장에 대한 진실의 밝혀짐과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사회의 맨 밑바닥으로 추락한 인간이 영혼의 맨 위 단계로 상승하는 과정으로 소설이 전개되었다고 보면 된다. 작가는 이 5부에서 자신이 이 소설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직접 드러내고 있다.

 

독자가 지금 눈 아래에 펴 놓고 있는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으로나 국부적으로나, 중단이나 예외 또는 결점들이 무엇이든 간에, 악에서 선으로, 불의에서 정의로, 거짓에서 진실로, 밤에서 낮으로, 욕망에서 양심으로, 부패에서 생명으로, 동물적인 것에서 의무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허무에서 신으로의 행진이다. 출발점은 물질, 도착점은 영혼. 시초에는 칠두사, 종국에는 천사. 128쪽.

 

이렇게 장발장이라는 한 사람의 삶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그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한 영혼이 고귀해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삶을 산 사람은 결국 '용서'를 받게 된다. 그는 이 소설의 첫부분에 나오는 미리엘 주교처럼 고귀한 영혼을 지닌, 고귀한 삶을 산 사람이 된다.  

 

5부 장발장 : 1. 시가전 - 2. 거대한 해수의 내장 - 3. 진창, 그러나 넋 - 4. 탈선한 자베르 - 5. 손자와 할아버지 - 6. 뜬눈으로 새운 밤 - 7. 고배의 마지막 한 모금 - 8. 황혼의 쇠락 - 9. 마지막 어둠, 마지막 새벽

 

조금 아쉽게도 5권에 이르는 동안 차례에는 각 부의 이름만 나오지 작은 장들의 제목이 나오지 않는다. 차례에는 이런 작은 제목들을 보여주는 친절이 있었으면 하는데... 차례가 없으니 답답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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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4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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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다. 이제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그리고 혁명. 이 4부의 제목이 그것을 알려주고 있다.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는 두 연인을 나타낸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두 사람, 그들에게 세상은 온통 그들의 것이다. 세계를 모두 자신의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이렇게 서정시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정시의 시대만 지속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세계를 온통 내것으로 만드는 그런 서정시의 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비록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서정시가 되겠지만, 그 사랑을 유지해 나가는 일은 서사시가 되어야 한다. 이제 자신을 세상에 내놓고 세상과 싸워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회와 치열하게 대립해야 한다. 주변의 사람들과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이야기 없이 감정이 넘쳐나는 서정시에서 이야기가 있는, 사건이 있고 갈등이 있는 서사시로 넘어가게 된다. 소설은 두 사람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이 맺어지기 위해서는 사건과 갈등이 있어야 한다.

 

그 사건과 갈등을 이겨내야 한다. 서사시의 주인공은 영웅들이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그 운명을 비켜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여기에 사회 문제까지 겹쳐져서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가 된다. 단지 두 연인의 사랑에서 사회에 대한 사랑으로 사랑이 확장되는 것이다. 더 큰 갈등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겪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렇다. 사람들에게 운명은 절대로 비껴가지 않는다. 운명은 사람들에게 곧장 다가온다. 자, 어떡할테냐 하는 식으로.

 

코제트와 마리우스를 중심에 놓으면 그들의 사랑에 이야기가 생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장발장의 처지에서 보면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에게는 사랑의 차원이 달라져야 하는 지점에 와 있는 것이다.

 

평생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에게, 이제 사랑이 찾아왔는데, 그 사랑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사랑이라니... 하여 서정시에서 서사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방대한 서사시로 가는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이 나오게 된다. 이제는 영화로 친숙해진 인물, 앙졸라를 비롯해 에포닌, 가브로슈가 나온다.

 

이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는 과정을 통해서 작품은 방대한 서사시로 흘러간다. 이제는 개인들만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이라는 지점에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된다.

 

바리케이트 앞에 선 사람들, 그들의 운명은? 여기까지가 4부다. 그들이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운명에 맞서게 되기까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4부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 : 1. 몇 쪽의 역사 - 2. 에포닌 - 3. 플뤼메 거리의 집 - 4. 아래에서의 구원이 위에서의 구원이 될 수 있다 - 5. 시종이 같지 않다 - 6. 어린 가브로슈 - 7. 곁말 - 8. 환희와 비탄 - 9. 그들은 어디로 가나? - 10. 1832년 6월 5일 - 11. 폭풍과 친해지는 미미한 존재 - 12. 코랭트 주점 - 13. 마리우스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다 - 14. 장엄한 절망 - 15. 옴므 아르메 거리

 

줄거리만으로 느끼지 못하는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작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이렇게나 자주 일어나다니 하는 생각을 하고, 혁명에 대한 빅토르 위고의 생각을 알 수 있고, 주변 인물들을 통하여 주인공들의 삶에 더 잘 접근할 수도 있다.  

 

여기에 마리우스가 혁명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공화국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보다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절망에서 나왔다는 것, 그러나 그 절망은 바로 순수함이고, 그 순수함으로 인해 혁명의 순수함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

 

또 영화나 줄거리만으로 느꼈던 코제트에 대한 인상, 코제트를 요즘 시대로 생각해 20대일 거라고 착각하는데, 이 때가 겨우 십대라는 것, 1832년에 많아야 17살이었다는 것.

 

우리나라로 치면 이제 겨우 고1이다. 투표할 수 있는 나이를 만 18세로 하자는 안을 내느니 마느니 하는 이 나라에서 17세에 이미 사랑에 빠졌고, 마리우스의 나이와 합쳐도 40이 안 되는 나이에 그들은 이미 어른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혁명에 참여한 가브로슈는 어떤가? 그는 코제트보다도 더 어린 나이이니 말할 것도 없고,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목숨을 바친 에포닌 역시 코제트와 동갑이 아니던가.

 

우리나라 춘향이, 로미오와 줄리엣 등 당시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읽어갈 수밖에 없는 낯설음. 그만큼 우리는 독립하는 시기를, 정신의 성숙시기를 뒤로 늦추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개인의 감정에만 빠져 있는 서정시에서 우리 역시 사회로까지 시야를 확대해야 하는, 그래서 사건과 갈등이 있는 그런 서사시의 세계에 처해 있다는 생각.

 

이제 남은 건 5부다. 소설은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있다. 줄거리를 이미 다 알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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