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지음 / 아작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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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읽기로 결심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사람은 늙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늙어감을 추함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추하게 늙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소설집 제목이 된 이 소설에서는 늙어서도 젊은이들과 비슷해지려는 노인 둘이 나온다. 그들은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물건들을 구입하고 이용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추하게 늙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젊은이들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추하게 늙지 않게 될까? 오히려 젊은이들과 같아지려 하는 모습이 추한 모습 아닐까?


늙어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젊은 세대와 차이가 있음을 알고, 그들과는 다른 삶을 보여주는 늙음이 추하게 늙지 않은 삶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소설은 젊은이들과 비슷해지려는 행동을 하려는 노인을 통해서 그것으로는 추함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자신의 것만을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추하게 늙지 않는 일,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삶을 지키면서도 젊은 세대의 삶을 가로막아서는 안 되는 삶을 살아야 하니.


가볍게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임에도, 읽고 나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추하게 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 추하게 늙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님을 발견하게 되고, 그와 반대로 늙어가는 것이 과연 추함과 멀어지는 일일까 생각도 하고.


늙은 세대와 젊은 세대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늙은 세대는 자신의 삶만을 고집하지 않고 젊은 세대의 삶을 인정해주는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자신들의 삶을 젊은 세대가 잘 살아가도록 하는 발판으로 만들 수 있는 행동을 해야 추하게 늙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 외에도 독특한 발상을 한 소설들이 꽤 있다. 유한한 삶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해 나가는 소설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를 읽으며 지금 우리들이 추구하고 있는 불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과연 불멸이 축복일까? 하지만 우리는 불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소설은 그 항해에 성공하고 있는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를 따지기 전에 어느 정도 과학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고, 또 우리 인간들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소설이니...


이 소설 외에도 재미 있게 읽은 소설들이 꽤 있다. 독특한 발상에 읽는 재미를 선사하고, 또 반전을 보여주는 소설들이 있는데...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처럼 중성화 수술을 받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인 '저 길 고양이들과 함께', 마치 채만식의 '미스터 방'을 읽는 느낌을 주는, 'SF클럽의 우리 부회장님'같은 소설.


여기에 로봇과 인간이 친구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 식량 문제와 기후 문제를 해학적으로 풀어가고 있는 '한 터럭만이라도', 인공지능 문제, 과연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하는 '감정을 감정하기'라는 소설도 재미 있다.


이 외에도 몇 편이 있지만 생략하고, 대체로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어서 읽기에 편하다. 또 굳이 SF소설이라고 하지 않아도 그러한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는 소설들이다. SF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들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들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니, 심너울의 소설은 SF이라고 해도 좋고, 아니라도 해도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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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2-30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 제목이...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텍스트T 2
정연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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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아빠는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고 밖으로 돈다. 엄마,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엄마가 돌아가신다. 충격. 아빠가 돌아왔다. 아빠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빠라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원망만 있다.


이제 아빠 고향으로 가게 된다. 처음으로 가게 된 아빠 고향. 왜 그럴까? 소설은 여기서 궁금증을 유발한다. 왜 아빠는 밖으로 돌았을까? 그는 왜 고향에 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 와서 왜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부모의 죽음은 충격이다.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그것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남남처럼 지내던 아빠와 함께 살아야 한다. 낯선 곳에서. 어쩌면 낯선 곳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에 좋은 장소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을 늘 웃는 표정의 아이로 그린 이유가 여기에 있겠다. 자신의 슬픔으로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아이. 이런 아이는 슬픔이 안으로 쌓이고 쌓여 나중에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슬픔은 어느 정도 고여 있다가도 밖으로 흘러야 한다.


슬픔을 가둬두었다간 언젠가 댐이 터지듯 터져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 슬픔의 둑에 구멍을 내는 역할을 무엇이 할까? 언제까지 슬픔에 갇혀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슬픔을 내보낼 구멍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다. 우연히 자신에게 다가온 시. 시는 가슴 속에 남아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하지만 슬픔이 나갈 구멍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이 소설은 아이가 시를 만나면서 시를 쓰게 되고,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면서 피해가지 않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이 진행되면서 시가 곳곳에 나온다. 주옥같은 시라는 표현이 식상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시들은 마음 속에 콕콕 박힌다.


그런 시들을 읽는 재미, 소설의 상황에 맞게 등장하는 시는 우리에게 시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해주기도 한다.


여기에 여자 등장인물, 은혜. 그야말로 은혜다. 축복이다. 이 은혜로 하여금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이 주인공과 반대인 듯하지만, 그런 은혜에게도 상처가 있다는 사실. 그 상처를 은혜는 받아들이고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자신에게도 현재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은 아빠와 화해하는 장면까지 가지 않는다. 아니, 갈 필요가 없다. 그 이후는 이제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지니겠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녹록치 않음을 회피로 가게 하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다. 시를 통해서 또 은혜를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본 주인공은 이제 자기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까.


그렇게 자신을 긍정하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기. 이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후회 속에서 사는가? 후회는 앞으로 나아갈 발판이 되면 좋지만, 과거에 나를 머물게 하면 안 된다. 주인공인 아빠, 이 사람은 후회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과거에 잡혀 있었고, 또 그것으로 인해 현재를 살지 못했다. 그러니 가족을 구성하면서 아웅다웅 하면서 살아가는 일을 하지 못하고 회피했다.


나약함, 한때 시를 썼다는 사람이 시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삶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레 현재가 다가왔다. 현실이 그의 앞에 떡 나타났다. 그 역시 현재를 살아야 한다. 자식과 같이 살아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선택지가 없기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자신이 떨치고 떠난 곳. 새로운 시작은 자신이 버린 곳에서 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현재 속에서 길고도 긴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자식과 함께 하는 삶을.


이런 삶. 자식은 시를 통해서 자기 슬픔을 내보내는 길을 찾았고, 은혜라는 친구를 통해 현실에 충실한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더 성숙해지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슬픔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 또 그 슬픔에 함께 하는 시들. 시를 통해 마음을 어루만지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


소설은 한 아이의 성장기이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시가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읽어가는 재미도 있고, 소설 속 시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아이는 시를 통해 슬픔을 위무하고, 슬픔을 내보낼 수 있게 된다. 그는 시를 통해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래, 이게 바로 시의 힘이다. 이런 시들을 곁에 두고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사람들이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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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갇힌 남자 스토리콜렉터 8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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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이 우선 보통사람과 다르다. 대학 때 미식축구를 한 거한이다. 덩치가 다른 사람을 압도한다. 여기에 미식축구 경기 중에 다쳐서 뇌의 한 부분이 특수한 작동을 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뇌를 지니게 된다.


잊지 않는다는 일, 축복일까? 저주일까?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다. 좋은 기억이 있으면 그것을 잊지 않으니 축복이겠지만, 마찬가지로 안 좋은 기억을 잊을 수가 없으니 저주이기도 하다. 이런 기억 능력은 양날의 검이다. 어떤 쪽으로 제어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복이 달려 있다.


데커라는 인물. 기억과 덩치. 그는 형사로 일한다. 형사, 사소한 단서도 놓쳐서는 안 되는 직업. 정의를 실현하는 직업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형사로서 덩치와 기억은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데커는 자신의 가족이 살해당했다. 이처럼 치명적인 사건을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견디기 힘든 기억이다. 최소한 데커에는 망각이 없으므로. 이 기억 속에서 그는 허우적 댈 수밖에 없다.


딸의 생일에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와 무덤에 꽃다발을 놓는 데커에게 13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암으로 인해 가석방이 되었다고 찾아와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한다. 무죄임을 밝혀달라고.


데커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재수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무죄라고 주장한 사람이 살해당한다. 뭔가 이상하다? 다시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데커.


여기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한다. 반전에 반전,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사건들. 범인은 누구인가? 그 범인을 추론하는 재미로 소설을 계속 읽기 시작한다. 뜻밖의 인물들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그리고 그들이 또 살해당하고...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데... 여기에 반전이 또 일어난다. 범인에 대한 윤곽, 13년 전 살인사건에 대한 윤곽이 점점 뚜렷해진다. 범인에게 한 발 더 다가가게 된다. 


그래, 이 소설은 그런 재미로 읽어야 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가? 왜 그런 살인을 저질렀나? 미국이라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갱단, 마약, 그리고 돈... 결국 돈이라는 생각으로 사건이 정리되어 갈 무렵. 아니다. 돈이. 더 다른 문제가 있다.


소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미국 사회와 갈등관계에 있는 나라까지 끌어들인다. 좀 너무 나갔다 싶기도 하고, 007시리즈를 소설로 읽는 듯한 느낌도 들고.


살인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소설을 전개했으면 훨씬 좋았겠단 생각을 하는데... 지금은 냉전 시대가 아니니까. 그러니 오히려 살인과 경제를 연결짓고, 그 매개가 되는 돈이 사람들을 어떻게 위험에 빠뜨리는지를 서술했으면 더 좋았으련만...


이런 국가간의 음모까지 나아간 점이 좀 무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전까지 추리를 해나가고, 범인의 윤곽을 밝혀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범인이 누구일까를 추론하는 재미까지 있는데... 결말을 감안하고 읽으면 그런대로 흥미로운 추리소설이다.  


데커가 자신의 심리적 상처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소설을 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고,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잊지 못할 자신의 아픈 기억을 극복해가는 모습이 잘 표현되고 있어서, 그 부분에 중심을 두고 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열린 결말이다. 아마도 데커라는 인물을 통해 다른 추리소설들이 계속 나오리라는 예상을 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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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제국 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정철호 옮김 / 현대정보문화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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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서  2권.


다시 오로라 행성으로 오게 된 글래디아와 다닐, 지스카드. 오로라 행성에서는 로봇은 소유자의 소유물에 불과하니, 사실 오로라 행성의 지배자들은 글래디아에게 오로라 행성으로 귀환하라고 했을 뿐이다. 그러면 두 로봇은 따라올 수밖에 없으니...


왜 갑자기 글래디아를 오게 했을까? 추리소설처럼 추론하게 만든다. 다닐과 지스카드가 추론을 하고, 글래디아의 추론은 핵심에서 벗어나기에 논의할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는 지구를 파괴하려는 맨더머스(그의 상급자 아마디로)와 지스카드의 능력을 알아채고 자신의 로봇으로 만들려는 바실리아가 등장한다.


그들은 지구를 없애기 위해서는 지스카드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오로라에 돌아온 지스카드를 바실리아가 자기 소유물로 만들려고 하지만, 지스카드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바실리아의 기억을 지우고, 글래디아로 하여금 지구로 향하게 한다.


이제 지구의 이야기... 지구에 도착하여 겪게 되는 일들은 그다지 흥미진진하지 않지만, 맨더머스의 음모 장소를 찾아가는 이야기에서 '스리마일'섬이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당시 아시모프에게는 핵발전이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았나 보다.


지구에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설정된 장소 이름이 '스리마일'이니, 스리마일 핵폭발 사건은 우리에게도 알려진 사건 아닌가. 그러니 아시모프가 지구가 방사능으로 뒤덮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이렇게 소설로 표현했고, 우주인과 이주민의 갈등은 당시 지구에서 벌어지던 냉전을 연상하게 한다. 즉 SF소설이라고 하지만 광활한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다닐은 거의 확고하게 로봇0원칙을 확립한다. 그것은 인류에게 위해를 가하는 인간에게는 해를 입혀도 된다는 원칙. 즉, 개인보다는 인간이라는 집단을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는 인간을 힘으로 제지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이 원칙에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로봇0원칙은 불완전하다. 지스카드는 소멸된다. 자신의 능력을 다닐에게 전수하고서.


이제 다닐은 살아남아 지구가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구 멸망은 끝이 아니다.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은하제국을 건설하는 첫걸음이 된다. 그것을 지켜보고, 평화로운 은하제국이 건설되고 유지되도록 하는 일, 다닐의 일이다.


이런 다닐을 알게 되면 왜 [파운데이션]에서 다닐이 계속 나오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아시모프 소설은 서로가 서로를 보충해주고 있다. 발표된 순서대로 읽으면 사건의 순서는 뒤죽박죽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형태로 읽어도 좋다. 읽으면 읽을수록 빈 자리를 메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1권에서 완만하게 진행되던 사건 전개가 2권에서는 급격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로봇들이 사건의 전면에 나선다. 인간과 대등하게, 때로는 인간보다 우위에서. 자, 이제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섰다.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로봇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토론거리로 이 책을 참고할 수 있다. 로봇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혐오하는 이주민 사회와 거의 모든 것을 로봇에 의존하는 우주인 사회. 


두 사회는 로봇을 대하는 태도에서 정반대일 것 같지만, 사실 두 사회 모두 로봇을 독립된 개체로 보지 않고 인간의 소유물, 즉 물건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다닐과 지스카드는 생각할 줄 아는 로봇이다.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아는 지스카드는 마음도 있는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들을 단순하게 소유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우리가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고 더 개량된 로봇들과 살게 될 때 어떤 관점에서 로봇들과 지내야 할까? 로봇을 이용하는 범위는 어디까지여야 하나? 등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다.


단지 SF소설이라고, 상상 속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일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이 소설에서 인류가 저지른 어리석은 짓들을 우리는 따라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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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제국 1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정철호 옮김 / 현대정보문화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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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을 읽기 전에 이 소설을 먼저 읽었어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펼치고 찾아본 이름에서... 다닐... [파운데이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로봇 아니던가. 그런 로봇이 여기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지스카드라는 로봇과 함께.


처음 시작은 우주인(이 소설에서는 인류를 두 부류로 분류하고 있다. 한 부류는 지금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종족과 같은 수명이 채 100년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고 또 다른 부류는 수명이 거의 400년에 달하는 개량된 인간들이다. 앞에 언급한 인류는 이주민-지구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 온 지구인이라는 뜻-으로 불리고 뒤에 나오는 인류는 우주인-이들도 역시 선조는 지구인이지만, 그들은 지구인과 단절되었다-이라 불린다)인 글래디아라는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로봇과 함께 오로라라는 행성에서 평온한 생활을 하던 글래디아는 어느 날 두 사람의 방문을 받고 전혀 새로운 삶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한 명은 한 때 자신이 사랑했던 지구인의 후손인 이주민들이 사는 베일리 행성에서 온 베일리이고, 또 한 명은 오로라 행성에서 출세 욕심을 지닌 맨더머스라는 인물이다.


맨더머스는 지구를 파괴할 생각을 가진 젊은 공학자인데, 글래디아의 후손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을 확인하러 왔다고 하는데, 사실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글래디아의 후손은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온 것.


그가 다음에 올 손님으로 베일리를 알려주는데, 베일리는 오로라 행성에서 별일 없이 살아가던 글래디아를 솔라리아 행성으로 데리고 간다. 솔라리아 행성. [파운데이션]에도 나왔던 행성이다. 물론 오로라 행성도 나왔고.


여기에 가지 전에 두 로봇, 다닐과 지스카드가 등장하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의 서술이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이 글래디아라는 인간이 아닌 로봇임을 짐작하게 한다.


즉 글래디아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고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스카드의 부추김으로 행동하게 된다. 사람의 심리를 조종할 수 있는 로봇. 이는 사람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로봇이란 뜻이고, 여기에 사람과 외양이 흡사해 얼핏 보면 사람과 구별할 수 없는 로봇인 다닐이 나온다.


아시모프가 창안한 로봇 3원칙에 의하면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는데, 솔라리아의 로봇은 솔라리아인이 아닌 이주민, 우주인들을 공격한다. 글래디아가 어린 시절 솔라리아에 살았기 때문에 솔라리아 로봇이 글래디아를 공격하지는 못하지만 베일리나 다닐은 공격 당한다. 이는 로봇이 인간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다닐과 지스카드는 로봇 3원칙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을 공격하지 않아서 더 많은 인간이 위험에 처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보통은 인간이 난제를 풀어서 로봇을 프로그래밍 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뛰어난 공학자라도 아직 지스카드가 사람들 마음을 읽고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에게는 지스카드라는 로봇은 인간과 너무도 다른 로봇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로봇일 뿐이다. 즉 뒤떨어진 로봇으로 취급되고 있는데...


지스카드의 능력은 소수만이 알고 있고, 그 능력을 알고 있는 이들은 이미 죽어서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로봇이 생각을 하면서 어떤 행위가 진정 인간을 위하는 일인지를 결정해 가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1권에서는 아직 그 활약이 미미하다. 글래디아 뒤에 숨어서 아직 전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솔라리아에서 살아남아 베일리 행성으로 간 글래디아는 우주인과 이주민이 다 같은 인류라는 생각으로 평화 운동에 헌신하기로 한다.


그런데 갑자기 베일리 행성에서 잘 지내고 있는 글래디아를 오로라 행성으로 돌려보내라는 전언이 오고... 소설은 또다른 사건을 향해 달려간다.


2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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