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반양장)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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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여지 없이 레이먼드 카버는 나의 가장 소중한 문학적 스승이었으며, 가장 위대한 문학적 동반자였다." 책 뒤표지, 무라카미 하루키
책 뒤의 말 중에서 가장 공감가는 문장 중의 하나가 되었다.
기이한 요가의 자세를 한채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1억광년은 떨어진 별에서 온 생명체가 - 하지만 근원인 인간인 - 건조하리만큼 바라보는 듯한,
하루키의 기묘한 문장들의 출생기록부를 본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은유는 은유다워야한다'는 문장의 혈통서도 덤으로 받은 듯했다.

단편.
짧은 글.
그래서 쓰기 쉽겠지. 금방 읽혀지겠지.
나의 착각이었다. '단'의 'ㄷ'도 제대로 알지 못한 나의 무지한 착각이었다. 난 그런것도 모르고 카프카를 카프카적이라고 비난했다. 오해를 풀어줄 페이지가 넉넉한 장편에 비해, 불공평하게 주어진 짧은 지면들. 배려하고 싶은 독자 앞에서 불편하게 시작해야하는 어느 시점. 회유와 설득과 쇠뇌와 설명을 백년 동안 반복하며 창작자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장편에 비해, 섬뜩할 만큼의 강한 인상으로 결말 맺어야하는 단편. 쓰는 이도 읽는 이도 힘든 것 같다. 단편. 모두가 잠들어야할 새벽 세시에 급제동하며 끼이익 소리를 내는 자동차의 브레이크 소리보다, 짧은 비명이 더 어울릴 법한 단편.
그 단편의 진수가 여기에 있었다.

김연수
'번역'이라는 작업을 가장 아름답게 만든 것 같다. 소설가 김연수씨는. 외국 작품을 고를 때, 역자와 출판사는 항상 고민의 대상이고 어렵다. 말이든 글이든 '전달'을 하는 목표는 같을 것이고, 그래서 그 말과 글 속의 단어와 문장들은 하나하나를 다 꼭꼭 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단어와 문장들이 무의식에서 그 '전달하고자하는 것'을 빚어내기에 우리는 역서 자체에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쓰인 소설을 읽을 것이기에 그래서 우리는 역자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같은 작가로서 우리 보다 더 잘 그리고 더 모질게 고민한 소설가인 역자를 신뢰하게 되나보다.


창작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쓸 때 가장 호소력있는 창작물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매끄럽게 읽어지고 사심없이 공감하게되는. 독자가.

알콜 중독이었고, 별거했었던 굴곡진 그의 인생. 햇빛이 결코 들지 않는 - 그마저도 털면 먼지로 콜록콜록거리게 될 것 같아 곁에 있기 조심스러워지는 두꺼운 커튼이 쳐진 - 방 구석의 아무렇게나 구겨진 - 쓰레기통에 들어가지도 못할 - 이미 제 역할을 끝내 더 이상 쓸모 없는 영수증 같았던 그의 이야기가 잔뜩 배어있는 단편들이었다.



깃털들

"못생겼다는 말조차 녀셕에게 영예로울 정도였다" p34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영향을 줬을 법한 문장들이 곳곳에 있었다.

"아 어렵다"

첫 단편 깃털들을 읽고 메모한 노트이다. 해설을 읽고 나서야 끄덕끄덕 그렸고, '아~' 하며 그의 치밀한 은유에 탄복했다.



셰프의 집

"웨스는 일어나 커튼을 쳤고 바다는 그렇게 사라졌다." p53

무엇인가 '백년 동안의 고독'스러움이 느껴졌다.



보존

카프카적인 일시의 당황스러운 결말이다. 길을 걷다 맨홀에 빠지듯이.



칸막이 객실

마이어스는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여행해서 갔지만, 마치 정교하게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방과 선물을 부질없이 잃어버렸고, 종착역은 언제나 그랬듯이 바뀌어 버렸다.

어디인지도 모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p127

속이 타는 듯이 내리 읽었다. 복선을 타며 읽었다. 빵집 주인의 공허한 이야기를 듣기엔 너무 가혹한 일어난 일들. 그렇게 무상하고 예기치 못하고 당황스러운 인생.

힘겨워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롤빵'을 마음으로 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비타민

석연치 않은 이상한 하루가 어쩌다 한 번씩 있는 것 같다. 운 좋게도 운 나쁘게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그리고 몇달 속의 그런 하루처럼 인생의 어느 한 부분도 그럴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지나가는 하루처럼.



신경써서

알콜 중도, 아내와의 별거. 그의 이야기답게 사실적으로 전해져왔다. 쉽게, 어느 정도의 노력에, 약간의 고통에 의해서 벗어날 수 있다면 '중독'이라고 명하지 않겠지.



내가 전화를 거는 곳

물흐르는 듯이 거침 없이 읽힌다. 그의 이야기가 짙게 작용해서 그럴까? 속수무책으로 내리 읽힌다.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

"어쨌든 케이크는 케이크다" p194

하루키가 카버를 문학적 스승, 동반자라고 칭한 것을 증거해준다. 왜 하루키의 책들이 그렇게 술술 읽히는지 알 것 같다. 다른 것을 생각할 틈도 주지 않는다. 마침표가 가장 작은 문체가 아닐까한다.



기차

이것이 '단편'의 맛인가? 긴 이야기의 어느 한 부분을 불친절하게 잘라서 툭 던져주는 듯한 느낌. 어떤 이야기의 어느 부분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잘 자른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모두지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초라해질 것 같다. 생각 없이 티비 앞에 앉아 아무 정규방송의 처음 본 - 하지만 곧 전체 줄거리를 알 수 있는 - 드라마를 뇌파가 일직선이 되게 보고 있는 듯한 부끄러움을 떨치기 위해.



"그는 수화기를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그는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그 기계를 가만히 바라봤다." p232

눈을 보고 하는 말도 위선과 허위로 가득할 때가 많은데, 전화기는 오죽하랴. 당신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전화기'와 이야기하고 있다.

'통화' 가장 쉽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가장 어렵게 전달한다. 제대로 전달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암시가 중요한 거야"

"의도가 보이면 그건 그림을 잘못 그린 거야. 알겠지?" p237

"'계속해요'. 웹스터 부인이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는 알아요. 계속 말하세요. 칼라일 씨, 때로는 그렇게 다 말하는 게 좋을 때가 있어요. 때로는 말해야만 하는 거라우. 게다가, 나도 듣고 싶어요. 다 말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거에요. 나한테도 있었던 일이니까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일. 사랑이라는 거. 바로 그 얘기 말이우."

"'여기 앉아요, 짐' 웹스터 부인이 말했다. "서둘 필요가 없어요. 자,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세요, 칼라일 씨" p253

"그는 그렇게 뭔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무언가가." p254

'카버'도 경청해주는 사람이 몹시 필요했나 보다. 모든 것을 재잘거리며 단단히 비워내고 고이 고요히 간직하고 다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들어주고 싶다. 재잘거리고 싶다. 간직하고 싶다. 맞이하고 싶다.



굴레

그의 단편에서는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은. 지겨운. 굴레를 쓰고 있는 이도, 그것을 보고 있는 이도. '해결', '탈출', '돌파구' 이전에 받아들이는 모습이 좋다.



대성당

무엇인가를 막연히 느끼고 꼬집어 말하고 전달하기 힘든 것. 그 '모호한' 깨달음이 너무 커서 감당하지 못해 벅차게 - 넘쳐흐르며 - 독자에게 넘겨주고 있다. 이 것이 진수이다.



해설

"그것들은 '듣지 못함deafness'의 소설적 표현이다." p317

"자신의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비로소 타인과 세계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 목소리를 통해 '뭔가'를 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집이다" p318

"화장실은 카버의 소설에서는 자각의 공간인 셈이다." p323

"이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단순히 고독한 현대인이 아니라 낙원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왜소한 존재로서의 인간 일반이 됐다." p329



12편의 단편들을 다 읽었다.

'단절'에 대해서 읽었고, 가장 열정적이고 경건한 '경청'을 느꼈다.

그리고 '롤빵'을 건네고 싶어졌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p127

˝어쨌든 케이크는 케이크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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