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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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한테 해요! ... 내가 아니야!" p353

윈스턴이 1번 방에서 그들이 원하는 마지막 단계가 되기 위한 교화 고문을 받았을 때, 그들이 원하는 '그 답' 을 외친 것이다. 윈스턴이 가장 무서워하는 쥐가 자신의 얼굴을 갉아먹으려 하기 직전 외친 소리. 내가 아닌 그녀에게 해라고. 사랑하는 그녀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그 둘의 '사랑'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서로가 굳게 믿었는데, 그 둘은 극단의 고통 앞에서 그 고통을 세차게 밀어냈다. 각자가 각자에게.

조지 오웰의 '1984'는 반유토피아적으로 엄중히 전체주의를 경고한다. 등골이 오싹할 만큼. '당'에 의해서 부부의 성관계마저도 - 그 쾌락마저도 - 어릴 때부터의 교육으로 '자손'을 생산하기 위한 '행위'로 간주된다. '당'을 영속시키기 위한 새로운 노동력 - 새로운 감시자 - 을 생산하기 위한 그저 '생식' 활동일 뿐인 것이다. 감정을 풍성하게 만드는 다양한 언어의 표현마저도 줄여가며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모두 통제하는 1984의 사회에서 인간이 얼마까지 '회색적'으로 변해갈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버마에서의 경찰 생활, 런던에서의 따라지 인생, 스페인 내란의 참여를 통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오웰은 이 섬뜩한 미래의 사회를 곧 일어날 것만 같이 엉뚱하지 않게 그려낸다.

윈스턴과 줄리아의 사랑마저도 그의 펜 앞에서는 '당'이 보여준 '사회'보다 더 무섭고 잔인하게 결말이 그려진다. 최악의 고통 앞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그 고통을 가하라고.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내 앞의 당신에게로인지 '나'에게로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집안의 백년동안 반복되고 도저히 풀릴 수 없이 얽힌 갈등에 휩싸였을 때, 좀 더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끼니를 걸러 배가 몹시 고플 때, 사소한 감기에 걸렸을 때, 우리는 '오브라이언'이 쥐떼를 얼굴에 들이대지 않아도 쉽사리 세상에서 가장 날선 칼을 편리하게 소중한 '당신'에게 들이댈 수 있다. '설득의 심리학'에서도 어려운 말을 꺼낼 때는 맛있는 것을 사주며 하라고 하지 않는가. 물론, 우리는 생물학적 본능에만 지배받는 동물은 아니다. 하지만 생명체이기 때문에 그것에 전혀 지배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랑은 지고지순하고 모든 고통 위에 있는 거룩한 것이다'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런 말과 아름다운 가슴 뭉클한 이야기는 많으니. 나는 오웰이 1984에서 아름다운 유토피아가 아닌 섬짓한 미래로 경종을 울렸듯이, 사랑도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물적'인 것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좋을 때'는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고 아름다워 보일 것이지만, 그 반대일 때는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종말'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Rest well to shake off your cold" (감기를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잘 쉬어라)라고 굿모닝 팝스에서 며칠 전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다. 당신이 지금 사랑하는 이와 싸우고 있다면 맛있는 것을 먹고 좀 쉬어보자.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처럼 당신과 당신의 당신도 사람이고 생명체이고 동물이다.




* 책 속의 사유노트


1. 윈스턴이 일하는 진리부의 기록부가 우선 다루어지는 것은 그것 (언론, 문화)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전체주의를 위해 중우를 만들고 지속시키기 위해 언론과 문화를 조작하는 것이 최우선시 되기 때문이 아닐까? p63


2. 동의어, 반대말 등을 없앰으로써 언어를 단순화시키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획일화 단순화시켜가는 것 같다. 전체가 하나같이 똑같은 회색인간 - 무미 건조한 - 이 되게. 사고의 폭을 좁힘. p67


3. '그들'은 집요하게 총력을 기울여 '과거'를 끊임없이 바꾼다. '그들'이 현재 떠드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들'이 말하는 미래의 약속을 합당화하기 위해서. p103


4. '영사'에 있든,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형제단'에 있든, '조직'에 있고 주어진 명령을 맹목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면 '형제단'에 있는 것이 '개인'에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 p216


5. '평등'과 같이 실현이 요원한 것들이 '목표'가 되고 구호가 된다. 그저 대중을 모으고 행동하게 만드는 소수의 허위일 뿐이다. p251




* 책 끝의 레퍼런스 노트


초서,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 p69

조너선 스위프트, 디킨스 p384

올더스 헉슬러 p389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p388

'버마시절"

"동물농장" p390




* 책 속의 밑줄


"줄리아한테 해요! ... 내가 아니야!" p353

`빅 브러더(Big Brother)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p8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 p11

"때때로 인간은 자기 임의로 증오의 대상을 이리저리 바꿀 수 있었다" p23

"신어의 완전한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려는 데 있다는 걸" p68

"멍청한 엄숙함" p76

"그들에게 지식이 없기 때문에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자유를 허가해도 괜찮다." p256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p318

"박해의 목적도 박해이고, 권력의 목적도 역시 권력이지." p323

"처음으로 그는 사람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도 그것을 감춰야 함을 깨달았다."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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