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북 스토어 Top 5 (오른쪽 위) "The Wind Up Bird Chronicle"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랍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조금 읽었지만, 태엽 감는 새는 제목부터 생소했답니다. 그리고 그 책이 왜 저기 하버드의 북스토어 탑 5번째에 있는지도 무척 궁금했답니다. 하지만, 전체 4권. 아무리 하루키의 시선과 독특한 감상의 표현을 좋아한다고 해도 쉬이 손이 가지 않더라구요. 그러다 알라딘의 중고 알람 문자가 와서 덥석 3권과 4권을 사버렸답니다. 책장에 1권과 2권 없이 덩그러니 꽂혀있는 책을 보니 `기묘함`이 느껴졌고 결국에는 1권과 2권을 새 책으로 질러버렸답니다.


저는 하루키의 이런 표현들이 무척 좋습니다. 주제와 내용을 떠나 그저 그의 이런 문체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좋답니다.


"그녀 부모의 반응은 무척이나 냉담했다. 마치 온 세상의 냉장고 문이 한꺼번에 열린 것 같았다."

p97, 1권 도둑까치 편


"그 옅은 어둠에는 옅은 어둠 나름의 어둠이 있었다."

p98, 2권 예언하는 새 편

 

"사람들은 모두 힘들어 보이는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뭉크가 카프카의 소설을 위해 삽화를 그렸다면 그런 식이 되지 않았을까"

p102, 2권 예언하는 새 편


"결코 해파리를 변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 생명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이다."

p300, 2권 예언하는 새 편




태엽 감는 새 연대기

하버드 북 스토어의 영문 제목 "THE WIND UP BIRD CHRONICLE" 처럼 `연대기`는 이 소설에서 결코 가볍게 생략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노르웨이 숲`이 `상실의 시대`가 된 것처럼 한국어판 제목에서 그 `연대기`는 빠져 그저 `태엽 감는 새`가 되었습니다.


연대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연대순으로 적은 기록


제1권 도둑까치 편은 주인공 오카다 도루의 사라진 고양이를 찾으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와 같이, 여느 때와 같았던 일상에서 아내가 훌쩍 떠나버립니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고양이를 찾았던 것처럼 오카다는 그의 아내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음탕한 전화를 거는 여자

예언을 하는 여자와 그녀의 조수 여동생

2차 세계대전 중 만주에서 일본군과 소련군이 치른 소규모 전투인 노몬한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두 군인 할배

 고위층들의 심리 치료를 하는 초능력자 같은 여자와 명석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그녀의 아들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온통 잘 못된, 사라진 아내의 오빠

폭주하는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남자 친구의 눈을 뒤에서 가려 죽게 만든 소녀


와 같은 기묘한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가 뒤엉켜 나아갑니다. 그리고 주인공 오카다의 현실과 꿈과 확장된 상념이 경계를 서로 넘나들며 마구 뒤섞입니다. 그러면 소설의 제목 `태엽 감는 새`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할까요? 동양에서 길조인 까치가 서양에서는 `머리 좋고 얄미운 새`로 여겨진답니다. 그런 좋지 않은 까치의 의미로 로시니는 오페라 `도둑까치`를 썼으며 그 서곡은 오페라 이상으로 유명하다고합니다. 그런 `도둑까치`로 작명된 1편 도둑까치 편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태엽 감는 새는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태엽 가는 새` 원래 이름은 모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태엽 감는 새는 매일 그 근처 나무숲에 찾아와서 우리가 속해 있는 조용한 세계의 태엽을 감았다."

p14, 1권 도둑까치 편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

p119, 1권 도둑까치 편


태엽을 감는 새는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하지만 정교하고 면밀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알 수 없는 `장치`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이 태엽 감는 새는 우리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 존재의 모습은 소설의 끝까지 드러나지 않지만, '끼익 끼익' 우는 그 소리를 들었을 때면, 들은 이의 생이 기묘하게 사단이 납니다. 오카다가 고양이를 찾아 나설 즈음에 그는 이 '끼익 끼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즈음부터 그의 인생은 모퉁이를 돈 것처럼 전혀 다른 - 상상하거나 예측하지 못했던 - 생 속으로 단호하게 들어가게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주위는 말 그대로 `기묘한` 것들로 잔뜩 둘러싸이게 됩니다.


"날 수 없는 새, 물이 없는 우물, 나는 생각했다. 출구가 없는 골목"

p132, 1권 도둑까치 편




이명

하루키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소리`는 이 소설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오브제입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 즐겨 거론되는 그의 음악적 상식과 이해의 깊이는 찬사를 받을 정도입니다 - 이 소설에서도 난무합니다.

이 소설에서의 `끼익 끼익`을 보며 저는 이명을 생각했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사가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병원을 갔더니, 스트레스로 인한 이명이라고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참 희한한 병도 있네라고 생각했지만, 저 자신도 그런 이명을 종종 접하게 되었답니다.


이명: 귀울림이 없는데도 잡음이 들리는 병적인 상태


우리는 어떤 어떤 과정에 의해서 결과가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무엇 무엇을 해서 성공하게 되었고 어떤 것을 해서 또는 어떤 것을 간과해서 실패했다고 진단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제`가 마치 남의 것처럼 보일 정도로 `오늘` 갑자기 - 내 것이 아니었는데 불현듯 선물을 받듯이 - 주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것이 원하지 않는 실패 쪽에 가까울수록 시간이 휘어지고 공간이 왜곡되며 귀의 울림은 괴이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을 하루키는 이 소설에서 태엽 감는 새의 `끼익 끼익` 태엽을 감는 소리를 들을 때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저의 독서 버릇 중의 하나는 그래서 나는 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끊임 없이 찾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오카다는 작가 하루키와 아주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 눈을 가려 남자 친구를 죽게 만든 소녀 가사하라 메이가 주인공 오카다를 표현한 다음 문장과 같이

하루키는 겉으로는 무덤덤해 보이고 답답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열심히 싸우는 오카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저씨는 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무엇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는 듯이 행동해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아저씨는 아저씨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고 있는 거예요. 타인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p371 - 372, 2권 예언하는 새 편

 

물론,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태엽 감는 새나 우리들에게 갑작스러운 변화를 주는 그 새의 울음소리에 비해

그런 오카다의 분투는 너무나 미약하게 보입니다. 또한, 풀리는 태엽을 거부할 수 없는 판에 박히고 초라한 우리 자신을 부정하기도 무척 힘듭니다.


"그들은 등의 태엽이 감긴 인형이 테이블에 놓여지듯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행위를 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방향으로 끌려갔다.

그 새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하게 부서지고 많은 것을 빼앗겼다.

많은 사람들은 죽어 갔다. 그들은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그대로 밑으로 떨어져 갔다."

p106, 4권 사람은 누구나 태엽 감는 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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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분명 저에게 말해주는 것은,


우리는 불현듯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저항할 수 없는 '풀림'으로 좀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묘한 궁지로 내몰릴 수도 있다. 태엽 감긴 장난감이 자기가 원할 때 멈추거나 방향을 틀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치명적인 나아감에 몹시 당황하고 무기력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은 바닥에서 또 더 아래를 발견하고 또 더 아래를 발견하다 마지막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바닥을 느꼈을 때, 태엽 감는 새는 우리의 태엽을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감고 나아가던 우리의 방향을 틀어준다. 우리가 그런 자비와 같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 문제의 해결 또한 자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운명의 신과 같은 태엽 감는 새에 의한 수동적 해결 - 도무지 해결책이라고는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 망연자실의 벽 앞에서 끊임없이 밀쳐내고 손톱이 빠질 듯이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도 묵묵히.

하지만, 그 밀쳐냄과 헤쳐나감은 그 궁지가 불현듯 기묘하게 왔듯이 충분히 기묘하고 지금까지는 전혀 하지 않았던 방법들이이야한다.

오카다 마루가 마른 우물 바닥으로 스스로 내려가 단절된 어둠 속에서 - 우물 위의 작은 구멍으로 하루 중 단 한 순간만 해가 일직선으로 들어오는 그 속에서 -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사유하듯이 말이다.





















"그녀 부모의 반응은 무척이나 냉담했다. 마치 온 세상의 냉장고 문이 한꺼번에 열린 것 같았다."
p97, 1권 도둑까치 편

"그 옅은 어둠에는 옅은 어둠 나름의 어둠이 있었다."
p98, 2권 예언하는 새 편

"사람들은 모두 힘들어 보이는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뭉크가 카프카의 소설을 위해 삽화를 그렸다면 그런 식이 되지 않았을까"
p102, 2권 예언하는 새 편

"결코 해파리를 변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 생명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이다."
p300, 2권 예언하는 새 편

"`태엽 가는 새` 원래 이름은 모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태엽 감는 새는 매일 그 근처 나무숲에 찾아와서 우리가 속해 있는 조용한 세계의 태엽을 감았다."
p14, 1권 도둑까치 편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
p119, 1권 도둑까치 편

"날 수 없는 새, 물이 없는 우물, 나는 생각했다. 출구가 없는 골목"
p132, 1권 도둑까치 편

"아저씨는 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무엇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는 듯이 행동해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아저씨는 아저씨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고 있는 거예요. 타인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p371 - 372, 2권 예언하는 새 편

"그들은 등의 태엽이 감긴 인형이 테이블에 놓여지듯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행위를 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방향으로 끌려갔다.
그 새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하게 부서지고 많은 것을 빼앗겼다.
많은 사람들은 죽어 갔다. 그들은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그대로 밑으로 떨어져 갔다."
p106, 4권 사람은 누구나 태엽 감는 새

"사물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론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분명 사람의 눈을 끌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의 대부분은 자질구레한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불필요하게 돌아가는 길과 같은 거에요. 머릴 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사물은 점점 일반화 되는 것입니다."
p88, 1권 도둑까치 편

"오카다 씨. 모퉁이를 하나 돌면요, 그런 장소가 분명 있어요. 거기에는 당신이 본 적도 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어요."
p262, 1권 도둑까치 편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은 지나가버린 후에 뒤돌아보는 것입니다."
p299, 1권 도둑까치 편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오. 그리고 아마 나는, 그 때 느꼈듯이, 그 빛 속에서 숨이 끊어져 죽어버렸어야 했던 것이오."
p399, 1권 도둑까치 편

"조수 간만과 같죠.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어요.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p15, 2권 예언하는 새 편

"인생이라는 것은 그 와중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한정되어 있소. 인생이라는 행위 속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은 한정된, 아주 짧은 기간이라오."
p73, 2권 예언하는 새 편

"나는 지금 이렇게 우물 바닥에 있다."
p97, 2권 예언하는 새 편

"그리고 모든 것은 외부에서 와서 외부로 사라져가는 것이다. 나는, 나라는 인간이 그냥 지나가는 길에 불과한 것이다."
p181, 2권 예언하는 새 편

"내 그림자도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답니다"
"눈물의 그림자는 아무데나 있는 그냥 예사로운 그림자가 아니에요. 전혀 달라요.
그것은 어딘가 다른 먼 세계에서 우리의 마음을 위해서 특별히 오는 거랍니다.
아니, 어쩌면 그림자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 진짜고, 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 그냥 그림자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어요."
p233 - 234, 4권 사람은 누구나 태엽 감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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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2 1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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